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신문 사회면에 크게 보도되었던 공해병인 ‘코뚤림병이 집단 발병했다’라는 기사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크롬중독에 의한 ‘비중격천공’이다. 비중격천공은 콧속의 가운데 물렁뼈가 손상되어 구멍이 생긴 것을 말한다.
크롬은 의외로 실생활에 많이 이용된다. 금속물질 중 겉이 은백색으로 반짝거리는 것은 대부분 크롬으로 도금이 되어 있다. 크롬은 부식에 강하기 때문에 금속에 막을 입혀 산화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금에 사용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숟가락이나 젓가락과 금속 그릇은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레스강으로 만들어졌다. 스테인레스강은 놋쇠그릇이나 유기그릇과는 달리 단단하고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주방용기로 널리 사용된다. 스테인레스강은 일반 철에 크롬이 20% 정도 함유되어 특수강철로 기계나 건자재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기타 크롬은 녹이 쓰는 것을 방지하므로 안료나 도료에 포함되어 각종 특수 도장에 사용된다. 크롬은 가죽 생산에도 사용되어 우지를 제거한 동물가죽의 표면을 처리하는데 사용된다. 기타 크롬은 사진 및 판화 등에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크롬에 노출될 수 있는 근로자는 크롬광 제련공, 크롬을 넣는 합금공, 도금공, 도장공, 천연피혁제조공, 용접공, 스테인레스강이나 제품 가공공 등이다.
도금과정에서 사용하는 크롬산은 피부에 강력한 부식작용이 있어 피부에 닿으면 궤양을 일으킨다. 도금과정에서 발생하는 크롬산 미스트(크롬을 함유한 수증기 형태)는 코로 흡입되어 비중격 부위를 손상시켜 궤양을 일으키고 심하면 연골을 파괴해 비중격천공을 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도금업체를 조사한 결과 269명의 비중격천공이 집단적으로 발견되었고 이후 매년 십 수 명에서 수십 명까지 크롬에 의한 비중격천공자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크롬에 의한 천공이 생기면 코피가 자주 나고 코딱지가 잘 생기지만 통증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근로자들이 스스로 천공을 발견하는 일은 드물고 건강진단에서 의사의 진찰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중격은 코 가운데의 앞쪽 아래의 연골부위에 생기므로 천공이 되더라도 코가 주저 않지는 않는다. 외상이나 매독에 의해 코가 손상된 경우에는 뼈에 이상이 생기므로 코의 외형이 변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비중격천공에서 외형적인 후유증은 없으나 콧소리가 나고 부비동염(축농증)이 잘 생길 수 있으며 일부 근로자들에게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냄새를 맡는 후각신경은 콧속 깊은 곳에 있으므로 후각신경이 직접적으로 손상되는 것은 아니지만 크롬의 독성에 의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천공된 구멍에 의해 코에 흡입되는 공기의 흐름에 변화가 생겨 냄새를 맡는데 장해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중격천공에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 수술을 통해 천공된 구멍을 메워줄 수 있으나 재발을 잘하고 복원을 하더라도 별다른 효과가 없기 때문에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
크롬은 비강암이나 폐암도 일으킬 수 있어
크롬은 비중격천공 만이 문제가 아니라 비강암이나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 크롬광석 제련업이나 스테인레스강 제조 근로자 또는 크롬이 함유된 스테인레스강을 용접 또는 가공하는 근로자, 크롬안료가 함유된 도료를 사용하는 도장 근로자 등에서는 크롬에 의해 폐암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작업자들은 충분한 노출이 인정된다면 폐암을 직업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외국의 문헌을 들어 용접작업자들이 폐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라는 요청이 증가하고 있는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용접을 얼마만한 기간 동안 했는지가 중요하다. 스테인레스강과 같이 크롬이 함유된 특수강을 용접하는 근로자들은 작업 중 발생되는 크롬분진 또는 흄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강철의 용접작업자들이 크롬에 노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크롬화합물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모든 종류의 크롬이 발암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3가 크롬은 발암성이 없으며 6가 크롬이 발암성이 있다. 6가 크롬 중에서도 비수용성의 6가 크롬이 발암성이 크다. 수용성의 6가 크롬의 발암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되고 있다. 천연피혁의 가공과정에서 사용되는 것은 주로 6가 크롬이며 도금작업에서 사용되는 크롬산은 수용성의 6가 크롬이고 제련, 안료, 스테인레스강 용접 중에서 발생하는 것은 비수용성의 6가 크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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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과정에서 발생하는 흄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가 여부는 흄에 6가 크롬이 함유되었는지에 달려있다. 크롬의 발암성은 주로 6가 크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박건조나 일반 기계제조업에서 과거에는 일반강을 많이 사용했으나 최근 들어 특수선박 건조 등에서 스테인레스강 등 크롬이 함유된 특수강을 더 많이 사용하므로 과거에 비해 최근의 용접자들에서 6가 크롬에 노출될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용접작업자에서 폐암이 발생한 경우 6가 크롬에 일정 수준 노출되는 경우에는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일반 용접작업자의 폐암은 업무관련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타 크롬은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고 천식을 일으킬 수 있다.
<사례1>도금작업자의 수용성 6가 크롬노출과 비중격천공
34세의 김씨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19년간 계속 도금공장에서 도금작업을 했다. 주로 기계류에 대해 경질 크롬도금을 하는 작업으로 호이스트로 크롬 도금조에 도금할 기계류를 넣고 한 두 시간 후에 꺼내는 작업이었다. 도금조에는 별도의 환기시설은 없었다. 평소 이상한 증상을 느끼지는 못했으나 냄새는 잘 맡지 못한다고 했다. 비강검사 결과 비중격에 직경 1.5㎝의 천공 소견이 관찰됐다.
<사례2>용접작업자의 불용성 6가 크롬노출과 폐암
46세의 이씨는 16년간 제강업체에서 용접, 절단, 그라인딩 작업을 하다가 폐암진단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실시한 작업환경측정에서 총 크롬은 노출기준을 초과했고, 이중 30% 정도가 6가 크롬이었고 6가 크롬의 약 30%가 불용성이었다. 지역시료에서 스테인레스강 용접작업의 6가 크롬은 노출기준의 10배 수준이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재의 크롬 함량은 낮았는데 과거에는 10~20% 수준이었다. 작업장의 환기시설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 노출 흡연력은 9~12갑?년이었다. 이씨의 폐암은 비록 흡연력이 있더라도 용접 작업 중 노출된 6가 크롬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례3>용접작업자의 크롬과 석면 노출과 폐암
45세의 강씨는 21년간 조선소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중 폐암을 진단받았다. 용접은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였고 10년 전부터는 용접과 현장 감독업무와 용접작업을 같이 했다. 강씨가 과거 수행했던 작업은 대부분 현 사업장에는 없었으며 생산제품의 종류도 많이 달랐고, 과거 작업환경측정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용접에 사용된 모재에서 스테인레스강 제품은 전체의 약 10% 정도가 됐으며, 용접은 개방 공간뿐만 아니라 밀폐공간에서도 이루어졌다. 10년 전까지는 화재 방지를 목적으로 석면포를 사용했다고 하나 현재는 사용되지 않았다. 과거 이 부서에서 악성중피종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때 석면포 분석에서 백석면이 확인됐다. 강씨의 흡연력은 4.5갑?년이었다. 선박건조 및 수리업 근로자에서 폐암의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선박 내 보일러 설치 관련 작업 등 석면에 노출되기 쉬운 작업과 용접흄에 노출되는 근로자에서 폐암 발생이 높다고 보고 되고 있다. 용접작업자는 용접흄 뿐만 아니라 석면포 사용으로 인해 석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용접작업자에서 폐암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고 그 이유로는 스테인레스강 용접과정에서 발생하는 6가 크롬과 용접과정에서 사용하는 석면포에 의한 석면노출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례4>천연 피혁공장 근로자의 3가 크롬 노출과 폐암
61세의 김씨는 21년간 천연피혁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폐암을 진단받았다. 3주간 지속되는 기침과 객담으로 폐결핵 의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폐암으로 확진됐다. 김씨는 흡연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도장반, 세이빙반, 선별반에서 근무했고 유성반에서는 월 100톤의 크롬을 사용했다. 작업환경측정에서 크롬은 검출됐으나 노출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다. 김씨의 작업장에서는 크롬을 사용했고 작업환경측정에서도 검출됐다. 따라서 김씨는 작업 중 크롬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높으나 이는 발암성이 있는 6가 크롬이 아니고 비발암성의 3가 크롬이다. 따라서 김씨가 비록 흡연을 하지 않고 20여 년간 피혁공장에서 근무하며 크롬에 노출됐으나 발암성이 없는 3가 크롬에 노출됐으므로 김씨의 폐암은 업무와는 관련하여 발생했을 가능성은 낮다.
<사례5>도금공의 수용성 6가 크롬 노출과 비강암
56세의 심씨는 31년간 크롬도금공정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했는데 비강암이 발견됐다. 이 사업장은 방위산업용품이나 항공부품을 제작 도금하는 사업장으로 심씨는 입사이후 도금반에서 근무했고 도금 작업장은 10년 전에 크게 개선됐다. 최근 5년 간 작업환경측정에서 총크롬이나 6가 크롬은 노출기준 이하로 검출됐다. 작업물량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하여 9기의 도금조 중 7기가 4년 전에 철거되고 현재는 2기만 남아 있다. 현재의 배기시설이 설치되기 전에는 크롬 도금조를 직접 설치하여 수작업으로 제품을 도금조에 담갔다가 끌어올렸다고 한다. 과거의 6가 크롬 노출수준은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심씨는 비중격천공 소견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료 근로자 중에서는 비중격 궤양 소견이 발견됐다. 흡연력은 20갑·년이었다. 비강암에 대한 바이러스 면역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타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따라서 도금공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면서 노출된 6가 크롬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례6>분진과 도료의 크롬 노출과 폐암
43세의 이씨는 23년간 방위산업용품 제조 사업장에서 무기 검수업무를 하다가 폐암이 발생했다. 이 사업장은 특수강을 구입해 가공하고 세척 한 후 도장해 무기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이씨는 직접 작업자는 아니나 업무의 특성상 전 작업과정을 현장에서 참여하며 공정별로 하자를 검사하고 감독을 했다.
이 회사는 폐쇄되어 작업환경측정자료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특수강은 크롬과 몰리브덴 성분이 함유된 크롬몰리브덴강을 사용했고 경질 크롬도금을 했으며 도장작업에 사용된 도료에는 크롬산연과 크롬산아연이 함유되어 있었다. 이씨는 흡연을 하지 않았다. 이씨의 폐암은 20년 이상 발암성이 있는 크롬, 크롬산염(크롬산연, 크롬산아연, 크롬산 스토론튬), 결정형 유리규산 등에 노출되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