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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4월 27일)
(3)
누에섬 바닷길, 누구를 위한 모세의 기적인가
귀가 때의 역코스로 서신면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아침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탄도항으로 되돌아 갈까 앞으로 나아갈까.
대부황금로에 대형차량의 통행이 많았다면 아마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복 12km가 넘는 전자를 택했다.
눈에만 담겨있는 탄도, 전곡 요트항의 아름다움을 노현하고 무난한 길을 히치-하이크
처리한 후 받게 될 거센 자아비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내 결행이 가상(嘉尙)했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경사가 기다리고 있다니.
탄도항 누에섬이 다녀가라고 길을 열어주었으니까.
때맞추어(간조가 되어) 1.5km 누에섬 바닷길이 활짝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알맞은 마파람을 받으며 아직 촉촉이 젖어있는 시멘트 포장길(돌길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을 걸어 바다로 갈 때는 무념무상(無念無想), 바로 그것이었다.
신선이 따로 있나. 내가 바로 신선이로다.
왜 누에섬인가.
"대부도 인근해안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안전운항과 섬의 자연환경을 감상하도록" 건립
했다는 3층 등대전망대에 대한 언급은 상세하나 정작 섬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괴이쩍어서 물어보고 자료들도 뒤져보았으나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먼 데서 볼 떄 마치
누에처럼 생긴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밋밋한 대답이 고작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누에처럼 보이지 않는데 유래야 어떠하던 전망대는 이름
값을 하고 있다.
해안 따라 섬을 일주했다.
동쪽 단애에 섬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길고 안전한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나 봉쇄 상태다.
산 밑에서는 오르려는 본능이 발동하는 늙은이가 무력하게 돌아서겠는가.
간신히 뚫고 올라가 진달래꽃이 만개한 정상부의 짦은 능선을 걸어서 등대에 진입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내 키보다 높은 철조망이 출입을 막았다.
오르내리도록 거금을 들여 계단을 설치했으면 전망대로 통하게 하는 것이 순리인데도
계단과 전망대를 다 차단하고 있다니.
계단도, 철조망도 모두 뛰어넘을 수 밖에.
그런데, 우리 서. 남해에 모세의 기적이 왜 자꾸 일어나고 있는가.
안산의 탄도 외에도 화성 제부도, 보령(충남) 무창포, 진도(전남) 등.
(부안 하도, 여수 사도 등 작은 섬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단다)
출애급(Exodus) 때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만든 것은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
해서 였는데 우리의 바다는 누구(무엇)를 위해 갈라지고 있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기적을 일으켰다는 기독교 신앙처럼 우리의
웰빙을 위해 하느님이 귀중한 관광 상품을 주었다고 믿어야 하는가.
홍해의 기적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간만의 차가 큰 이 포구의 기상과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모세가 간조시간에 맞춰 도강한
것이라는 설을 비롯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들이.
홍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있는 만(灣)이다.
동쪽에 아라비아 반도, 북쪽에는 수에즈 만과 시나이 반도, 아카바 만이 있으며 남동쪽
으로 바브 엘 만데브 해협과 아덴 만을 통해 인도양과 연결된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지점은 폭이 좁은 북쪽 수에즈 만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그들은 천신
만고 끝에 가나안 복지에 이르게 되는데 서해의 현상은 웃을 일이 아닌 것 같다.
무분별한 외눈정책으로 바닷길을 마구 막으므로서 물길이 막히고 갈라져서 일어나는
방조제 후유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다를 메우는 일에 주력하는 이유는 육지의 확보에 있고 육지확보의 주목적은
식량 생산에 있으며 식량생산의 증대로 기근을 예방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핵의 위험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기근이기 때문이다.
핵은 위협용이며 공포가 증대할 수록 단결, 단합의 힘도 커지지만 기근은 한없이 비굴,
비열하게 만들며 분열과 이기주의의 가속화를 촉진한다.
먹을 것 앞에서는 불구대천의 수구지간도 없으며 적과 동지의 구분이 없어진다.
보릿고개 퇴출의 공로에 마취되어 분별력을 잃은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가 그 증거다.
따라서, 핵전쟁보다 무서운 것이 장차 직면하게 될 식량전쟁이다.
미국의 야비한 노림수를 간파했다면 후세대를 위해 해야 할 우리의 사명은 자명하다.
보다 많은 땅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바다를 막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딜레마(dilemma)가 여기에 있다.
땅은 많아야 하고 바다를 막아서는 안되고.
균형잡힌 양눈의 시각과 중지가 필요하고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하는 이유다.
"골프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최악의 경우에 밀.보리라도 갈아야 하니까"
음미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시대적 명언이며 경고다.
탄도항에서 궁평항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경사가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누에섬 바닷길을 떠나
해변길 진행을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가동중인 풍력발전기 옆을 스치면서 모르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베리아 반도에는 비교될 수 없게 소규모지만 우리 산과 바다 곳곳에도 풍력발전소가
들어섰으며 꾸준한 증가추세다.
여기 누에섬 바닷길의 풍력발전기는 순수 우리 기술로 된 기어리스형(gearless/gear-
box가 없는)으로 시스템의 효율 향상, 내구성 증대 및 유지 보수의 용이가 장점이란다.
수력과 조력이 원자력의 공포, 화력의 공해 등에서 자유로우나 입지에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무공해 풍력은 소량 생산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진합태산 아닌가.
갯벌체험장은 요금과 관계없이 내 체질이 아니다.
안산어촌민속박물관에 들렀으나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탄도방조제를 다시 걸으며 바라본 탄도(안산) 전곡(화성)항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저녁노을이 빠진 요트항은 팟소 없는 찐빵에 비유될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나 이미 눈에 박혀있는 강렬한 스크린(저녁놀에 물든)이 복사
현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산의 누에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화성 땅에서는 속도를 높혔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낮은 고개를 넘어 내려가다가 길가 집 벽에 붙은 간단한 글에 걸려들었다.
<곰탕은 음식이 아닌 "보약"입니다>
요란한 식당 간판은 내게 무력한데 평범하지만 독특한 광고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어찌 곰탕만 보약인가.
우리에게는 대대로 밥이 곧 보약이었으며 나는 지금도 그리 믿고 있다.
"밥이 보약이다"는 주식이 밥인 우리의 일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고개마루의 넓게 차지한 야생화재배 체험활동장 '하내테마파크'가 성업중이다.
외진 서해까지 찾아가는 열의인가 마땅한 탐방지 부족현상인가.
함경산 자락 쟁이골 문화예술촌은 대조적이다.
홍보에 문제가 있는가 입지의 차이인가.
서신면소재지에 당도했을 때 묵은 숙제를 다 풀고 새 과제에 착수하는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궁평항 길 309번 지방도로(궁평항로)는 지금 카오스(chaos) 상태다.
확장과 보수의 판이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성방조제 건설로 궁평항 ~ 매향리(우정읍)가 연결됨으로서 중요 교통로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참으로 걷기 힘든 길이다.
배가(倍加)되는 공차증은 물론 작업 중장비들이 뿜어내는 공해까지 고통을 주고 있다.
결국,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조금 남은 거리지만 막판에 버스에 올랐다.
간척사업, 초지가 동요없이 관철되기만을....
궁평항은 화성 제4경(景)에 오른 아름다운 낙조 효과인가 방조제 효과인가.
제법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아직은 미비상태지만 제반 시설을 갖출 공간이 넉넉하게 확보되어 있다.
어항을 확장하는 중이고 규모가 큰 수산물직판장이 쌍둥이처럼 들어서 있고 바다낚시
마니아들을 위한 멋진 해중(海中)낚시터도 세웠다.
다만, 방조제 준공(2008년 12월 31일)후 4년의 세월에 비하면 발전속도가 더딘 편이다.
서신면 궁평항 ~ 우정읍 매향리 간의 남양만을 막는 사업이 화옹지구 간척사업이다.
이 사업을 위해 구축한 방조제가 총 길이 9.8km인 화옹방조제다.
'화옹'이 '화성'으로 개명됨으로서 고유명 화옹은 일괄해서 화성으로 바뀌었다.
화성호, 화성방조제 등.
시화방조제에 이어 두번째로 긴(준공당시기준) 이 방조제는 왕복 4차선 차로와 편도로
된 인도, 자전거로(이쪽은 인도 저쪽은 자전거로) 등을 가지고 있다.
궁평쪽 기점 6.6km지점에는 중간선착장(매향항)도 설치했다.
마침, 밀물 때가 되어 바다는 두렵도록 세차게 출렁거리는데도 100m쯤 되는 궁평항쪽
갑문들의 요지부동으로 잔잔한 화성호는 마치 광활한 초원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준공 기념비가 있는 호변 쉼터(소공원)도 호수처럼 평온하고 평화로웠다.
이에 반해 호수가의 태공망(太公望/釣師)들은 되레 권태로워 보였다.
자극을 받지 못하니까 그럴 것이다.
바다쪽이 오히려 생기로울 텐데 시화호와 달리 두루마리 철조망으로 접근을 차단하여
얼씬도 할 수 없으니 따분할 것이다.
지금은 화성호가 된 광대하고 장대한 남양만이 장차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과연, 초지가 동요 없이 관철될까.
극심한 해산의 고통이 보람없게 훤칠한 옥동자 대신 언청이, 곰보를 낳는 건 아닐까.
무수한 민초의 한(恨)과 희생으로 만든 드넓고 소중한 간척지다.
후손에게 수치스러운 선대가 아니고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될 만한 유산을 그 안에
남겨놓은 조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방조제 축조로 얻은 엄청나게 많은 간척지에 관계된 당국자들이 두렵도록 막중한 사명
감으로 임해야 하는 이유다.
누에섬 바닷길을 벗어날 때 중단되었던 상념이 이어짐으로서 10km에 육박하는 방조제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내가 지도하던 학생서클(당시에는 현재의 대학동아리와 달리 여러 대학과
고교의 의기 투합학생들이 서클을 결성하여 과외활동을 했다)을 이끌고 남양만 농어촌
에서 하계봉사하던 추억까지 되살아나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까지 오려면 하루에 두번 있는데다 비포장도로를 덜거덕거리며 먼지 뿜는 버스가
참으로 곤욕스러웠는데 반백년 세월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으니까.
방조제의 한쪽인 매향리 바닷가에는 궁평항과 달리 어항이 없다.
상거가 꽤 먼 기아자동차 옆에 고온리 항이 있을 뿐.
악명높은 미국 공군의 농섬 쿠니 사격장이 있던 곳이기 때문인가.
폐쇄된지 7년이나 지났는데도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가 더딘가.
화성호쪽은 호반답게 괜찮은 집들의 마당이 모터보트 계류장(?)이다. <계 속>
첫댓글 "골프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최악의 경우에 밀.보리라도 갈아야 하니까" 라는 말에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관계인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습니다.
정말, 바다를 막아 땅를 넓히는 일은 정말 다원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