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음악사를 논할 때 먼저 가장 어려운 점은 고대,중세,근대,현대등의 식으로 음악사의 시점을 구분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음악가로 구분할까, 정치사로 구분할까, 작품군으로 구분할까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 특징적인 것은 한국음악사연구에서 필수적인 관련문헌,사료,작품등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한국음악학에서의 음악사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없는 조건이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음악은 연구되고 있다. 미약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성과물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2. 삼국시대 이전의 한국음악
삼국시대의 음악에 관한 기록은 현재 국내에서는 기록이 없다.
중국측의 문헌인 "후한서", 나 "삼국지위지동이전"이라는 기록서에서
공통적으로 한민족을 , "5월 파종이 끝나면 마한과 부여에서 제를 지내는데,군중들이 모여 밤낮으로 가무음주와 함께 풍류를 즐겼다" 고 우리민족의 음악성을 평가해 놓았다.
요즈음 노래방문화와 관광차문화는 바로 여기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부족국가인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등에서의 제천의식기록이 한국음악의 형성에 고대 무격신앙이라는 형태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 서울 잠실 민속박물관내의 황해도 안악고분 (모조품이지만),국립중앙박물관등을 가보시기 바란다.
3. 삼국시대의 음악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음악이 가장 많이 발달하였다. 특히, 중국 한나라음악( 고취악이 중심적으로 발달)이 5세기 초반에 고구려에 유입되면서
아랍음악등과 함께 전파되었다.
이와 더불어서 고구려악과 향토악기등도 같이 발전되었다.
- 황조가, 공후인 등등
백제는 고구려보다는 고루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 백제 악사가 554년 이후로 일본에 정기적으로 음악을 교류하는 등 일본음악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라도 가야국의 가야금영향으로 우륵을 중심으로 한 음악대중화를
통해 한국음악의 기틀을 만들었다.
4, 남북조 시대(통일신라와 발해)의 음악
남북조 시대라 함은 통일신라와 발해시대를 가르키는 용어다.
통일신라에는 당나라와의 교류로 당악이 전래되어 향악과 당악(남조)의 구분이 보편화 되었다. 이 때 생긴 음악형태가 조선시대에까지 널리쓰인 음악연주방식인 "삼현삼죽(거문고,가야금,향비파,대금,중금,소금이라는 악기로 구성된 연주단과 음악)"의 연주형태인 것이다.
- 최치원의 향악잡영 5수 등
발해역시 고구려음악의 계승과 중국음악가들과의 교류로 나름대로의
음악을 발전시켜갔다.
5. 고려시대의 음악
고려시대부터는 국가음악이라 하여 이전시대보다는 체계적으로 관리하는등 음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음악을 아악과 당악, 향악의 3분류체계로 정리하고 "음성서"라는
국가음악기관을 창설해서 담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국가음악을 "방악"이라고 고려중기이후부터는 부르기 시작했다. 음악을 양부악이라 하여
좌방악과 우방악으로 발전시켰다.
1) 아악 : 고려 예종 9년 대성아악이라는 송나라의 일반음악이 전래.
2) 당악 : 고려의 당악은 당나라음악에서 비롯된 송나라 제사음악.
- 보허자, 낙양춘등의 43곡이 전래됨.
3) 향악 : 고려 속요 모음집인 "고려사" 악지편에 수록된 속악곡.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음악연구서"대악후보" 나
"시용향악보" 에도 수록되어 있다.
6. 조선시대의 음악
조선시대는 비교적 다른 시대보다는 많은 문헌과 증명사료가 있어서
음악사연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세종대왕과 성종이 고려때 부터 내려온 아악과 향악을 정비하고 또 새로운 음악과 작품을 국가적으로 제정하여 악보편찬,악곡의 작사,작곡에 힘을 쏟아 그 결과물로 "정간보"라는 대중적인 악보와 한국전통음악사전이라 할 수 있는'' 악학궤범'' 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국립음악기관인 장악원과 국립악기제작소인 악기도감이라는 기관도 설치했다.
조선 중기에는 선비들의 풍류음악인 향악이 발전되었다. 그로인해 당악의 향악화가 시도되면서 국악이라는 통일음악화가 진행되었다.
또 조선후기부터는 궁중음악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박자의 1음화현상과 악곡의 감소화 , 민속음악의 발전(판소리, 잡가, 산조음악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7. 근대음악
음악이라는 말뜻은 "음" 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한국음악의 우수성은 이제 점차로 세계인에게 인정받아가고 있다 .
그러나 정치사에 있어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과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음악이 소개되고 독일인 에케르트의 군대음악이 유입되면서 한국음악의 구체적인 체계화 작업이 안되면서 많은 음악가들과 악기,문헌,악보,악곡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조선시대부터 한국음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장악원이 일제의 영향으로
해체되면서 그 뒤 아악부와 아악부원양성소로 축소된 기관에서 한국음악은 명맥을 유지시켰으며 이후 한일합방과 영욕의 36년간은 조양구락부라는 단체와 조선성악연구회를 거쳐 현재의 국립국악원이 1951년4월에 6-25 민족동란가운데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개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는 한국음악-특히 전통음악_ 이 국립국악원,국악협회등의 교육단체,대학교 국악과 ,무형문화재 라는 4대 축으로 육성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음악등의 약진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언론이나 대중매체의 외면은 여전하다. 또 학교에서의 한국음악교육은 거의 이루어 지고 있지 않다. 이는 서양음악전공자와 유학파등이 한국음악을 이끌어 가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8. 끝말
음악은 인간의 정서에 크게 작용하는 예술분야다.
그러나 ,우리음악인 한국음악은 서있는 자리가 너무 비좁다
국경없는 만국공통어가 음악이라고 말하기에 앞서서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음악을 사랑하고 그에 따른 실천이 있을 때 우리음악의 우수성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끝으로 1 사람 1 악기 익히기 운동을 제안해 본다
음악과 함께 인생을 동반해 본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