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원 3-14 자판안에 대한 정확한 성격을 밝혀 주셔서 양왕성님께 감사 드립니다. 문서 내용을 보고 완성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표준안 후보'나 '표준 시안'이 아닌 '표준안'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어서 격한 반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배열이든 공병우 자판의 표준이 정해지면 이미 공병우 자판을 쓰고 있는 사람과 개선안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므로, 표준을 정하는 준비 작업부터 쓰는 사람들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한글문화원의 자판안이 더 깊은 절차로 넘어갔을 때에 공개되었다면 또 다른 개선 요구가 겹치고 사용자들의 서운함까지 커졌을 수 있는데, 이제라도 한글문화원의 자판안을 공개해 주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드보락 자판이 처음 신청한 것과 다른 배열이 표준이 되었다는 대목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쿼티-드보락은 같은 영문 자판으로서 입력 방식이 같지만, 한글 두벌식-세벌식 자판은 입력/처리 방식이 다릅니다. 그래서 쿼티 자판만 쓰던 사람이 드보락 자판을 이해하는 폭과 두벌식 자판만 쓰던 사람이 세벌식 자판을 이해하는 폭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공병우 자판을 쓰는 사람들끼리도 생각하는 바가 달라서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는데, 공병우 자판을 쓰지 않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배열에 훈수를 두게 되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를 평소에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표준안으로 내세울 배열은 이미 보급되어 있는 배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안을 표준안으로 내세우면 누구나 배열을 손대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지만,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배열을 표준안으로 내세웠을 때에는 매우 타당한 까닭이 아니면 배열을 손대기 어렵습니다. 부류가 다양한 여러 사람들이 실제로 써 보면, 배열 연구자가 미처 알지 못한 문제점이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표준 제정 과정에서 배열의 설계 목적이 왜곡될 위험을 줄이고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뜻에서 한글문화원이 정말로 표준안으로 내세울 배열은 베타 테스트 수준이라도 일반 사용자들이 미리 써 보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자판안 제출 과정은 너무 서둘러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크게 듭니다. 지금 당장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완벽한 개선안을 만들었더라도, 입력기로 구현하고 개개인이 옛 배열을 잊고 새 배열을 익히는 데에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해가 걸립니다. 좀 더 긴 안목으로 차근차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준안'이라고만 하면 사람들이 배열을 오해할 수 있으므로 '권장안', '후보안', '연구안', '실험안' 같은 말 가운데 골라서 적절히 불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글문화원 3-14 자판안 문서를 보니, 받침 ㅈ보다 받침 ㄵ이 더 자주 쓰이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나온 말뭉치 통계 자료에서 받침 ㄵ이 ㅈ보다 많이 나온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한글과컴퓨터에서 1990년대에 내놓았던 분석 자료(박흥호님이 공동 저자였음)에도 받침 ㅈ이 ㄵ보다 훨씬 많이 쓰이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말뭉치로 모은 글을의 분야가 너무 치우쳤거나 통계를 내는 과정에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 차원에서 제안한 3-2012 자판을 검토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 동안 저는 한글문화원의 활동이 끊겼다고 생각하고 배열안을 제안했는데, 한글문화원이 개선안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배열은 제안하되 입력기 구현을 통한 보급은 하지 않았을 수 있었습니다. 일이 꼬인 면이 있지만, 몇 사람에게나마 품평이 나오는 단계에 이른 3-2012 자판도 표준안 연구에 참고할 대상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3-2012 자판은 ㅓ/ㅐ 자리를 맞바꾼 것이 3-90, 3-91 자판을 익숙하게 쓰던 사람들에게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장용 배열(3-2011)과의 호환과 ㅗ/ㅢ 글쇠를 이용한 기호 확장 배열 구현을 헤아려 한글/기호를 배치했기 때문에, 딱 한 배열만 만드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양한 응용/변형 배열이 나올 수 있음을 미리 인정하고 그들을 아우를 수 배열을 목표로 했습니다. 3-2012 자판이 리눅스와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입력기에 쓸 수 있게 구현된 데에는 3-2012 배열을 쓰는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도 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ㅗ/ㅜ/ㅖ/ㅢ 글쇠를 확장용 전환 글시로 이용하는 것은 3-90 자판과 그 뒤에 나온 공병우 자판들에 거의 적용할 수 있습니다. 3-14 자판안이 갈마들이 타자법(반자동 타자법을 제가 제안한 이름)을 쓸 수 있다는 전제를 두었다면, ㅗ/ㅜ 글쇠가 확장용으로 쓰일 수 있음을 헤아려서 그 위에 ㅋ 같은 홑받침을 올리지 않으면 좋다고 봅니다.
또 3-14 자판이 눌러 넣는 이동 기기를 헤아려서 갈마들이 타법(반자동 타법)를 받아들였다면, 신세벌식 자판도 표준안 또는 권장안으로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한글 자판까지 바랄 때에는 공병우 세벌식이 좋지만, 옛한글을 포기했을 때에는 신세벌식의 매력이 높습니다. 신세벌식 자판에서는 2003년판과 2012년판에서 공통으로 저와 우덜님이 생각을 보태서 만든 겹받침/기호 확장 입력법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쪽의 이야기는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한글문화원에 대하여 나쁜 쪽의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지난 2006년 무렵에 한글문화원에서 썩 아름답지 못해 보이는 사태가 벌어져서 한글문화원에 반감이나 두려움을 품는 사람들이 꽤 생겼습니다. 사태의 진실은 바깥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길 만한 정보가 뚜렷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난 몇 안 되는 정보로 저마다 상상하다가 한글문화원에 대한 의혹이 더 커진 면이 있습니다. 그 때의 후유증으로 저도 한글문화원에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잘하면 '×아이' 못하면 '간첩' 소리를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저도 한글이나 우리말에 관련한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을 펼치며 애쓰신 한글문화원 회원 여러분을 한 분 한 분 존경하고 있고, 공병우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서 운영되던 때와 다르다는 걸 알므로 한글문화원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 문을 연 뒤로 좋은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나쁜 인상이 새겨지는 바람에 후유증이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한글문화원이 조금만 열린 자세로 움직여 준다면 나쁜 인상은 금방 잊히고 묻힙니다. 이번에도 너무 갑자기 표준안이 등장해서 당황스럽고 서운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단체 안에서만 노력해서 어려운 면이 있다면, 다음 카페나 페이스북의 세벌식 모임을 이용하여 소통 기능을 분담하는 것도 여론을 일으키고 여러 사람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표준안 연구와 표준 제정 과정이 잘 이어지면 한글문화원이 다시 믿음을 쌓고 권위를 의심 받지 않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90 자판이 막 보급되던 무렵에는 공병우 자판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아서 바로 개선 요구가 나오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공병우 자판을 오래 쓴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냥 '세벌식'이라고 하면 '어떤 세벌식'인지 되묻고 '공병우 세벌식'을 말해도 어떤 배열을 가리키는지를 살필 만큼, 세벌식 자판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사용자들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병우 자판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병우 자판을 쓰고 있는 사람들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 자료가 필요한 때이기도 합니다. 논의 과정에서는 서로 대립하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여 협조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쓰일 보급안을 생각해서 개선안의 아쉬운 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되도록 모두 풀고 가야 좋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2006년 한글문화원 사태. 잘 지적하셨습니다. 지금의 한글문화원은 공병우박사가 계실 때의 한글문화원이 아닙니다. 이름만 같을 뿐이지 다른 단체입니다.
그 한글문화원 사태 때에 세벌님께서 곤혹을 치르신 것으로 아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사자가 아니었는데도 나중에 알고 기분이 많이 언짢았는데, 뜻하지 않게 그 때의 일에 휘말린 분들은 충격이 매우 컸을 것 같습니다.
팥알님의 의견에 적극 공감하고 이 의견을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3-2011 과 3-2012 자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고민과 검토와 연습을 돌이켜보니 팥알님 자판이 현재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알게된 이런 이슈를 통해서라도 팥알님의 연구와 노력이 많은 세벌식 사용자들에게 어필이 되었으면 합니다.
늘 팥알님께 감사드립니다.
숨통님, 반갑습니다.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이 숨통님의 작업을 통해서 구름 입력기에 들어간 덕분에
저도 맥 OS에서 두 자판 배열을 편하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모자라서 제안한 배열을 스스로의 힘으로 맥 OS에서 쓰이는 입력기에 넣을 수 없었기도 했지만,
배열을 실제로 쓰는 분의 도움으로 입력기에 들어간 것이 오히려 뜻깊게 바라볼 수 있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문화원의 표준화 작업은 서두르는 듯한 모습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일의 결과를 떠나 좋은 쪽의 작용도 많이 주고 받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표준화 논의가 쓰는 사람들이 더 만족하는 배열을 찾는 계기가 되길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