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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9:1-25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 (1) 찬송: 5, 27, 295장 교독문: 히 12:18-29
이제 우리는 출애굽기 1부를 마치고 2부를 살펴보게 되었다. 지난 주까지 출애굽기 1부에서 배운 것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하나님의 백성,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찾아오셔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후 출애굽 시키셨고, 홍해를 건넌 후 그들의 양식과 안전을 책임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세월 동안 노예 생활을 한 탓으로, 어떤 제도나 보호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단독 구속의 행위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여호와 하나님의 단독 행위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노예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롭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민이 된 것으로 모든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왜 해방시키셨느냐는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 우리는 그 큰 그림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아모리 족속, 즉 가나안 땅의 죄악이 가득 찰 때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이었다(창 15:16).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에서 430년 동안(출 12:40) 있게 하신 이유이며, 기한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그들은 분명히 오합지졸이었다. 스스로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만들어낼 수도 없는 상태였으며, 전쟁을 위한 무기를 만들 수도 없는 존재였다. 더욱이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여 이방 족속과 교류하거나 전쟁하기 위한 제도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출애굽 한 직후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양식의 문제를 친히 해결하시는 분으로 알게 하신 것이고, 외부의 침략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알려 주셨고, 또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제도를 만들도록 준비시키셨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은혜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출애굽기 1부(출 1-18장)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인도하심이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출애굽 하게 하신 이유를 들어야 한다. 단순히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셨다면, 홍해를 건넌 후 그들 스스로 그들의 정착지를 찾아가도록 보내시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스라엘 백성, 즉 아브라함의 후손은 분명한 출애굽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가나안의 죄악을 심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심판은 어떻게 시행될 수 있는가?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노예 생활을 이제 막 끝내고 탈출한 이 백성이 어떻게 이 놀라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과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제도를 허락하셨지만, 이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큰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에게는 왕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그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만 오합지졸의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나라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모세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이제 막 노예 생활을 마친 자들 가운데 있던 모세는 그들을 인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한 사람일 뿐이며,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보호하며,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등장하신다.
출애굽 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도착하여 진을 치게 되었다. 이 장소는 모세가 처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장소이다. 출 3장을 보면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강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이 자리에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모세는 애굽으로 향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이 산, 즉 하나님의 산 앞에 이르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질문해야 할 내용은 이것이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말씀하고자 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서 그들 앞에 서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당신의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으며, 이제 그들을 준비시켜 가나안 땅으로 보내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 대해 아주 무지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으로 등극하셔서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며, 그들을 인도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왜 출애굽 하였고, 왜 여호와 하나님의 산에 모여 여호와 하나님께 말씀을 듣고 언약을 맺는가를 가르쳐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조성하셔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없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하나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 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출애굽은 시작일 뿐이요, 그 시작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부름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깨닫고 이제부터 그 사명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하나의 큰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앞에서 양식의 문제와 대내외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신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제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언약이라고 부른다. 언약은 간단하게 약속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출 6:7)라고 말씀하시며, 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레 11:45) 는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려고 스스로 일어나셔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는 은혜를 의미한다. 그래서 출 19:4에서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내용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신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주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 대상은 친히 구속하신 이스라엘 백성이며, 조건은 오직 순종임을 알 수 있다. 5절을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여, 그분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순종하겠다는 조건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출 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과 보호하심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언약에 순종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언약이 체결되는데, 본문 출 19:9-15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전에 순결할 것을 명령하셨고, 출 19:16-25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림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셨고, 이 언약이 체결되었음에 대하여 출 20장에서 선언하신다. 그 내용이 바로 십계명과 이에 대한 해설이다. 그 내용이 출 23:19까지 계속된다.
우리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것일까? 둘째, 이 언약의 선언이 현재의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등극하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하나의 구별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출애굽하였다 할지라도 세상의 나라와 다를 바가 없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키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출애굽을 하였다는 것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즉 애굽과의 완벽한 단절을 통하여 이전의 노예 상태를 벗어버리고, 오합지졸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나라를 형성하여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창 18:18-19에서 이미 배웠다.
창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강대한 나라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여 타락한 이 땅에 여호와의 의와 공도를 보여야 할 의무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 즉 아브라함의 후손이 출애굽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을 조건으로 당신의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하셨고,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임으로써 이 언약이 체결이 된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언약의 내용을 선언하시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인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비준하시려는 의도와 목표를 우리가 배울 수 있는데, 언약의 조건은 순종이요, 언약을 맺으시는 의도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을 받게 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대리인인 제사장 나라로서,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신성함을 보여야 할 의무를 수행하는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왕 되심을 만방에 선포하는 목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과 자비와 은총으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영원한 나라이며,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된다. 그래서 히 12:28에서도 이렇게 우리에게 이런 권면을 주고 있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속함을 받아 시내 산에 모여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이라 부른다. 구원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구속하신 은혜를 포괄하는 단어로, 여기에서 우리는 구속(救贖)이란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구속이란 의미는 대가를 치르고 해방시켜 주는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을 의미한다. 죄 가운데 노예로 살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출애굽한 후, 홍해를 건너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단절된 삶의 자리에 들어오게 된 것, 이것을 구속(救贖)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속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리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 자리는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자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이 자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양식을 책임지시고, 삶에서의 대내외적 모든 문제를 친히 해결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자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삶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안전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삶은 여호와의 의와 공도를 지키며 사는 자리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는 자리가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질문이었던 ‘이 언약의 선언이 현재의 성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답이 된다. 구원의 자리에 참여한 우리 성도는 단순히 이 땅에서 복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 복은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즉 하나님의 백성은 이 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일용할 양식과 안전을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이전에 살던 모든 삶의 습관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언약의 내용을 마음에 품고 즐겨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애를 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기쁨을 회복한 성도의 바른 삶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복의 종교라고 말하며, 비하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가 세상에 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게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하나님께 세상에서 사는 데 필요한 복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이미 돌보심의 복을 받고 있는데, 왜 자꾸 세상의 것을 달라고 요구하는가? 그것은 아직 우리가 예전부터 갖고 있는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다. 이 신분을 생각하면, 우리의 위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의 문제를 끊고 영적으로 세상에서 건짐을 받은 것과 같다. 히 12:28의 말씀을 다시 보라.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는 세상에서 건짐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출 19:5의 말씀대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요구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진정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이 세상은 덧없이 흘러가는 곳이다. 우리가 소망할 수 없는 곳이다. 오늘 우리가 배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가 마음에 꼭 품고 있어야 할 바른 성도의 삶의 자세와 태도이다. 우리의 믿음을 고백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리에 들어왔음을 기억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가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