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咸陽 朴 孝 順》은 米壽에 조금 못미처 ‘흙보탬’으로 가시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전문병원에 입원 보름만이였습니다. 정신만은 또렷하시었고,
휠췌어 신세만 한달여 지시고 臨終을 지키게 해주셨으니 자식들에게 큰 복인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 가느다란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습니다.
어머님은 월출산 아래 월암에서 1926년 태여나셨고, 19세에 당시 의대생이였던
22세 배천(白川 趙氏)와 혼인을 하였으나 외아들만 남기시고 전쟁통에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그 후로는 말할 수 없이 辛酸한 삶을
사셨습니다. 다시 서울생활에서 보신 며느리와 함께 손자키우기와 붓글씨에
일가를 이루며 전국사찰 순례 하신 때를 효도라고 하기에는 큰 아쉬움뿐입니다.
-근년에는 걷기불편 속에 힘겨워 하시다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꽃비가 내리는 봄날에 평소 말씀해오신 火葬후 아버지 유골과 60여년만에
先山에 合葬하여 혼이나마 두분이 편안한 안식으로 모시는 장례절차를
황망히 마치었습니다.
바쁘신 주말임에도 조문해주시고, 멀리서 葬地까지 오신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위로의 마음과 격려의 말씀으로 염려해주신 모든분들의 덕분인가
합니다.
봄비 속에 三虞祭도 지내며, 어머니를 떠나 보낸 슬픔에 젖어있는 저희에게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찾아뵙고 인사 올리는 것이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로써
감사인사를 대신하여 드리게 된 점 또한 죄송한 마음금할 길 없사와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베풀어 주신 이 은혜를 꼭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가내에 건강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2013년 4월 일
孤哀子 趙 賢世. 鄭 坪蘭
哀孫 성욱(性昱). 민욱(旻昱) 拜上
첫댓글 조현세 고문님의 효의 본모습을 엿보게
되어, 부모님께 더욱더 관심과 사랑을
드려야 겠다는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