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농부가 농사짓듯 삶을 경작하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땅은 떠나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데에는 학력이 중요하지 없고 학벌은 더더군다나 중요하지 않다. 나이나 성별도 따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곡식을 재배하는 마음, 자연을 섬기는 겸손한 자세에 있기 때문일 터이다.
도시 삶을 접고 귀농歸農 또는 귀촌歸村으로 인생 2막을 개척해 성공적인 사람살이를 보여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성공적인 사람살이란 빌 게이츠처럼 세계적인 기업가이자 재산가가 되는 것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알고 그 바람을 자연스럽게 성취해가는 데서 성공의 첫걸음은 시작된다.
귀농이나 귀촌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원하는 바도 다르다.경남 마산시 자유무역지역에 있는 세계적인 휴대전화 회사 노키아사의 한국법인 노키아티엠씨NOKIA tmc를 18년 동안 성장하는 회사로 이끌었던 이재욱 명예회장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도시농업 형태로 농사를 짓다가 은퇴 후 부인 이정자 씨와 함께 마산시 외진 마을에서 농부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임파선암이라는 사경에서 삶으로 돌아와 귀농한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농어촌이 행복할 때 진정으로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다운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하며 살았던 김광화·장영란 부부는 ‘살아 있음’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태어남을 위해 서울살이를 접었다. 경상남도 산청을 거쳐 전라북도 무주에 정착해 사는 귀농 생활11년째, 귀농하던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 정현 양은 스무 살이 되었고 두 살이었던 아들 규현 군은 열세 살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려하지 말고 자립하자. 우리 부부 힘으로 서보자’라며 서로간의 소통에노력하던 첫 마음은 자연 교육으로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늙으면 귀향해 살자’던 이환의·오미정 부부는 계획을 앞당겨 1997년 충청남도 홍성군으로 귀향했다. 건설회사가 입주 뒤 등기 전에 입주민의 동의 없이 아파트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거액을 대출받고 고의부도를 내면서 일어난 2년간의 투쟁 생활이 결정적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도시 생활의 미련을 접은 이환의 씨 부부는 ‘마음의 행로’를 따라 다섯 살이었던 큰딸 아리수, 세 살이었던 둘째 딸 이지와 자연으로 돌아왔다. 도시에서 못 살겠다는 마음의 반동 작용이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 알몸이 된 겨울나무가 봄을 준비하듯 자연스럽게 선택한 일이었다. 귀농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하고 농사를 지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아내의 손가락뼈가 말썽 날 정도로 지독하게 농사를 지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곡식을 재배하기 위해서. 이런 그를 두고 토박이 이웃들은 ‘아름다운 독종’이라고 부른다.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머리로 농사를 짓고 농부들은 가슴으로 농사를 짓는다. 자연의 사랑을 모르면, 겸손하지 않으면 성공한 농사꾼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농사의 근본과 이치를 안다면 귀농하지 않아도 성공한 농사꾼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 공부하는 일, 회사 일…. 이 모두가 경작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겠는가.
1 이재욱 씨가 강아지 호롱이와 논둑을 걷고 있다. 2 보리말리던 그물을 정리하는 부부. 3 모내기를 하지 않는 태평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이재욱 씨는 2~3일에 한 번씩 논을 살펴보며 작황 상태를 살핀다. 4 부인 이정자씨가 오리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5 고추가 잘자라도록 대를 세우는 이재욱 씨. 6 텃밭으로 야채를 따러 가는 부부의 뒷모습.
우리의 미래는 농어촌에 달렸다
이재욱·이정자 부부
노키아티엠씨의 이재욱 명예회장은 6년 전 임파선암을 호되게 앓았다. 생명을 회복한 후 그는 ‘제2의 인생이니 무슨 일을 하면서 고민하며 살 것인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대수술이었던 듯 목 부위에는 아직도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고, 발음하는 게 조금 불편해 보인다. 삶으로 돌아온 후 그는 도시 농업 형태로 벼농사를 짓던 경상남도 마산시 진북면 영학리에 집을 짓고 정착했다. “힘이 있나요? 남편이 결정하면 따라야지요(웃음)”라고 이야기하는 부인 이정자 씨도 함께. 이제 두 사람은 이곳 사람이 다 되었다. 하염없는 시간이 막막해 동네 할머니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이 뭐 하는 일인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던 부인 이정자 씨도 지금은 농사지으랴, 닭과 오리 키우랴, 바쁘다.
그는 노키아티엠씨의 CEO로 활동을 시작한 지 2~3년쯤 지나면서 이곳에 땅을 마련했다. 주민들이 외지인에게 반듯한 땅을 팔려고 하지 않을 때여서 작은 천수답(물의 근원이나 물줄기가 없어 비가 와야 모를 내고 기를 수 있는 논)을 구입하기 시작했다.“남한테 말 못할 일을 돌파해가야 하는 회장만의 임무가 있어요. 그 난관들을 돌파하려면 많은 작전을 짜야 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요. 스트레스를 완전히 잊기 위해서는 다른 데 머리를 써야 하는데 등산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니까 또 회사 일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망치로 뭘 만들거나 밭을 가는 것처럼 손으로 뭔가를 하면 잡념이 일어나지 않아요.” 회사 경영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농사일은 그에게 많은 성과를 안겨주었다.
그가 재임하던 18년 동안 연평균 3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한 것이다. 부임하던 1985년 하루 2백 대였던 휴대전화 생산량이 2005년에는 연간 5천만 대를 생산하는 튼실한 회사가 되었다. 성공적인 기업 경영의 노하우가 위기의 우리 농업으로 이양된다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은 말해 무엇하랴.“신바람 경영을 했죠. 소프트웨어는 내가 즐거워서 일하고, 우리 직원들이 즐거워서 일하고, 협력회사도 즐거워서 일하고, 투자회사들도 기뻐하며 일하는 것이죠. 하드웨어적으로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노키아와 세계 최고의 솔직함과 기술을 갖고 있는 우리 한국 사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판매망을 갖고 있는 미국 회사, 이렇게 셋이서 삼위일체가 되어 좋은 결과를 냈지요.” 신바람 정신을 경영에 접목한 그는 가장 약한 사람과 함께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랫사람이 일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해주고, 긍정적인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랫사람이 자유롭고 자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니 성공 의지를 자발적으로 갖게 되었고, 성공을 위해 스스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적자로 문 닫을 위기에 있던 기업을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으로 발전시킨 그가 은퇴 후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농업과 농민의 자리로 온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6년 전 알게 되었던 이영문 씨의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논에 가보니 다른 논들은 모내기를 마쳐 푸릇푸릇한데 그의 논만은 갈색이다. 자운영이 피었다가 진 논에 그대로 볍씨를 뿌려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그렇단다. 2~3일에 한 번씩 20여 개의 논을 둘러보며 볍씨가 싹을 잘 틔우는지, 게릴라(잡초)의 상태는 어떠한지 살핀다. 잡초와 벼를 함께 자라도록 한 뒤 논을 담수시켜 물에 약한 잡초를 약하게 하거나 논의 물을 빼서 논을 건조하게 해 물만 좋아하던 잡초를 죽이거나 약하게 하고 때로는 제초제를 때에 맞춰 뿌린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잡초의 생명력이 벼의 생명력보다 승하게 되는데, 그간에는 때를 맞추지 못해 실패한 적이 많았다. “한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제각각이듯 하나의 논에서도 부분적으로 다른 상태인 곳이 있는데 이를일률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실패의 주요인이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분석하며 관리한다. 그가 예상하는 올해 생산량은 40가마 정도. 이영문 씨만의 태평농법 버전이 빛을 발하는 원년이 될 것 같다.
“원인을 찾을 때 ‘왜?’라는 질문을 다섯 번만 하면 해답이 정확하게 나와요. 한미 FTA도 마찬가지입니다. 농가 피해를 보상하고 보전해주는 방어적인 정책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격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농민들이 교육비와 의료비를 벌기 위해 농사를 지으니 대량 생산을 하게 되는 현실에 기반한 정책이 나와야 해요. 전 국민에게 의료비·교육비를 1백% 지원하는 EU·유럽 수준은 아니더라도 농어민에게만큼은 의료비·교육비를 지원해서 피해를 입고 있는 농어민을 살려야 합니다. 앞으로 조금만 지나면 어느 순간 식량은 큰 무기가 됩니다. 그때, 모든 산업이 망하는 최악의 경우라 해도 농어촌만 살아 있으면 우리 국민 모두가 사치하지는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농어촌을 피폐하게 하면 안 됩니다. 땅과 갯벌을 살려야 해요.” 아무리 2, 3차 산업이 유행하고 자본의 흐름을 주도한다 하더라도 영원하지는 않다. 아무리 인기 있는 산업이라도 붐이 가라앉으면 세계 최고의 몇 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1차 산업인 농어업은 사람이 있는 한 지속된다. 미국이 자동차 시장을 내주면서 농산물 시장을 요구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은 순수한 곡식을 갖고 있고, 아직은 순수한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위기를 잘 살리면 오히려 천년대계의 기반을 세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생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값비싼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렵다고 한다. 농어민의 가계에 부담을 주는 큰 장애를 거둬주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는 기업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농어촌이 살아나면 실업난으로 방황하는 총명한 청년들도 농촌에서 희망을 일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첫댓글 이제전쟁이다!!
일을 하다보면 시간과 날짜를 잊고삽니다. 그러나 수입은 아직 없으니 초조 해지기시작입니다.
만들면됩니다..기성/원남..든든합니다...가지고있는땅만개발해도...잘할수있습니다..멋진닭3마리 알낳을때까지기다립니다!!
김영랑시인의 찬란한슬픔의봄을 떠올립니다!!
이제 귀농 3년차 입니다 . 아직 수확의 걸실은 없구 노력 은 배가 해야 될것입니다.
이제 언젠가 열매를 거둘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