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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포가수들의 선두주자 꾀꼬리 - 최지은 | ||||||||||||||||||||||||
-문경철 특약기자의 인물스케치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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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곧 다가올 모 단체 다문화바자회의 공연에 출연 제의를 받은 최씨를 구로동에 위치한 어느 연습실에서 어렵게 만날 수가 있었다. 밴드와 반주를 조율하고 있는 최씨의 모습에는 음악에 대한 사뭇 진지함에 긴장감까지 엿보였다. 우리가 보아왔던 활기차고 정다운 무대 모습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전자올겐의 틀린 필인(노래와 노래사이를 매끄럽게 이끌어주는 멜로디 요소)부분을 정확히 지적을 하는가 하면, 드럼의 강약을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정중히 부탁을 하면서도 악사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느라 얼굴에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에 “프로는 프로다” 라는 말이 절로 상기가 되었다. 그녀의 활동 내역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2002년에는 한강고수부지에서 열린 코미디언 송해씨의 사회로 진행된 KBS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로 출연, 2003년에는 방송인 이상벽씨의 사회로 진행된 MBC 중국동포 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 같은 해 동포가수들로 뭉쳐진 소년소녀가장돕기 콘서트에 출연하여 SBS 등 공중파 방송매체에도 보도가 되었는가 하면, 매년 서울 조선족교회에서 치르는 한가위잔치 등에 주현미, 배일호 등 유명가수들과 정기적으로 고정출연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노인정 정기 무료위문공연 등, 설명절 때마다 동포관련행사 등에 출연을 하느라 10여년동안 단 한 번도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다면서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내비쳤다. 그녀는 또 외국인자율방범대원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범활동 하는 날에는 동포밀집지역을 대원들과 순찰을 하며 술 취하신 시민들을 집으로 안내를 하고 늦은 밤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라면과 과자 등을 사주면서 계도를 하며 방범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 흑룡강성 계동현 출신인 최지은씨는 흑룡강성 조선족가무단에서 전업가수로 활동을 하였고, 슬하에 1남을 두고 있으며 아들(최성원)도 엄마의 끼를 이어받아서 현재 명지대학교 실용음악학과에 재학중이다. 그러나 최지은씨 역시도 1996년도 초창기에 한국에 입국을 하였을 때에는 동포 관련 활동이 전무후무하여 중국에서 줄곧 음악(조선족가수)활동을 해 왔지만 기초적인 생활을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남들처럼 건축현장, 홀서빙, 공장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정말 본인에게는 너무도 슬픈 일 이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짬짬이 시간이 허락 되면 주변지인들의 추천으로 교회 등 봉사단체들의 공연에 출연을 하고 점차 음악 관련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최씨는 2000년도에 파워레코딩(음반회사)의 제작으로 “휘파람”등 곡들이 삽입된 메들리 음반을 출시하게 되었으며 가수협회에 등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2000년에 한중교류협회, 한중동포신문의 주최로 서막을 올린 “제1회 한중문화의 밤”공연에 출연을 하면서 동포 가수 찐웨뉘의 노래 “베이징쇼제”의 작곡가로 유명한 작곡가 겸 가수 정원수씨를 만나서 호평을 받으며, 한국사회에 본인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를 굳혔으며, 그 후에도 “우리가락”, “신명 메들리” 등 다수 레코딩 취입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기자가 향후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녀는 많은 동포 예술인들이 한국에 체류를 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희귀성 명분으로 북한의 문화는 일정부분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중국동포 예술인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냉대를 받고 있다면서, 인정받지 못하는 동료음악인들의 처지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며, 앞으로는 이런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장이 많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문화예술 관계자들에게 호소를 아끼지 않았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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