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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롬 6:8-14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삶 (1) 찬송: 3, 19, 436장 교독문: 고후 6:1-13
신앙생활 하는 자리에 부름을 받은 성도가 가장 의아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인정하신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죄인이었던 자를 바로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법정 논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에서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이루셨는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다.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타락한 인생의 죄책을 해결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심으로,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바,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불경건했던 자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은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게 되었으며, 이 은혜를 받은 이후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은 우리가 왜 이런 은혜를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동일하다.
먼저 본문이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자. 롬 6:8-11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그를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넘어 생명 안에 있게 되었으며, 이제 더 이상 둘째 사망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다. 그래서 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처럼 성도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일까? 우리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평안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 이렇게 하시는가?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을 생각할 때 이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그 사명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영역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보존하고 다스리는 대리인으로 사는 것이다. 이 사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 피조세계를 보존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장 먼저 주신 사명이고, 이 사명은 아담의 후손 전체가 받은 사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은 이 사명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이후로 오고오는 모든 세대는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자신의 안위와 만족한 삶을 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을 우리는 가인주의라 부른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동쪽으로 떠나 자신을 위한 성을 짓고,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함으로 타락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생의 삶의 모습이며, 그래서 이런 삶의 정신을 가인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이 구원의 자리에 들어온 성도, 즉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성도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구원에 이른 성도는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삶과 동일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성도의 현실이다. 이것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여전히 죄인의 삶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가? 의로우면 죄인이 아니며, 죄인이 아니면 의로운 행동과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성도(聖徒)란 어떤 의미인가? “거룩한 사람들의 무리”란 의미이다. 따라서 성도는 한 사람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인정하신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도는, 롬 6:11의 말씀대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삶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바로 이런 부분에서의 질문이 성도에게 항상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무엇인가? 불신자들은 죽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죽은 자로서의 삶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삶이며,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로서, 하나님을 추구하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의 육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산다. 그것은 결국 세상의 자원을 움켜 쥐고자 하는 목적, 그것으로 자신을 자랑하고자 하는 모습 외에 다른 것은 없음을 보여준다. 이런 자리에서 성도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세상과 구별되었고,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작점에 바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칭의(稱義)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칭의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완성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거룩해졌지만, 즉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한 것이지 모든 것을 이룬 마지막 성취의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6:12-14에서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하여 실제 칭의 이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즉 성도로 부름을 받은 자리에서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롬 6: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요약하면 “몸의 사욕에 손종하지 말고……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하신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은 무엇과 연결이 되는가? 바로 하나님의 창조와 연결이 되며, 이 창조의 마지막에는 완성이 있는데, 이 완성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이날에 예수님께서 신자와 불신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신자는 영생에, 불신자는 영벌, 즉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성경에 계시되어 있으며, 이 계시를 받은 성도는 그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우고, 그 일하심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완성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성도는 계속하여 그 삶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죄로 죽었던 자리와 의로움으로 구별된 자리를 구분해야 하며, 죄가 주장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에 대해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로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선물로 받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다. 하지만 이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후의 삶은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일하심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이제부터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인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쟁취할 만한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계속 실패하며 주저앉게 될 뿐으로, 우리의 완성이 언제 이루어질 지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더욱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가 일어나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에 이전과는 분명 다른 삶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바로 이것이 거룩함의 자리에 부름을 받은 성도의 삶의 모습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존재요,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행위를 드러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억압되고 속박된 자리에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리로 옮겨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경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완벽한 삶이 아니다. 여전히 불편한 삶이라고 느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처럼, 성도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 안에 가득하다. 달리 말하면, 성도의 삶은 아직 완벽하게 거룩함으로 구별된 삶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며,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결코 완벽에 이를 수 없는 불완전한 삶이 될 뿐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두 구절을 비교해 보라. 1절은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하고, 5절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도의 삶은 결코 완전한 삶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언제나 갈등으로 가득한 삶이요, 이 갈등으로 인해 언제나 힘겨워 하는 신앙생활을 한다. 이 갈등이 얼마나 심했으면 바울도 이렇게 말했을까!
롬 7:22-23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러한 삶이 바로 칭의 이후의 성도의 삶인 것이다. 의롭다고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셨지만,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 1:2)이라고 부름을 받고 있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삶을 우리는 성화(聖化)라고 부른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즉 거룩하다고 인정하는 자리로 구별이 되었지만, 아직 완벽한 거룩함에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화, 즉 ‘거룩하게 되어가는’ 삶이 바로 성도의 삶의 과정이며, 이 과정에는 언제나 죄의 법과 하나님 법 사이의 갈등이 가득한 삶이 된다.
따라서 엡 2:10의 말씀, 골 3:1의 말씀, 그리고 롬 7:22-23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내적으로 새롭게 된 존재이지만,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삶이 된다. 그래서 성도는 의롭게 된 동시에 죄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완벽하게 의롭지만 실제로는 부패와 죄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신앙생활 내내 죽임(mortification)과 억제의 삶과 살림(vivification)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성도로서의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결국 성도가 이 갈등의 삶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복음을 의지하는 것뿐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의롭다 하심이 아닌가! 바로 이 복음을 의지하여 성도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며, 그 길의 끝에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상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현실의 삶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이미 확정된 미래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확고한 미래를 약속으로 받은 성도는 갈등의 삶을 살아갈 때 언제나 현실의 삶을 복음에 맞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6문의 권면을 들어보자.
HC 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니까?
HC 86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救贖)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恩德)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그의 열매를 드러내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 열매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하는 삶이요, 확신 있는 믿음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 “살아 있는 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삶이요, 복음을 중심으로 현재를 사는 성도의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