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영월 호장 엄흥도,
그가 영월을 떠나 대구 군위로 몸을 숨긴 이유(1)
글·사진 : 대구선비 송선비 송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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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피화(爲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영화 ‘왕과 함께 사는 남자’ 이후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문구다. ‘선을 위하다 화를 입는다면 달게 받겠다’는 뜻으로 충의공 엄흥도의 말로 전한다.(옛 기록에는 약간씩 다른 표현도 보인다) 구전에 의하면 이 말은 엄흥도가 부인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어쨌든 엄흥도는 1457년 10월 24일(양력 12월 10일), 추운 겨울 강원도 영월 동강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여러 기록 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병자록 기록이다.
‘노산(단종)이 해를 당하자 명하여 강에 던지도록 하였다. 옥체가 둥둥 떠서 빙빙 돌아다니다가 다시 오곤 하였는데 옥같이 고운 열 손가락이 수면에 떠 있었다. 배리(陪吏·엄흥도)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가 집에 옻칠한 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의 노모를 위하여 만든 것이었으나, 몰래 옥체를 거두어 염하여 장사를 지냈다’
이 기록에서 필자의 마음을 유독 아리게 하는 부분이 ‘옥같이 고운 열 손가락이 수면에 떠 있었다’는 대목이다. 당시 단종은 17세 어린 소년이었다. 세종대왕의 적장손이자 문종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왕세손, 10세에 왕세자, 12세에 조선 제6대 임금에 올랐던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17세에 숙부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됐다가 넉 달 만에 죽임을 당했다.
‘당시 영월 백성들은 단종의 유배 생활과 최후를 가까이에서 보고 들었다’
단종의 죽음을 두고는 정사, 야사, 구전 등이 마구 뒤섞여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영월 백성들은 단종의 최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당시 영월군은 조정의 명을 받고 내려온 영월 군수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관원들은 모두 영월 사람이었다. 그들은 4개월간의 단종의 유배 생활도 지켜보았고, 단종의 최후도 목격했고, 차디찬 동강에 떠 있는 단종의 시신도 보았을 것이다. 이렇듯 영월에서의 단종의 유배 생활과 최후는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영월 백성들 사이에서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옥같이 고운 열 손가락이···’
위 병자록 기록의 행간을 잘 살펴보면 유독 ‘단종의 열 손가락’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일까? 당시 영월 백성들 눈에는 영월로 유배 온 17세 소년 임금 단종이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 유배 생활 중 단종의 모습은 임금의 모습이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죽음 후 차디찬 동강에 던져진 단종의 모습은 어땠을까? 임금이 아닌 그냥 17세 소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다만 영월 백성들의 눈에 비친 단종의 주검은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왕세손, 왕세자를 거쳐 조선의 임금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17세 소년이었다. 옷을 입은 채 주검이 강물에 엎어져 떠 있었다면 맨살이라고는 손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17세 소년 임금의 여린 열 손가락, 영월 백성들 눈에는 얼마나 곱게 보였을까? 그래서 ‘옥같이 고운 열 손가락’이란 표현이 나왔던 것은 아닐까?
‘전하! 많이 추우시죠. 이제 그만 나가십시다’
단종의 시신은 차디찬 겨울 동강에 던져졌다. 이어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차디찬 겨울 동강에 뛰어들었다. 바로 영월 아전들의 수장이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였다. 영화 ‘왕사남’ 마지막 장면이다. “전하! 많이 추우시죠. 이제 그만 나가십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종 죽음 이후, 엄흥도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야사 및 구전에 따르면 이때 엄흥도 외에 몇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엄흥도 혼자서 강물에 던져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염하고 관에 넣고, 또 지게에 지고 직선거리로 2km 이상 떨어진 산에다 장사를 치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여러 명의 도움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야사·구전 등에 의하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럿 있다. 엄흥도의 아들 셋(엄광순, 엄호현, 엄성현)을 비롯해 정사종(丁嗣宗), 원호(元昊), 조려(趙旅), 이종(李種) 등이다. 이중 특별히 관심을 두어야 할 인물이 바로 정사종이다. 엄흥도가 이 넓은 조선 땅에서 ‘왜?’ 하필이면 대구·군위로 몸을 숨겼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key-man’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2026년 8월 2일 일요일 낮
대구선비 송선비 송은석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