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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필미학 원문보기 글쓴이: 여세주
제15차 수필 촌평
(1) 해후
말끔하게 새 단장한 역으로 들어선다. 작고 아담했던 경산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넓고 웅장한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는 날이다. 졸업하고 삼십 년 만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어젯밤에는 잠까지 설쳤다. 연고지를 떠나 살다 보니 외로움을 안고 살았다. 알게 된 사람도 여럿 있지만, 속내를 드러낼 만큼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다. 속상하는 일이 있어도 혼자 삭여야 했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창원까지 데려다 줄 이놈이 반갑다.
창밖으로 펼쳐진 산들은 계절에 순응하여 회갈색으로 치장하고 있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꽃은 지고 나무들은 차가운 나목이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시간을 반추해 보니 어둡고 긴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많은 부분을 시간이 해결해 주었고 여기까지 왔다. 어느새 인생의 전반부를 끝내고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잘살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고무줄놀이하던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리며 더디 가는 시간을 재촉한다.
한 시간 남짓 달리던 기차는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미리 마중 나온 친구가 나를 반긴다. 어렸을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금방 알아보았다. 순수할 때의 인연이라 그런지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다. 타향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이 뼛속 깊이 전해진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먼저 와 있다.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서 사는 친구들이 어느새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서로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여전하다는 덕담을 건넸다. 얼굴에 진 주름은 지나온 시간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 줄 뿐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을 친구들이 떠올려 준다.
그날은 당번이라 수돗가에서 어항을 씻고 있었는데 잘못하여 그만 깨뜨리고 말았다. 어항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나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다시 사오라고 주문하였다.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겨우 말씀드렸다. 크게 혼날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았다. 어머니는 뜻밖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언제까지 사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다음부터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졸였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의 잘못을 지적했다면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변명하고 오히려 어머니를 원망했을 것이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사소한 기억도 잊지 않고 있었다. 기억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는 것인지 미처 몰랐다.
학교 다닐 때 내성적이었던 한 친구는 옷가게를 한다고 했다. 입성도 야무지고 운동을 하는지 몸매가 예뻤다. 물어보니 등산을 자주 한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친구의 모습은 기억에만 존재할 뿐 실제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당당함이 보기 좋았다. 내성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짐짓 시간이 나에게만 멈춘 듯했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여전하다고 했다. 여전하다는 말이 그렇게 밋밋할 수가 없었다. 삼십 년이 지났건만 여전하다니 나만의 색깔이 없는 것 같아 엷은 미소로 화답했다.
올 때는 더디 흐르던 시간이 어느새 해가 서산에 기울었고 다시 일상 속으로 가야 했다. 훗날을 기약하며 친구가 역까지 바래다준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향이 진한 커피 한잔을 건넨다. 한 모금 마시니 달콤 쌉싸름하다. 우정에도 맛이 있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아 곁에 오래 두고 싶은 맛.
살면서 크든 작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으며 살아간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되었다. 친구들과 추억을 낚아 올리는 사이 물기 없던 마음에 단비가 내렸다. 친구는 오래될수록 진국인 것 같다.
나를 태우고 갈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 기차에 올라서도 한참을 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차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 앞으로만 달려간다. 자리에 앉아 손에 든 커피를 마신다. 따뜻한 커피에 마음을 놓아서인지 그제야 피로가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갈래 머리를 한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운동장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유년시절의 친구들과 30년 만의 해후를 제재로 삼았다. 동창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잘 나타나 있으나 만남후의 상황이 자세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만나기 전, 만남의 상황, 만남 후의 느낌이나 생각>의 순서로 다시 정리해 보는 것이 좋겠다. 동창들과의 해후를 통해서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친구들을 거울 삼아 반추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도 이야기 해야 한다.
(2)집
아파트 앞에 조그만 개울이 있다. 그 개울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든다고 연일 파헤치는데 쓰러질듯한 집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예사로 봐서 이웃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옮겨갈 만한 곳이 없어서 제 몸 감추고 천덕꾸러기처럼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겨울바람에 홀로 떨고선 외딴집을 보니 옛 생각이 난다.
결혼하면서 산 임대 아파트가 5년 만에 내 집이 되었다. 작은 평수지만 행복했다. 기쁨에 젖을 겨를도 없이 전세를 놓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 남편은 결혼 전에 산더미처럼 빚을 쌓아 놓았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갚아도 십여 년의 세월이 걸릴 만큼의 빚이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원금과 이자를 빼고 사는 삶은 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사원주택으로 집을 옮겼다.
처음 집을 보러 간 것이 겨울 초입이다. 마흔여 가구가 두 채씩 어깨동무하고 있는 낡고 키가 낮은 집이었다. 산속의 바람은 차가웠고 빈집에선 미처 뽑지 못한 잡초만이 한들거리고 있었다. 위풍외풍을 막겠다고 창문에 비닐을 쳐놓았는데 바람에 찢어져 펄럭이는 모습이 스산했다. 빈민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멋지게 그려진 전원주택을 꿈꾸며 잰걸음으로 달려간 길이었다. 형편상 가릴 입장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감사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래된 집이라 방마다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서 겨울이면 모든 것을 안방에서 해결했다. 밥도 안방에서 먹고 잠도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잤다. 겨울에 세수라도 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연탄보일러에 양동이만 한 물통을 연결해서 물을 데워 사용했는데 물의 분량은 한 사람이 겨우 머리에 물을 적실 정도였다. 마당에는 잡초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람 키 높이만큼 자라났고 집 주변에는 뱀이 나올까 봐 백반가루를 뿌려 놓고 살았다. 밤이면 천장에서 뛰어노는 쥐를 쫒기 위해 베개를 던지며 잠을 설쳤다.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이 초라해서 누구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교통 문제는 더 심각했다. 시내버스가 다니질 않았고 자가용도 없었다. 사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회사에서는 하루에 몇 번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그 차를 놓치면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같은 지역인데도 택시기사들은 시외요금을 요구했다.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반찬거리도 일주일 분량의 것을 비축해 두고 먹어야 했다. 미처 손이 닿지 못해 버려지는 것도 많았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낭비될 때도 있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제일 나은 최선의 방법이었으며 내가 감수해야 할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불편한 생활 때문에 남편이 져 놓은 빚이 더 자극되어 이틀이 멀다고 열심히 싸웠다. 갈라서자는 말이 몇 번 오가면서 서로가 지쳐갔다. 둘째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마음은 너그러워졌다. 남편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걷히고 안아 줄 아량도 생겼다. 부모님을 보살피느라 진 빚을 가지고 내가 앙앙거리는 것이 불효하는 것 같기도 했다. 측은지심이 생겨 내 고통보다 남편의 허물을 덮게 되었다. 살다 보면 비천에 처할 때도 부요할 때도 있다는 성경 구절에 큰 위로를 받았다. 편안함을 얻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를 막았다. 현란해 보이는 모든 것엔 눈을 가렸다. 귀와 눈이 막혀 있으니 고개를 들던 욕심이 수그러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갈등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사원주택에서 몇 년 정도를 살면서 순리대로 사는 것이 편안함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느꼈다.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꽃이 핀다고 젊음의 대가를 지급하고 체득한 삶이라 성숙하고 의연해지지 않았을까. 고비가 있었으니 인생의 애환을 맛보며 삶이 주는 강한 애착도 느꼈을 것이다. 때론 불편한 것이 인생에 크게 유익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편한 것에 길들어져 있어서 작은 상처 하나도 가지지 않으려 하지만 낮고 어두운 곳에 인생의 진리가 있는 건 아닐까.
철새들은 보금자리가 일정치 않다. 생존을 위해선 늘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살이도 철새와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적은 돈을 조금이라도 불리기 위해서 이십여 년 동안 네댓 차례는 옮겨 다녔다. 사원주택에 살면서 쪼개고 푼푼이 모아둔 적금으로 조금씩 평수를 넓혀갔다. 작은 평수였지만 집값이 올라 큰 평수로 이동하는 행운도 있었다. 이젠 이사할 만큼의 기력도 없고 텃새로 살고 싶은데 집은 나와는 애초에 인연이 없는가보다.
큰 아이가 대학 등록금을 마지막으로 내는 날, 숨을 좀 쉴 수 있을 거라 안도했었다. 아이가 취업해서 주는 용돈으로 남들처럼 자식 자랑하며 여행이나 다닐 줄 알았다. 복병이 숨어있으리라곤 예상도 못 했다. 큰 아이는 입사 원서를 내는 곳마다 다 떨어졌다. 신은 모질고 냉정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내딛는 것 같았다. 아이의 표정이 곧 내가 관리해야 할 얼굴색이었다. 웃을 일이 있어도 아이 앞에선 참아야 했다. 죽겠다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가슴이 타들어 갔다. 아이는 자꾸만 아팠다. 보고 있는 나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럴 땐 자식의 입장이 되고 싶었다. 엄마라는 입장이 너무 작았다.
소낙비 맞은 것도 아닌데 견디지 못한다고 누굴 닮아서 나약하냐고 위로 반, 타박 반을 한다. 아이한테 소리를 지르지만 나에게 하는 책망이다. 아이는 한없이 여리기만 하다. 온상에서 자란 화초 같아서 실바람에도 허리가 꺾인다. 험난한 세상에 내놓으려니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홀로서기를 진즉 가르쳤다면 꿋꿋이 견디지 않았을까.
집이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혹자는 재산 가치로서의 집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난 보금자리의 역할에 비중을 둔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먼저 가족이 생각난다.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는 장면이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난 창틈에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을 바라본 적이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귀를 기울였었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가족들의 얘기나 간간이 흘러나오는 웃음이 고대광실보다 행복해 보였다. 고대광실에서 냉랭하게 사는 것보다 소담하지만, 행복이 있는 안온한 집이 진정 가족이 편히 쉴 곳이 아니겠는가. 그 이상의 낙원이 어디 있으랴. 능력이 있어서 좋은 집에서 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없다고 해서 기죽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집값이 내린 후부턴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매매가도 예전 같지 않다. 거품이 다 빠져서 분양받았을 때의 가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집이 없는 서민에게는 집값 내린 것이 좋은 기회이겠으나 가진 사람은 있으므로 해서 더 가난해진다. 집이라도 팔아야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데 걱정이다.
어미의 타는 마음을 큰 아이는 알까. 차라리 어미 속을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집을 팔아서 커피집이라도 해준다고 하니 아이는 신이 나는 모양이다. 집이라도 있어서 아이 뒷바라지를 해줄 수 있다는데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어디에서 살든 맘 편히 등 기댈 수 있으면 내 집이 아닌가. 아이는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워서 쥐어박고 싶은데 손이 주춤한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멍하게 있는 아이를 보는 것보다 마음이 가벼워야 하는데 무거워지는 건 왜 그럴까. 손을 놓으려니 위태롭고 잡고 가자니 능력이 한계에 부딪힌다.
남편은 여전히 빚쟁이로 산다. 십여 년 동안 빚을 다 갚았나 했더니 나 몰래 조카들 세 명에 동생들을 까지 대학원까지 다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형님댁을 보살핀 것 같다. 남은 것은 숯덩이 같은 가슴뿐인지 돈 얘기만 하면 벌컥벌컥 화를 낸다. 그런 남편에게 의논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
내 삶은 갈수록 작아진다. 긴 터널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살아보나 했다. 호사를 누리며 살 팔자는 아닌 것 같다. 집 한 채 장만하는 것도 나에겐 오르기 힘든 높은 산이었는데 운명은 이것마저 시기하는지 겨울나무처럼 알몸으로 서라 한다. 꿈길인 듯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서려니 심란해진다. 겨울나무로 서기 위해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너무 아파서 울지 못한 삶이었다. 너무 아픈데 웃으면서 살았다. 내 얼굴은 호사스럽게 산 듯 평온하기만 하다. 내 얼굴을 보고 아픔을 발견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식 앞에서 어미가 눈물을 보인다면 아이는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부모는 아무리 아파도 자식이 보는 데선 강한 척하는 게 아닐까. 너무 오래 참고 살았나 보다. 이젠 눈물구멍도 앙탈을 부린다.
겨울나무처럼 허허롭다. 내 살점 다 내어놓고 알몸으로서야 하는 까닭이다. 온몸엔 상처투성이로 깊은 골이 파였지만 내색 한번 할 수 없다. 힘들면 슬며시 팔을 저어도 될 터인데 미련하게 내 몸 다 내어놓고 혼자 가슴 쓰다듬고 있다.
아파트 앞 오두막도 제 할 일을 다 했는지 근래에 들어 보이질 않는다. 겨울바람만 빈터에 휑하니 분다.
상황을 그려내는 솜씨나 비유적 표현력 등에서는 모범으로 삼을 만한 작품이다. 이 글의 의도는 삶의 과정에서 집의 역할이나 의미를 짚어보자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살아온 집과 그곳에서의 삶을 견주어 보는 이 작품의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의미 있다.
서민들의 삶에 있어서, 집은 그 의미(역할)를 바꾸어간다. 집은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이다가, 재산 증식의 수단이었고, 삶의 수준을 말해주는 과시의 상징이 되기도 하다가, 자식의 살림 밑천으로 소용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겪어가는 삶의 과정이요, 집의 운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좀 더 통일성 있게 다듬어지면 좋겠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젊은 시절의 힘겨웠던 삶 이야기, 취업을 준비하는 큰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로서의 심정, 힘겨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마음 등이 지향점 없이 단순히 어우러져 있다.
(3) 나마스떼 카트만두
신문기사를 보니 세계 여러 나라 중 한번 다녀 온 나라를 다시 찾아가는 재입국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네팔이라고 한다. 여러 차례나 같은 목적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어 공감이가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간다.
네팔하면 제일먼저 국제공항이 있는 수도 카트만두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 간이역 같이 작고 초라한 국제공항을 빠져나오면 길거리는 서로 경쟁하듯이 빵빵 거리며 울리는 경적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거리에 굴러다니는 차라는 차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고음에 크락숀을 울려대니까 도시 전체가 소음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나라 같이 크락숀 사용이 제한된 나라에서 온 사람 대부분은 공항을 빠져나오면서부터 거리소음에 놀라 혼이 쏙 빠진다.
한술 더 떠서 일부 시내버스나 트럭 뒤에는 ‘저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경적을 울려주세요’라고 쓴 현수막까지 버젓이 달고 다니니까 거리에 소음이 얼마나 심한지 소음이 익숙해지기까지 사 나흘 동안은 귀에 솜이라도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방문자는 소음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 방문했던 90년대 말에는 카트만두 시내에 통틀어 교통신호등이 통틀어 세 개밖에 없다고 했다. 왕궁주변과 일부도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로에는 중앙선이 그끄어져 있지 않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와 차가 다니는 차도 구분이 되어있지 않았다. 보행자가 도로를 건너다니려면 눈치와 요령이 없으면 쉽게 건너가기 어렵다. 게다가 도로에는 할 일 없이 배회하는 소와 심야에 밤거리를 주인처럼 돌아다녔던 개가 도로 곳곳에 아무데나 널브러져 자고 있어도 아무도 깨우거나 간섭하지 않아 교통 체중에의 중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무질서한 거리를 거닐다 보면 교통사고가 많이 날 것 같은데 믿기지 않은 통계자료지만 교통사고율이 우리나라 보다 낮다고 한다. 무질서 속에 질서란 게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비록 차가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매우 열악하지만 크락숀 소리로 내차가 지금 당신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신호를 해주고 속도를 최대한 줄여서 안전거리를 확보하니까 사고율을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네팔은 힌두의 나라다. 전 국민의 87% 힌두교를 믿고 있다. 힌두교의 핵심은 다신교이면서 계급종교이다. 힌두계급은 보통 네 종류로 나누는데 시바신이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급이 정해졌다고 한다.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브라만(성직자)이고 가슴에 해당되는 부분이 크샤트리아(지도층 관리)이며 배에 해당되는 부분이 바이샤(상인) 그리고 발 부분에 해당되는 계급을 수드라(천민)라고 하는데 한다. 시바신이 네 부류에 인간을 만들어 놓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변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다른 계층에의 인간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 계층을 불가천촉민이라고 부르는데 이 계층에 의 사람들을 힌두에서는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방인이 보기에 안타깝고 불쌍할 정도로 차별적 대우를 받고 사는 계층이다.
네팔에 가면 대부분의 시간을 최하위 계급인 불가천촉민이 모여 사는 빈민촌에 가서 봉사를 한다. 이들 대부분은 생활 폐수가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주변에 터를 잡고 모여 산다. 한눈에 보아도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봉사는 대부분 피부과와 소아청소년과 중심으로 하는 의료봉사와 이․미용 봉사 그리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연막소독위주로 방역봉사를 한다.
봉사를 끝내고 대원들이 하천 공터에 모여 그 날 있었던 일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여러분들이 참 부럽다며 눈물 흘리며 이야기 했다. 무엇이 그렇게 부러우냐고 물으니 계급이 다른 계층에 사람이 마치 같은 계층처럼 함께 어울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보기 좋고 부럽다고 했다. 힌두 특성상 브라만 계급이 대부분인 의사계층과 여건 적으로 공부하기 쉽지 않은 불가천촉민 계급이 대부분인 이 ,미용사가 한자리에 어울려 이야기하는 것은 카스트 계급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했다.
국토가 사통팔달 바다와 인접해 있지 않고 사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운둔은둔의 땅 네팔에도 지난 10여년 사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네팔 변화에 가장 중심축은 컴퓨터와 핸드폰 그리고 TV등 매체의 발달이다. 외국과 교류가 쉽게 되면서부터 수천 년 전통의 힌두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드리고 있는 계층은 수드라와 불가천촉민 등 최하위계층이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디까(오늘 신을 만나고 왔다고 이마 중앙에 붉은 염료를 칠하는 힌두 전통의식)를 하고 다니는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디까를 하지 않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은 네팔 젊은 청년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산업연수생으로 파견되어 나갔고 일부 지식층에서 선진국 유학 등으로 인적자원 왕래가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 졌다.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파송된 산업연수생 인원이 12000여 명인데 여기에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불법 체류자 3000여명을 포합하면 15000여명이 될 정도로 인력파송 규모가 많아졌다. 그리고 최근 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직항로가 개설되어 늘어 난 관광객과 외부인의 관심이 네팔변화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시민혁명으로 수백 년을 이어오던 트리브반 왕정이 무너지고 나라이름을이 네팔힌두왕립공화국에서 네팔민주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크리스마스를 국정공휴일로 지정하여 우리나라 못지않게 카트만두 시내중심가에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하게 장식이 되고 캐럴이 울려 퍼진다고 한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힌두의 땅 네팔에 산타복장을 하고 찾아가 눈 맑고 가슴이 따뜻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네팔의 내일이 기다려진다.(15.6장)
기행문 형식의 수필이다. 네팔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대상이 지닌 상태를 설명하는 데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소위 기행수필은 물리적 공간을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행 수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공간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생각과 느낌, 즉 감상을 서술해야 한다. 최근에 여행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기행수필도 많이 쓰여지고 있다. 물리적 공간을 보고 설명하는 데서 머물러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4) 사랑의 기술
방문 닫히는 소리가 크다. 순간 머리가 뜨거워지며 몸에 열이 나는 것 같다. “엄마가 되어서 그런 말도 못하냐?”며 닫힌 방문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도 방의 주인인 큰아이는 대답이 없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자 외출 준비를 마친 큰아이가 나왔다. 저도 기분 상한다는 듯 간다는 인사도 없이 현관문을 나선다. 아이 등 뒤로 닫히는 문을 보며 마음이 내려앉는다.
일의 정황은 이러하다. 큰아이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주말을 맞아 친구랑 약속했단다. 누구랑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언제 오는지, 묻는 물음에 큰아인 “다른 엄마들은 그런 것 묻지도 않고 잘만 보내주는데 엄마는 너무 심하다며” 대꾸를 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소리로 알고 마음이 샐쭉해졌나 보다. 나 또한 진작 말을 않더니, 물음에도 엉뚱하게 나를 타박하는 소리로 되돌아오니 발끈해 소리 높여 한마디를 더했다.
사라진 큰아이 대신 남은 둘째가 나의 성미를 받아준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심은 당연하다며 너는 절대 그러지 말라며 당부한다. 언니와의 실랑이와 나의 푸념까지 지켜본 둘째가 내 손을 꼭 잡고 한마디 한다. “에구, 엄마! 우리를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순간 머리를 무언가로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많이 사랑해주는’ 나의 마음이 부담이라는 말이었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사내아이 둘 뒤에 얻은 딸은 부모님에게 또 다른 기쁨이었다. 뒤이어 여동생 둘을 더 얻었지만, 나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아버지의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남매지간에도 편애로 받아들여 그들에게서 볼멘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셨다. 영민하고 총기 있다며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어 하셨다. 나 또한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은 당연하다 여겼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갈 때는 아침마다 나의 긴 머리카락과 씨름을 하셨다. 하지만 빗기고, 다듬어 묶기도 하고, 핀으로 고정해 주며 예쁘게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딸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당시에는 학교 교문까지 바래다주는 아버지들이 흔치 않았다. 아침마다 내 손을 잡고 교문까지 기쁘게 가시는 아버지와 달리 나는 부끄러웠다. 친구들이 쳐다보거나 놀리는 것이 싫어 아버지와 나란히 걷기를 피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아버지가 나의 일행이 아닌 듯 행동했다. 행동이 반복되자 어느 날 아버지가 물으셨다. 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철없는 딸의 말에 그 이후로 아버지와 함께 학교로 출근하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술을 드시고 오는 저녁엔 나를 붙들고 ‘아버지가 창피하냐?’며 섭섭한 속내를 드러내셨다. 그래도 오랫동안 지구가 나를 위해 돈다고 느낄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나를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웠다. 누구나 나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내 마음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도 당당했지만 다른 이의 마음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느꼈다.
그래서인지 결혼생활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갈릴레이의 말이 차가운 현실로 확인되었다. 서로 사랑해 결혼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적당한 사랑이 아니라 모든 것이어야 했고, 표현 또한 내가 원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행복보다는 구석구석에 불만과 불평이 도사리고 있었고 날마다 전쟁같이 보냈다.
찌그덕거리며 사는 딸이 위태로웠나 보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사랑은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더 잘 표현하는 법이다. 너는 우리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이젠 니가 니 남편에게 줘라.” 하셨다. 그랬다. 농사일에 바쁜 시어른 밑에서 자란 남편은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또 어렵사리 표현한 것도 낯간지럽다며 어색해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원하는 방식의 사랑이 표현되곤 했다.
받는데 익숙했던 나의 사랑은 남편에게 이어 아이들에게까지 주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 많이 준다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며, 때론 나를 약자의 자리에까지 내몰리게 했다. 그러다 지쳐서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오늘 나는 너무 많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큰아이와 감정이 부딪혔다. 마음은 생채기를 입고, 화나고 아프기도 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기술이며 그래서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했던가. 남편과 아이를 이해하고 더 많이 알면,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사랑해 줄 수 있을 주는 것이다.이 아닐까. 그래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가 보다. 하다.
“엄마 딸, 재미있게 잘 놀다 와. 아주 많이 사랑해 ♥♥♥♥♥” 긴 얘기 생략하고 하트 이모티콘으로 아이에게 마음을 전한다.
(14.5장)
사랑의 표현에 대하여 사유하게 하는 글이다. 사랑을 준다는 것,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사랑 받는 자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사랑해 주는 것”, 맞춤사랑이 필요하다는 주제를, 세 가지의 가족관계(아이들과 화자, 친정아버지와 화자, 남편과 화자)에서의 경험을 통해 무난히 이끌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주제의 호소력이 있다.
(5) id, superego, ego
“숙제했니?”
“무슨 숙제?”
“독사가 내준 숙제. 오늘 첫 시간이 독사 시간이야.”
“이번에도 숙제 안 해오면 각오하라고 했는데, ... ...”
“오늘도 학교 땡땡이치자”
두 친구는 공동묘지로 올라가서 묘와 묘 사이에 큰 대자로 누웠다 뒹굴다 하다가 도시락을 먹고 나른한 잠에 빠졌다. 꿈결인지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오싹한 느낌에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대낮에 우리가 잘못 들은 거야”라며 다시 잠을 청해 봐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귀는 바람 따라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다시 이상한 끙끙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후다닥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조심조심 가까이 가 보았다.
까만 염소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한 마리는 이미 세상에 나와서 미끈한 액체 주머니 같은 막에 싸여 있고, 이제 막 두 번째 새끼가 어미 염소의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어미 염소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하듯 휘잉~하는 바람 소리를 내더니 셋째 새끼를 낳았다. 어미 염소는 많이 지쳤으면서도 새끼 염소들의 액체 주머니 같은 미끌미끌한 막들을 혀로 핥아 내어 벗겨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새끼 염소들은 뒤뚱뒤뚱 걸음마를 하면서 어미 염소에게서 젖을 빨고 있었다.
두 친구는 각자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철딱서니가 없었고 형들의 구박에 반항심이 커졌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으니 학교에 다니는 것도 부모님과 형들의 눈이 무서워 겨우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장난치다 친구들과 싸움이 나면 선생님은 이유 불문하고 두 친구에게 벌을 주었다. 결국에는 학교에 낼 등록금을 가지고 서울로 가출해서 부모님과 선생님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이상의 글은 3인칭 주인공 시점임)
어느 날 막내 동생이 그날 공동묘지에서 어미 염소가 새끼 낳는 것을 보고 집에 와서 엄마 얼굴을 자세히 보았더니 온통 주름투성이더라고 하며 그 주름은 막내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에 울컥했다고 했었다. 그 후부터는 학교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이 단락의 내용은 간접화법에 의한 전달 방식임, 즉 전해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달하는 방식을 위하였다. 그런데 이 단락 앞의 두 친구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달하였을까?)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주일에 한편의 글쓰기 숙제는 나로서는 벅차다. 세 번 글쓰기 숙제를 못 내면 퇴출이다. 마감 임박한 날 새벽까지 제대로 써지지 않는 글을 펴 놓고 전전긍긍하다 보면 글쓰기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주변 이야기를 시답잖게 엮어내는 이것이 진정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내 글을 읽을 때마다 신변잡기 같아 남세스럽다. 앞으로 긴 시간 글쓰기 숙제할 때마다 겨우 맞추어 내야 하는 괴로움과 자괴지심(自愧之心)에 시달리지 말고 차라리 스스로 하차를 해 버릴까, 화두(話頭)에 빠졌다.
오래도록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가 가로 늦게 뒤늦게 긴장하며 한주한주를 긴장하며 채워 나가는 것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매년 초에 신문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면서 부러워한 적도 많았다. 어릴 때는 만화책을 못 보게 하는 부모님 몰래 만화책을 굴뚝 뒤에 숨겨 놓고 보고 보면서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면서 부모님 앞에서는 공부 하는 척하며 고 책 밑에 도화지를 숨겨 놓고 부모님이 보지 않으면 만화책 그림을 베끼기도 했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 글이 안 돼서 고민이라고 했다, 친구는 “안 되면 그만둬라 그 나이에 뭘 그렇게 고민을 쌓고 사느냐고, 이제 서서히 고민을 내려놓고 마무리 해가야 될 때”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한마디 “네가 좋아 시작한 글쓰기, 마무리도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한다.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라는 시가 생각난다. 산골 초가지붕에 박 넝쿨 올리고 들장미로 울타리 엮어 밤늦도록 별과 부엉이 우는 여우 나는 산골이야기에 삽살개가 달을 짖으면 여왕보다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여왕보다 시인에게 내 마음이 가는 걸 어찌하리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하여 비평수업을 들었다. 들을수록 환해지는 게 아니라 자우룩한 안개만 피워 올랐다. 얼마나 많은 시간 안개 속을 헤매고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할까 과연 빠져나올 수나 있을까. 철딱서니 없던 막내가 어미 염소의 출산을 보고 엄마의 주름살이 아들에게 시간을 기다려 주는 자양분이 되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하듯 내 글도 눈앞에 안개가 걷히는 날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물론 늪을 단단한 바닥으로 채우려면 읽고, 듣고, 쓰고, 보고 하는 고임돌의 숫자가 많이 필요하리라.
나는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아 화두(話頭)를 찾는 중이다.
이 작품에서는 핵심 화제인 글쓰기에서의 고뇌와 두 친구 이야기, 그리고 제목의 연결고리를 점검해 봐야 한다. 특히, 제목이 글의 내용 속에 용해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이드이고 에고이며 수퍼에고인가. 글쓰기에 대한 본능적 욕구와 그것의 표출 현상,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이상을 이렇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글 속에 그것이 암시라도 되어야 할 것이다.
(6)은교
영화 ‘은교’가 상당한 이슈를 제공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좀처럼 각본을 허락하지 않던 작가가 이번에는 선뜻 정지우 감독의 손을 들어 준 이유도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신인 배우인 김고은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영화 ‘은교’의 흥행 가도에 큰 공을 세웠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먼저 소설과 만났다. 소설은 특이한 시점으로 전개되어 일반적인 형식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변호사의 시점과 이적요의 시점 그리고 서지우의 시점을 통해 다각적으로 은교를 해부하고 있다. 은교는 이들 사이에서 현실과 과거의 공약수로 넘나들며 인물 간의 갈등을 유발시킨다. 은교는 한마디로 욕망의 불쏘시개로 등장인물들을 불행에 빠트리는 팜므파탈과 같은 존재였다.
변호사는 노트를 공개할 수 없어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서지우는 욕망을 이룬 댓가로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고, 이적요는 이루지 못한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고 만다. 서지우의 죽음은 자기 과실로 인한 사고사였지만 은교와의 정사로 인한 새벽의 참상이었고, 제자와 은교의 정사를 목격한 이적요는 무서운 음모를 꾸민 죄책감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소설에서의 결말은 오직 은교만이 홀로 남는다. 오로지 대상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은교’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각각의 시점에서 바라 본 관점과 인물이나 주인공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겠지만, 소설에서의 무게 비중은 이적요 시인에 있다. 은교는 시인의 감정과 욕망을 일깨우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중은 영화에서는 다소 달라지지만, 시인의 육체적 늙음과 풋풋한 아름다음을 지닌 관능에 대한 젊은 정신적 욕망의 대비가 소설의 중심 테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적요를 통해 ‘너의 젋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라고 말하며 젊음과 늙음의 단순한 이분법을 경계하고 있다.
이제 영화로 들어가 보자. 영화는 극 장르의 속성에 따라 화자 없이 장면을 보여주기에 관객은 제삼자적 입장에서 관찰할 뿐이다. 다만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에 따라 전체 줄거리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적요와 서지우의 각별하고도 특이한 사제 관계로 영화는 시작된다. 고요한 연못에 파문이 일 듯 은교의 등장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상투적인 삼각관계가 세 사람을 얽어 놓는다. 영화는 내내 이 얽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의 내밀한 욕망의 미세한 불꽃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인물 간의 관계를 얽어맨다. 사제 간의 관계가 연적으로 바뀌며 애증의 갈고리를 만들며 파국을 향해 달린다.
항간에 파다한 이적요와 서지우 그리고 은교의 성적 노출은 오히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영화 자체의 독자성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은교의 풋풋함이 아직은 이적요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매력적인 자태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이적요는 자신의 노출이 늙음의 아바타로 남기를 바라겠지만 그 또한 이야기 맥락에서 대사나 행동으로 우회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서지우의 노출은 비록 무리가 따르지는 않았지만 욕망의 충동적 행위를 마음껏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소설에서 드러난 내면적 갈등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많았다.
영화‘은교’ 제작사가 1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제작한 포스터 제목인 ‘욕망은 늙지 않는다.’가 영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 삶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본능과 성적인 욕망은 인간의 원초적 근원이다. 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저변의 잠재의식은 생명의 조건을 제공한다. 즉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적요를 죽게 만드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점점 사그라지는 자신의 원초적 욕망의 소진일 것이다. 은교를 내치는 순간 이적요는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리비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바로 존재감의 상실로 이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영화 ‘은교’는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능적 욕망을 마주하게 한다. 언어적 판단과 재단을 넘어서는 생의 원형으로의 욕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가치 판단도 더 이상 원형적 욕망을 난도질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이적요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욕망의 분출구가 질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주변의 의식이나 대상의 관계에 속박되지 않고 순수한 욕망의 추이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은 이야기나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를 통해 바라본 은교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 원초적 관능의 화신으로 꺼져가는 욕망의 불꽃을 피우는 생명의 도화선이며, 순수한 아름다움과 풋풋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의 원동력으로 우리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영화 감상문에 가깝다. 감상문으로서는 손색이 없고 매우 잘 쓰여진 글이다. 수필로 쓴 수필론이 시도되듯이 수필로 쓴 감상문도 가능할까? 이런 문제에 대해 다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7)홍삼
아내가 요즘 이상하다. 잔뜩 건강에 신경을 쓴다. 혹시나 명퇴를 앞두고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닐까. 사람이 어찌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삼십 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 두자니 자신이 퇴물이 되었다는 생각이라도 드는 것일까. 노는 것도 건강이 있어야만 가능하니 잘 놀기 위해 미리 워밍업을 해두자는 것일까. 아내가 전보다 달라진 게 분명하다.
‘홍삼골드’만 해도 그렇다. 황금빛 비닐 팩으로 된 이 세트가 어디서 났는지 말도 없이 부엌 구석에 숨긴 듯 모셔두고는 내게 마셔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혹 얻어 마실 기회가 있을까 하여 부엌을 기웃거려보지만 그런 때는 아내가 숫제 홍삼에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다 추리영화 장면처럼 배가 싹둑 잘린 텅 빈 비닐 팩을 싱크대에서 발견하면 허탈해진다. 정말 감쪽같다. 권하지 않는 물건을 취하는 건 신사의 양심과 법도에 어긋날뿐더러 훔쳐 먹는 것이 몸에 좋다는 확증도 없으니 아내의 아량을 기다릴 뿐이다.
사람이 꼭 음식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건 아니다. 새벽에 자주 아내가 침상에서 몸만 빠져나가 사라지곤 한다. 잠결에 아내 자리에 손을 뻗치면 온기와 공허라는 상반된 느낌에 당혹하게 된다. 혹 부엌에서 특식을 만드는가 싶어 귀를 기울이면 아무 기척이 없다. 이럴 때 방문을 열면 불길한 생각과 함께 거실의 어두움이 와락 엄습한다. 어디 갔을까 억측을 하며 다시 침상에 누워 뒤척이다 보면 아내는 러닝머신을 했다거나 목욕탕에 갔다거나 산에 갔었다며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다. 나도 데려가지 그랬느냐, 당신 혼자만 오래 살고 싶냐, 한마디쯤 잔소리를 할까 하다가 지레 안도감에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간 아내는 비타민을 배척해왔다. 아침에 내가 챙겨주면 손에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온갖 이유를 들어 잘도 회피한다. 미국 사는 딸이 귀국할 때마다 보따리로 안겨주며 잊지 말고 챙겨먹으라 신신당부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 그런 아내가 요즘 욕심을 내듯 영양제를 손수 챙겨 먹는다. 거기다 몸에 좋다는 육년 근 홍삼 추출액을 혼자 마시다니 이런 변화가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시중의 섬뜩한 속설이 갑자기 생각나기에 전후사정을 한번 따져 보는 것이다.
내가 홍삼에 연연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때 몸이 차서 한의원에 찾아갔더니 몸이 더워지고 체질이 좋아지도록 일정 기간 홍삼을 상복하라는 처방을 해주었다. 이년 여 홍삼 액을 꾸준히 마셨더니 큰 효과가 있었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여름엔 불편할 정도로 땀이 많았고, 겨울에도 종전보다 추위를 덜 타게 되었으며, 몸의 활력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홍삼의 약효가 떨어졌는지 최근 다시 몸이 차다는 느낌이 든다. 차제에 홍삼이라도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홍삼골드 세트가 눈에 띈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아내의 변신에 대한 답이 뚜렷이 나오지 않아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평소 아내의 반응으로 보아 필시 ‘내가 일찍 죽으면 다른 여자 좋은 일 시키려고?’라는 말이 나올 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전혀 달랐다.
“당신을 홀아비로 남겨 두고 불쌍해서 내가 어떻게 일찍 죽어요.”
얼마 전의 신체검사결과가 좋지 않아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우선 기초체력을 보강하라면서 홍삼 복용을 적극 권하더란다. 마침 이웃 사는 친구가 고맙게 홍삼 박스를 보내줘 부엌 구석에 던져놓고 몇 번 마셨노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당신을 홀아비로 남겨 두고 불쌍해서 내가 어떻게 일찍 죽어요.”
순간 그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해진다. 평소 내가 혼자 무얼 하는 모습이 얼마나 측은했으면 저런 소리를 할까. 언젠가도 비슷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저 갸륵한 마음 앞에 나도 홍삼 골드를 좀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기를 잘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즈음 내 몸이 차가운 것 같다며 아내가 홍삼을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는가. 약은 나누어 먹으면 효과가 없는 법이라며 이번에는 당신 혼자 마시라 했다. 그와 함께 나는 부엌 구석에 엉켜있는 홍삼 팩들을 상표가 바로 보이게 가지런히 세워 박스에 담아 식탁위에 올려주었다.
차가운 아내의 몸이 더워지면 생기가 돌고 건강해질 게 분명하다. 아내가 건강을 되찾으면 굳이 새벽에 나를 두고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산에도, 헬스장도 나와 같이 가려고 기다려줄 것이다. 내친 김에 혼자 새벽에 나가면 무섭지 않느냐, 혼자 하지 말고 나를 깨워 보디가드 삼아 데려가라고 했더니 꼭 마음에 맺힌 것이 있는 사람처럼 한마디 한다.
“수필인지 뭔지 쓴다고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는 겨우 새벽에야 코를 골며 곤히 자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깨워요!”
아내가 식탁의 저 홍삼 액을 부지런히 마셨으면 한다. 다음에는 내가 전문점에 직접 들러 더 좋은 제품을 구해서 아내의 건강을 챙겨줘야겠다. 나처럼 아내에게도 홍삼이 좋은 효험이 있었으면 한다. 아내의 신체검사 결과에 다시 눈길이 머문다. 어떻게 내가 내 몫만을 챙기고는 덮었던가. 부부의 건강은 두 사람이 함께 동시에 챙겨야만 할 대상이 아닌가. 구르는 두 바퀴가 함께 튼튼해야 수레도 아름다운 법이다. 홍삼은 작은 상징물에 불과하다. 저것은 아마도 우리부부가 함께 엮어가야 할 사랑과 건강한 삶의 노정에 각성제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13.7매)
문장이 매우 깔끔하게 정제되어 있는 작품이다. 최대한 단문을 구사하고, 관념적인 추상어나 난해한 어휘의 사용도 배제되어 있다. 그런 만큼 문장이 평이하고 소박하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도 자연스럽다. 오랜 문장 훈련에서 터득되는 산물이다.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아내가 혼자서 챙겨먹고 있는 홍삼과 혼자만 나서는 아내의 새벽 운동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펼치는 데서 작가의 내면심리가 진솔하고도 천진난만하게 잘 드러나 있다. 삶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흥미롭기도 하다. 읽어가는 과정에서 왜 흥미를 느끼게 되는가? 아내가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의 진실을 좇아가는 데서 흥미로움이 생성된다.
(8)나잇값
진찰을 받으려고 병원에 들렀다. 접수증을 유심히 보던 간호사가 물어왔다.
“아버님, 어디가 편찮으신 거에예요?”
헉! 숨이 막혔다. 아버님이라니? 아무리 적당한 호칭이 없기로서니 날 보고 아버님이라고 하잖는가. 왜 내가 아가씨의 아버님이냐며 따질 수도 없고…….
기분이 씁쓸했다. 묘한 느낌이 밀려왔다.
하기야 저들에게는 내가 늙은 것이었으리라.
우리는 젊음을 찬양하는 데에 무척 익숙해져 있다. 청춘이라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뛴다고 하지 않았는가. 동서고금을 통해 절대 권력을 가진 이들도 젊음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가. 싶다.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지만.
청춘이란 어느 기간을 이름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사무엘 울만은〈청춘〉이라는 시에서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주름지게 하지는 못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영원한 젊음을 예찬하는 것 자체가 늙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아름답고 활기차게 살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할 인생의 과제가 바로 늙음이다. 늙지 않는 기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는 세상을 살아온 햇수일 뿐이다. 를 알려 준다. 나이를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젊음이 지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늙음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늙음을 아예 지울 수는 없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주름진 곳을 펴고 비뚤어진 곳을 바로 세우면서……. 감출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다.
나이 든 사람은 혜안을 가져야 한다. 나이에 따른 가치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10대에는 10대의 얼굴이 있고, 40대에는 40대, 80대에는 80대에 맞는 얼굴이 있다. 80대에는 80대에 걸맞는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젊은이의 물리적인 힘만을 다시 갖기를 바라는 것이 나이든 이의 바람이라면 그것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얼굴에는 젊음의 풋풋함이 아니라 노욕의 주름살만 나타난다. 우리의 얼굴에는 인생이 진솔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얼굴은 잘 가꾼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 같은 또래의 나이에 비해 다소 젊어 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주어진 나이를 받아들이면서 즐기는 삶이 좋다. 젊음을 묶어두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늙음은 그 자체로 허무이지만 먹은 나이는 절대 되물리거나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내 신입 때에 ‘인생은 오십부터’라며 운동과 취미를 새로 찾는 선배를 보고 속으로 웃은 적이 있다. 내가 그 나이가 되자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육십이 되면 인생 또한 그때부터일 것이다. 팔십도 그렇고 구십도 그렇고.
나무의 생명 연장은 낙엽과 씨앗에 감추어져 있다. 젊음이 늙음을 통해 존속하는 가시적 풍경이다. 젊은이로 하여금 생명의 영원한 푸르름에 대해 꿈꾸게 하는 노인이어야 나잇값을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고 해서 인생의 빛도 바랜 가엾은 존재가 아니다.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은 지나온 삶의 흔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의 지표다. 청춘은 자신을 위한 꿈을 꾸지만 노인은 젊은이를 위한 꿈을 꾸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인이 꾸는 꿈은 자기가 다시 젊어지는 꿈이 아니라 젊은이가 늙음에 순응하며 늙음에 감사하게 하는 꿈이다. 젊어서 꾸는 꿈이 더 가지려는 꿈이라면 늙으면서 꾸는 꿈은 내려놓는 꿈이라야 한다.
병원에서 나와 친구 녀석의 집으로 향했다. 당번에 걸렸다며 지난 번 정례모임에 참석 않은 손주바보다. 놀이터 벤치에서 깔깔거리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손녀의 순진한 몸동작에 장단을 맞추며 노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천진스러우면서도 여유있는 느긋함과 평온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어릴 적에 가지고 있다가 잃어 버렸던 본래의 그 모습이었다. 해질 때가 다 되었는데 친구는 그런 방식으로 그렇게 제 나잇값을 하고 있었다.(11.3)
늙어가는 사람들을 향한 삶의 경종이다. 육체적으로 젊음을 지키려 하지 말고 늙음을 인정하면서 나이에 걸맞는 지혜와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늙어가는 이가 지녀야 할 자세를 삶의 아포리즘으로 승화시키려 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좀더 체계적이 정리가 필요하다. 즉, “젊은이로 하여금 생명의 영원한 푸르름에 대해 꿈꾸게 하는 노인”, “젊은이를 위한 꿈을 꾸는 지혜”, “늙음에 감사하게 하는 꿈” 등의 아포리즘들을 일관성 있게 체계화하고 그 의미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어 줄 필요가 있다.
(9)뱁새의 다리
초중등학교 시절 나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시골학교에서 그다지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악대부 악장까지 했다. 공부 잘하고 악기도 꽤 다루니 어지간한 단점들도 다 묻혀 넘어갔다. 부모님과 마을 사람, 선생님과 친구들도 나를 괄시하지 않았다. 마치 남과 구분되는 별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 ‘나는 특별하다.’ 이런 망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자존감을 가지게 하여 보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독이 되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느끼게 된다.
평소에 머리만 믿고 공부하지 않았다. 초중등학교 시절 집에서 공부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사실 집에서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조부모와 삼대에 걸쳐 열 식구가 사는 시골집에 나를 위한 공부 공간이 별도로 없었다. 그리고 공부의 필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습관은 대학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간고사나 기말시험 이틀 전부터 벼락치기 공부로 임기응변식으로 넘겼다.
군에 가서야 신은 공평하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학교 다닐 때 악대부 경력 탓에 군악대에 근무하게 배치되었다. 군악대에는 음대 출신부터 야간 업소 악기연주자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군악대 내 동기생 중에 그 당시 몇 조항이 안 되는 전투수칙을 외울 수 없는 친구가 있었다. 신병 훈련을 받으면서 그 친구로 인해 단체 기합을 많이 받아 그의 둔한 머리를 내심 원망하며 비웃었다. 그런 친구가 악기 연습 시에는 길게 편곡된 악보를 간단하게 외웠다. 나는 며칠이 걸려야 할 것을 그는 몇 시간 안에 해치웠다. 더군다나 연주 실력은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는 내로라하는 음대 출신자를 제치고 한 번 들은 음악을 바로 오선지에 옮기는 놀라운 편곡 실력을 뽐냈으면 거의 모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분야에 따라 천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내게 책 한 권을 주었다. 책을 펼치니 질 좋은 종이에 컬러로 인쇄되어있고 참으로 신기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깨동무’라는 잡지였다. 이 책은 나를 신세계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교과서 외에 다른 서적을 접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 책의 구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의 실망감이 너무 커서 나는 그 이후로는 독서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 일은 트라우마가 되어 대한민국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는 삼국지조차 읽지 않았다.
철없던 시절에 어른 흉내 낸다고 캑캑거리면서 배운 담배는 나이 오십이 된 나를 육십 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중학교 졸업 후 30년 만에 동기회에서 만난 내 친구는 나를 우리 아버지인 줄로 착각했다고 빈정거렸다. 지천명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그냥 흘려버린 세월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그때까지 허비한 삶을 만회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이 금연이었다. 금연을 실천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새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삼십 년 넘게 줄기차게 피워온 담배를 한순간에 끊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의 지인들에게 나의 결심을 선언하고 금연을 시작하였다. ‘주저 없이 단칼에’ 이것만이 금연의 정도라 믿었기에 나는 금연 선언 후 한 모금의 담배 연기도 마시지 않았다. 고난의 날이 계속되었다. 안절부절 못하다는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약간 흘러 금연은 성공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끽연의 긴 역사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간단하게 덮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바깥에 나가기가 싫었다. 자꾸 눕고 싶었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유년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초⋅중등학교 시절 은사님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모든 것이 서러웠다. 집안에 있으면 너무 초조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도 자꾸 움츠러들기에 사람들을 피하였다. 무슨 사고라도 나서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망상을 자주하게 되고 그러기를 은연중에 바랐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금단 현상이 우울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럴 즈음에 시골중학교 총동창회 홈페이지가 개설되었다.
우울증증상 중의 하나인 과거회귀기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옛 친구와 안면이 있었던 선후배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고 위안이었다. 더군다나 그 사람들과는 고향이라는 공동의 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더욱 즐거웠다. 병으로 생겨난 감수성이 더욱 나를 부추겼다. 홈피홈페이지에 유년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어릴 적 추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나면서 많은 동문들이 나의 기억력에 찬사를 보냈다. 나름 인기작가가 되었다. 또다시 자만심이라는 옛 망령이 도졌다. 어느 날 교수 한 분이 내 글을 보고 글쓰기 모임을 추천하였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다. 깊이 사유하고 그 사유의 열매를 창고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하나둘씩 끄집어내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내 삶은 도덕군자도 아니었고 온갖 풍상을 이겨낸 교훈적 삶도 아니다. 자양분이 없는 내 사유의 깊이는 세숫대야 물과 같고 넓이는 허리띠 폭과 같다. 내 잘난 맛에 살아온 삶은 생각의 울타리를 만들었고 그 울타리에 갇혀 지냈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멀리한 죗값은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습득한 얕은 지식은 글의 무게를 오리 깃털처럼 가볍게 하고, 토끼 꼬리 같이 짧은 어휘력은 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
백로 노는 곳에 까마귀가 뛰어들어 ‘미운오리새끼’가 되었다.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라 천방지축으로 쓰는 글이 한심해서 교수가 추천한 것임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뱁새가 황새걸음 흉내 낸다고 정신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황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뱁새로 태어났다. 그리고 자만이 뱁새 다리를 더 짧게 만들었다. 오늘도 마감 날에 그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허둥대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백로 노는 곳을 떠나는 것이 분수를 아는 길인데 아직도 오만의 깊은 늪에서 뱁새 다리로 허우적거리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드러낸 작품이다. 사회, 문화, 역사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자아를 ‘정체성’이라 한다면, 여기서 작가의 자아는 존재적 우월성(자만심)에 빠져있다가 존재의 범상함을 깨달아갔고, 나아가서는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천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끝까지 추락시켰다. 자신을 한껏 낮추는 반성적 자기성찰 속에 겸손함과 진솔성이 배어나 있다. 마조히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겸손하게 인식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인식하고 확인하는 것과 통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한껏 낮추는 용기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으로써, 이 글에서는 작가의 존재적 건강성으로 읽혀진다.
(10) 파레토의 법칙과 삶
크고 튼실하게 생긴 개미 한 마리가 호랑나비의 한 쪽 날개를 물고 들고 제법 성큼성큼 걸어간다. 나비는 저보다 훨씬 작은 기만 한 놈에게 속절없이 끌려간다. 개미는 잠시도 쉬지않고 내가 들여다보는 것엔 개의치 않고 전진한다. 일개미 녀석은 저 결혼비행을 마친 일개미가 호랑나비의 날개로 결혼비행을 마치자말자 왕국을 꾸려 가야할 책무를 한 몸에 무겁게 짊어진 젊은 여왕개미의 방이라도 가볍고 화사하게 꾸며 주려는 걸까.
어느 날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인 파레토가 땅을 보며 개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개미들은 무척 부지런히 일을 하는 듯 했으나 자세히 보니 열심히 일하지 않는 개미가 하나 둘 씩 눈에 띄었다. 더 자세히 살폈더니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개미의 숫자가 80퍼센트 정도로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20퍼센트의 열심히 일하는 개미 중 한 녀석과 조우한 것일 터이다. 80대 20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법칙을 파레토는 고작 2할의 사람이 부의 8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경제적 불균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이 룰 법칙은 개인의 인생살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기사를 보았다. 기자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5분의 1에 시간과 에너지의 5분의 4를 쏟는 자세가 필요하리라고 했다. 공감이 갔다. 내 인생에서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중요한 일과 앞으로 열중해야 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결혼한 지 1여년이 지날 무렵, 딸아이를 낳았다. 저는 세상에 나온 것이 처음, 나는 엄마 노릇이 처음이었다. 직업을 가지고 있어 낮 동안은 시어머니께서 돌 봐 주셔서 더 서툰 엄마 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를 기른다.’는 서정주 시인의 시 구절처럼 귀중히 기르려 애썼다.
직장에서 연수를 받을 때였다. 책을 펴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이는 그 위에 주저앉아 방글거리며 저랑 같이 놀자고 나를 꾀었다. 잠들기 전까지, 그림으로만 그려진「아기 곰 푸우」를 펼쳐 놓고 ‘푸우’가 왜 풍선을 잡고 있는지 꿀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 지 묻고 또 물었다. 그가 온 몸에 꿀을 뒤집어썼을 땐 무슨 말을 했을까 하며 궁금해 하기도 했다.
평가를 받던 첫 날, 준비를 못해 답답한 마음에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학창시절에는 마음먹은 일조차 없는 부정행위까지 꾀해 보았다. 끝내 감독관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시험을 치는 기간 내내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를 중지하거나 동화책을 함께 보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연수 성적 보단 아이와가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더 소중했으므로. 조금 더 커 스스로 깨우치게 되면 내가 가르쳐 준다고 해도 아이가 싫다면서 도리질 칠 때가 오지 않겠는가. 지금 돌이켜 봐도 아이에게 ‘엄마’란 존재가 꼭 필요한 시기에 어미의 몫을 제대로 해 내려고 노력한 것이 연수 성적에 연연해하는 것보단 나았다 여겨진다. 아직 내 인생이 덜 쓸쓸한 것은 아이 덕분인 듯하다. 딸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다. 하지만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그리고 거실의 소파에 드러눕는다. 먹을 것도 찾는다. 나는, 혼자 객지에서 사는 일이 어디 녹록한 일이랴 싶어 마실 물까지 챙겨주며 장단을 맞춰준다. 아이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평소와는 달리 쓸고 닦고, 없는 솜씨이지만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며 부산을 떤다. ‘생파’, ‘생선’, ‘문상’ 같은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줄임말을 이미 알고 있으나, 딸아이 입을 통하면 어쩐지 처음 듣는 말인양 새롭고 재미있어 웃기 바빠진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아끼는 나 자신과 남편.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굳건한 버팀목이 되는 부모와 형제. 친구, 이웃, 동료들. 그들과 함께 살아 온 일 역시 소중한 것이었다.
버나드 쇼가 남긴 묘비명에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적혀있다 하던든가. 그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극의 형식으로 각색한「성녀 조앤」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 되었지만 거부했다고 전한다. 그는 극작가였을 뿐 아니라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웅변가, 화가로도 활약한 다재다능한 석학이었다. 20세기의 뛰어난 지성 중 1명으로 불리는 그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졌던 것일까. 그는 거의 한 세기란 긴 세월을 살았다. 우물쭈물하기는커녕 더할 수 없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다 저 세상으로 떠난 것 같건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 말이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라고 풀이한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소중한 일은 여전히 가족과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과 수필집을 더도 말고 딱 1권을 내는 일이 될 것 같다. 나 아닌 타인을 아끼며 살아가는 일. 싱싱한 나무 여러 그루를 잘라내는 것이 염치없는 노릇이 되지 않게 작지만 정성들여 쓴 내 책을 갖는 일. 그 일들은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조금 살맛나게 해 주리라. 그리고 평생 책을 읽어 작가들이 공들여 수확한 멋진 생각들을 힘들이지 않고 같이 거둘 것이다. 나를 백지 위에 풀어 놓는 일도 계속 할 것이다. 그것은 나의 남은 인생을 나비의 날개같이 가볍고 화사하게 만들어 줄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일 터이리라.
머리를 싸매고 묘비명을 생각해야 할 수고를 덜어줄 요량인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겠다 한다. 어차피 죽은 사람의 뒷수습은 산 자의 몫일 터이니 별 불만이 없다. 필시 내 죽음 뒤에 나라는 인간이 그럭저럭 살다 어느 날 흔적 없이 스러져 갔다는 말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버나드 쇼처럼 인류의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이의 마지막 남긴 말이 이럴진대 지극히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의 삶이야 더 말 해 무엇하겠는가. 그래도 인생의 소중한 일들이 내 곁에 있어 함께 하니 다행 아니랴 싶어진다.
‘개미-파레토의 법칙-삶에서의 파레토 법칙-자신의 삶에 그 법칙을 적용하여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순서로 사색을 전개시켜 나갔다. 가족 사랑, 수필 쓰기에 집중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데에 파레토의 법칙을 끌여들였다. 그만큼 다짐이 절실하고 대단하다는 말이겠다. 버나드 쇼에 대한 소개는 사족이다.
(11)차 안에서 만난 작은 스승
시골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랐다. 처음 가는 낯선 길이다. 투병중이시던 친구의 아버지께서 이제 갓 예순을 넘긴 채 돌아가셨다기에 문상 길에 나선 것이다. 마침 비어있는 한 자리가 보여 얼른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행색이 초라하고 어딘지 조금 어설퍼 부족해 보이는 듯한 야윈 아주머니 한 분이 말없이 창밖만 을 내다보고 있었다. 본다.
편한 자세로 고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요상한 냄새가 코끝을 계속 자극하여 신경이 온통 코에 머문다. 코는 무딘 편이라니 냄새에 곧 익숙해지리라 생각하고 참고 있지만 한번 신경 쓰인 냄새는 몸까지 움츠러지게 한다. 불쾌한 냄새가 몸 안으로 침투할까 봐 얕은 숨만 쉬고 있다. 냄새의 원인이 무엇인지 소리가 나지 않게 들숨을 천천히 들이켜 본다. 드디어 찾았다. 바로 옆자리 아주머니의 온 몸에서 풍기는 냄새다. 자주 씻지 않은 걸까? 냄새의 많은 부분은 지릿하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요실금이 있는 지도 모른다. 복도 쪽으로 최대한 밀어 앉으며 냄새와 싸운다. 어디든지 빈자리가 나면 얼른 자리를 바꾸리라 생각하며 눈에 힘을 주고 앞뒤좌우로 고개가를 연신 돌아간다. 돌려본다.
갑자기 들려오는 맑은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앞자리에서 자고 있던 어린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 뒤로 돌아보며 옆자리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앙증스런 손을 내밀고 까르르 즐거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살짝 웃음을 보이자 또다시 깔깔거린다. 그때 부시럭 부시럭 소리를 내며 아주머니가 발아래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귤1개를 꺼내든다. 껍질을 까서 아이에게 주며 1개를 더 꺼내서 자신도 맛있게 까먹는다. 아주머니는 남은 귤을 소리 내어 세어보더니 혼자 중얼거린다.
“맞네! ○○ 하나주고, ○○하나주고, 또 ○○ 것, ○○ 것, 딱 맞네. 히히~.”
어느 새, 아이와 아주머니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손가락 끝을 서로 대어도 본다. 서로 쳐다보고 밝게 웃기도 한다. 서로에게 행복한 존재가 되어있다. 두 사람의 천진스러움에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잠시 냄새를 잊은 채 그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되었다. 차 안에는 서 있는 사람이 하나 둘 없어지고 이젠 빈자리가 여러 군데 생겼다. 가방을 들고 빈자리로 향해 가려던 나는 문득 나의 행동이 아주머니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 깊숙이 밀어 넣고 자리에 앉고 말았다. 자리를 옮겨 앉는 걸 포기했다.
“아주머니 ○○병원에 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 하죠?”
나의 질문에 뭐라고 설명을 하자 뒤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그 곳이 아니고 좀 더 가야한다며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단다. 잠시 후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며 빠이빠이를 한다. 내리는 곳을 살펴보니 차창 밖으로 조금 전에 아주머니가 설명했던 말했던 건물들이 보인다. 이 분은 자기가 내릴 곳을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자기가 타고 내리는 곳만 확실하게 알고 있을 것만 같다.
아주머니가 내린 후, 금방 친해진 두 사람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아이가 그 아주머니에게 낯설어하지 않고 다가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와 곧 친해진 건 어디서 온 걸까? 나도 방긋 웃어주고 했건만 아이는 그 아주머니를 더 좋아하지 않았던가. 했다. 냄새 때문에 가 나서 내가 옆에서 도망가려 했던 그 아주머니를 아이는 더 좋아했다. 두 사람은 영혼이 맑아서 서로 통했을까? 애초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사람과 사람의 순수한 만남이 이런 것일까. 생각이 영혼까지 이르자 이 작은 아이보다 하나도 나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 졌다. 자신이 갑자기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의 허영의 껍질과 스스로 옭아 맨 굴레를 맑은 영혼들에게 들킨 것 같아서 그 날은 초라하고 작아진 나의 모습에 문상 가는 배경도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차창 밖 저녁노을이 퇴색된 수채화처럼 흐릿하다.
행색이 초라하고 악취 풍기는 옆자리의 아주머니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고 싶었던 작가와는 달리, 낯선이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쉽게 다가서는, 즉 존재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어린 아이를 통해 자신의 “허영”(? 고정관념? 선입견? 우월주의? )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타자와의 이질성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수필쓰기의 한 방법이다. 타자인 아이의 상징성과 자신의 속성을 더 따져보고 대립시켜야 공감을 줄 수 있다.
(12) 산회散懷
콩나물 국밥집 얘기는 직원의 추천으로 자주 들었다. 일찍이 가보지 못한 것은 게으른 탓도 있지만 혼자서 간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야 고산골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짐에 따라 자연히 국밥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식당은 새벽인데도 만원이었다. 밖에 놓인 간이의자에서 잠시 기다려야만 했다. 담배연기가 역겨워 이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질그릇 사발에 밥 한 덩이, 그 위에 탱탱한 콩나물을 소복하게 얹고 정성스럽게 우려낸 정갈한 국물을 두어 국자 반을 부어준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찬으로는 잘게 썬 깍두기와 양파 조금이 전부다. 간결하고 소박한 차림이다. 일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아침상에 놓인 반찬을 보고 ‘아빠 오늘 아침 상이 참 소박하네.’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허허 하고 웃음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려 진다.
몇 번이고 먹는 것이지만 국밥 맛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그 맛이다. 이마 이것이 주인이 맛을 내는 비결이다. 국밥 한 그릇이 천오백 원이다. 요즘 식당 음식 메뉴와 가격을 대비해서는 쉽게 수긍이 안 가는 가격이다. 여기서 가격을 갖고 싸니 비싸니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맛에 대한 상대 가격이 아니라 일품을 알아주는 절대 가격을 말하고자 함이다. 주인은 맛에 승부를 건다. 내가 느끼는 맛도 단연 일품이다. 둘이나 셋이 올 때는 여기서 고등어구이 하나를 더 시키면 입맛은 한층 즐거워진다. 가격이 싸니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것도 이 집만의 특색이다.
가득한 손님들로 식당 안은 떠들썩 웃는 소리와 잡담들로 부산하다. 눈살 찌푸린 광경도 간간히 보이고 옆에서는 가족끼리 온 듯한 어린 눈망울들의 반짝임도 보인다. 이때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세어가며 먹다가 뉴스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마침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어깨가 돌같이 무거워졌다. 구석자리, 혼자서 비친 거울을 보니 맥없는 사슴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동안 멍하게 바깥 햇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질구레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어떠한 유혹에도 휩쓸리지 않으며 당당하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산다면야 비록 당장에 죽는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이완’을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콩나물 국밥집 이야기에서 이 단락의 내용이 어떻게 연상되었는지---. 단락과 단락의 연결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 단락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다.
세월의 탓일까. 나는, 요즘 단출한 밥상을 좋아한다. 더불어 맛 난 차 한 잔만 곁들여 진다면야…. 산해진미의 음식은 먹을 때는 좋지만 그 후가 별로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은 간사하다. 콩나물 국밥이 내 입에 길들여 질 때까지는 시간이 흘려야 되겠지만 이 담담하고 밋밋한 맛은 잊을 수 없다. 고깃국이 아니더라도 이것으로 몸과 마음까지 편안해 질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다. 사리사욕에 밝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입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때로는 욕망에 어두워 국밥의 밥알이 모래알 같더라도 묵묵히 먹을 것이며, 너무 맛있다고 두 그릇도 먹지는 말 것이다. 콩나물 국밥은 단순한 끼니로서 배만 채우는 것뿐 아니라 그 속에서 삶의 순박한 질곡도 들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혼자서도 찾아간다. 검소함은 항상 부자라고 했던가.
앉아서 유목(遊牧)하기를 시작한다.
‘눈썹과 이마 사이가 맑고 훤한 얼굴에, 잔잔한 물과 먼 산의 기운을 띠고 있는 사람. 고아한 그런 사람과 만나 인생의 운치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고 한 이덕무를 생각하며 그의 글 ‘단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을 읊어본다. 또한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겁니다.’라고 운명과 현실의 어려움에 대해 당당한 자세로 마주하려는 기개를 외쳤던 허균도 떠올려 본다. 누워서 그의 누실명(陋室銘)을 읽으며 천장에 생각의 그림을 그리며 즐긴다. 맹자의 ‘고자장구(告子章句)’를 하루 한 번씩 읽으며 황병기의 가야금 ‘침향무’를 듣고서 연주자의 그 기품에서 마음을 다스린다. 빛이 문틈으로 세어 들어오는 창가에서 차 한 잔을 우려 낼 때면 민노자(閔老子)와 장대(張岱)의 만남을 연상한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의 차에 대한 승벽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항상 차를 마실 때 품는 기분이다. 일기일회처럼.
앞산 순환도로 끝자락을 막 돌려고 할 때 달비골 위로 떤 달이 터널위로 환하게 비쳤다. 여느 때와는 달리 달에서 풍겨지는 느낌이 달랐다. 슬프고 스산한 분위기다. 얼른 음력 날짜를 떠 올려보니 구월 십구일이다. 기우는 달빛이다. 차오르는 구월 보름달은 팔월 보름 못지않게 후덕하고 정갈하다. 달비 계곡의 달 감상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참 아름다운 장소다. 그것도 상강절, 구월달이 그렇다. 그런데 오늘 저녁달은 그렇지가 않다. 수없이 다가갔던 그 골짜기, 나무와 돌 , 호수는 변함없이 언제나 그대로 있는데 이 심사만 편안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차를 세워놓고 물속으로 잠긴 기운 달을 보며 내기를 한다. 이 밤, 네가 내 마음을 알아내면 막걸리 두 잔, 내가 너를 희롱하면 한 잔. 달은 점점 오른쪽으로 다가선다. 술잔이 열두어 잔이 넘어서자 찬 공기가 방해를 한다. 윗옷 자락이 제법 눅눅하다.
불타는 금요일, 아파트 사이 주막집에서 내기 술을 다 마셨다. 눈알이 발그스름하다. ‘죽음을 따르는 것이 취함(醉)이요, 삶에 속하는 것이 술 깸(醒)인 것이다.’라고 한 연암의 술에 대한 해학을 되새기면서 집으로 향한다. 내가 달을 보고 웃는데 저도 구름 속으로 들어가 풀린 눈으로 희미하게 나를 비춘다.
세간의 어지러운 소식들을 접하면서 굴원(屈原)이 생각난다. 언론, 정보기관, 권력자에게 맘 터놓고 얘기 할 그 한 사람이. 산회실(散懷室)에서 품었던 것을 모두 내려놓는다.
전체가 난해하다. 몇 가지 이야기들이 집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콩나물 국밥이야기, 고아한 사람이야기, 달 이야기 등을 전체로 통합하는 논리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 연결고리를 숨긴다 하더라도, 그 파편들은 깨어진 거울과 같아야 통일성있는 전체를 형성할 수 있다. 평이하지 못한 용어도 문제다. 수필은 평이한 문장, 소박한 문장으로 쓰여져야 독자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13) 내 사전에 없는 단어
경제면을 훑는다. 적금을 들려는데 눈 품이라도 팔면 한 푼이라도 더 얹어주는 곳이 있나 해서다. 삼 퍼센트의 저금리 시대다. 백 세 시대에 대비하려면 목돈이 몇억이 있어야 한다는 둥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는 둥 세간의 엄포에 그들이 제시하는 금액의 절반도 없는 나는 주눅이 든다. 내 집 마련하랴 아이들 교육하랴 빚 얻어 헐떡이며 살 때는 두 자릿수의 고금리로 구렁이 알 같은 내 돈을 모조리 거둬가더니 이제 가장의 은퇴 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그사이 모아둔 변변찮은 돈을 한 푼이라도 불려볼까 하니 저금리 시대다. 경제에 밝아서 일찍부터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부(富)를 축적한 수완 좋은 부인을 둔 친구도 많은데 세상살이에 숙맥인 나를 만난 남편에게 미안하다.
적립식 펀드에 가입한 것이 삼 년 전이다. 일본의 자연재해로 경쟁상대에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한 주식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은근히 구미가 당겼지만 아무런 정보도, 경험도 없는 내가 직접 나서기에는 두려웠다. 밤낮 주식만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펀드기금이나 거대공룡 외국인과의 싸움판에 들러리만 서다가 대단한 액수는 아니지만, 원금마저 빼앗길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은행 벽면에 걸린 대문짝만한 ㅇㅇ 펀드 광고전단이 눈을 끌었다. 창구 직원에게 넌지시 관심을 보였더니 지난해 운용 실적이 1등이라며 자신 있게 권유하는 것이었다. 직접 주식을 사기도 두렵고 정기적금의 금리는 너무 낮아서 고민하던 차에 나는 창구직원의 권유를 덥석 받아들였다.
돋보기를 준비하지 않은 나를 위해 직원은 밑줄을 그어가며 빠른 속도로 조항을 읽어내려갔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금손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항목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월 적립식은 주식이 떨어진다 해도 싼값에 사게 되니 오히려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부연 설명이 따라왔다. 게다가 지난해 국내에서 운용되는 펀드 중에 1등을 차지한 우등생이라지 않은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나같이 경제에는 젬병인 사람까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인구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고맙기까지 해서 은행원이 조항을 읽어 내려가다가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일 때마다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직원의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는 항목에 흔쾌히 사인했다. 통장을 들고 은행을 나서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5개월이 지날 무렵 은행에 들른 참에 확인해보았더니 두 자릿수의 수익이 올라왔다. 횡재다. 펀드를 권유했던 은행원의 축하인사까지 받고 보니 벌써 고율의 수익을 손에 쥔 듯 뿌듯했다.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집어드는 손이 너그러워졌다. 역시나 전문가에게 맡기기를 잘했다 싶다. 날짜만 되면 자동으로 계좌 이체되는 펀드 통장은 일일이 들여다보고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다. 전문가가 어련히 알아서 하랴 싶어서 내 관심은 서서히 멀어졌다. 국제정세는 매일 오락가락 이고 가끔 뉴스에서 보는 주식시세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불안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 다행이다 싶어서 안도했다. 그들 말처럼 오르면 올라서 좋고 내리면 싼 값으로 샀을 것이니 염려할 일도 아니었다.
만기가 되었다는 문자가 은행에서 왔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은행으로 갔다. 아뿔싸! 삼 년간 쌓은 수익률이 마이너스 십오 퍼센트란다. 당황스러웠다. 주식시세가 나쁘다고 해도 분산투자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기업과 세계 경제를 밤낮 연구하는 엘리트 집단 전문가가 관리한 일인데 고객에게 이런 성적표를 내놓다니. 세계정세를 손금 읽듯 읽는다는 전문가라면서 그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오를 때 팔아서 내렸을 때 싼값으로 사지 않고 무얼 했는가 싶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하는 수없이 지수가 오를 때까지 묶어두기로 했다. 그날부터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주식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자금이 신흥국 시장을 떠나 우리나라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연속 사십여 일을 순매수한 덕택에 두 달여 동안 지수가 이백이나 올랐다 한다. 기대를 갖고 다시 창구를 찾았다. 마이너스 구퍼센트다. 내릴 땐 그렇게 곤두박질치더니 오를 땐 언덕길 올라가는 짐수레다. 맹목적 신뢰를 보냈던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허술한 그룹인가. 맥이 풀린다. 중간에 두 자릿수의 수익이 났을 때 환매했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친 내가 한심하다. 대문짝만하게 광고하고 팔 때와는 달리 은행창구의 직원은 유독 내가 가진 펀드의 수익률이 낮다고 나무라듯 한다.
외국인의 매수로 단기간에 너무 올랐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기관에서도 연일 순매도다. 외국인들이 돌아서는 날 다시 지수가 꺾일 수 있다는 방송 애널리스트의 의견이 조심스럽다. 수년 전 반 토막 난 펀드로 황망해하는 지인들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 모 기업의 회사채권을 샀던 사람들은 원금을 통째로 날릴 판이라는데 이만하기 다행 아닌가. 욕심이 언제나 화근이지. 스스로 위로한다.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했을 때 환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고수익이라니. 내 사전에 그런 단어가 있었다면 진작 부자가 되었지 이리 살겠는가. 13.2
적립식 펀드 구매로 수익을 올려 보려던 기대감이 무너져 원금까지 손해를 보게 된 상황을 제재로 삼아, “욕심이 화근”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데에 이르렀다. 글의 전반에서 소박한 서민성을 느낄 수 있다. 문장의 호흡이 매우 긴 것들이 다소 많지만, 평이한 문장인지라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14) 위기 앞에서
죽 한술을 삼키기가 겁이 난다. 또 아프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가 아예 입을 봉하고 싶게 만든다. 한 달 가까이 신경성 위염에 시달리고 있다. 별일 아닌 것에 마음이 쓰여 몇 달간 (목적어는?) 놓지 못하고 밤잠을 설친 탓인지 이렇게 탈을 내고 말았다. 살면서 위장병 한두 번 겪지 않기야 했을까만 이번 아픔은 달랐다. 며칠 죽으로 달래고 약으로 진정시키면 왠만한 웬만한 건 다 나았는데 이 통증은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괜찮은가 싶어 밥을 먹으면 여지없이 싸아한 쓰라림이 몰려온다.
첫 발병 때 의사들은 쉽게 낫지 않으니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미리 조심을 시켰었다. 하지만 건강체질인지라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며칠 약을 먹고는 정상 식이에 들어가 버렸다. 이틀을 못 견디고 극심한 통증으로 뒹굴었다. 물조차 마시기 조심스러운 상황을 견딘 지 나흘 만에 체력의 고갈로 또다시 음식을 넘봤다. 무르고 부드러운 걸로 선택했으니 괜찮을 거라는 자만이 회초리를 맞았다.
위장은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수액을 맞으며 모든 걸 다 포기해야 했다. 해야 될 일도 잡아놓은 여행계획도 집안 대소사 행사참여도 모두 멀리 밀어놔야 했다. 속상하고 조바심 나서 이번에는 마음이 들끓었다. 찔끔대는 눈물 속에 가을 단풍이 젖어 내렸고 탄력 잃은 피부에 줄지을 주름이 약이 올랐다. 그런 게 속상한 명단에 드는 걸 보니 아직 살만한가보다는 가족들의 빈정거림이 거슬린다.
살금살금 일어나 끓여놓은 양배추 죽을 한 술 떠 넣는다. 딸아이가 인터넷을 뒤져 위장에 좋다는 음식으로 만들어 두고 간 것이다. 위장이 바로 발끈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서너 숫가락 이상을 넣지 않는다. 물을 데워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시고 가만히 들어와 눕는다. 아프지 않은 게 감사하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나지 않는다. 나들이 가자는 전화를 거절하고 나도 하나도 속상하지 않다. 그저 편안한 것만이 정말 다행스럽고 좋다.
그 와중에 동생의 와병소식이 건너온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니 심상찮은 기미가 보인다며 여러 가지 검사를 권유한다. 뭐든지 다 해 달라 해놓고 지켜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간다. 결국, 서울 큰 병원 예약을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병명은 짐작까지만 얘기하고 확진은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하고 난 후에 하겠다고 미룬다. 망연자실한 가족들 틈에서 나는 또다시 사정없이 뿜어져 나오는 위산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통증을 느낀다.
집안 걱정, 직장 걱정, 사회생활 걱정까지 하며 교대로 들락 이던 피붙이들은 모두 하나 되어 움직인다. 자신들의 일상은 접어 뒤로 밀어낸다. 보호자까지도 혼자 있는 게 두려운 상황이다. 환자 상태에 대해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누구 하나 지겨워하지 않는다. 만나면 하고 듣던 누가 성공하고 누가 잘났는지의 이야기는 그림자조차 없다. 부족함으로 주눅이들던 얼굴도 차라리 생기가 돈다. 아무리 부족해도 고통스러운 병마에 시달리지 않음이 감사 하리라.
이런저런 불만으로 자신을 볶아대던 나 역시 기본으로 부여받은 것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필요하다고, 중요하다고 애지중지하던 생활의 조건들이 장식품으로 내려앉는다. 지나온 세월 속을 들춰내 속죄를 해본다. 신을 향해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애절하게 가호를 바란다. 사람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작디작은 내 모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동안의 모든 삶이 오만과 교만으로 범벅이 된 것 같다. 자신감과 용기에조차 부질없는 만용이 뒤섞인 것 같다. 너무 하잘 것 없어 저 밑바닥에 내려 엎드려도 하나 불만조차 없을 것 같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소리죽여 오래오래 울었다. 눈물 속에 온갖 욕심과 갈망과 애착까지 다 담겨 흘러내린다.
한 줌 삶에 대한 애착마저 내려놓으니 욕심이 만들어낸 걱정으로 진창이 됐던 마음에 맑은 바람이 지나간다. 고통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리. 세상은 이리도 아름다운 것을.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것으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비록 겪고 나서 깨달은 아둔함이 부끄럽지만 가끔 위기는 가던 길 다시 돌아보며 겸허히 고개숙이는 겸손을 가르친다.
낮게 낮게 더 낮게 낮춰서 이 세상 더 크게 더 넓게 바라보고 싶다. 하루하루 아무일 없이 지내는 평범한 일상을 순간순간 음미하며 살아내야겠다. 그래야 미물 같은 존재에게 주어진 소중한 축복이 더 많이 느껴질 테니까 말이다. 청아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노란 가을햇살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고통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하루하루 아무일 없이 지내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주제로 전달하고 있다. 그런 삶은 세속적 욕심을 비워내는 데서 온다고 했다. 신경성 위염에 대한 경험과 와병 중인 동생을 통해서 이런 교훈을 얻는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작품이다. 단, 삶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이 세속적인 욕심과 같은 것인지 등등 어휘 하나하나의 적절성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느껴진다.
(15) 유인, 그 변명
유순한 강물 옆에서 억새가 나부댄다. 흐르다 멈추어 쉬어가게끔 할 몸짓이다. 내 눈도 그리로 내려앉는다. 그것도 잠시였다. 머릿속에 검은 물체의 형상들이 바글대 눈앞의 가을 심상은 타버린 볏짚처럼 삭아들고 만다. 기차를 탄 이후로도 몇 번을 만졌던 비닐봉지에 또 손을 대본다. 뒤집어져 갈퀴를 흐느적대던 그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제 곧….’ 그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어찌하겠다는 날 선 기운이 손가락 마디를 타고 몰려왔다.
나는 언젠가 그들이 출몰할 거라고 예상은 했다. 낡은 주택이라 은신처로 쓸 만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단침입 때 대처하려고 유인제를 준비해두었었다. 드디어 한밤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기장 속으로 들어와서는 제 갈 길을 방해한다고 날개를 퍼덕거리다 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태어나 처음 본 그놈한테 아들은 밤새도록 호되게 당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지상에서의 최고속력 시속 150KM, IQ 340 이상 급격히 상승한다는 그놈을 잡겠다고 날밤을 새웠단다.
유인제가 오래돼서인지 그들을 집 밖으로 내몰지 못했다. 아들한테 전화가 오면 첫마디가 “바퀴벌레는?”하고 물었다. 그들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아들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파트 방역한다고 기사를 왔을 때 새것인 유인제를 받아서는 아들한테 단걸음에 갔다. 바닥에 엎드려 그들이 남긴 흔적이 있는지 살폈다. 검은색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방 저 방, 자유롭게 다녔나 보다. 먹을 걸 찾았는지 싱크대 위에도 똥이 있었다. 살아있는 놈을 만나기라도 하면 단번에 요절내겠다고 벼렸다. 아, 그놈과 맞닥뜨렸을 때, 나는 뒷걸음치고 말았다.
배를 드러낸 채 더듬이와 발 갈퀴로 나를 압도했던 그놈의 동족을 유인할 방도를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바퀴벌레’를 검색어로 넣었더니 정보가 넘쳤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질 당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그 지역의 바퀴벌레들은 아무런 유전자 변형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유충이 100% 생존할 시 바퀴벌레 한 쌍이 1년 후에는 1억 마리 늘린다는 통계치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 하루바삐 자췻집 자취 방을 옮겨주는 방법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집을 구하는 데 돈이 걸림돌이었다. 학교 부근엔 대부분 월세를 로 받아 매달 부담이 되지 않는 전세가 우리 가정경제로 봐서는 더 낫다. 학업 기간이 1년 반 남았으니 그동안 바퀴벌레와 동거하지 않도록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아들이 한 달 동안 자췻집을 비워 그 사이 놈들을 박멸하러 가는 길이다. 바퀴벌레 유인제는 붕산이 감초였다. 맥주와 붕산을 혼합하거나, 달걀노른자와 붕산, 삶은 감자 44%와 붕산 25%에다 식용유 30% 비율로 섞으면 좋다고 했다.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민일 때, 숫자는 의심의 문을 닫아버린다. 곧 지루한 숨바꼭질에서 더는 술래 역을 하지 않아도 될 거라며 쾌재를 불렀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아들에게도 완승으로 끝난 것처럼 메시지를 보냈다. 어미가 쓸 비방 책은 아들에게서 놈들을 떼어놓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환청일까? 현관문을 열어젖히니 스사삭스사삭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야행성이라 하나 주인이 몇 주째 보이질 않으니 놈들이 낮에도 능청거리며 날고 기어 다녔을 수도 있다. 그들의 발놀림이라도 감지하려고 귀를 바닥에 바짝 대보았다. 저네들의 저승사자가 온 것을 알아차림인가 내 숨소리만 나직이 들린다. 몸을 일으켜 눈을 호동그랗게 뜨고는 그들이 내놓는 찌꺼기가 있나 샅샅이 살폈다. 어라, 요놈들이 몇 달만 살기로 했나? 아니면 먹을 게 없어 똥을 먹어치웠는지 나타났었다는 증거가 보이질 않았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비방의 결과물이 아들 눈에 보이길 바라는 마음도 한편 있어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유인 미끼를 개수대 안에 놔두었다. 일주일 후면 아들이 돌아온다. 나동그라진 바퀴벌레를 본다면 어미의 치성이 제 몸 속에 담아지리라. 그들이 이미 사라졌다 해도 그때도 어미가 떼어놓은 줄 알리라.
어미 바퀴벌레 보소. 빙하기에도 살아남았으니 자식 지키는 일에는 우리네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알고 있소만, 내 어미가 되고 보니 두 눈 뜨고 못 보는 것이 있더이다. 자식한테 해가 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대들을 유인하려 비방을 놓았소. 이미 눈치를 챘거든 부디 겨울 오기 전에 식솔들을 이끌고 내 아들 자취방에서 나가 주게나. 자네에게 간곡히 부탁하네. (12.2장)
아들의 자취방에 우글대는 바퀴벌레를 박멸하기 위한 유인제를 놓으러 갔던 일을 통해 자식을 위하는 모성을 자랑하려 하였다. “나동그라진 바퀴벌레를 본다면 어미의 치성이 제 몸 속에 담아지리라. 그들이 이미 사라졌다 해도 그때도 어미가 떼어놓은 줄 알리라.”라는 대목에서 그런 느낌을 풍긴다. 그래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의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모성의 과시만 드러날 뿐. 그리고 첫 단락에서 바퀴벌레 유인제에 대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정보지연의 수법을 구사하였는데, 유인제는 이 글에서 핵심이 아니고 모성을 드러내는 단순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정보지연의 수법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
(16) 누룽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윤기가 반들거리도록 닦는다. 식은 밥 덩이를 쏟아부어 손바닥과 주걱을 번갈아 가며 꼭꼭 누른다. 천대 거리 천덕구니였던 밥 덩이가 납작하고 둥글게 변해 프라이팬을 가득 채운다. 따닥따닥 소리가 날 무렵 화력을 최저로 낮춘다. 점점 노랗게 변해가는 찬밥 덩이를 파전 다루듯이 공중으로 날리면서 뒤집는다. 꼬득꼬득하게 익어가는 찬밥 덩이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누룽지로 변해간다. 둥근 접시에 옮겨다 놓고 식구들을 모으면 남편의 손이 제일 자주 간다. 남은 밥 처리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숟가락씩만 더 먹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는데 누룽지로 변하고서야 찬밥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만큼 맛있는 과자는 먹어 본 적이 없다는 극찬이다. 아이들도 맛있다고는 하지만 저희 아버지보단 아무래도 손이 덜 간다. 간식거리가 딱히 없던 그 시절의 세대와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는 우리네 아이들 세상은 길든 입맛부터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리라.
학교에 갔다 돌아온 나는 가방에서 꺼낸 빈 도시락을 설거지통에 담그고는 아침에 남겨놓고 간 누룽지로 먼저 입가심을 한다. 그러고 나서 숙제를 시작하거나 급할 때는 엄마 심부름 혹은 아기를 돌본다. 그날도 누룽지를 먹기 위해 찬장 문을 와락 열었다. 귀퉁이 구석진 곳에 숨겨놓은 누룽지는 감쪽같이 없어졌다. 내 누룽지가 없어진 일이 세 차례나 된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기에 두 번째까지는 아무 말 않고 참았다. 엄마나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당신들이 먹어 치웠다길래 믿어지지 않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내 짐작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아침밥을 푸기 위해 엄마가 큰솥을 열어 놓고 주걱으로 밥을 살짝살짝 뒤집고 섞기를 반복한다. 할머니 진지, 아버지 밥 순으로 식구들의 밥을 다 푸고 난 후, 가마솥에 눌린 누룽지를 커다란 쇠주걱으로 벅벅 긁어서 내게 준다. 먹성이 좋아 뭐든지 잘 먹는 동생 몰래 긁어주는 노릇노릇한 누룽지가 밥보다 맛있었다. 하얀 쌀밥이 영양을 아래로 미루어주어 생겨난 고소한 누룽지는 말랑말랑 하면서도 적당하게 씹히는 맛이 있어 먹기가 편하다. 편식이 심한 나에게 먹거리로서 아주 훌륭했다. 배가 출출할 때를 대비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 숨겨놓았다가 간식으로 먹곤 했었다. 그러던 그런 나의 일상에 희망 같은 누룽지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먹어치우는 천적이 생겨버렸다. 까다로운 식성으로 인해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인 누룽지를 분배받아갈 상대에게 천적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내 입장이었다.
“할매! 내 누룽지 먹었지? ” 할매는 본적이 없다며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저께 내가 누룽지를 올려다 놓던 곳을 봤지 않느냐고 다그쳐도 딱 잡아뗀다. 쥐가 훔쳐 먹었을 거라고 능청맞게 돌려댔다. 못된 버릇 하면 엄마 아버지에게 일러바친다며 적반하장이다. 할매는 치아가 시원찮아도 음식을 나보다 훨씬 골고루 잘 먹었다. 간식으로 옥수수나 감자를 삶아 내어 놓으면 먹어치우는 속도가 웬만한 장정급이다. 엄마에게 그런 할매보다 못하다며 질책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못자리마다 파릇파릇한 모종이 쑥쑥 키가 커갈 무렵 읍내 장터에 몇 갑 되지않은 성냥을 보자기 위에 펼쳐놓고 할메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5일 장이 열리던 날 장터를 순회하는 나의 할머니 눈에 할매가 들어왔다. 노점상인들이 점심 끼니로 막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해치울 때 할매는 빈 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 번째 장날, 점심을 줄곧 거르고 지냈다는 확신을 얻고서야 할머니는 할매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내 잠자리였던 할머니 옆은 할매를 위해 비워줘야만 했고. 내가 돌보던 막내둥이 동생도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할매 등에 업혀 있었다. 할매 덕에 농번기가 와도 나는 숙제를 제때에 할 수 있었고, 막내동생의 아기의 오줌이 내 등을 따뜻하게 적실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할매로 인해 나에게 막심한 손해를 입은 일도 다반사였다. 장난기 많은 할매가 내 윗옷을 입어서 늘여 놓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누룽지를 어떻게 해서라도 훔쳐 먹어버렸으니 내 식생활에 막대한 지장이었다.
할매는 가끔 이상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멀쩡하게 생활하다가도 갑자기 “만쉐이” 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주 가끔. 6.25 동란에 갓 난 딸 하나를 두고 남편이 만세를 부르며 끌려가다 죽은 후 그 충격으로 정신이 반쯤 나갔다고도 했다. 노상에서 두 팔을 올리며 외치는 횟수가 잦았다고 했다. 읍내 사람들이 ‘만쉐이 할매’라고 부른다고 한다. 장터 사람들 말로는 우리 집에 오고 난 후부터는 그 소리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렇게 농번기가 다 지나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할매는 딸네 집에 간다고 했던 것 같다.
살면서 버릴 건 하나도 없음이다. 식은밥 한 덩이라도 아까워서 꽁꽁 모아 놓았다가 누룽지로 재생시킨 값일까. 그런 누룽지로 인해 까맣게 잊혔던 할매의 존재가 불현 듯 떠오를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독거노인 요양 문제에서 국가는 다른 국정 못지않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지만 혼자서 유명을 달리하는 노인이 발생하는 일은 여전하다. 자식의 부모공양 방식이 시대적 격차로 차질을 빚어 그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국가에서도 일일이 다 감당해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또 다른 형태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무자식인 관계로 혼자서 유명을 달리하는 노인의 예가 그러하다. 미혼인 체 독신 생활을 지향하는 젊은이가 수두룩한 현시대를 보노라면 미래의 노인 문제는 더욱 심각하리라는 생각은 나만의 걱정일까. 노인들의 지적 수준이 예전과 같지 않으므로 발생하는 또 다른 요인도 많을 것이다. 근간에 들려온 맥도널드 할머니의 사망 소식이 그러하지 않은가? 빼어난 미모에 명문대 외국어 전공, 거기다 외무부 수제 공무원 출신인 권하자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무의탁 노인의 숙식 방안을 사회복지부에서 권유했다는데 본인의 관심사였던 영어신문만을 읽으며 노숙생활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단순한 의식주 차원의 복지형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노인 문제이리라. 노인들의 특기적성문화에까지 복지사업이 미쳐져야 하지 않을까. 2 세 출산을 스스로 억제하는 젊은 부부들의 결혼관으로 인해 부양을 책임져야 할 인구 역시 급감하고 있다. 인간수명은 반대로 늘어나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부유층과 빈곤층의 노후생활에도 천양지차의 차등곡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세금을 내야 할 젊은이들이 줄어가는 이 마당에 최후에는 또 누가 그 감당을 해 낼 것인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산적한 과제거리로 여겨져 마음자리가 묵직해져 온다. 만쉐이 할매와 맥도널드 할머니의 입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방안을 모색해야 함은 같은 맥락이다.
엄마의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는 느낌이다. 허리 병으로 병원에 들러 자세한 진료를 했더니 다른 곳에 더 탈이 났단다. 마음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부모 문제로 의견이 뒤틀리는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세월이 정말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기온이 내려감을 느낀다. 열심히 운동하여 내 몸뚱어리 하나 잘 간수 하는 일이 내 아이와 국가를 위한 지혜로운 삶이리라.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누룽지 한판을 벌써 다 먹어치우고 있다. 식은밥 덩이를 한 움큼 더 프라이팬에 올려 자근자근 눌러 편다. 주방 문틈을 비집고 든 햇살은 가을을 노랗게 익히고, 손바닥 만한 내 작은 구역에선 노오란 누룽지가 익어간다. 짜작짜작....... (18.7 매)
누룽지 만들기에서 어린시절에 누룽지와 얽힌 만쉐이 할매, 독거노인 문제, 내 어머니의 건강을 거쳐 “내 몸뚱어리 하나 잘 간수 하는 일이 내 아이와 국가를 위한 지혜로운 삶”이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연상의 흐름에 있어서 문제가 없다. 읽어가는 재미도 있다. 문장의 연결도 나무랄 데 없이 매우 자연스럽다. 문장도 평이하여 독서를 쉽게 한다. 그렇지만 이들 소재들이 하나의 주제를 위하여 엮여지지 못했다. 수필쓰기가 연상의 자유로운 흐름에만 맡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상의 흐름에 따라 체험을 부연하고 확장시켜 나가되, 그것들이 하나의 주제에 꿰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재들은 하나의 주제 구축에 필요한 서까래나 기둥의 구실을 해 줘야 한다. 누룽지에 얽힌 경험만으로 한 편의 수필을 완성시켜 보면 좋겠다. 물론 의미를 찾아야 한다. 밥이 되는 데는 실패한 것이 누룽지이고 퐁요로움으로 버려질 처지에 있는 식은밥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밥보다 소중한 것이었고, 지금은 새로운 변신으로 사랑을 받는 식은밥이 아니던가. 인간의 삶도 그런 구석이 있을 것이다. 누릉지를 살짝 삶과 견주어 보는 것도 좋겠다.
(17) 부메랑
그런 일은 드물었다. 지쳐 있던 나를 위한 남편의 배려였다. 이번에는 그가 정하는 대로 맡겼다. 어딜 가든 어디서 묵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짐도 간단히 꾸렸다. 그저 쉬고 싶었다. 해넘이나 실컷 보고 온다면 바랄 게 없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예약한 호텔이 실제로는 모텔이었다.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군소리 없이 객실로 올라갔다. 집기며 객실 상태를 보자 잠자던 마그마가 나를 뒤흔들었다. 데스크와 남편 양자 간의 어설픔이 맞물려 모처럼의 나들이가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었다. 좌시할 수 없었다. 충청도 남자, 경상도 남자, 두 남자를 세워두고 조목조목 따지자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왔다. 호텔이 그동안 반 토막이 난 것. 남편이 예약한 곳은 옆 건물. 결과를 얻는 과정 중에 내 목소리가 고왔을 리 없다. 해넘이가 멋진 해변에서 소주 한잔 하던 남편이 말했다.
“당신 요즘, 말이 많이 거칠어진 거 알아?”
평소에 버럭 대장이던 남편이 아주 낮은 톤으로 말했다. 퍼붓고 싶은 말들을 참느라 애쓰는 와중에 들은 질책이라 온 몸이 굳었다. 여기까지 와서 언성을 높일 순 없다. 소주병이 비어가는 동안 두 사람 간의 대화는 빙빙 겉돌기만 했다.
되짚어 보았다. 요즘 내가 좀 삐딱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대상과 관계없이 그것을 대하는 눈길이 곱지 않다. 마음을 고쳐먹으려 애써도 별반 달라지지 않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마음이 그러하다 보니 만사가 고통스럽다. 결국엔 두 주에 한 편씩 쓰는 글쓰기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료들이 낸 작품을 평해야 하는 차례가 돌아왔다. 그것 또한 글쓰기의 연장인지라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각 작품은 익명으로 되어있으나 이젠 누가 쓴 글인지 짐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채찍을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작은 단서를 발견하는 그때부터 작가가 글 위에 어른거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글 한 편을 쓰는 일이 어디 호락호락한가. 그냥 좋은 점만 말하자. 없어도 만들어 말하자. 적당히 칭찬으로 얼버무리면 되지. 몇 날 며칠 끙끙대다가 내놓는 자식 같은 글에 핀잔을 들으면 풀이 죽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않았나. 씨가리 같은 칭찬 한 알이라도 듣고 온 날은 왠지 콧노래가 나오지 않던가.
읽고 또 읽었다. 어떤 글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마음이 꼬인 터라 제대로 보일 턱이 없었다. 못마땅함을 위장하느냐 아니면 꼼꼼히 지적하느냐. 한참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속말을 두고 겉말만 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건성으로 대강 넘어갈 것이면 피차 시간 낭비하는 것이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은 더 찜찜하다. 작가가 누구이든 붉은 펜으로 가차 없이 내리쳤다. 발표가 끝난 후 아주 잠시는 후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차지했다. 익명이지만 엄연히 상대가 있었고 내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니 적잖이 충격이었을 것 같다. 후자를 택한 것을 후회했다.
누군가가 날 자극했다. 글을 써보란 권유였다. 손사래를 쳤지만 내 속에 잠들어 있던 감성 하나가 꿈틀거림을 감지했다. 그 요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관심을 버리지 않았더니 문이 서서히 그리고 아주 적절히 내게로 다가왔다. 난 문고리를 잡고 한 치의 서성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글을 쓰면서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려면 적당한 장치도 필요하단다. 장치라는 말은 왠지 작위적인 말 같아 피하고 싶은데 말이다. 한 줄 한 줄 모든 이야기가 주제를 향하여 모여야 한다. 아무 대책 없이 한 줄 감성 나부랭이를 들고 시작하다가 큰 코를 다치기도 했다. 한걸음 떼다가 눈치보고 또 한걸음 떼다가 넘어지고. 그러다가 주저앉아버렸다. 넘어질까 두려워 한 발짝도 떼놓지 못하는 돌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글도 제대로 못쓰면서 남의 작품을 힐난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지금 상태를 글로 옮겨보라고 귀띔 해준다. 갑자기 용기가 났다. 글을 쓰면서 나를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가 조금이라도 작아지길 바라면서 모니터 앞에 앉는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우면 걸을 수 없지 않겠는가. 무릎에 생긴 상처가 아물 때쯤이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걷는 날이 오리라. 그 날을 위하여 그냥 넘어지자. 내가 날린 부메랑이 되돌아오면 온전히 맞자. 그리고 일어서자. 자판을 두드리는 다닥다닥 소리가 밤 깊은 줄 모른다. (13.7장)
동료들의 글을 합평하고 난 후의 심리상태를 창작의 어려움과 연결시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평하는 자와 비평 받는 자, 비평하는 자로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과 작가로서 비평받는 것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 한 마디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좌절감과 성취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가기 위해서는 맷집을 키워야 한다.
남편과의 해맞이 이야기는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을 빼버리고, 내가 쓴 글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나의 자화상이고 무대 위에 올려져 관객들에게 공개하는 인생살이라고 생각해 보라. ‘나의 글 = 나의 인생’이라는 측면에서 좀더 사색하고 글을 보태어 보면 어떨까.
(18) 주고 간 내비게이션
이른 새벽,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았는다. 전화할 때마다 늘 들어왔던 멋울림이지만 그날따라 그렇게나 애절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부인에게 알려야 하나, 아니면 경찰에 신고 해야 하나? 머릿속에는 처참하게 찌그러진 차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제발 살아 있어야 하는데…….
이웃에 사는 최 사장님이 찾아왔다.
“사장님! 이거 가지세요. 그동안 고마웠는데 드릴 것은 없고, 난 필요가 없어서”
건네 준 것은 그가 사용하던 내비게이션이었다. 핏기 하나 없이 지쳐 보이는 얼굴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며 오늘 밤 88고속도로로 갈 것이라고 했다. 들어 놓은 약간의 생명보험이 있으니 그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했다. 여러 말로 위로하며 설득해 보았지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는 차를 몰고 사라졌다.
양계장을 하던 그가 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워지게 된 것은 전혀 경험 없이 시작한 가요주점 때문이었다. 술장사는 그저 남는 장사라고 하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을 때 이야기다. 장기적인 경기 불황으로 가족끼리 외식 한번 하기도 힘이 드는데, 아가씨 옆에 앉혀놓고 비싼 양주 마시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쪽잠을 자가면서 낮에는 양계장을 하고 밤에는 주점에 매달렸다. 좀 알려지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생돈을 막아가며 몇 년을 억지로 버텨 왔지만 갈수록 빚덩이만 쌓일 뿐이었다. 결국 큰 손해를 보고 가요주점을 접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로부터 배신까지 당했다.
농장 우편함에는 체납 고지서가 쌓이고, 집배원은 법원의 최고장 배달하기에 바빴다. 은행 담보 대출을 했던 아파트는 경매 직전에 헐값에 처분되었다. 그가 ‘의리파’라고 불리며 그토록 베풀었던 친구와 후배들은 소문을 듣고 하나둘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사룟값은 매번 오르는데 뒷걸음치는 달걀 값은 인건비는 고사하고 사룟값 대기도 힘들었다. 간단한 세간만 겨우 챙겨 용달차에 싣고 농장에 딸린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삼십 년을 불평 없이 힘든 농장 일을 도와왔던 아내에게 미안해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라고 우리 공장에서 나오는 사료를 주었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남은 가족을 생각해야지 자기 혼자 가 버리면 그보다 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설득했다. 어려워지면 아내도 등을 돌리는 법인데 다행히 현실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돕고 있으니 마음 합쳐 새로 시작해 보라고 했다. 경제적인 도움을 줄 형편은 안 되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마음만이라도 위안을 주려고 노력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침 9시가 되어서 그토록 걱정했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어제 88고속도로 밤새 돌다가 새벽에 돌아와서 몇 시간 자고 이제 일어났어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무사히 돌아와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열심히 살면 꼭 좋은 날이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고 간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하자 그가 힘없이 웃었다.
계란 몇 판을 들고 그가 우리 공장에 찾아왔다.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지난번에 받은 내비게이션을 돌려주었다. 사장님이 가고 나면 마음이 아파 이것을 내가 어떻게 쓸 수 있겠느냐며, 이제 나쁜 생각은 접으라고 했다.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정확히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나의 조언과 격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그에게 삶의 내비게이션이 조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어제는 흐렸는데 오늘은 화창한 가을 날씨다. 최 사장님은 지금 장화를 신고 구슬땀을 흘리며 닭똥을 치고 있다. (11.8)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이미 프로답다. ‘삶의 내비게이션’을 떠올린 착상도 신선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타인의 삶에 내비게이션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한줄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긴 했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서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대두된다. 수필은 생각하고 느낀 자신의 이야기를 제재로 삼은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보고 들은 남의 이야기를 제재로 끌어들인 수필도 있다.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 우선 그렇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3편의 에피소드를 전달하는 형식을 갖춘 작품이다.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3편의 이야기가 전달하는 주제를 직접적인 진술로 전달하고 있지만, 주제를 굳이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3편의 이야기만으로 주제가 이미 전달된다. 그렇다면 에필로그로 제시된 부분이 불필요하다. 프롤로그도 도입의 역할만 할 뿐 주제를 위하여 기여하는 바가 없다. 따라서 없애도 무방하다. 그러니, 중간의 이야기만을 두고 보면 교술이 아니라 분명 서사이다. 이 서사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런 형식의 소설이나 희곡도 있지 않은가. 17세기의 고전소설 「운영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나 김동리의 「등신불」은 어떤가? 채만식의 희곡 「제향날」은 내화로서 3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수필은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두지 말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더욱 수필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수필에서 남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이요 과정으로서의 구실만 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를 제기해 본다. 이대전의 <도둑과 생불 이야기>나 김민숙의 <그녀의 숙제>에서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제출된 「아 다행이다」란 수필은 어떤가. 어머니 이야기인가,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가.
(19) 아, 다행이다
가방 옆 작은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일었다. 일상의 한 부분인양 그 소리에 개의치 않았다. 진동은 끊겼는가 싶으면 들려오고 또 들려오기를 반복했다. 수업 중이었던 나는 몸을 돌려 전화기의 수신내역을 살짝 확인했다. 오빠와 동생의 이름이 번갈아가며 찍혔다. 수신 건수가 10회를 훨씬 웃돌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별안간 불안이 엄습하고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다. 나쁜 일? 좋은 일? 도대체 무슨 일일까? 엄마에게? 아니면 누구에게? 머릿속 불안을 떨치지 못한 채 수업을 마무리했다.
“야이야! 시간 있으마 잠깐 들러라.” 수화기로 맑고 또렷한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늦은 시간이라도 달려간다. 엄마는 약단술을 잘 만드셨다. 가마솥에 도라지, 당귀, 두충, 오갈피, 감초, 하수오 등 산야초 줄기와 뿌리를 넣고 달인다. 약초들이 어느 정도 우러나면 엿기름질금을 넣어 다시 달인다. 엄마는 질금을 넣고 불을 지피기 전에 늘 아들딸에게 전화를 거신다.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현관 앞에 약단술이 담긴 4개의 통이 나란히 서서 기다린다. 이런 엄마와 어제도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단다. 면회 시간은 낮12시와 오후 7시 두 차례이며 그것도 15분 동안뿐이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정말 나의 엄마 이야기인지 의아했다. 병원 의 하얗고 긴 복도에 비치는 해는 유난히 길었다. 오빠는 앉아있질 못해 서성이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동생은 ‘우야꼬 우야꼬’ 중얼거리고. 나이 들면 병도 들기 마련이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으리라 여겼다. 둘째 며느리인 엄마는 일찍 세상을 뜬 큰 어머니를 대신해 종가집 종부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집안 살림뿐 아니라, 자기관리를 잘하던 분이었다. 그 좋은 솜씨와 지혜는 가는 곳마다 빛을 발해 ‘고령의 별님 할머니’로 불렸다.
굳게 잠겼던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방문객을 위한 흰 가운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간호사를 따라갔다. 엄마가 일어나 앉았다. 다행이다. 엄마가 나를 알아본다. 아, 다행이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른다. 정말 다행이다. 그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별님 할머니, 왜 여기 계세요? 할머니 계실 곳이 아닌데요?” 짐짓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엄마도 웃으며 말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뜬 엄마는 머리가 조금 아팠다. 일어나는데 평소보다 몸이 둔했고, 해야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몸의 이상을 느낀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손가방에 전화기와 주민증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상태를 말하는 엄마를 시골의사는 성미 급한 귀찮은 할머니쯤으로 여겼고, 기다리라고 한다. 엄마는 다시 응급차를 가리키며 자신을 싣고 대구로 가자고 호소한다. 그제야 의사가 엄마를 간단히 진찰했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안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만을 되뇌다가 중환자실을 나왔다.
다음 날, 중환자실 복도에 앉은 동생이 훌쩍이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부었고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엄마의 상태가 나빠져 손발은 묶여 있고, 접근 금지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믿기지 않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비상벨을 누르고 간호사를 불렀다. 그는 엄마가 뇌출혈과 정신이상증세로 헛소리를 하고, 문을 열고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며, 제어가 되지 않아 진정제를 투여하고 내린 조치라며는 간단히 설명한 다음 유리문을 잠궈버렸다. 다시 벨을 눌렀다. “제가 확인했지만 환자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손발 풀어 주세요. 제발요.” 그녀는 단호히 ‘의사 지시’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짧은 대화, 그 캄캄한 벽 앞에서 내 말은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은 채 꺾이고 있었다.
그럴 수 없다. 엄마가 팔다리를 묶인 채 둘 수 없다. 저 두터운 유리문을 열고 엄마를 나오게 해야 한다. 이 생각을 한 순간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기로 했다. 나는 아우성쳤다. “우리 엄마 풀어나라! 손발 풀어나라! 멀쩡한 사람 침대에 묶어 놓고 금치산자 만들지 마라!”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지른 나의 통곡이 들렸던지, 아니면 시끄러움을 재우지 위해선지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지시”라는 말을 다시 전하고 들어갔다.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생트집으로 잠깐 열렸다 닫힌 유리벽에서 엄마를 빨리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 앞에 서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화기를 들고 있다. ‘웬 여자의 생트집’에 대한 간호사의 보고를 받고 있음이 직감으로 전해졌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렸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했다. “선생님께는 제 어머니가 시골에서 온 작고 보잘 것 없는 할머니로 보이시겠지만......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들렀다가 생각지도 못한 중환자실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다면......저 역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다행이다. 그가 긴 내 말을 듣고 있다.
환자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한 후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다시 묶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인지 숱한 진정제 탓인지 휠췌어에 앉은 엄마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안아주며 내가 큰 소리로 말해야 했다. “엄마! 내가 엄마하고 싶은 말 다 했다. 성질도 내고, 큰 소리치며 싸웠다. 잘 했제.” 그제야 엄마가 울먹이며 입을 연다. “그래, 가시나들이 참 못됐어. 캄캄한 데 가다 노코, 말도 못하게 하고, 인나지도 못하게 하고.....” 일반 병실로 옮겨진 엄마는 신음소리를 내며 자고 자고 또 잠을 잤다. 묶으려는 사람과 묶이지 않으려는 사람의 실랑이가 얼마나 심했던지 손과 발에는 멍자욱이 시퍼렇다.매서운 바람과 빗살 맞맞으며 살아온 엄마의 뼈마디 굵은 손을 잡고 혼자 되뇌인다. “우리 엄마, 이만해서 다행이다.”
병원에서 어머니에게 일어났던 한 바탕의 소동을 화제로 삼았다. 화제 자체가 가십gossip처럼 흥미롭다. 이야기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문장도 자연스럽다. 어머니를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는 딸의 간절한 용기(?)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에서 왜 정신병자로 오인되어 잠시라도 囹圄의 몸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보다 자세하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어머니의 성격 문제? 아니면 병원의 무책임한 행태? 아니면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딸의 용기? 주제를 찾아보자.
(20) 외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이심전심으로 몇몇 문우들과 길을 나섰다. 동행한 이 선생님의 안내로 성주에 있는 오래된 방앗간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고령에서 성주로 넘어가는 국도를 따라 달리자 가을은 제법 완연하다. 이름 모를 들꽃과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손짓을 하고 추수를 앞둔 금빛 들판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놀며 쉬며 한 시간여를 달리자 마을 초입에 허름한 건물 하나가 보인다. 붉은 양철로 덕지덕지 엮은 건물은 오래 전에 시간이 멈춘 듯 허술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방송국에서 나와 촬영을 하고 있었다.
방앗간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이다. 바로 이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였다. 덕분에 옛 방식으로 방아를 찧는 그곳이 웰빙 바람을 타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부쩍 손님이 늘고 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왔으니 모처럼 활기가 넘쳐 보인다.
주인인 할아버지의 연세는 90세로 방앗간을 인수한지는 70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십대의 나이에 우연찮게 방앗간을 인수해 어려움이 많았단다. 처음에 이곳은 물레방앗간이었다.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의 모습으로(지금의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 시간은 거기서부터 정지된 듯 했다. 천정에는 거미줄이 가득하고 기계는 곡식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각하는 주인의 경영철학도 그 시점에서 멈추어 버린 듯했다. 여느 정미소처럼 쌀이 나오기까지 한 번에 여러 과정을 거치는 자동화를 마다하고 지금껏 수동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의 과정이 끝날 때마다 충분히 열을 식힌 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영양소의 파괴는 줄이면서 밥맛은 좋기 때문이다. 아흔이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은 그 분이 살아온 삶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문득 어르신에 관한 일화가 생각난다. 한밤중에 들어와 흉기로 위협하는 도둑에게 “다시는 이런 짓 말라”고 타이르며 장롱에 있는 거금을 스스럼없이 내주었다고 한다. 집에 돈이 있는 걸 용케 알고 들어왔다면 필시 아는 사람일거라 여겨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문이 돌면 도둑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죄인으로 낙인 찍혀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 우연히 자식에게 했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우리는 그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했다.
다양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광속의 사회에서 묵묵히 신념을 가지고 한 길을 걸어가기는 쉽지 않다. 쉽고 빠른 길을 마다하고 힘들고 느린 길을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칠십 평생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어온 노구의 모습을 대하니 쉽고 편한 길만 좇아쫓아가려는 요즘 세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돈이 궁하면 한 번 더 찾아올 낀데 안오는 거 보이 어디서 마음잡고 잘 사는 갑다” 하시던 어르신의 독백 같은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석양에 물들어 가는 방앗간의 모습이 깊어가는 계절처럼 그윽하고 아름답다.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지만, 의미화(의미부여, 의미 발견)를 위한 작가의 노력이 보인다. 왜 설득력이 부족한지 따져보자. 어느 방앗간의 주인을 제재로 삼았으며, (1)옛날 방식(수동식?)의 방앗간 시설, (2)경영자의 가치관, (3)그리고 그에 얽인 일화 하나가 동원되었다. 이들을 통해서 ‘쉽고 편한 길만 좇아가려는 요즘의 세태에서 옛것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삶의 고상함(?)’을 발견해 내고 있다. 이게 의미화된 주제다.
그렇다면, 쉽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세태와 옛것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삶이 대립적이어야 하는데, 추상적인 한 줄의 표현에 그쳐서 그런 이질적이고 대립적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옛것의 가치성에 대한 인식(해석)도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 옛것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으면 고상하고 위대하고 지혜로운가? 또 (3)의 소재를 ‘옛것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삶’ 속에 수렴시켜야, 이것이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1)수동식 방앗간이 대한 안내도 좀더 구체적으로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방앗간 시설을 현대의 방앗관에 견주어 구체적으로 재현해 주어야 독자가 편리함보다 더 나은 옛방앗간의 그 무엇을 이해하게 되어 이 글은 마침내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