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넘어가기 힘든 말이 있다.
나이도 무색해지고 오랜 명상도 무력해지면서 감정에 바로 꽂히는 말이 있다.
그럴수도 있겠지, 별 뜻 없을거야, 내가 아니라 본인이 화가 나 있었던거야. 그렇게 넘어가던 고비들이 한순간에 뒤집어지면서, 정말 그럴수도 있었을 사소한 말과 별 뜻 없는 농담에도 석회가 가라앉은 물잔을 거꾸로 들고 흔들듯 뿌옇게 흐려지는 말들이 있다.
순간 이성을 잃으면 큰일이다.
호흡을 하고 한 템포를 늦추어도 목소리는 이미 반음이 올라가고, 목구멍엔 힘이 잔뜩 들어간채 딱딱해진다. 눈은 시력을 잃고 경주마처럼 좁은 앞만 보며 달리려 한다.
숨기려 해도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뜨거운 걸 삼킨 것 마냥 바로 뱉지 않으면 다칠것 같은 자동 반응이다.
돌아선 뒤에도 오랫동안 호흡이 가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가 손끝 발끝으로 퍼진다.
이제야 아프다는 걸 안다.
아팠다는걸 안다.
언제인지 무엇때문인지 잘은 모르지만 오래 아파 온 거다.
가만히 들여다 본다.
천천히 바라본다.
괜찮다
괜찮다
ㅡㅡㅡㅡㅡㅡ
<새날> 이병률
가끔은 생각이 나서
가끔 그 말이 듣고도 싶다
어려서 아프거나
어려서 담장 바깥의 일들로 데이기라도 한 날이면 들었던 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누이들이기도 했다
누운 채로 생각이 스며 자꾸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들킨 밤에도
얼른 자, 얼른 자
그 바람에 더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좁은 별들이 내 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얼른 자, 얼른 자
그 밤, 가끔은 호수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터져 펄럭이던 살들을 꿰맨 것인지
금이 갈 것처럼 팽팽한 하늘이기도 하였다
섬광이거나 무릇 근심이거나
떨어지면 받칠 접시를 옆에 두고
지금은 헛되이 눕기도 한다
새 한 마리처럼 새 한 마리처럼 이런 환청이
내려앉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개벽을 할 거야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더 잠들 수 없는 밤
조금 울기 위해 잠시만 전깃불을 끄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