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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일놈의 사랑] 이경희 - 시놉시스
1. 제목 이 죽일놈의 사랑
2. 제작: 에이트 픽스
3. 프로듀서: 정 성효
4. 극본: 이 경희
5. 연출: 김 규태
6. 형식: 70분물 미니 시리즈 16부작
7. 방송기간: 2005년 11월-12월
8. 등장인물
강 복구 (27세,男)
열라 잘 생겼다. 잘 생겼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마력에 가까운 매력을 가졌다.
그의 매력을 일컫는데 있어 하이틴 로맨스 소설속 남자 주인공의 트레이드 마크인 영화배우를 능가하는 핸섬한 외모,
탄탄한 구리빛 근육, 살인 미소라고 서술한 걸 그가 본다면 몹시 짜증을 낼 것이다.
(자뻑 말기인 강복구는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외모에 대한 칭찬을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그냥 이 소개란에선 겸손하고 소박하게 그의 눈빛과 정신과 영혼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그의 매력의 핵은 눈빛이다. 눈에다 레이저 광선을 장착했는지 어쨌는지 그가 맘 먹고 감정을 실어 어떤 대상을 응시하면
아무리 강한 방어막을 지닌 그 어떤 것도 30초에서 1분 사이에 무장 해제시킨다.
실제로 그의 살인적인 매력에 열두 명의 꽤 괜찮은 미스들이 너 아니면 죽겠다고 목숨을 걸었고,
일곱 명의 성실하고 참한 미세스들이 가정을 파탄냈다. (실제로 한 노처녀가 생명을 잃었다. 그녀는 순전히 협박할 양으로
한강에 투신하는 척하다 발을 헛디뎌 한강에 빠졌다. 금방 뒤따라 뛰어 들었지만, 늦었다....그 이후에 다이빙 능력은
국가 대표 선수급으로 수영 실력은 해양구조대 수준으로 발전했고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여자들 구조용으로 간간이 활용하고 있다.)
절대로 뻥이 아니다. 정 못 믿겠음 그가 사는 봉천 2동 산 20번지 부근에 가서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 다섯만 붙들고 물어보면 된다.
사람이 없음 그 동네 개나 소를 붙들고 물어도 된다. 그만큼 강복구의 마력은 그 동네 한낱 미물들에게까지 전설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카사노바나 제비는 아니다. 작정하고 그 길로 갔더라면 진즉 팔자 고치고 삼성에 비견하는 재벌은 되었을거라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병적인 권위주의에 남성우월론자라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여자에겐 안 얻어먹는다’가 그의 모토다.
그는 격투기 선수다. 눈탱이는 365일중 300일이 푸르뎅뎅 울긋불긋한 밤탱이라 보면 되고, 일회용 밴드를 살붙이처럼 의지하고 산다.
격투기는 그를 짝사랑한 한 노처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선택한 일종의 도피처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환상적인(?) 외모를 망가뜨려야 더 이상 여난(女亂)이 없을 것 같았다.
운동 신경이 좋아 격투기 실력도 눈이 부시다. 그러나, 챔피언은 한번도 안 먹었다. 그것조차도 전략이다.
챔피언이 되어 튀는 게 싫다. 그래서 돌려차기 한방이면 끝날 게임을 일부러 맞아주고 넘어져 주고 끝낸다.
괜히 매스컴에 얼굴이 알려져 봉천 2동 주민들 외에 다른 여자들에게까지 그의 존재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는다.
여자라면 지금도 감당을 못하겠다. 미스코리아를 한 트럭 줘도 싫다. 대 여성의 관계에 있어선 오만 방자 거만이 하늘을 찌른다.
여자들을 대하는 말투며 어휘선택이 얼마나 못되고 무례하고 싸가지가 없는지 그 강도가 방송 언어로 가끔
위험 수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워낙 잔머리가 뛰어나고 교묘한 친구라 절대 위험 수위를 넘는 일은 없다)
......할 얘기는 끝이 없지만, 지금까지 서술된 강 복구에 대해서 열패감내지 위화감을 느끼는 남성들,
혹은 분노와 오바이트끼를 느끼는 현명한 여성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에 대한 재수 밥맛인 서술은 일단 여기서 그친다.
지금부턴 고등학교 중퇴 학력에 봉천동 산 20번지에 살며 삥 뜯는 불량학생들에게 다시 삥을 뜯어 담배값과 술값을 벌고
일수놀이를 하는 자기 반만한 여자의 보디가드(기도) 노릇을 하며 그녀에게 인생을 저당 잡혀 사는 강 복구의 그늘에 대한 얘기다.
다섯 살 때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형 민구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랐다. 어릴때부터 안해 본 나쁜 짓이 없는 악명높은 양아치였는데,
17살때 다른 동네 양아치들과 패싸움을 하다 창고에 불을 냈다.
그 과정에서 그를 흠모했던 고아원 친구 한 다정이 그를 구해내고 화상을 입었고,
18살 된 그의 형 민구는 동생이 저질렀던 모든 악행을 자신이 다 뒤집어 쓰고 소년원으로 갔다.
그 사건 이후 확 정신이 나며 철이 들었고, 양아치짓을 끊었다. 그가 지금 봉천 2동에서 함께 살고 있는 여자는 바로 그 한 다정이다.
자기 때문에 등과 얼굴 한쪽에 화상을 입고 아릿다운 여자의 삶은 꿈도 꿀 수 없는 다정을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고,
그게 남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정을 단 한순간도 사랑해본 적은 없다. 까짓거... 그동안 여러 사람 인생 망치고 산 죄값으로
종신형 받았다 생각하자... 어차피 다정 때문에 산 목숨이니 강복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다정을 위해
그냥 죽었다 치고 살아주자.
그렇게 자신의 꿈을 접었고, 인생을 포기했다. 여자들을 부모 죽인 원수처럼 대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다정 이외의 여자는 어차피 그림의 떡일뿐이다.
어릴 때 헤어졌던 형 민구도 만났다. 10년만이었다. 강복구란 잘못 태어난 한 인생 때문에 한다정과 더불어 인생의 반,
아니 전부가 망가져버린 착하디 착한 형.... 그 형은 심한 병을 앓고 있었다. 차은석라는 여배우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이다.
은석이 스타가 되기전 은석과 형은 한때 지독히 사랑했던 것 같은데, 대단해진 은석에게 초라한 형이 까이고 짓밟힌 게 분명했다.
전광판에 뜬 은석의 약혼 보도를 보던 민구가 옥상 아래로 나뭇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10년을 기다렸던 형인데... 만난 지 채 하루도 안됐는데... 형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것도 참 많았는데...
그 똑똑하고 따뜻했던 형은 이제 동생의 이름조차 못 부르고, 다만 눈을 꿈뻑이는 것으로 목숨은 붙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식물 인간이 됐다. 형의 짓밟힌 순정, 딱 그 열배만큼만 은석을 부숴버리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은석을 능가하는 톱스타도 되었다. 그의 벼락같은 신분 상승에 다정과 봉천2동 주민들은 세상이 뒤집힌 양
난리가 났지만, 그는 그다지 놀랍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이젠 팬클럽이니 뭐니 하며 공식적으로 그에게 달려드는 여자가
수만배쯤 많아진 것이 다만 귀찮고 짜증날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강복구에게 닥쳤다.
온통 잿빛이던 엿같던 세상이 갑자기 분홍색, 파란색 칼라로 보이고, 지금껏 1초 이상을 본 적이 없는 거울 앞에 최소 10분 이상을
서 있게 되고, 빨리 죽어버려 끝장내고 싶던 인생이 한번 제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고,
화석이 되 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염병할....그 여자, 형의 여자 차은석 때문이다.
차 은석 (25세,女)
탈렌트겸 영화배우다. 혼나 예쁘고, 겁나 사랑스럽고 욜라 엽기적이다.
아버지나 친구 미선과 대화할땐 경상도 사투리를 본토 억양과 발음으로 쓴다. 덜렁대고 산만한 건 국가 대표급이고
건망증은 치매 수준이다. 대인관계에 있어선 적어도 5번 이상은 봐야지 이름과 얼굴을 매치 시켜 기억하고,
불과 한 시간전에 먹은 점심을 기억 못해서 심할 땐 점심만 세 끼를 먹은 적이 있다.
대본을 보고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리는 환상적인 머리 탓에 그녀의 코디인 미선은 컨닝 페이퍼 제조의 달인이 됐다.
핸드폰이며 옷이며 구두며 패물들이며 그동안 잃어버린 물건들을 쌓아 놓으면 웬만한 피라미드 하나를 이룬다.
술 버릇은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길가다 눈에 띄는 사람만 있음 우리 집에서 2차 하자고 모조리 끌고 오고,
노숙자나 걸인에게 자신의 물건을 지갑에서부터 귀걸이 신발까지 벗어서 다 줘버린다.
은석의 이런 행동은 스포츠지에 심심찮게 가쉽 기사로 오르내려 준성 집안 사람들을 기절하게 만든다.
많은 돈을 벌고, 화려한 옷을 입고, 대중의 우상이 되는 댓가로 그녀는 많은 것을 잃었다. 평범한 삶을 잃었고, 친구들을 잃었고,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었고, 꿈을 잃었고, 자유를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아버지부터 새엄마, 친동생으로부터 배 다른 동생까지 모두가 그녀를 가족이 아닌 봉으로 여긴다.
은석의 출세 이후 새엄마, 친동생에서 배다른 동생까지 그들이 보여주는 사치와 허영은 상상을 초월했다.
은석은 처음부터 톱스타의 삶은 관심이 없었다. 다만 길바닥에서 흙먼지 마시며 떡볶이 장사를 하던 아버지에게
번듯한 가게 하나 차려 드릴만큼만 출세를 하고 싶었다.
가난한 시절 만나 사랑했던 민구도 자기가 스타가 되자마자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민구를 잃고 방황하던 중 한 남자를 만났다. 그녀가 광고 모델로 있던 미래 그룹의 후계자 준성이었다.
런칭 파티를 마치고 술이 엉망으로 취해 남자 화장실을 착각하고 들어가 민구 생각에 엉엉 울다가 기절했는데,
매너짱인 준성이 그녀를 발견하고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일어서다 미끄러져 은석 위로 넘어져 버렸다.
잠깐 의식을 차린 은석이 사정없이 그의 코를 물어버렸는데, 그 사건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어
인터넷에 톱 뉴스로 전해지며 준성을 완벽한 성추행범으로 몰았다. 그 사건 이후 은석은 당연히 광고 모델에서 짤렸다.
그러나, 악성루머는 일파만파로 부풀려져 번졌고, 미래그룹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준성에게 사과하고 싶어도 염치가 없어 망설이고 있던 어느 날, 준성이 기자 회견을 자청해 공식 연인을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약혼 날짜까지 발표했다. 은석은 물론 세상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무슨 저런 사기꾼 자식이 다 있어!’
준성을 죽여버리겠다고 나선 은석의 입을 아버지가 틀어막았다. 은석이 그동안 번 돈과 집안 재산을 다 거덜내고도 모자라
사기죄로 도망 다니던 새 엄마를 한번만 살려 달라 했다. 준성에겐 그럴 힘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준성의 여자가 되었다.
은석이 준성의 여자라 공식 발표된 이후 은석 주위엔 2명 이상의 경호원이 늘 붙어 다녔고, 24시간 그녀의 삶을 간섭했다.
아버지, 새 엄마, 다른 가족들까지도 그들과 한 편을 먹고 은석을 감시했다.
그녀가 다닐 수 있는 곳과 없는 곳,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등이 행동 지침서처럼 내려와 은석의 숨통을 막았다.
준성의 아내 자격을 얻기 위해 늦은 나이에 팔자에도 없는 대학이란 곳도 가야 했다.
집안 사정도 안 좋았지만, 공부가 죽기보다 싫어서 안 간 대학이었다. 준성이 은석을 만만하게 봤다. 그녀는 알아주는 꼴통이었다.
지가 명령만 하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는 준성을 엿먹이고 싶었다. 강의시간엔 아예 이불을 덮고 코를 골며 자고,
잠이 안 오면 교수의 눈을 피해 핸드폰으로 고스톱을 쳤다.
약혼자 준성이 기백만원에 끊어준 압구정표 맛사지를 기를 쓰고 땡땡이치고, 스테이크 집에 순대를 싸와 먹고,
이태리 식당에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코디인 미선과 짜고 경호원들의 감시를 피해 나름대로 할 짓은 다하고 다니는데,
혹시 지나가다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십중 팔구는 톱스타 차은석이라고 보면 된다.
머리는 대충 고무줄로 묶고, 슬리퍼 질질 끌고,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오락실이나 만화방에서
죽치고 앉아 낄낄거리고, 입을 벌리고 공공 장소에서 졸기고 하고, 노상 방뇨도 가끔 하고, 현금 출납기나 주차장등에 설치된
CC카메라 앞에서 혼자서 쌩쇼를 하고 논다. (정작 촬영용 카메라 앞에선 대사도 못 외고 덜덜 떨면서)
준성에게 차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을 즈음 강 복구라는 또 다른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처음보는 사람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에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친근하고 익숙한 향기가 있다.
근데 이 남자, 그녀를 완전히 개 무시한다. 그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모든 남자가 주눅들어 숨 조차 못 쉬는데,
‘나보다 못 생긴 게...’ 하며 지나가는 동네 똥개 보듯 한다. 오기가 살아났다.
맛사지를 다시 받고, 명품 옷을 떨쳐 입고, 거울앞에서 하루 왼종일 연습한 온갖 사랑스럽고 예쁜 표정을 보란 듯 지어 보지만,
여전히 강 복구는 바위 같다. ‘졌다....그래 너 기집애보다 이쁘다, 변태 자식아.’
대종상 영화제에 턱시도 대신 추리닝을 입고 세수도 않고 자다 깨서 온 강 복구가 어떤 화려한 스타보다도 멋져 보일 줄은
그의 저돌적이고 무례한 키스가 그렇게 아프게 가슴에 박힐 줄은 그때 그녀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추신, 은석의 그늘 하나를 덧붙인다. 5살 때 해녀이던 어머니를 바다에서 잃었다.
그날은 다대포에서 간첩들과 국군의 총격전이 있었다. 은석의 생일상을 차려주려고 미역과 전복을 따러 나갔던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머니는 그 격전의 틈바구니에서 심장에 유탄을 맞았다.
그날 서럽도록 눈부셨던 서치라이트 불빛과 어머니의 손에 꼭 쥐어져 있던 전복과 미역을 은석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도 은석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전복과 미역만 보면 삼일을 내내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고
딸국질을 해대고, 플래시 불빛만 보면 삼일동안 눈 앞이 하얘져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한 다정 (27세,女)
생긴것과 이름과 180도로 다르게 그악하고 드세고 입도 거칠다. 봉천2동에서 주민 삼분의 일과 맞짱을 뜨고 지낼 정도로 싸움닭이다.
봉천동 시장 사람들과 상인들을 상대로 일수를 놓고 실내 포장마차를 부업으로 하며
잠자는 시간을 아껴 마늘도 까고 김치도 담궈서 판다.
돈이라면 환장을 한다. 자기 돈을 떼먹은 사람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받아내고 만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억척같이 모은 재산이 족히 5-6천만원은 된다. 밥상에 오르는 반찬은 두 가지 이상을 넘은 적이 없지만,
옷을 사고 맛사지를 받는 등 미모를 위한 투자는 과감히 한다. 오직 단 한사람 복구를 위해서다.
복구와는 같은 고아원에서 만났고, 만난 순간부터 복구에게 꽂혔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여난에 시달렸던 복구를 뭇 여자들로부터 지켜내느라 엎어치기 매치기 꼬집기 물어뜯기 안해 본 종목이 없었다.
물론 복구는 그런 다정을 벌레보듯 끔찍해하며 곁눈도 안 주고 무시했다. 그때만 해도 복구는 온 고아원이 알아주는 바람둥이였다.
그녀의 한창 꽃다운 나이 17살에 복구를 화재에서 구해내고 등과 왼쪽 뺨에 화상을 입었다.
그 상처로 인해 무지개빛 꿈을 잃었지만 (탈렌트가 꿈이었다), 복구를 얻었다.
자신이 얻은 복구의 마음이 백프로 죄책감과 동정심 때문이라는 걸 알고 처음엔 복구를 밀어냈지만,
끄떡도 않고 엉겨붙는 복구를 결국 거부하지 못했다. 아니,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돈에 집착하는 건 화상 자국이 있는 뺨의 성형 수술을 위해서다.
완벽하게 성형 수술을 하고 (뺨에 화상 자욱만 있을뿐 제법 이쁜 얼굴이다) 잘생겨도 너무 잘생긴 복구의 아내로 당당하게 서고 싶다.
예전 고아원 시절에 그랬듯 복구에게 들러붙는 여자들에게 빗자루를 휘두르고, 팔뚝을 물고, 머리채를 잡고, 구정물을 들이붓고,
욕지거리를 해대는데 하루의 절반이 가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걱정은 않는다.
복구는 이제 미스코리아 할머니를 들이대도 눈썹 하나 안 움직인다는 걸 안다.
그녀가 아는 한 강 복구는 의리 빼면 시체같은 사람이다. 강 복구는 사랑도 의리로 하는 사람이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강 복구가 스타가 되었다.
언젠가 대형 사고 한번 칠 것 같아 나무꾼와 선녀의 교훈처럼 애부터 만들려 했는데...
결혼하면 같이 자자고 수녀처럼 굴었던 복구가 원망스러웠다. 며칠을 머리를 쥐어 뜯고 발등을 찧었다.
그렇게 올려볼 수 없는 나무 복구와의 인연이 끝났다 생각했는데, 톱스타 강 복구는 사람들 시선은 전혀 아랑곳 않고
봉천 2동 그 집으로 와 잠을 자고 세수를 하고, 밥을 먹었다. 언론에도 그녀를 결혼할 여자라 당당히 소개했다.
모든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가 일제히 쏟아졌고, 전국 모든 여성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화상 때문에 탈렌트가 안됐어도 상관없다.
이제 그녀는 누구도 부럽지 않다. 안젤리나 졸리도 귀네스 펠트로도...차은석도 부럽지 않다.
김 준성(27세,男)
재계 10위 미래 그룹의 후계자다. 태어나자 마자 황태자로 키워졌다.
신발에 흙을 묻혀 본 적이 없다. 늘 고급 카펫이 완벽하게 깔린 대리석 바닥만 밟고 다녔다. 의.식.주. 모두를 최고로 누리고 산다.
국내 국외를 통틀어 최고의 선생들에게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5개 국어를 구사하고 못하는 스포츠가 없다.
매너 짱에다 유머감각도 탁월하다. 표정엔 온화한 미소가 늘 머물고 있고, 중저음의 목소리엔 기품이 넘친다.
욕이나 상소리를 한 적도 없고, 고함 지르고 화내는 걸 본 사람도 거의 없다. 집안 사람 모두가 그렇다.
그렇게 길러졌고, 그렇게 교육 받았다.
다른 재벌가의 자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대부분 불미스러운 일로) 인구에 회자 되고 씹히지만,
미래그룹의 자제들만은 교통 신호 한번 어긴 적이 없다.
미래 그룹은 그래서 그 이름 자체 만으로도 국민들의 신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미래 그룹의 일족들에게 은석과 준성의 스캔들은 그동안 공들여 지켜오고 쌓아왔던 긍지와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처음엔 ‘김준성, 차은석을 성추행하다’로 부터 시작된 소문이
‘김준성, 회사 광고 모델을 미끼로 상습적으로 차은석을 성 추행하고 버렸다’로 증폭 되었고,
차마 서술하기 조차 힘든 낯뜨거운 음해성 소문들이 사그러들 줄 모르고 번졌다.
그동안 미래그룹에 민구할 만큼 신망과 존경을 표했던 여론은 그 수십 곱의 실망과 야유를 화살로 돌려 보냈다.
그때,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던 준성의 아버지가 빼든 칼이 은석과의 약혼 발표였다.
은석과의 스캔들을 신분과 지위와 학력을 뛰어넘는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확대 미화시켰고,
(미래 그룹의 배필들은 대부분 재계 오너나 장, 차관급 이상의 집안에 학벌 또한 석사학위 이상의 진골들로만 구성되었다)
변덕스런 군중들은 준성과 미래 그룹에 다시 흠모를 보냈다.
처음 며칠간 환장할 듯 미치고 팔딱 뛰던 준성은 이내 체념하고 냉정을 찾았다.
이왕 엎질러 진 물, 후회하고 원망할 시간을 아껴 발전적인 방향으로 쓰자고 재벌가 후계자다운 경제 논리로 자신을 추스렸다.
은석은 생각보다 훨씬 암담한 여자였다. 학교를 어떻게 다녔길래 아는 영어 문장이 열 개도 안되고,
자신의 최고 혐오식품인 닭발과 순대와 소주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천방지축에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시한 폭탄같은 여자였다. 참담해 할 시간을 아껴서 은석을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으로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 가기로 했다.
처음엔 말도 안 듣고 뺀질거리고 미꾸라지같은 은석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소주를 마시고, 은석이 좋아하던 닭발과 순대를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당황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내가 차은석이란 여자에게 젖어가고 있었구나.
자신에게 은석을 맞출 수 없다면 은석에게 자신을 맞춰야겠다는 반성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강 민구(28세,男)
복구의 형. 정비공이다. 동생이라면 끔찍하다. 부모의 사망이후 세상에 유일하게 남겨진 혈육이라 그 정이 더 깊다.
측은지심이 남다르다. 유순하고 착하지만 소심한 성격. 양아치 동생의 죄를 다 뒤집어 쓰고 소년원도 다녀왔다.
정비소 견습생 시절 제 집처럼 드나들던 떡볶이를 파는 포장 마차가 있었는데, 은석이 그 집 딸이었다.
은석의 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여기고 따르며 험한 일은 제 집 일처럼 거들었다.
은석을 좋아했지만, 차마 고백도 못하고 얼굴이 벌개져 시선 한번 못 마주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 수줍은 그에게 씩씩한 은석이 먼저 사귀자는 제안을 했다.
은석이 연예인이 되고, 은석아버지의 눈물어린 간청으로 은석과 헤어졌다. 헤어지는 댓가로 돈도 받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가방에 들어 있었다. 복구가 친 사고 합의금으로 그 독약 같은 돈을 썼다.
은석의 약혼 발표가 있던 날, 복구와 술을 마시다 옥상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된다.
박 미숙(27세,男)
복구의 룸 메이트. 남자다. 고아원 시절부터 창자까지 다 보여주고 살아온 막역지우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사법 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한문도 자기 이름 빼고 아는 글자가 별로 없고 한글도 철자법 틀리는 건 예사다.
사법고시 준비는 멋있어 보여서 폼으로 한다. 전형적인 폼생 폼사 스타일. 365일 라면을 끓여 먹어도 옷은 메이커만 입어야 된다.
늘 인생 한방 역전을 꿈꾼다. 복구를 놓고 사업을 한다. 복구에겐 흠모하는 여자들을 정리해 주는 댓가로 얼마의 수고비를 챙기고,
복구를 흠모하는 여자들에겐 복구와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이중 플레이를 한다. 그 수입이 제법 짭짤하다.
잔머리의 대가긴 하나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후에 복구의 매니저가 된다. 다정을 짝사랑해 가슴 앓이를 한다.
오 혜주(26세,女)
은석의 라이벌 스타. 미래 그룹의 이미지 광고 모델. 은석에 버금가게 아름답고 은석보다 월등하게 섹시하다.
은석보다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고 연기력도 훨씬 낫다. 사사건건 은석과 경쟁하며 은석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자신의 목표였던 준성이 은석과 약혼을 발표한 것을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은석에게서 준성을 되찾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최미선 (25세,女)
은석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중학교 2학년때 말고는 늘 같은 반이었고, 짝꿍이었다.
미선 역시 은석에게 있어 창자까지 보여주는 막역지우다. 복구에게 미숙이 있다면 은석에겐 미선이 있다.
누가 저보고 아름답다 하면 당연히 야지인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다. 부산에서 전문대학 의상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은석의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고, 은석의 방을 함께 쓰며 똥 누고 오줌 누는 시간 말고는 24시간을 붙어 있다.
은석이 가자면 지옥도 불사하겠다는 차돌같은 의리가 있다. 복구의 매니저겸 룸메이트 미숙에게 꽂혀 끈질지게 대시한다.
차 두용(58세,男)
은석의 아버지. 부산에서 어부로 근근히 입에 풀칠만 하고 살다가 은석의 나이 5살 때 끔찍한 사고로 아내를 바다에서 잃었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3년 정도를 정신 요양원에서 보냈다. 은석의 나이 15살에 결국 그 아픈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일용직 잡역부에서부터 행상, 약 장사, 중국집 배달원등등...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고생은 다해봤다.
그나마 정착한 게 초등학교 옆 떡볶이 포장마차였는데, 그 즈음 사기를 치고 딸 유나와 함께 도망다니던 자경을 만나 재혼도 했다.
감정 표현도 잘 안하고 무덤덤한 성격이었는데, 자경 앞에서만 서면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실실 흐르고,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 몸에 힘이 풀린다. 이렇게 곱고 이쁜 여자가 어떻게 나같은 놈 앞에 나타났을까?
깨고 일어나면 꿈일 것만 같아서 잠도 잘 못 잔다. 혹시나 자경이 제 정신 차리고 도망갈까봐 그게 제일 두려웠는데,
다행히 은석이 출세해 자경이 원하는 것을 다 이뤄 줄 수 있어 뭣보다 그게 제일 고맙다.
민구를 친아들처럼 예뻐했지만 자경의 다그침에 못 이겨 민구 가슴에 피멍을 들이고 매몰차게 은석과 떼어놓는다.
은석이 광고 출연료로 작은 분식점을 차려줬었는데, 준성이 분식점은 그만 두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해 보라 한다.
역시 똑똑한 자경의 말을 듣고 민구를 떼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 자경 (45세,女)
은석의 새 엄마. 사기 전과 5범이다. 젊은 시절엔 다방에서 차도 나르고,
나이가 들어선 동두천 술집에서 아가씨들 관리하는 일도 했다.
술집 기도였던 남자를 만나 동거하며 딸 유나를 낳고 살다가 폭력에 못 이겨 유나와 함께 야반 도주를 했다.
도망다니기 배고프고 지쳐서 만만하고 띨띨해 보이는 두용과 재혼을 했다.
워낙 잔머리도 잘 굴리고 이재에 밝았던 탓에 출중한 외모의 은석을 보자 ‘이 기집애 이거 돈이 되겠는 걸...’
곧바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사채 빚까지 끌어다 그녀에게 투자했다. 자신의 딸 유나에게는 100원짜리 요구르트를 사먹이며,
500원짜리 요플레로 은석의 얼굴과 몸을 맛사지했고, 유나는 시장 싸구려 옷을 사 입혀도 은석은 백화점 메이커 옷만 사 입혔다.
그렇게 4년 동안 쏟은 정성이 오늘 날의 은석을 만들었고, 그간의 투자액 환수는 물론 이자까지도 수백 곱을 챙겼다.
‘은석이가 이렇게 된 게 누구 탓인데...’ 하루에 열 번 이상 으스대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병적으로 쇼핑을 한다. 호화와 사치가 장난이 아니다. 은석과 준성의 이름을 팔고 사고를 치고 다니느라 하루 해가 짧다.
은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차 재석(21,男)
은석의 남동생. 새 엄마 자경에 버금가게 사고를 치고 다닌다.
돈 한 푼 안 버는 백수 주제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물 쓰듯 돈을 뿌리고 다닌다. 일주일에 한번씩 여자를 바꾼다.
명품이 아니면 상대 안한다. 룸살롱에 출근하다시피 산다.
준성이 매형감이라 발표 된 이후 어딜가건 V.I.P.대접을 받으며 씀씀이가 더 헤퍼져 은석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
그 모든 게 아버지와 새엄마에 대한 반항심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에게 눈 한번 곱게 떠본 일이 없고, 새엄마를 박 마담또는 사기꾼 아줌마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새엄마 딸 유나도 무척 괴롭힌다.
차(김)유나(21,女)
은석의 여동생. 새 엄마 자경의 딸. 법대생이다. 수재다. 아이큐가 150이 넘는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일등자리를 놓쳐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늘 책에만 머리를 묻고 있진 않는다.
피아노에 첼로에 노래에 춤에 못하는 게 없이 다재다능하다. 은석과 재석을 무시하고 우습게 안다.
특히 재석과는 개와 고양이 같은 관계다. 만나면 으르렁대고 물고 뜯고 싸운다. 남자를 보는 눈이 워낙 높아 여지껏 애인이 없다.
돈 없는 남자 용서 못하고, 무식하고 무례한 남자는 더더욱 용서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복구가 가슴 떨리는 첫사랑으로 다가온다.
9. 줄거리
밀양교 난간 위에 한 여자(호숙)가 위태롭게 서 있다. 뭐? 어쩌라고요?...강복구를 못 가지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죽어, 그럼.
태연한 표정으로 막대 사탕을 까먹고 돌아서는 복구의 표정에 짜증이 잔뜩 묻었다.
첨벙!!! 밀양교 아래 끝을 알 수 없는 시퍼런 강물이 잠깐 출렁였다. 호숙이 기어이 뛰어내린 것이다.
졸도하겠다. 미친 거 아냐?...미친 거 맞다. 강복구에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남한강, 북한강....지금 이 밀양의 이름 모를 강까지 지난 3년을 합쳐 세 번째 논개가 나타났다.
여자들이 복구에게 죽음을 걸고 협박하는 건 이제 정기적인 연례 행사가 됐다.
복구, 국가 대표급에 준하는 다이빙 솜씨와 해양 구조단에 맞 먹는 수영 솜씨로 간신히 호숙을 건져 살려낸다.
남자 땜에 죽냐?.....한번만 더 이 지랄하면 확 성 전환 수술 해 버린다?
미래 그룹의 주력 상품 ***화장품의 신제품 런칭 기념 파티장이다.
준성이 예의 그 기품있는 미소와 달변으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고,
한쪽 구석에선 ***화장품의 모델인 은석이 홀짝 홀짝 샴페인 잔을 비워내고 있다.
은석,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지 누군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민구의 핸드폰은 꺼져 있고, 소리샘으로 넘어간다.
나 도저히 못 헤어지겠어....수백, 수천번을 생각했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나 한번만 만나주라......나, 버리지 마라, 강민구 이 나쁜 새끼야.
은석, 오바이트끼를 느끼며 화장실로 간다. 술만 취하면 어리버리해지는 은석, 당연히 남자 화장실로 들어간다.
오바이트를 하다 말고 민구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그러다 다시 오바이트를 하고...
잠깐 속이 괜찮으면 민구를 부르며 찔찔거리고, 다시 속이 안 좋으면 오바이트를 반복하다가...
결국 大자로 화장실 바닥에 뻗어버린다.
화장실에 손을 닦으러 왔던 준성, 은석의 황당한 모습에 사람을 부를까 하다가
그녀의 입과 옷에 묻은 구토 자국이라도 지워주자 싶어 손수건을 물에 적셔 정성스럽게 그녀의 얼굴과 목 주위를 닦아준다.
이 여자 또한 미래 그룹의 이미지가 아닌가?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려던 준성, 그만 발이 미끄러져 은석의 몸 위로 넘어진다.
얼핏 잠이 들었다 충격에 놀란 은석, 자기를 덮치려던 치한인 줄 알고, 사정없이 준성의 코를 물어버린다.
두 사람의 비명 소리에 놀란 파티장의 사람들, 일제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상황 판단이 여전히 안된 은석, 내친 김에 준성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팔뚝까지 물어버린다.
두 사람의 엽기적인 모습, 기자들의 카메라에, 호기심 어린 일반인들의 핸드폰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링 위에 강복구가 있다. 이종 격투기 대회 출전 자격을 가리는 시합 중이다. 상대는 복구에게 쨉도 안되는 놈이다.
돌려차기 한방이면 엄마아~ 찔찔거리며 끝날 놈이다. 상대도 그걸 안다.
그러나, 복구, 일부러 맞아주고 일부러 쿵 소리 나게 넘어져 주고 끝낸다.
소변기 앞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복구에게 상대가 와 따진다.
왜 일부러 져줬냐? 챔피언 되기 싫냐? 그럼 격투기는 왜 하냐? 인생의 목표가 뭐냐, 넌?
대답할 의무가 없는 것 같아 입 다물라는 뜻으로 씹던 껌을 상대의 입술에 붙여주고 나온다. 져 줘도 지랄이야, 새끼.
도장 앞에서 다정이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복구의 찢어지고 멍들고 상처난 얼굴을 보며 걱정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
물론 다정은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지만, 복구는 다정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다정은 복구가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사람이길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그 앞에서 기죽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평등해지길 원한다.
복구에겐 비밀이지만, 그 염원을 담은 부적을 복구의 베개에도 넣었다.
멍들고 깨진 얼굴 여기 저기 반창고를 붙인 복구, 다정을 따라 나선다.
다정, 봉천 2동 시장을 돌며 그동안 속 썩였던 상인들에게 일수금을 챙겨 받는다.
울긋불긋 상처로 뒤덮은 얼굴에 껄렁한 폼으로 주머니 칼을 돌리며 사과를 깍아먹는 복구의 모습은
순진한 상인들을 겁주기엔 더할 나위 없는 컨셉이다.
다정이 복구를 은근히 웨딩 샵 앞으로 끌고 간다.
웨딩 샵 안엔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의 신부가 보란 듯이 다정과 복구를 향해 웃는다. 다정의 눈에 얼핏 눈물이 어리는 것 같다.
다정의 뺨에 꽃처럼 남은 화상 자국이 또 다시 복구의 가슴을 후벼파며 기분을 더럽게 만든다.
저 상처...다정이 아니었으면 복구의 뺨에 남았을지도 모르는 상처다.
인생의 목표가 뭐냐구? 하루 빨리 죽어버려 이 미안하고 구질구질하고 엿 같은 인생 끝장 내는거....
오토바이 뒤에 인생의 業같은 다정을 태우고 달리며 그제야 복구, 격투기 상대의 물음에 답을 한다.
미래 그룹이 발칵 뒤집힌다. ‘김준성이 차은석을 성 추행하려 했다.’
은석과 준성의 화장실 해프닝이 목격자들에게 확대 왜곡 과장되어 증거 사진과 함께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다. 본사앞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통에 불이 나고,
미래 그룹에 대한 실망과 비난의 리플들은 인터넷 상용화 후 최고 수치를 기록한다.
‘완벽한 오해다. 준성은 그런 인격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를 믿는다.’
준성과 함께 하버드를 다녔던 재계 6위 그룹의 맏 손녀가 기자 회견까지 자청하며 준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녀의 발언은 불에다 기름을 붓는 꼴이 된다.
‘국내 굴지 재벌가의 맏손녀이자,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미모의 재원과 결혼 약속은 다 해놓고
분식점을 하는 가난하고 무식한 부모를 두고,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가엾은 여배우는 데리고 놀다 버렸다’.....
그 사건은 그렇게 가장 최악의 상태로 최종 정리된다.
준성만큼이나 환장하고 미치고 돌아버릴 것 같은 사람은 은석이다.
그거 아니예요. ...그 분 얼굴도 몰라요. 그날 딱 밥 한번 먹은 거 밖에 없는데.
대한 민국 국민 누구도 은석의 결백을 믿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준성을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고 싶지만 여론이 또 어떤 소설을 쓸 지 몰라 집 밖으로 나갈 수 조차 없다.
물론 준성도 그녀의 연락은 아예 받지도 않는다.
형 민구를 찾는 신문 광고를 내고 돌아오던 복구, 다정을 희롱하는 40대 정육점 홀애비를 보고 핀이 돈다.
물론 자신도 다정을 막 대하고 구박 하지만, 저 따위 허접한 홀애비들까지 다정에게 함부로 대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겁만 주려고 가볍게 휘두른 주먹이었는데, 홀애비가 지레 겁을 먹고 넘어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늑골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는다.
홀애비는 맛좀 봐라하고 어마어마한 돈을 합의금으로 부른다. 저 자식한테 돈만 줘봐라. 유치장 벽에 머리 들이박고 자살한다!
다정이 어떻게 모은 돈이라는 걸 아는데, 단 십원도 축낼 순 없다.
복구의 성질을 아는 다정, 경찰서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운다.
유치장에 오니 형 민구가 생각난다. 그 순둥이 겁쟁이가 소년원 생활을 어떻게 견뎠을까?
툭하면 사고가 치고 속만 썩이던 동생이 뭐가 이뻐 그 죄를 다 뒤집어 썼을까?
퍽퍽한 가슴을 주먹으로 치는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복구야....복구야....강복구.
어떤 새끼가 남의 귀한 이름을 개새끼 이름 부르듯 불러? 인상을 있는 힘껏 팍 쓰고 고개를 들었다.
형 민구가 그를 향해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울고 있다.
은석, 어떻게든 준성을 만나 사과하고 밥이라도 사야할 것 같아 기자들의 눈을 피해 미래 그룹 주변과 준성이 갈만한 곳을 맴돈다.
그 즈음 아버지에게 불려간 준성은 날벼락 같은 통첩을 받는다.
‘우리 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라서 이미지가 생명이다. 더군다나 아버진 대선을 노리고 20년을 준비해 온 사람이다.
니가 십자가를 져야겠다.’ 지금껏 단 한번도 아버지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다. 거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교육 받았다.
은석에게는 동의 한마디 구하지 않고, 은석과의 약혼 발표 D-DAY를 하루 뒤로 잡은 날, 준성은 가장 독한 보드카 3병을 마셨다.
참고로 지난 27년간 그의 최고 주량은 위스키 스트레이트 더블 5잔이었다.
캔 맥주 한 박스를 사다놓고 민구의 집 옥상 난간에 형제가 나란히 걸터 앉았다. 형...형...형...형....형....
민구를 대하는 복구의 표정이 개구쟁이 아이 같다. 캔맥주를 물총으로 만들어 민구의 얼굴에 쏴 댄다.
자꾸만 응석을 부리고, 장난을 친다. 입가에 웃음이 그칠 줄 모르고 흐른다.
민구의 옥탑방 맞은 편엔 뉴스와 광고를 내보내는 커다란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에서 은석과 준성의 약혼 발표 뉴스가 보도된다.
민구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며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떨어뜨린다. 복구, 그런 형의 눈빛을, 손끝의 떨림을 놓치지 않는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해진 민구, 은석의 체취라도 잡으려는 듯 허공속으로 손을 휘젓는다. 형....혀엉....왜 그래?
그때였다. 민구의 몸이 휘청하더니 한 떨기 나뭇잎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복구가 미처 손 쓸 틈도 없이....순식간의 일이었다.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차은석이 나냐? 라면을 먹다 자신과 준성의 약혼 발표를 본 은석, 기함을 한다.
누구 맘대루 약혼을 해? 저 자식 저거 미친 거 아냐?
신발까지 짝짝이로 신고 준성을 죽이기라도 할 듯 달려나가는 은석을 은석 아버지가 막아선다.
이건 돌아가신 니 엄마가 주신 선물이다. 그냥 국으루 있어.
아부지!!! 내가 니 아버지면 여기 가만 있구, 내가 니 아버지가 아니면 밖으로 나가서 너 떠들고 싶은대로 떠들어!
아버지가 변했다. 새 엄마의 사주를 받은 게 분명하다.
원망스럽고 분노가 치밀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차두용은 차은석의 아버지다.
약혼 발표가 있고, 채 한시간도 되기 전에 준성이 보낸 신데렐라 메이커들이 도착했다.
은석을 24시간 보필할 4명의 보디가드들과 은석에게 상류사회 레시피를 전수할 최고의 참모진들이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황태자 준성이 손수 차를 몰고 은석의 집으로 온다.
귀한 따님을 제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준성, 단 일초도 그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멈추지 않는다. 온 집안 식구가 시쳇말로 뻑 간다.
끝까지 우리 체면을 세워주고 쪽팔리지 않게 하는 저 배려심.... 저런 인격의 놈이면 호떡 장사를 하는 놈이어도 상관없겠다.
그런데, 은석은 준성이 무섭다. 이상하게 자꾸 오바이트가 난다. 민구의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 있다.
중환자실 바닥에 복구가 넋나간 사람처럼 퍼질러 앉아 있다.
다행히 죽음만 면했을 뿐 다른 모든 상황은 최악입니다. 15시간 동안 민구를 수술하고 나온 의사가 그렇게 말한다.
민구는 정말 의사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눈만 뜨고 있을 뿐 웃지도 말하지도 먹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손가락 하나를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복구가 미치고 팔짝 뛰고 온갖 짓을 다해도 솜털 하나 까딱 않던 민구의 눈빛이 짧게 흔들린다.
복구의 분석 결과, 민구를 움직이게 하는 건 ‘차 은석’ 이라는 명사다.
복구, 민구의 방을 샅샅히 뒤진다. 컴퓨터를 켜고 민구의 블로그에 들어간다.
은석과의 행복했던 사진, 은석의 아버지에게서 독약같은 돈을 받은 뒤 자책감으로 쓴 일기,
은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해 놓은 낙서들을 본다.
복구, 은석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간다. 몰려드는 기자들 때문이었는지 경비가 삼엄하다. 니 배신 때문에 내 형이 죽어간다....
우리 형 한번만 만나주라. 만나서 잘못했다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거짓말이라도 좀 해주라... 우리 민구 형 좀 살려주라....
고난도의 훈련을 받고 가스총까지 가진 4명의 경호원들과 죽을 힘을 다해 맞짱을 떴지만, 굳게 닫힌 은석집 철 대문은 열리지 않고,
은석 가족의 행복한 웃음 소리만 집 밖으로 또렷하게 쏟아져 나온다.
민구의 심장이 한 순간 멈춰졌다 다시 살아난다. 그 죽음의 고비 이후 민구는 점점 더 나빠진다.
약속한다, 형...차은석, 형 옆에 데려다 준다...그 기집애 손목 끌어다 형 손 잡게 해준다...
형이 그 여자와 어울리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그 여잘 형과 어울리는 사람으로 똑같이 망가뜨려준다, 내가.
10년을 누르고 살았던 삐딱하고 살벌했던 양아치 근성이 다시 살아난다. 강복구, 드디어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