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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과 오월 정모 후기
토요일 오후 오늘은 사월과 오월 카페 정모가 있는 날이다. 이런 저런 일로 집에서 약간 늦게 출발하여 1차 모임 장소에 도착한 시간은 4시 반, 학무님과 훈장님, 그리고 소리미님, 간이역장님, 명동지기님, 한잔의 추억님 등 이미 낮 익은 얼굴들과 처음 보는 얼굴들이 반겨준다.
한 쪽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옆에 앉으신 분께 성함을 여쭈니 배경님이라고 소개하신다. 나와 같이 외자 이름인데 바이올렛이라는 별칭을 사용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노래 모임에서 두어번 뵌 적이 있는 분인데 별칭은 돈달산님이시다. 문경의 돈달산이 고향 뒷산이어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이올렛님의 여고 동창생들, 초록님과 유월님이 앉아 있었다. 유월님은 가입인사에서 자신의 이름에 ‘화’가 있어서 4월과 5월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때 많은 분들이 무슨 화일까 여러 가지 추측을 하셨고 나 또한 학교에서 여학생들 출석을 많이 부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하였다. 옆의 바이올렛님이 아무도 맞추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름을 살짝 알려주신다. 세 분은 모두 금란여고 출신으로서 당시부터 지금까지 4월과 5월의 열렬한 팬이시다.
잠시 뒤에 김태풍님이 오셨다. 인사를 나눈 뒤에 내 앞자리에 앉으셨다. 학무님보다 후배이시지만 풍채에서는 더 형님처럼 보이셨다. 나중에 한잔의 추억님과 서로 술잔을 주고 받으면서 한잔의 추억님을 더 연세 많은 분으로 생각하시자 한잔의 추억님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다. 사실 한잔의 추억님과 나는 같은 나이로 알고 있다. 그런데 태풍님은 날더러 30대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주변 사람들이 저 분은 명상을 해서 저렇게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야기의 주제가 잠시 명상과 요가 쪽으로 흘러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머리카락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
얼마 있지 않아 나의 영원한 라이발 김민수님이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위해 플랭카드와 기타를 들고 오셨다. 김민수님은 대한민국 포크계에서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훌륭한 일꾼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김광희님과 김소연님, 그리고 낮달님이 같이 들어오셨다. 김광희님은 태풍님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고 하시는데 태풍님은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학무님이 설명을 해주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이어 또 한 분의 손님이 오셨는데 학무님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들국화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하였던 최성원님이었다. 수염을 기르고 가죽잠바를 입고 있어 나이를 잘 몰랐는데 54년생이라고 하니 나보다 무려 4살이나 많다. 중간에 우리 모임에 항상 꽃을 담당하시는 이은미님이 오셨으나 급한 일이 있어 꽃만 전달하고서는 바로 자리를 뜨셨다. 잠시 뒤에 동은님이 어여쁜 정장을 하고 참석하셨다. 이야기 듣기로는 오늘 저녁에 오페라 관람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날 오페라 관람을 취소하시고 참석하신 것이다.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다가 6시가 조금 넘자 우리는 장소를 포크송카페로 옮겼다. 민수님과 명동지기님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조금 늦게 자리를 떠서 민수님의 차에 가서 반주기기인 엘프와 4월과 5월 LP 자켓과 기타 두 대를 운반하였다. 세 명이서 길을 다가가 민수님은 이번 기회에 싱어롱협회를 만들자고 하면서 연장자인 명동지기님이 회장, 내가 부회장을 맡고 자신이 총무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가타부타 확실한 결론은 없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포크송 카페에 오니 이미 사람들은 맥주와 안주를 시켜놓고 한잔씩 하고 있었다. 잠시 뒤에 카페지기인 훈장님이 카페 현황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하였다. 그런데 계속 저쪽 여성분들이 많이 있는 쪽만 본다고 한잔의 추억님이 벌떡 일어나서 왜 이쪽은 바라보지 않느냐고 푸념을 털어놓았다. 한잔의 추억님은 농담으로 한 이야기지만 목소리가 워낙 컸고 훈장님이 약간 머슥해하시자 순간 약간은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 학무님이 일어나서 무대에 오시더니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많아 분위기가 경직될 수도 있으니까 자신이 사회를 보시겠다고 하셨다.
학무님께서는 아주 재치 있으면서도 다정하게 사회를 이끌어가셨고 자리에 앉으신 분들은 하나씩 무대에 올라와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맨 끝쪽에 있던 해오른누리라고 하는 그룹인데 학무님의 소개로 오늘 나왔다고 하였다. 총 여섯 분이 나와서 소개를 하셨고 그 중 리더는 옛날 <아주 옛날에는 사람도 안살았다는데 >라는 노래도 불렀다고 하셨다. 아마 꾸러기의 멤버였는가 보다. 평소 카페에서 늘 보던 분외에 미소라고 하는 분이 용감하게도 혼자서 나오셨고 유채라고 하는 분도 바로 엊그제 가입하시고서는 나오셔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외 금란여고 3인방과 1차 모임 때는 저쪽 구석 자리에 있어 자세히 보지 못하였던 화이트님을 위시한 미인 3인방의 소개도 있었고 입구쪽에 앉아 있던 우리 남자 회원들은 대여섯 명 모두 한꺼번에 나가서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오신 분들 가운데서 딱정벌레님과 딱정벌레님이 소개하신 여자 분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그날 오신 분들은 다들 4월과 5월의 광팬이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4월과 5월을 정말 좋아하였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마지막까지 카페를 지키겠다는 새벽별님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소개할 때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은 김소연님이다. 김소연님이 나왔을 때 학무님은 아주 친한 친구의 동생이었다고 소개하면서 정말 재능이 있고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래를 부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요즈음은 노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소연님은 어릴 때 학무님이 집에 놀러오시면 어머님이 학무님이 딴따라여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하시고 그때 혹시 오빠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학무님은 그냥 웃으셨다. 소연님은 5살 때부터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어머님이 아닌 다른 명창들에게서 배웠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계속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곤 하였는데 22살 때에 가서 그냥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나 싫어져서 그 뒤로 노래를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근래에 와서 김의철님과 양희은님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씩 무대에 서기 시작하였노라고 하였다.
학무님은 자신은 포크와 국악을 결합해서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으니 앞으로 활동을 잘 해보자고 하면서 노래를 한 곡 청하였다. 김소연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부르는 심청가 가운데 한 대목을 부르셨다. 조명을 좀 낮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그만 중간에 가사를 까먹었다. 멋쩍게 웃으신 다음 다시 노래를 시작하였는데 또 가사를 까먹었다. 사람들이 그때 학무님이 소연님을 좋아한 게 아니라 소연님이 학무님을 좋아한 게 아니냐고 웃었다. 소연임은 다시 시도를 하였으나 또 가사를 까먹었다. 자신이 무대에서 이렇게 떨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앞이 하얗고 가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다음에 부르기로 하고 일단 자리로 돌아가셨다.
소개 중간에 재미있는 해프닝도 있었다. 한참 소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철가방을 든 아저씨가 등장하여 무대앞을 가로 질러 저쪽 구석으로 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해프닝에 아~ 짱께 라고 외쳤다. 1차에 참석하지 못하고 2차에 오신 해오른 누리 멤버들이 짜장면을 시킨 것이었다. 학무님은 이러한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한분 한분 정성스럽게 무대로 오르게 하시고 이런 저런 질문도 하시면서 명 사회자의 면모를 보여주셨다.
어느 정도의 소개가 끝나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태풍님이 무대에 올랐다. 학무님이 태풍님에게 삼십년 넘게 어디에 있었냐고 물으시면서 혹시 감빵에 갔다 온 것은 아니냐고 농담을 하시자 태풍님은 웃으면서 자신은 운전할 때 가끔 규정 속도를 넘어서는 것 외에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고 받으셨다. 태풍님은 젊은 날에는 다들 돈을 주고서라도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일텐데 학무님과 같이 4월과 5월로 가수활동을 하면서 돈을 받으면서 무대에 섰으니 말할 나위 없이 기뻤고 특히 첫무대가 명동에 있던 시민회관과 같은 큰 무대여서 정말 너무나 행복했다고 하셨다. 두 분은 거의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고 새벽 방송이 있을 때는 전날 같이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출연하고 같이 해장국을 먹었다고 하셨다. 한참 전성기 때에는 하루에 6군에 이상의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정말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활동을 하였다고 하셨다. 그러다 군대에 가면서 활동을 그만 두게 되었고 제대 후에는 영국 미국 등의 해외로 유학을 다니고 공부를 마친 뒤에는 시티뱅크 등의 쟁쟁한 금융기관에서 근무를 하였고 국내에서 프랑스 은행 총책임자로서 활동을 하였고 미국에서 M&A 쪽으로도 사업을 하였다고 하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마침내 노래를 시작하였다. 처음 부른 노래는 <등불>이었다. 두 분 다 통기타를 들었는데 학무님이 앰프 짹이 있는 기타를 잡았고 태풍님은 그냥 보통 기타를 잡으셨다. 전혀 연습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서로 코드를 물어보기도 하고 첫 부분이 약간 어색하기도 하였고 역시 오랜 관록을 가진 분들이라 노련하게 풀어나갔다. 등불은 내가 아내와 결혼식을 올릴 때 후배가 불러준 축하 노래로서 나에게도 참 의미가 깊은 곡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두 분이 노래 부르는 것을 들어본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서인지 다들 감동 먹은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다들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태풍님은 웃으시면서 노래를 잘 못 부르고도 이렇게 열렬한 박수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신다.
어느 분이 학무님에게 <화>의 그녀와 <영화를 만나>의 그녀가 같은 인물인지 질문을 하였다. 학무님은 같은 인물이고 지금의 사모님이라고 하셨다. 사모님의 이름은 기화인데 노래 가사로는 조금 적합지가 않아 영화로 이름을 바꾸었고 원래 스케이트 장에서 만난 게 아니라 수영장에서 만났다고 하였다. 학무님은 어머님이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많은 운동을 시켜서 수영, 스케이트, 스킨 스쿠바에다가 행글라이더까지 배웠다고 한다. 특히 수영은 수준급이어서 단순한 수영만이 아니라 다이빙까지 잘 했다고 하셨다. 옆에서 태풍님도 학무님의 다이빙 실력은 대단하였다고 맞장구를 쳐주셨다. 수영장에서 애인을 만났는데 노래 가사에서 수영장에서 만났다고 하기에는 당시의 사회분위기상 좀 어울리지가 않는 것 같아 스케이트장으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어느 누가 <화>의 가사 중에 보면 “젖은 짚단 태우듯”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그런 가사는 노래 가사로는 잘 쓰이지 않는데 그 노래에는 너무나 잘 맞는다고 했고 실제로 그런 심정이었냐는 질문을 하였다. 학무님은 정말 한참 연애할 때 그런 심정이었다고 하시면서 원래 젖은 짚단이라고 하는 게 불이 잘 붙지 않는데 그런 답답한 심정이 있었노라고 답하였다. 옆에서 태풍님은 자신은 그런 것까지는 잘 몰랐지만 옛날에도 그 노래 부를 때는 뒷부분에 가서 엄청 소리를 질러댔다고 해서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곧 이어 <화>가 시작되었다. 학무님의 기타에서 강열한 전주가 터져 나오면서 노래가 시작되었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김민수님은 저번 청개구리 지키미 뒷풀이에서 이 노래가 나왔을 때 내가 광분한 것을 기억하는지라 옆에서 자꾸만 같이 나가서 춤추자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날은 춤을 추며 광분하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에 사양하였다.
사춘기 시절 정말 좋아하였던 노래, 강렬한 비트, 내용은 애절하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쿨한 느낌을 주었던 가사, 가사에 참 어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화>가 흘러나오자 청중들은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금란여고 3총사들과 화이트님을 위시한 미녀3총사들 등 나이 지긋한 여성 청중들의 눈빛에서는 지금도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노래의 앞부분은 학무님이 혼자 부르다가 뒷부분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되면 화, 안된다, 떠나지 마.” 이 부분에서는 태풍님도 가세하셔서 정말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애가 타도록 목이 터지토록 열창을 하셨다. 우리들도 다 같이 열심히 “화”를 외쳤다. 노래가 끝나자 홀은 휘바람 소리, 환호성 소리로 열광의 도가니로 변하였다.
중간에 카페지기님이 나오셔서 4월과 5월 팬들에게 어느 곡을 가장 좋아하는가에 대한 투표를 하였더니 1위가 방금 부른 <화>라고 하였다. 2위가 무슨 곡이냐고 묻자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는데 의외로 <장미>였다고 한다. <장미>는 지금 자리에 계신 백순진님과 김태풍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제4기 멤버가 불렀던 곡인데 오리지널멤버의 노래보다 나중의 노래가 사람들에게는 더 많이 알려진 것이 아쉽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뒤의 순위를 말하였는데 내 기억으로는 3위가 <옛사랑>이고 4위가 <등불>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치가 않다. 그 외 <바다의 여인>, <님의 노래> 등은 모두 2표씩, <사랑의 의지>가 1표로 나왔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음 노래는 <옛 사랑>이었다. 4월과 5월의 노래가 많았지만 이 세 노래가 가장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일 것이다. 다음 노래로는 <영화를 만나>를 신청하는 분들도 있었고 나는 <님의 노래>를 강력하게 외쳤다. 대체로 여성팬들이 <영화를 만나>를 많이 신청한 것같은데 역시 여성팬들의 신청을 먼저 받아들이셨다. 그리고는 <님의 노래>를 부르셨다. <님의 노래>는 확실히 노래가 부드러우면서도 가사와 선율이 너무나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 그런데 가만히 기타연주하시는 것을 살펴보니 대부분의 노래를 Cm로 부르는 것이었다. 대부분 원래 Dm로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고음을 내는 데는 무리가 있어서 한 음 낮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섯 곡의 노래를 부르신 뒤에 태풍님은 내려가시고 이번에는 최근 낮달님과 동은님이 작사한 시에 학무님이 곡을 붙인 노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무님은 포크송을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차원에서 바라볼 게 아니라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삶을 노래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 좋은 가사만 있으면 작곡을 할 테니 여기 모인 사람들도 좋은 가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셨다. 먼저 낮달님이 작사하신 <기약 없는 그대>를 부르셨다. 낮달님이 작사하신 이 노래는 저번에는 낮달님과 같이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학무님, 혼자 부르셨다. 중간에 민수님이 낮달님을 무대에 끌어올려 낮달님은 그냥 학무님 오른 쪽에 가만히 앉아계셨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동은님이 작사하신 <로즈마리의 다리>를 부르셨다. 민수님과 나는 영화도 소설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해서 여성들의 빈축을 샀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가사를 따온 것이다. 나도 영화나 소설을 보지는 않았지만 서로 가정이 있는 중년의 남녀가 체험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다룬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어느 분이 그 작사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냐고 묻자 동은님은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는 체험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쓰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낮달님은 원래 시인이라 작사를 잘 하시는 줄을 애당초 알고 있었지만 동은님은 과학선생님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작사의 재주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튼 두 분께 축하를 드린다.
이렇게 새로운 노래 발표가 끝난 뒤에 학무님은 이번에는 최성원님을 부르셨다. 최성원님은 외모도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고 그날도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 것으로 보아 실제로도 매우 젊고 발랄하게 사시는 분으로 보였다. 첫 번째 노래는 팝송으로 불렀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번째 노래는 우리 귀에 익숙한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라는 노래를 부르셨다. 최성원님은 바로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하신 분이다. 라이브로 듣기는 처음이었다. 원래 노래의 분위기는 20대의 풋풋한 사랑이 상큼하게 묻어나는 노래인데 5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내시는 것은 그만큼 아직도 젊게 사시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 순서를 젊은 피를 수혈하는 시간이었다. 해오름누리라고 하는 그룹인데 남자 1명 여자 3명이 나와서 아카펠라를 선보였다. 세 개의 마이크에 네 명이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조금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하면서 첫 번째 곡으로 <사계>를 불렀다. 정말 실력 있는 그룹이었다. 주변이 다소 산만한 분위기였고 화려한 반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 확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사계>를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렇게 발랄하고 상큼하게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미싱은 잘도 돌고 돌아가네”라는 부분에서 미싱을 시계로 바꾸어 불렀는데 최성원님이 왜 미싱을 시계로 바꾸어 불렀냐고 묻자 남자 싱어는 미싱을 잘 몰라서 그랬노라고 답변하여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 다음으로는 팝송을 불렀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음날 교회 예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막 가려고 하였지만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못 이겨 마지막으로 한 곡을 더 불렀다. 커피와 티에 대한 노래였는데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지만 정말 재미있고 발랄한 곡이었다. 그리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나 급히 무대로 가서 마이크를 잡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영원한 라이발 김민수님이었다. 우리 청개구리친구들에서 키우는 가수가 여러 명 있는데 오늘 그 중에서 노래를 제일 못하는 사람 한 사람 선보이겠다고 하시면서 나를 지명하였다. 작년 연말 중국에 가서 400명이 들어선 무대에서 포크를 불러 포크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왔다는 뻥도 때려주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기타를 들고 간 것은 어차피 노래를 부를 속셈이 있다는 뜻이었지만 그대로 지명을 당하니 약간은 긴장되었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는지라 비록 쟁쟁한 고수들 앞이지만 별로 떨지 않고 기타를 꺼내들고 무대에 올라갔다.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조정한 뒤에 전공이 전공이고 사람들의 기대가 그런 만큼 중국 노래를 부르기로 하였다. 그 사이 늘 <夢中人>만 불러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메뉴를 좀 바꾸기로 하였다. 그래서 영화 첨밀밀에서 등려군이 부른 <月亮代表我的心>를 불렀다. 평소 부르던 대로 전주 없이 그냥 코드만 따서 불렀기 때문에 조금 멋대가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는 이 노래도 전주를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할 때 기타 반주가 별로 틀린 부분은 없었지만 그리 잘 불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좌석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신청곡으로 청한 사람이 있어 이번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불렀다. 이 노래는 앞부분에 전주를 넣고 제법 폼을 잡고 불렀다. 그러나 기타반주가 너무 단순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조금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원래 항상 두 곡만 부르고 내려왔기 때문에 그냥 내려오려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스잔나의 <청춘무곡>을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청춘무곡은 너무 짧고 간단해서 사랑의 스잔나에서 진추하가 불렀던 <우연>을 불렀다. 저번 청개구리 우래노래 지키미 뒷풀이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지만 그때는 코드를 두 군데 정도 까먹었지만 이번에는 코드는 틀리지 않고 제대로 불렀던 것 같다.
이번 무대는 나로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무대였다. 일단 처음으로 2곡을 넘어 3곡을 불렀다는 것이다. 물론 저번 목동 공연 때는 무려 20곡을 불렀지만 그런 무대와 이런 무대는 질적 차원이 다르지 않는가.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3곡을 다 삑사리 내지 않고 불렀다는 것이다. 민수님도 나를 소개할 때 항상 삑사리 내는 것을 특기로 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는데 이번에는 사실 중간에 두 군데 정도 살짝 틀린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매끄럽게 잘 넘어갔다. 4월과 5월, 들국화의 최성원님, 김광희님, 김소연님 등등의 쟁쟁한 실력자들 앞에서 섰지만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자 민수님은 방금 이 노래는 중국어 가사여서 잘 못 알아들은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내용은 열심히 잘 살아보자 라는 것이라는 말을 해서 나로 하여금 포복절도하게 하였다. 역시 민수님은 유모어에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다. 내가 내려온 뒤에 민수님도 올라가서 <저 별과 달을> 한 곡을 불렀다. 민수님은 싱어롱은 강하지만 단독으로 부르는 곡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라이발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민수님도 무언가 개성 있는 레파토리를 개발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은근히 약 올리는 라이벌이다.^^
민수님은 다음 순서로 김광희님을 무대에 초청하고서는 곽성삼님의 <귀향>을 신청하였다. 이 노래는 그 사이 여러 차례 끈질기게 신청하였는데 할 때마다 김광희님은 가사를 모르겠노라고 거절하였던 곡이다. 이번에는 가사집을 미리 준비해오셨다. 나는 기타를 김광희님에게 드렸다. 학무님이 나와서 옆에 앉아서 반주를 도와주셨다. 김광희님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힘 있게 <귀향>을 부르셨다. 김광희님의 목소리는 단순히 곱다는 차원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끝나자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음 곡은 많은 사람들이 <세노야>를 신청하였고 학무님도 그 곡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세노야>는 오래 전 청개구리 공연에서 현경과 영애의 박영애님과 윤연선님과 같이 공연할 때 들어보고 오랫만에 듣는 것 같다. 그 전에 학무님은 <세노야>는 우리나라 대중 음악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였다. 이 노래는 우리의 서정성이 잘 녹아 있고 특히 담백하고 순수한 포크에 어울리는 곡이어서 기타외의 현란한 악기연주가 들어가면 노래 맛이 영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분의 조용한 기타반주 그리고 김광희님의 담백한 목소리로 듣는 <세노야>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김광희님의 아르페지오가 중간에 소리가 죽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만 학무님의 기타가 뒷받침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차분하면서도 풍부한 김광희님의 목소리와 그 소리를 타고 울려나오는 깊고도 맑은 힘이 우리를 정화시켜주는 것 같았다. 포크의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세노야>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다. 특히 최성원님은 무대 앞에 나오셔서 진지한 관심으로 질문을 하셨다. 이 노래는 언제 작곡한 것이냐 최초로 녹음한 것은 언제냐 등등이 있었다. 김광희님은 대학 3학년 때에 작곡을 하였다고 하였고 당시 CBS 방송국의 어떤 프로그램에서 부르기로 하였는데 김민기님이 부탁을 해서 이틀만에 작곡을 하였다고 하였다. 최성원님은 작사는 누가했냐고 물었다. 김광희님이 답하기 전에 여러 사람들이 시인 고은이라고 답했다. 최성원님은 계속해서 김민기님과 김광희님은 누가 위냐고 물었고 김광희님은 자신이 한 해 위이고 김민기님 누나의 친구라고 하였다. 그러자 최성원님은 이번에는 그 피아노 치는 누님을 말하느냐라고 물었고 김광희님은 그 누나말고 연년생 누나와 친구라고 답하면서 김민기씨네 집이 원래 9남매였다고 말했다. 그날 최성원님은 그 사이 궁금하였던 것에 대해 한꺼번에 질문을 퍼부었다. 덕분에 우리도 많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최성원님은 바로 무대 아래 한 쪽에 앉아서 기타 반주를 도와주셨다.
김광희님은 당시 김민기님이 도비두라는 듀엣을 하고 있었고 셋이서 같이 노래를 부르면 좋겠지만 연습이 부족해서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김민기님이 기타반주를 해주었다고 하였다. 원래는 그때 녹음한 테이프를 새롭게 다른 가수가 부르기 전까지 일주일만 쓰기로 하였는데 결국 6개월 동안 계속 방송을 타게 되었다고 한다. 김광희님 자신은 엄한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노래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자신의 친구도 그 노래를 좋아하였지만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자기 친구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였다. 70년대 초 한국 포크송의 주요한 획을 그은 <세노야>의 비사가 당사자의 육성의 증거로 생생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학무님이 나중에 그 노래가 결국 양희은씨가 부르게 되었는데 좀 섭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자신이 만든 노래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데 뭐가 섭섭하냐며 기분이 참 좋았다고 하였다. 당시는 집안 분위기상 노래 부른다 하면 쫓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감히 가수로 나가겠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하였다. 학무님은 자신도 집안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그래서 실제로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고 답했다. 김광희님은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김의철씨가 주관하는 청개구리모임에서 몇 십년만에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그때 80이 훨씬 넘으신 노모도 오셔서 노래를 감상하셨다고 하였다. 그 말씀을 하실 때 나는 가슴 속으로 찡한 그 무엇을 느꼈다. 다들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김광희님은 이어서 <나는 돌아가리라>를 불렀다. 내가 대학 시절 참 좋아하였던 노래, 소박하고 담백한 가사 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작곡자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다음으로는 피터폴메리의 <500마일>을 부르셨다. 이 노래도 고등학교 다닐 때 정말 좋아하였던 팝송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나는 교회 성가대에 다녔는데 1년에 한번 하는 가스펠송찬양대회에 나가기 위해 매주 교회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가운데 <500마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여, 고향 천리길, 기차는 떠나가고...” 원래 방랑에 대한 동경이 많았던 나는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시골의 역에서 내려서 강변과 시골길을 걷곤 하였다. 물론 완행열차였다. 그때 완행열차의 끝에 매달려서 늘 부르던 노래가 바로 그 노래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추억과 감회가 밀려왔다. 아 젊은 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이여. 약간씩 경우는 다르겠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나와 비슷한 감회에 젖었으리라.
이어서 김광희님은 젊은 대학 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생각하면서 <날이 갈수록>을 부르셨다. 이 노래 또한 내가 참 좋아하였던 곡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산 우리 집 근처의 삼일극장에서 본 <바보들의 행진>의 삽입곡으로서 대학생의 낭만과 허무가 짙게 깔려있는 노래이다. 코드가 단순하기 때문에 대학시절 하숙방 창가에 기대 앉아 참으로 많이 불렀던 노래이다. 하여튼 그날 김광희님은 우리 모두를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어주었다.
김광희님이 들어가고 난 뒤에 학무님은 이번에는 커다란 사진기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시는 딱정벌레님께 무대에 오르기를 청하였다. 딱정벌레님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무대에 올라와서는 자신은 음악전문인은 아니지만 야외음악카페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상 노래를 자주 접한다고 하였다. 4월과 5월을 좋아하기 때문에 카페이름을 4월과 5월로 하려고 하다가 딱정벌레로 정하였다고 하였다. 부르신 곡목은 멜라니 소프카의 <The saddest thing>였다. 이 노래 또한 젊은 팝송 부르는 사람치고 안 불러 본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한 레파토리가 아닌가. 나 또한 참 좋아하였던 곡이다. 범상치 않는 기타실력으로 연주하는 애잔한 전주가 흐른 뒤에 굴직하면서도 애잔한 음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참 주변에는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어서 이번에는 학무님과 같이 쉐그린의 <부모님의 말씀 안 듣고>를 부르셨다. 다들 모두 신나게 따라 불렀다. 그 사이 잔잔한 노래로 인해 푹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위로 뜨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맨처음 노래를 부르려다 가사를 잊어먹어 노래를 부르지 못한 김소연님을 다시 무대로 청하였다. 나는 조명을 낮추었다. 김소연님은 아까 부르려다 가사를 잊어 부르지 못하였던 판소리를 다시 부르셨다. 마이크를 전혀 쓰지 않고 그냥 육성으로 불렀지만 소리가 쩌렁쩌렁하여 온 홀 전체가 울리는 듯하였다. 옛날 청개구리 공연을 마친 뒤에 평창동에서 뒷풀이를 할 때 처음으로 김소연님의 노래를 들었을 때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김소연님은 정말 노래를 온 몸과 마음으로 부르시는 분이다. 나는 눈을 감고 숙연한 심정으로 노래에 젖어 들어갔다. 그러다 잠시 눈을 뜨고 김소연님을 바라보니 어둠컴컴한 조명 속에서 눈에 맺혀있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노래와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다들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앵콜을 청하였지만 김소연님은 그냥 웃으시면서 자리로 돌아가셨다.
학무님은 태풍님께 다시 무대에 오르기를 청하였고 최성원님도 반주를 도와주려고 나오셨다. 그래서 나는 내 기타를 꺼내서 드렸다. 내 기타도 참 복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의 여인>을 듣고 싶다고 하였다. 애잔한 곡조와 쓸쓸하면서도 아쉬움을 남기는 가사는 뜨거운 여름바캉스가 끝난 뒤의 아쉬움을 잘 표현하는 노래로서 <딩동댕 지난 여름>과 함께 여름만 되면 늘상 불렀던 노래이다. 노래가 끝난 뒤에 사람들은 그 노래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학무님은 그 노래는 실제로 강릉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만났던 어느 한 여인에 대한 추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이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추억을 그날 공개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당시 학무님은 사귀던 화님과 약간 서먹한 관계에 있을 때였는데 해수욕장에서 너무나 멋진 비키니의 아가씨를 만났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을 하던 학생이었는데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날 새벽 4시까지 바닷가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서로 손도 한번 잡아보지는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서로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너무 늦게까지 만나는 바람에 여자 측 식구들은 난리가 나고 다음 날 여자는 호된 꾸중을 듣고 자신은 직접적인 꾸중을 듣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같이 혼났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감싸주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 관계가 서먹해져서 둘의 만남이 이어지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무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마도 지금의 사모님이 멀리서 방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하셨다. 태풍님은 지금까지 이 노래를 많이 불렀지만 그 속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4월과 5월님은 이어서 팝송도 부르셨다. <I‘ll never fall in love again>을 부르셨다. 서로 전혀 연습도 없이 즉흥적으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약간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어간 부분이 있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멋이었다. 다들 신나게 따라 불렀다. 그리고는 역시 약간 경쾌한 노래인 <내가 싫어하는 여자>를 부르셨고 마지막 곡으로 <Bye bye Love>를 부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다음날 일본과의 야구시합도 있고 하니 오늘은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매듭을 짓는 것으로 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9월쯤에 다시 정모를 하자는 말도 있었고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길다며 꽃피는 4, 5월의 화사한 봄날에 다시 한번 더 만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딱정벌레님의 야외카페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들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나와 민수님과 명동지기님 낮달님 등 몇분은 끝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하고 짐을 다 실어서 민수님 차에 옮긴 뒤에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낮달님이 내 노래가 저번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지고 좋아졌다고 칭찬을 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바람새를 알게 된 이후로 그 사이 여러 종류의 노래 모임에 참석하면서 귀한 노래를 듣고 같이 놀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이번 4월과 5월 카페 정모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열일을 제치고 참가한 보람이 있었다. 이번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신 분들, 특히 오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으나 거리상의 이유로 오지 못한 나팔꽃님과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한 짚시님, 그리고 가정적인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배꽃님 형찬님 이하 많은 분들은 이 글을 읽고 그 날 모임에서 우리가 누렸던 기쁨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다음에는 반드시 참석하여 같이 즐거움을 누리게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끝으로 한 가지, 앞으로는 후기 쓰는 것을 그만두고자 한다. 몇년전 바람새와 인연을 맺은 후 여러 음악 모임에 참석하면서 후기를 부지런히 썼다. 물론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즐거워서 한 짓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시간적 부담이 느껴진다. 강의와 학과장이라는 직책으로 인해 생기는 잡무에 대한 부담 외에 시민단체 원장을 맡으면서 점차 많아지는 일들, 그리고 신문에 칼럼 쓰랴, 월간지에 글 쓰랴 게다가 출판할 책이 몇 권씩이나 밀려있는 상황에서 노래모임 후기를 쓰기 위해 대여섯 시간 이상 때로는 열 시간 가까이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후기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언제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4월과 5월의 정기모임을 마지막 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4월과 5월 카페의 첫번째 정기모임 후기를 썼다. 그 동안 나의 후기를 감상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너른돌 씀
첫댓글 헉...너른돌님 글씨가 너무 커서 겹쳐져서 보이네요. 글씨 좀 조정해주세요~~~
눈을 찌푸리고 ㅎㅎㅎ잘읽었습니다. 오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주신 자세한 정모 후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의 아름다운 시간이 그려지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지못한 아쉬움은 더 큽니다. 그나저나...이렇게 세세한 후기를 다시 읽으려면 너른돌님이 조금 한가하시길 바라야하나요?
앗...읽고 답글다는 동안에 글씨를 수정하셧네요. 고맙습니다.그런데 마지막후기라시니 흑흑...정말 아쉽습니다... 그리고 짚시님이 입원을 하셨나요?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마치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박교수님의 후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지요. 그간 느끼셨을 심적인 부담감을 이해합니다. 그간 애 많이 쓰셨습니다. 감사드려요.^^* 근데요... 제가 인터넷에 발표한 소설과 기행문이 다수이건만 그리 섭한 말씀을 하십니까요? 좋은 노랫말은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모임이 끝난 다음 날이면 너른돌님의 후기를 은근히 기다리며 들락날락 합니다. 어쩌면 생방송처럼 리얼하게 그려 주시는 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젠 나날이 달라지시는 기타연주와 노래 잘 감상하였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배꽃님, 감사합니다. ^^ 저는 동은님이 과학선생님이어서 그렇게 말했는데 죄송합니다.^^;; 바람새에서 동은님의 글솜씨를 보면서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러고 보니 배꽃님도 글 솜씨가 뛰어나지요. 주변에 워낙 고수들이 많다보니 제가 그만 깜빡했습니다. 앞으로 좋은 노랫말 많이 써주세요.^^
낮달님, 사실 후기 쓰는게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곰곰히 기억을 떠올리다가 안 되면 명상 자세를 취해 집중을 하지요. 그렇게 해도 사실 완벽하게 기억이 재생되지는 않습니다. 이 글 중에서도 엉터리로 기억한 부분이 꽤 있을 겁니다. 아무튼 시간 많이 걸립니다 이것 쓰느라 오늘 하루 종일 다른 일을 못했죠.
영상을 보는듯한..정말 하나도 빠진 부분 없는 너른돌님의 후기가 언제 뜰까 기대하고 있었는데요..너른돌님은 메모리저장능력이 남다르신듯..메가가 아니라 기가인듯해요!! 혹 미리 써놓은 명상에대한 글 있으심 한가하실 때 올려주심 흥미진진하게 볼텐데..대교약졸 이란 책 저도 한권 구입해서 다음에 싸인 받을게요.
제 게으름을 탓하며 부랴부랴 사진 몇 장 올리러 왔다가 그만 너른돌님의 후기에 발목잡히네요. 길~~디 긴(!) 글이지만 퇴근길 미루며 찬찬히 음미합니다.
어쩜 이렇게 글 하나하나가 영상이 되어 머리속에 펼쳐지는지..^^...너른돌님 감사합니다...참석은 하지 못하엿지만 새로운 사실을 이렇게 알게 되는 군요....그런데 정말 학무님 사모님께서 저와 같은 닉네임이신가요?....놀랐습니다.^^
그날의 감흥이 그대로 녹아있네요 행복한 마음으로 글 잘 읽었습니다.^^*
너른돌님의 후기를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하곤 하지만 이번 후기는 정말 대단하시네요.왜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저는 이렇게까지 상세한 기억은 떠올리지 못하는 건지요.너른돌님의 후기로 인해 토요일 모임의 순간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많은 시간과 정성이 담긴 후기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근데 이 후기가 마지막 후기라 하시면 정말 아쉽고 서운하네요.아마도 많은 분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그만 두시기가 아무래도 힘드실 것 같은 예감이.ㅎㅎㅎ.참 그리고 가화님 백선생님 사모님은 가화가 아니고 기화님이시지요.^^*
훈종님, 그렇군요. 제 머리속에는 가화로 남아있었네요. 사람의 기억력이라고 하는 게 그렇지요. ^^ 바로 고치겠습니다. 그리고 그외에 다른 분들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너른돌님 아니되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시면 일본에게 또 지옵나이다.
메모를 하지 않으신것 같은데 대단한 기억력이십니다...근 8시간을 그대로 기억하시는 것 같습니다...
와~~~ 마치 동영상을 보는것 같아요^^* 그날 받은 에너지로 월요병없이 출근잘해서 화이팅하고 있답니다.
맨나닥 느끼는 점은, "너른돌님의 후기는 비디오 보다 생생하다" 입니다^^* / 라이발님~~ 저두 목소리만 좋으면 제대로 노래 좀 해보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보약을 하나 먹어볼까 생각중입니다
그게 보약 먹어서 됨 누군들 않먹겠어요? ^^*
너른돌님 안녕하세요? 새로 가입한 님의 후기 중 "딱정님이 소개한 여자분"였던 바로 그 여자가 좋은 분들의 집합 장소에 함께 참여 하고자 입문하여 너른돌님의 여행기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정말 실감나게 잘 읽었습니다.
학무님, 반성하겠습니다.^^ 일본에게 지면 안되죠. 새벽별님, 그날 우중충한 남자들 속에서 샛별처럼 반짝거렸습니다.^^ 화이트님도 하이얀 자켓이 별칭과 너무나 어울렸죠. 민수님, 목소리 이미 환상적입니다. 독주용 기타연주만 연습하면 됩니다.^^ 황금짜보님,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재즈스토리모임 후기 써보니.. 보통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 돌마마!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거두어주소서 ~~
꼭! 참석하고 싶은 모임이었는데, 못내 아쉬움을 달래며 너른돌님의 후기 잘 보았습니다!
이거 정말 대 사건입니다. 무수한 댓글들~!! 카페를 혼란으로 빠트린 책임을 지셔야 할듯.
소리미님, 저의 별칭이 갑자기 돌마마로 바뀌었네요. ^^ 덴버최님, 저도 그날 늦게라고 오시는 줄 알고 기다렸답니다. 다음에는 꼭!!! 학무님, 카페를 혼란으로 빠트린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