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동포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피땀으로 가꾸어 온 재독동포사 45년의 생생한 역사를 '재독동포사회 45년을 돌아본다'라는 제목으로 교포신문사에서는 격주로 총 40회(약 1년 6개월)의 계획으로 2면에 걸쳐 연재한다. 이 연재물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이곳 독일 땅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독일에서의 정착 및 재독동포 사회의 건설, 2세들을 위한 헌신,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등 그 절절한 사연들을 담게 된다. 이 연재물은 지난 1년간 준비위원으로 수고해 주신 김무현, 나복찬, 이종진 준비위원님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기초를 두고 있기에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교포신문사의 금번 '재독동포사회 45년을 돌아본다'라는 연재물이 우리 재독한인사회의 온전한 45년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는 독자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다. -편집실
5. 독일에 태권도보급 태권도 사범들 독일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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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독일을 방문하였던 태권도 친선 사절 시범단이 한국을 떠나기 전 일행들과 찍은 기념사진 |
유럽 독일에 태권도가 처음 시작한 동기는 1963년 12월 파독 광부의 송출에 기인한다.
독일의 한국 광부들이 조국의 향수를 그리며 한국인의 밤 행사를 주최하면서 태권도 시범이 있었고 그 여파로 광부들이 살고있는 지역에서 독일인을 모아놓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유럽의 타국가에 대한 태권도 전파도 독일광부 태권도 사범들이 신천지를 향하여 뉴프론티어 정신을 갖고 도전하여 개척하였다.
그 당시 태권도를 가르칠 때는 독일인의 90%는 한국은 6.25 전쟁으로 가난하고 처참한 나라로서 용역을 송출하는 아시아의 일본 옆에 자리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당시 제자들이 사범님의 나라에도 타자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범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공병우 타자기가 있었음)
태
권도의 기초적 발달은 1962년 '대한태수도협회'가 '대한체육회'에 가맹하고, 1963년 2월 23일 '대한체육회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정식 경기단체 로 승인되면서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이러한 태권도의 발달단계는 2단계로 나눌수 있는데, 제1단계는
1960년대 최홍희를 중심으로 결성된 '국제태권도연맹(ITF: International Taekwon do
Federation)'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로 이 당시의 태권도는 당수의 형태에서 크게 변화되지 못한 채 세계에 보급되어 일본의
Karate 또는 Korea Karate로 불리기도 하였다.
제2단계는 1970년대의 '세계태권도연맹(WTF: World Taekwondo Federation)'이 경기 태권도를 세계에 인식시켜 줌으로써 태권도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명실상부한 태권도의 발달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렇듯 2단계인 1970년대 초 국내 태권도는 전 세계에 분화된 계파를 통합시키고 중앙 도장인 국기원을 건립하여 기술과 이론의
정비, 경기규정을 개선하는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함께 태권도의 세계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또한 태권도 세계화의
중추적 역할은 국기원이 주최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1973년 5월 25일 개최되었고, 같은 해 5월 30일
세계태권도연맹을 서울에서 결성함으로써 세계화의 시작을 이루었다. 독
일에 태권도보급은 1965년 4월 주독 한국대사관*당시 대사 최덕신)의 알선으로 태권도 친선 사절 시범단이 독일을
방문하여(한차교, 김중근, 박종수, 권재화, 이기하) 최홍희장군의 인솔하에 뮌헨에서 연무시범을 보여 독일 전역에 기폭제가 되었다.
1971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태권도를 국기(國伎)로 지정하고 1972년 9월 뮌헨에서 올림픽경기가 개최됨에 따라 1972년 8월 독일에 거주하는 사범 16명 (서윤남, 이경명, 정흠일, 송찬호, 조복남, 곽금식, 서영철, 김만금, 송천수, 장광명, 김광웅, 장기혁, 이금이, 이종규, 이관영, 김태현)이 뮌헨에서 대한태권도협회의 후원아래 엄운규 이종우관장을 모시고 태권도 시범을 하였으며 1973년 5월 1일 제 1회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세계태권도연맹이 결성되었다.
또한 독일이 1979년 10월과 2003년 9월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를 2회나 개최한 것은 태권도가 독일인들에게 일반화되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1980년 7월 국기 태권도가 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정식 승인단체로 인정을 받았으며 1981년 독일의 사범들이 구심점을 만들기 위하여 재독 대한 태권도 협회를(역대 회장:서윤남, 허종술, 김만금, 이근태, 이유환, 채수웅, 백진건, 김우선, 김일권, 라진오, 박길도, 김태현) 발족하였다. 재독 대한태권도협회는 친목단체로서 조국의 대한태권도협회와 독일지부 형식으로 유대관계를 맺어오다가 2004년 11월 한국의 대한태권도 협회가 사단법인 경기단체로 등록함에 따라 재독 대한태권도협회도 재독 대한태권도 사범협회로 독일에서 사단법인 단체로 등록하였다.
사범들의 활약
1970년 독일연방정부는 체육부산하 단체의 유도협회( deutsche Judo Bund)의 부속으로 태권도부를 신설하여 관리하다가 1978년 독일 연방정부의 체육부 산하단체로 독일 태권도협회(Deutsche T.K.D. Union)를 구성하여 자체 운영을 하게되었다.
독일 체육부는 태권도 활성화를 위한 방법으로 국가대표 코치(Bundes Trainer) 에 한국인 권재화 사범님, 김광일사범님, 신부영사범님, 박수남사범님이 등용되었다. 현재 독일에 한국사범들의 활약상은 세계태권도계에 위력을 발휘하여 독일태권도 협회의 강점이 되며 재독 대한태권도 사범협회의 자존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180개국에서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는 태권도 인구는 약 5천만명으로 독일에만도 70만명이 태권도를 배웠고 12만명이 현재 수련하고 있다.
지금의 시점은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데와 중국의 쿵푸를 능가하는 무도와 올림경기 종목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본 글은 베를린 거주 김태현 전 재독태권도사범협회회장의 교포신문 기고문에 기초하여 재편집 작성된 글입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