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이야기의 딜레마와 교훈

창조 이야기의 딜레마와 교훈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성경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보자. 우선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이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와  2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 둘을 대비시켜 놓고 보면, 이 둘은 문자적으로 이해되는 한 도저히 서로 양립될 수 없다.  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창세기 1장 1절에서 2장 3절까지의 창조 이야기와 2장 4절 이후의 창조 이야기는 두 가지 완전히 상이한 고대문서가 짜깁기 식으로 연결된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성서학자는 첫번째 이야기를 기원전 6세기에 생긴 P문서(제사문서)에 속하는 이야기로, 두번째 이야기를 기원전 10세기 경에 생긴 J문서(야훼문서)에 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1장 1절에서 2장 4절 전반부에 나오는 P문서와 2장 4절 후반부 이후에 나오는 J문서는 그 문체가 완전히 틀린다. P문서는 제사에 쓰는 문서답게 축문 식으로 근엄하고 공식적인 문제로 된데 반해, J문서는 완전히 간결한 이야기 식 문체로 쓰여져 있다. 그러나 더욱 뚜렷한 차이점은 P문서의 하나님과 J문서의 하나님은 그 이름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처음 문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이라는 이름의 하나님이고, 두 번째 문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야훼(Yahweh)라는 이름의 하나님이다. 우리말로 엘로힘은 그냥 "하나님"으로, 야훼는 개역에 "여호와 하나님", 표준새번역에는 "주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   엘로힘 하나님과 야훼 하나님은 이름만 다를 뿐 아니라 각각 천지를 창조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엘로힘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는 방식은 그야말로 장엄하다. 그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물위에 움직이고 계시"는 우주적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등장한다. 그리고는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다.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물 한가우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지라."고 하시니 그렇게 되어 하늘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제3일에는 바다와 육지, 그리고 식물들을, 제4일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제5일에는 물고기와 새들을, 제6일에는 모든 짐승들과 남자 여자를 만드셨다. 이렇게 6일간의 창조사업을 마치신 다음,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이렇게 훌륭한 창조의 세계를 보시고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시며 제7일에는 "하시던 일에서 손을 떼시고 쉬셨다." 안식일이었다. 그리고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야훼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우선 그 무대 배경부터 완전히 다르다. 혼동과 공허, 흑암과 깊음 같은 우주적 스케일이 전혀 아니다. 야훼 하나님은 비가 내리지 않아 "나무도 없고 풀 한 포기도 없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에 등장하는 신이다. 그러다가 어떻게 "땅에서 물이 솟아" 땅을 적시기 시작하자 드디어 창조사업에 착수하신다. 손수 흙을 빚어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그 코에다 '후!'하고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그 진흙 덩어리가 드디어 생명체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흙'이라는 히브리말 '아담아'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담'이 되었다. 히브리어로 '아담'은 '사람'이란 뜻이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음 사람을 위해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과일 나무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뒤늦게 하나님이 보시니,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 되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 다시 손수 흙으로 각종 짐승과 새들을 하나 하나 지어주셨다. 그러나 짐승이나  새만으로는 완전히 만족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 특별히 "돕는 배필"을 지어주시리라 작정했다.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 그것으로 여자를 만들어 주셨다. 짐승들과  새들만 보고 살던 아담은 자기의 분신인 이 여인을 보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하면서 감격하였다. 둘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함께 잘 살았다.   둘째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어느 날 큰 사건이 터졌다. 하와가 그 "선악을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같이 되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분별하는 지식을 얻게 된다는 뱀의 유혹에 빠져 그만 그것을 먹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뭄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역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았다. 그리고는 그들이 왜 그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물어보았다. 아담은 당신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이 여인이 그 실과를 주므로 먹었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하와 양쪽에다 책임을 떠넘기고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댄다. 핑계대기 경연대회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먼저 뱀을 향해 앞으로 배로 기어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리라는 등의 형벌을 내렸다. 하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크게 더함과 동시에 남자를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주어 영영 그 해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였다. 아담에게는 그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얼굴에 땀을 흐려야 거기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리라 했다. 그리고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쪽"에 화염검을 두어 그들이 다시 동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창조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읽을 때 그것이 가져다 주는 딜레마를 다루기 전에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지적해보자.   첫째, '아담'이라는 이름은,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란 뜻으로, 본래 '흙'을 의미하는 '아담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어의 human이라는 말의 어근이기도 한 라틴말 'homo'라는 말이 라틴에서 흙을 의미하는 'hums'에서 나온 것과 같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인간은 '남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다. 아직 여자가 없었기 대문에 자연히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별도로 이야기한다.   둘째, 아담과 하와가 먹은 과일이 사과인지 복숭아인지 누구도 모른다. 어른들 목에 튀어나온 목뼈를 보고 서양에서는 '아담의 사과'라 하지만 아담이 '사과'를 먹었다고 하는 기록은 없다. 한국의 무슨 교파에서는 그것이 복숭아라고 믿고 복숭아를 안 먹는다고도 하지만 그것이 복숭아였다는 증거는 물론 없다.   셋째, 아담 하와의 경우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만드셨으니 탯줄이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배꼽이 없었을 것이라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배꼽이 없는 배를 상상하기가 힘들지만, 그런 배는 보기가 좋았을까, 좀 이상스러웠을까. 아담의 '갈빗대'에 대해서는 나중 이야기한다.   넷째, 17세기 제임스 엇셔(James Ussher)라는 아일랜드 신부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그 자손들의 생존연대를 전부 계산해서 아담이 흙으로 빚어진 것이(생년월일이 아니라 '조성일?'이) 기원전 4004년이라 주장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가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로 채택되어  왔는데, 아직도 그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섭섭한 일이지만, 더 이상 공식적인 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영국의 성 캐더린 대학 학장인 죤 라이트 푸트(Joh Lightffot) 박사는 그것이 정확하게 10월 23일 오전 9시 정각이었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이 두 가지 창조 이야기 중 어느 것을 정말로 믿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첫째 이야기에서는 5일에 새들을, 6일에 짐승들을 만드시고, 그리고 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는데, 둘째 이야기에서는 사람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여 짐승들을 지으시고 따라서 새들을 지으셨다고 했다.   우리는 어느 쪽 순서를 옳은 것이라고 믿어야 하나? 짐승과 새들의 창조는 두 번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물론 첫째 이야기는 천지창조의 총체적인 이야기고, 둘째 이야기는 몇 가지 세부적인 것을 만든 부연적 설명이므로 보완적이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몇 가지만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야기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이 완전히 원대한 계획에 따라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씀으로 단숨에 다 지으시고, 일이 완성되었을 때 극히 만족해하시면서 일에서 손을 떼신다. 그리고 수정 작업이나 추가 보수 작업 같은 것을 하시지 않는다. 물론 일곱째 날 쉬신 것을 보면 완전히 '전능'하신 것만도 아니라는 반론이 나옴직도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문제는 둘째 이야기에 나오는 신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야기에 나오는 신은 일단 사람을 만들어 놓고 보니까 있어야 할 곳이 필요하구나 생각하시고 동산을 일구신다. 또 사람이 거기서 쓸쓸히 지나는 것을 보시고 나서 뒤늦게나마 자기의 실수를 알아내시고 짐승과 새들을 만드신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사람이 만족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다른 인간을 만들어 주기로 작정하시는 것이다.   야훼 하나님은 이렇게 일을 해가면서 계속 계획을 수정 보완해가고 있다. 아담 하와의 추방으로 결국 실패작이 되고 말 에덴 동산 조성사업마저도 미리 알지 못하고 그대로 추진했던 신이다. 그런 실수 때문에 에덴 동산은 쓸데없는 공터로 남게 된 것이다. 우리는 첫째 이야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둘째 이야기에 나오는 하나님 중 어느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모셔야 되는 것인가?   이 이야기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 특히 둘째 이야기에서 도저히 전지전능하신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전지전능하신 신이라면 아담 하와가 숨어있다고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실 필요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끝가지 다 아시는 신이 아담 하와가 따먹을 것을 뻔히 아시면서 왜 그런 나무를 만들어 놓으셨는가? 인간이 자유의지를가지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는가 아니하는가를 시험해보시기 위한것이라 해석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다 아시는 하나님이 구태여 그런 시험을 해볼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그 뿐이 아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따먹게 놓아두셨다고 하지만, 아이가 부모의 말을 거역하여 벼랑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으면, 그것이 아무리 부모 말을 듣지 않은 결과에서 오는 일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붙잡는 것이 부모의 일반적 심정일 터인데, 하나님은 그런 마음마저도 없었다는 것인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를 아는 것이 도대체 왜 그리 못할 짓인가?   선악을 판단할 능력이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 요건이 아닌가? 하님은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했는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는 것을 막아야 할 정도로 하나님은 질투심과 이기심이 많으신가? 어떻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렇게 심한 벌을 주실 수 있으신가? 그것도 당사자들뿐 아니라 땅도, 그리고 자자손손이 저주를 받아야 된다는 것인가? 선과 악을 알기도 전에 선악과를  먹으면 나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따먹기 전 뭐가 좋으지 나쁜지도 모르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순종하여 따먹지 않았다면 그런 로봇 같은 순종이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모두 초등학교 상급반이나 중학생 때 열심히 물어보던 유치한 질문들이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어야 할 경우 불가피한 질문이요, 또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시원한 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들이기도 하다.   계속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이야기의 일차 목적은 우리에게 정보(information)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를 주기 위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과학적,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떤 종교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상징적 이야기가 들려주는 의미는 한 가지만일 수 없다.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한 대로 상징이란 "백만 가지 뜻의 원천"이다. 각자의 처지와 성숙도에 따라 각이한 뜻을 찾아낼 수 있다. 이제 이 이야기를 특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힘이 되고 지침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한번 풀이해 보기로 한다.   첫째,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주 만물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한 가지 근원, 같은 태에서 나온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는 물론이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모두가 다 한 뱃속에서 나와 한솥밥을 먹고사는 형제자매이다. 우주 자체가 이렇게 한 식구, 하나의 신령스런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이런 장엄한 우주 창조의 대서사시를 앞에 두고 ' 인간들만' 한다던가, 인간들 중 '내 민족만 한다던가, 더욱 좁아져 '나만' 하는 좁고 좀스런 배타주의적 인간중심주의, 국수주의, 이기주의의 태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깨달아야 하리라. 이제 모든 인류를 감쌀 뿐 아니라 생물 무생물을 다 함께 얼싸안는 우주적 동류의식을 배양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의미의 "호연지기"(浩然之氣)이다.   둘째, 만물은 서로 연관되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과도 관계되는 이야기이지만, 여기서는 근원이 같을 뿐 아니라 존재양식 자체가 서로 유기적인 얼개 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창조 이야기에서는 인간에게 특별한 위치가 주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인간도 다른 피조물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결국 모든 피조물은 모두가 모두에게 의존해 있고,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만물의 상호의존, 상호연관을 근거로 하는 유기체적 세계관은 오늘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세계관이다. 지금까지 서양의 근대문명은 데카르트와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사물을 이해하고 해석해 았다. 따라서 생존경재, 상호투쟁, 적자생존 등 상극(相剋)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이런 살벌한 상극의 질서에서 호혜의 원칙, 상생(相生)의 원리가 편만한 사회로 넘어가야 하고, 바로 창조 이야기에서 이런 더불어 삶, 어울려있음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그 엄청나고 신비스런 힘 앞에서 겸허하게 옷깃을 여미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물론 이와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의 것만 아니라 나의 형제 자매들의 존엄도 함께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느누구의 인간적 존엄이 침해 당하는 일이 있을 때라도 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대처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창조 이야기는 우리에게 겸허하면서도 의연한 사람됨, 자기의 분수를 알면서도 당당한 사람됨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넷째,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창조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물론, 이를 아끼고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높은 산 넓은 바다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다. 이럴 수 있을 때, 하나님의 걸작품인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파괴한다는 것은 결국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칼을 들고 대드는 일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중에 진화론은 마귀의 이론이고 창조론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몇 번씩 강조하지만 창조론이고 진화론이고 그런 이론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론이 진리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외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나마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파괴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진화론을 믿지만 일회용 볼펜이나 종이 수건 쓰는 것도 거부하면서 자연보호에 시간과 정력을 바치는 캐나다의 데이비드 스즈키 교수, 누가 창조주 하나님의 저신에 더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겠는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교수가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노르웨이 사람들에 대해 쓴 다음 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노르웨이에 온 첫날부터 오슬로 시내에서 왔다갔다해야 했던 내가 맨 처음 놀란 것은,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학의 경우에는, 학생, 직원, 교수 너나없이 거의 모두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자동차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체력 쇠약 등의 이유로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은 거의 전부 대중교통을 사용한다. 자동체에 대한 이러한 혐오증은 무엇과 관련이 있을까. 일차적으로 매연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보편화된 것이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