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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경건함과 동정심 - 피조물의 사랑
1. 경건한 생활은 사도 바울로가 우리에게 말하듯이 모든 면에서 유익하며 프란치스꼬의 마음을 가득 채웠으며, 그의 전 생애가 그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또한 그를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영결시키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로 변화케 한 것도 바로 사랑에 가득찬 동정심이었다. 그가 자신을 겸손히 이웃에게 바치도록 인도한 것도 그리고 온갖 피조물들과 인간과의 조화를 회복시킴으로써 그로 하여금 원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한 것도 역시 이 사랑에 찬 동정심이었다.
사랑에 찬 동정심은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특히 예수님께 당신의 고귀한 피로 구제한 영혼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보게 했다. 만약 죄로 더럽혀진 인간을 보게 되면 그는 너무나 절실한 연민의 정을 갖고 슬퍼했기 때문에,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 어머니와도 같이 그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가 그토록 존경심을 지닌 주된 이유이다 -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노력과 열정과 목자적인 열심히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의 귀한 형제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은 자녀를 낳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비의 행위가 그 어떠한 희생보다도 자비로운 하느님께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특히 그 자비의 행위가 설교보다는 모범으로써 장황한 설교보다는 열렬한 기도로써 완전한 사랑의 정신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더욱 그렇다고 확신하였다.
2. 프란치스꼬는 듣는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설교자나, 나쁜 생활의 표양으로 인해 자신이 가르침으로써 성취한 것을 망치는 설교자에 대해 우리는 애석함을 느껴야 한다고 늘 말하곤 했다. 그러한 사람은 그 어떠한 진실한 수도자 정신도 결핍되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웅변적 호소력이 없는 평범한 설교자가 그 자신의 좋은 표양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아이 못 낳던 여자란 교회 안에서 아이를 낳도록 임명되지 않은 불쌍한 수사이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 많은 아이들을 낳을 것이오. 왜냐하면 그때가 심판관은 그가 숨은 기도로 현재 그리스도에게로 귀의시키는 모든 사람들을 그의 영광의 덕분이라고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오. ‘아들 많던 어미는 그 기가 꺾이리라’(상동)는 말은 헛되고 말 많은 설교자로 자신의 능력으로 낳았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에 대해 현재 자만하고 있으나 그때에 자신은 그들의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오.”
3. 프란치스꼬는 열정적으로 타올랐으며 진심어린 동정심으로 인간의 구원을 갈망했다. 그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경건한 수사들이 자기 자신들에 대해 훌륭한 평판을 얻은 결과로 사람들이 진실의 길로 돌아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것은 그에게 달콤한 향기가 나는 매우 값진 향유, 즉 마음을 녹이는 방향과 같다고도 늘 말하곤 했다. 그러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는 매우 기뻐하였으며 또한 죄인들을 예수님 사랑에로 인도하는 책임을 맡았던 수사들에게 가장 환영의 축복을 주었다. 반면 그가 “나쁜 표양으로 자신이 과거에 이루었고 그리고 수도회에 있는 거룩한 수사들이 계속 성취할 것을 방해하고 망치는 자들에게 하느님과 하늘에 있는 모든 성인들께서 저주하시기를, 나는 또한 그들을 저주 합니다”라고 말하였듯이 자신들의 나쁜 행동으로 수도원에 누를 끼친 사람들은 그의 무서운 저주를 받았다.
그는 경험이 없는 수도회 회원들에 관해 추문이 들리는 것을 알았을 때에 너무나 마음이 상해서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써 그를 붙들지 아니했다면 그로서 견디기에는 너무나 큰 것이었을 것이다. 나쁜 표양을 보고는 마음이 혼란하여져서 자비로운 아버지 하느님께 아들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을 때에 그는 아래와 같은 대답을 들었다: “불쌍한 자여, 너는 무엇을 걱정하느냐? 내가 너를 나의 수도회의 목자로 만들어 놓고 나 스스로 그 수도회의 보호자가 되기를 그만두리라 생각하느냐?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는 네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내가 네 안에서 이루어놓은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은총에 의한 것이다. 수사들을 부른 자는 바로 나다. 내가 그들을 지킬 것이며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만일 몇 형제가 길가에 넘어지면 그들 대신에 딴 사람들을 일으킬 것이며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내가 그들을 태어나게 하겠다. 이 수도회가 아무리 심하게 흔들린다 하더라도 이 수도회는 나의 은총을 통해 굳게 존속할 것이다."
4. 프란치스꼬의 눈에는 비방하는 악이 특히 수도자 정신에 반대되며 은총의 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것에 대해 마치 뱀에 물리는 것 같이 ,아니면 지독한 흑사병과 같이 끔찍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는 비방하는 자는 그 자신이 혀로써 죽이는 영혼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살기 때문에 하느님의 눈에는 역겨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번은 한 수사가 다른 수사의 훌륭한 명예를 깎아내린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대리자에게 “자 빨리빨리 조사해 보시오. 만일 그 비난받은 수사가 결백하다면 그의 비방자를 엄격하게 바로잡음으로써 다른 모든 수사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시오”라고 말했다. 때로 그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해치는 수사들에게는 수도복을 벗기는 벌을 내렸으며 덧붙여 그가 저지른 것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할 때까지는 하느님께 눈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방자는 도독보다 더 사악한 죄를 범하는 사람이오. 왜냐하면 사랑 안에서 완성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육체보다도 영혼에 좋은 것을 바라도록 하기 때문이다.”
5. 프란치스꼬는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스럽게 또 애정을 가지고 동정했으며 또한 어떤 사람에게서 빈곤이나 결핍을 보면 즉시 그리스도의 사랑은 오직 이러한 것을 강하게 해주었을 뿐이었다. 가난한 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볼 때면 그의 영혼은 연민의 정을 솟아났으며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데에는 아낌없는 애정을 쏟았다. 한번은 한 수사가 귀찮을 때에 애긍을 청하러 온 거지를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프란치스꼬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 거지에 대한 사랑에서 그 수사로 하여금 수도복을 벗게 하고는 그 거지의 발아래에 엎디어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의 기도와 용서를 청했다. 그 수사가 겸손하게 순명하자 프란치스꼬는 부드럽게 말했다. “내 형제여, 당신이 거지를 볼 때 당신은 바로 주님과주님의 가난한 어머니의 형상을 보고 있는 것이오. 병든 사람을 볼 때 그가 우리를 대신해 짊어진 병을 명심하시오.” 프란치스꼬는 만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기에 그는 그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 비록 자기 자신이 그것을 심히 필요로 하는 경우 라도 -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러한 애긍에 대해 마치 그것들이 그들에게 속한 것처럼 그들에게 권리가 있다고까지 믿었다. 한번은 그가 시에나에서 돌아오고 있을 때 한 거지를 만났다. 그때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수도복 위에 짧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 가난한 사람의 궁핍한 처지를 보았을 때 프란치스꼬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 외투를 저 가난한 거지에게 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이것을 더욱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빌려 갖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동료는 성인 자신에게 그 외투가 몹시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성인이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하고 성인은 주장했다.
“위대한 희사자이신 하느님은 내가 가진 것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가 주지 않는다면 그것을 내 쪽에서 도둑질한 것이라 여기실 것입니다.” 그는 은인으로부터 자기가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이나 받을 때면 언제나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날 경우 그 물건을 주어도 되느냐고 묻곤 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한 외투, 수도복, 책, 혹은 제대덮게 등 그 어떠한 것도 전적으로 아끼지 않고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고자 그것들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 또한 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거지들을 만날 때면 그는 자주 그 무거운 것을 자신의 약한 어깨위에 올려놓곤 했다.
6. 모든 것이 같은 근원에서 생겨나온다는 인식은 프란치스꼬를 지금까지보다 더 큰 애정으로 가득 채웠다. 그래서 그는 아주 미미한 피조물에게 조치도 그들이 그와 똑같은 기원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형제자매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그대로 반영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때로 죽게 끌려나온 양들을 자주 구했는데 이는 죄인들을 구하고자 스스로 원하시어 죽으신 천사의 어린양을 기념하고자 한 것이다.
한번은 그가 굽비오 주교관구의 산 베레꾼도의 수도원에서 머물고 있을 때 양 한 마라가 그날 밤에 태어났다 . 그러나 그것은 즉시 그 죄 없는 피조물에게 조금의 자비심도 가지지 않은 한 악한 암퇘지의 습격을 받았는데 그 돼지는 굶주린 듯 그 양을 한입에 물어 죽였다. 이를 전해들은 성인은 원죄 없으신 천주의 어린양을 상기하여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 양의 죽음을 애도했다. “죄 없는 피조물인 양 형제여, 너는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눈에 대신 보여주었다. 너를 죽인 사악한 동물에게 저주 있을진저. 그 어떠한 인간이나 동물이 그것을 결코 먹지 말기를.” 당장 거기서 그 사악한 암퇘지는 병이 들어 삼일 동안 앓고 난 후 마침내 자기의 죄를 죽음으로써 보상했다. 그 시체는 수도원 해자 밖에 버려져 오래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판자처럼 뻣뻣해져 가장 굶주린 동물조차 먹으려 들지 않았다.
한 동물의 잔악함이 그와 같이 끔찍한 종말을 초래했다면 처벌의 시기가 최후에 왔을 때 사악한 인간들의 운명은 어찌될까? 이일로 믿는 이들도 프란치스꼬의 따뜻한 사랑의 위력과 또 그것이 동물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호응을 할 만큼 그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7. 시에나 가까이를 여행하고 있었을 때 프란치스꼬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많은 양떼를 만났다. 그가 그들에게 평소처럼 다정하게 인사했더니 양들은 풀 뜯기를 멈추고 모두 그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곧추세우고 서서 프란치스꼬를 주시했다. 그들이 프란치스꼬에 대해 그들의 존경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어서 목동들과 다른 수사들은 놀라 한살 박이 양들과 수양들이 그의 주위를 흥분해서 뛰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번은 그가 뽀르치옹꼴라에서 한 마리를 선물 받았을 때 양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 덕, 즉 순결함과 단순함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그것을 받았다. 그는 그 동물에게 하느님을 찬미할 것과 수사들을 화나게 하는 짓을 삼갈 것을 훈계했다. 그러자 그 양은 마치 그가 자기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지도를 주의 깊게 따랐다 성당에 들어가서 수사들이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는 그것은 마치 어린양의 어머니 신 성모님께 인사라도 하려는 양 자발적으로 제대 앞에서 깊은 존경심으로써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울었다. 미사중 성체 거양 때에 무릎을 꿇고 깊이 경배하였기에, 믿음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복된 성체에 대한 존경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한편 신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꾸짖는 것이 되었다.
또 한번은 로마여서였는데 그때도 프란치스꼬는 천주의 어린양에 대한 존경심에서 양 한 마리를 갖고 있었는데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는 그 양을 세떼솔리의 야코바 부인에게 가지라고 주었다. 그 양은 자기의 여주인을 따라 성당에 가서 프란치스꼬가 정신적 훈련을 그에게 시킨 것처럼 그녀가 떠날 때까지 떠나지 않고 같이 머물렀다. 아침에 혹 그녀가 늦게 일어나는 일이 있으면 그 양은 그녀에게 성당에 갈 채비를 서두르라고 조르며 뿔로 그녀를 쿡쿡 찌르고 울음소리로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적이 놀랐으며 프란치스꼬의 제자였으며 지금은 신앙생활의 스승이 된 그 양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8. 한번은 프란치스꼬가 그레치오에서 살아 있는 산토끼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그는 그 토끼를 땅에다 내려놓고 좋아하는 곳으로 가도록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토끼를 부른 순간 그것은 펄쩍 뛰어 프란치스꼬의 팔에 안겼다. 프란치스꼬는 다정하게 안고 마치 어머니처럼 그것을 가련해하는 것 같았다. 그다음 그는 다시는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가고 부드럽게 경고하고는 그것을 자유롭게 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그가 가라고 땅 위에다 내려놓기만 하면 토끼는 어떠한 신비한 방법으로 프란치스꼬가 자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품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결국 프란치스꼬는 수사들에게 그 토끼를 숲 속 더 안전한 장소에 갖다 두게 했다.
같은 방법으로 트라시메노 호수에 있는 한 섬에서 잡힌 토끼는 모든 사람을 두려워했지만 프란치스꼬의 포옹에도 그곳ㅣ 제집인 것처럼 제 몸을 맡겼다. 그레치오로 가는 도중에 피에딜루꼬 호수를 지나고 있을 때 한 어부가 물새 한 마리를 주었다. 프란치스꼬는 그것을 받아서는 양팔을 벌려 그 새를 놓아주려 했으나 그새는 떠나려 하지 않았다. 성인은 거기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했다. 한참 후 자신으로 돌아와 새에게 날아가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한번 더 격려했다. 프란치스꼬가 그에게 축복을 주자 그 새는 약간 몸을 움직여 자기의 기쁨을 내보이고는 날아갔다. 같은 호수에서 프란치스꼬는 살아 있는 생선 한 마리를 얻었는데 보통 때처럼 형제로서 말을 건네고는 배 가까이 있는 물에 도로 넣어 주었다. 그 고기는 프란치스꼬의 애정에 매혹된 것처럼 그의 앞에서 이리저리 설치며 놀더니 프란치스꼬가 축복과 함께 허락하자, 그때야 겨우 떠났다.
9. 또 한번은 프란치스꼬가 다른 수사와 함께 베네지아 늪지를 걷고 있을 때 갈대 사이에서 지저귀고 있는 거대한 새떼를 만났다. 성인은 새들을 보았을 때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자매인 새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 속에 들어가 성무일도를 드리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릅시다.” 그들이 거기 있는 새들 틈에 끼어들었는데 새들이 너무도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기 때문에 수사들은 자기들의 성무일도 받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마침내 성인은 그들에게 돌아서서 “자매들이여, 찬양받을 권리를 가지신 하느님께 우리가 찬양 드릴 때까지 지저귀지 말아다오”라고 말하자 새들은 곧 조용해졌으며 동료들이 성무일도를 바칠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또 찬미를 다 바치고 난 후 프란치스꼬가 다시 그들에게 노래하길 허락할 때까지 그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 뒤 새들은 일상처럼 노래하기 시작했다.
뽀르치웅꼴라에 있는 프란치스꼬의 방 곁의 무화가 나무에 매미가 않아서 노래하곤 했는데 그 노래는 프란치스꼬에게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자극했던 것이다. 이것은 가장 보잘 것 없는 피조물 안에서도 그는 창조주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프란치스꼬가 매미를 불렀다. 매미가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의 손으로 뛰어내려와 않았을 때 프란치스꼬가 “노래하라, 나의 자매인 매미야, 너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라”하고 말하자 곧 매미는 울기 시작해서 프란치스꼬가 매미에게 원래 늘 있던 가지로 돌아가라고 말하자 그제 서야 겨우 그쳤다. 거기에 매미는 남아서 일주일 내내 그의 청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매일 왔다가 가곤 했다. 마침내 성인은 동료들에게 “우리의 자매인 매미에게 자유롭게 날아가 버리도록 허락해 주어야 하오. 매미는 노래로써 우리에게 충분한 기쁨을 주었으며 우리에게 일주일 내내 하느님께 찬미하라는 깨우침을 주었소”라고 말하였다. 그가 매미에게 떠나라는 허락을 주자 곧 매미는 그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감히 어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사라져서는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0. 프란치스꼬가 시에나에서 병이 나 있었을 때 어떤 귀족이 산 채로 잡은 꿩 한 마리를 그에게 보내왔다. 그 새는 프란치스꼬를 보고 또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매우 다정하게 프란치스꼬와 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그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를 수차례 수도원 외곽에 있는 포도원 쪽으로 풀어주었으나 그 새는 평생을 프란치스꼬와 살았기라도 한 듯이 항상 성인께로 되돌아왔다 .결국 그들은 성인을 자주 만나러 왔던 한 사람에게 주었지만 그 새는 프란치스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싫은지 전혀 먹으려 들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그 새를 데려와 그새가 프란치스꼬를 볼 수 있게 되자마자 그 새는 먹기 시작하고 온갖 기쁨의 표정을 다 지었다.
성 프란치스꼬가 성 미카엘 대천사를 기념하기 위해 단식하고 자 라 베르나 산의 은둔소에 도착했을 때 온갖 새떼들이 그의 도착을 환영하듯 노래하며 그의 방 주위를 선회했다.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있을 아버지를 초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프란치스꼬는 새들을 보고 동료들에게 “나는 우리가 여기 머무는 것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소. 우리 자매들인 새들이 우리를 보고 이처럼 기뻐하고 있으니 말이오”라고 말했다. 거기에 체류하는 동안 그곳에서 서식하고 있던 한 마리의 매가 그의 친한 친구가 되어 매일 밤 그의 성무일도를 드리려고 일어나곤 하던 시간에 노래로 그를 깨워 주웠다. 그에 대한 염려를 보여줌으로써 그 새는 그가 나태할 조금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아 성인은 기뻤다. 그러나 프란치스꼬가 평소보다 더 휴식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 매는 그를 가엾게 여겨 그렇게 일찍 깨우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그 매는 하느님에게 교육을 받은 것처럼 새벽녘쯤 종소리와 같은 노랫소리로 그를 깨우곤 했다.
온갖 새들과 매의 노랫소리가 보여준 기쁨은 확실히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는 데 헌신하는 프란치스꼬가 명상의 날개를 타고 높이 오르고 세라핌의 발현으로 명상의 최고 경지에 다다르게 될 것을 가리키는 하나의 신적인 조짐이었던 것 같다.
11. 한번은 프란치스꼬가 그레치오의 은둔소에서 지내고 있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친 일련의 재해 때문에 형편이 나쁜 처지에 빠져 있었다. 탐욕스런 늑대 떼가 그 지역의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것이며 옥수수 밭과 포도원은 매년 우박으로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다. 프란치스꼬가 그들에게 설교하던 중에 그들에게, “만일 여러분이 나를 믿고 참된 고백을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음으로써 자신들을 위해 자비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전능하신 하느님의 영예와 영광으로써 이러한 온갖 재난이 곧 끝날 것이며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축복을 풍부히 내리시리란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태도가 불손하게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간다면 당신의 곤경은 되살아나고 전보다 더 극심해질 것이며 하느님의 분노가 두 배로 가중될 것이라는 것도 또한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프란치스꼬의 충고대로 회개하였다 그러자 그 순간부터 그들의 고통은 끝아 났다. 위기는 지나갔고 늑대 떼와 우박은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았다. 사실 이웃 땅을 황폐시킨 우박을 동반한 폭풍은 그들의 땅 가까이 와서는 멈추거나 진로를 바꾸어 갔다. 우박과 늑대 무리는 프란치스꼬와 맺은 계약을 지켰으며 동의한 대로 사람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한 그들을 괴롭히려 하지 않았으며 지금 그들은 선한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너무나 놀라운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야생동물들을 복종하게 하고, 숲의 짐승들을 길들이고, 이미 길들여진 동물들을 훈련시키고, 인간의 원죄로 인하여 인간들과 원수가 되었던 맹수들을 다시 순종하게 한 프란치스꼬의 사랑에 찬 경건심에 대해 가장 큰 존경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경건심이며 이 경건심은 모든 창조물을 사랑이란 하나의 계약으로 뭉쳐 주기에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것은 현세의 생명을 약속해 줄 뿐 아니라 내세의 생명까지도 약속해”(1디모 4,8) 주는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