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순천지원 1심판결
법원 "자백 신빙성 의심", 검찰 "즉시 항소하겠다"
18일 오후 4시10분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중법정. 80여명이 자리한 방청석에서 작은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판결문을 읽는 판사 입만 쳐다보던 피고인들 얼굴은 환해졌다.
한적한 시골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작년 7월6일 전남 순천 황전면 용림마을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228일 만이다.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홍준호)는 이날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로 최모(당시 59세)씨와 정모(당시 68)씨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 등)로 구속기소된 최씨의 남편 백모(60)씨와 막내딸(27)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딸 백씨에 대해 무고죄를 인정,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죄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선 자백의 신빙성이 명확해야 한다"며 "하지만 백씨 부녀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정황증거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고 무죄 선고 배경을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읽는 과정에서 "신빙성 부족" "의문" "납득하기 어려워" 같은 단어를 수십 차례 말했다.
재판부는 "범행 동기·공모·실행 등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사실과 증거는 없었다"며 "다만 사건 당일 집안에 놓여있던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숨진 최씨가 남편 백씨로부터 넘겨받아 희망근로 사업장에서 마신 점만 사실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독극물 막걸리를 누가 숨진 최씨 집안에 들여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 김회재 차장검사는 "증거 판단에서 현저하게 합리성을 결여한 판결이다. 납득할 수 없다"며 "자백과 물증도 충분한 만큼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청산염 구입 경로도 밝히지 못했다. 아버지 백씨는 검찰 조사에서 청산염 구입 시기에 대해서 "4~5년 전" "언제인지 몰라"로 오락가락 진술했다. 검찰은 "백씨는 1992년 해충 박멸을 위해 청산염을 구입한 뒤 이를 범행에 이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백씨가 청산염을 구입했다는 자전거 가게의 주인은 1999년 사망한 만큼 진술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특히 청산염은 공기와 만나면 독성이 제거되기 때문에 백씨 진술대로 검은 비닐과 신문지로 보관한 청산염은 범행 사용 전에 이미 독성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법원은 검찰이 신청한 변론재개를 불허했다. 검찰은 딸이 입고 있던 속옷의 정액 유전자 검사, 2007년 딸이 출산해 해외로 입양한 아이의 유전자 검증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법원은 "1심 구속 기한(6개월)을 고려하면 3월11일까지 검찰 증거조사를 시행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더구나 검찰의 신청 증거는 피고 자백의 신빙성 판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작년 7월6일 순천시 황전면 개울가에서 청산가리를 주입한 막걸리를 마시고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