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9월 11일
집 떠난지 1주일
1주일은 7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밤이 지났다. 처음 있는 일이다
마누라가 보고 싶다. 그리고 충희, 충정이가 생각난다.
정산에서 아무 불편 없이 마음 놓고, 또 원 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그리움이 솟아 오른다.
매일 전화로 목소리도 듣고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지만 그 것으론 해소가 되지 않는 무언가가 응어리진다.
‘오전에 일을 끝내고 집에 가자.’
아침부터 서둘렀다.
산에서 밤줍기는 힘들다.
평지에 선 밤나무는 가지가 벋은 끝까지만 주으면 되는데 산비탈에 있는 밤나무는 밤을 데굴데굴 굴려 산 밑에까지 내려 보낸다.
그래서 산 밑에서부터 줍기 시작하여 기어오르면서 주어야 한다
허리를 구부리고 바탈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집에 갈 생각을 하니 힘이 솟는다.
오늘도 많이 주워서 마누라 칭찬을 받고 싶다.
작업을 끝내고 나니 오후 2시. 배고픈줄 모르고 주웠다.
집에와 시계를 보니 그제서야 배가 고프다.
밥을 먹고 광생리 수매장으로 차를 몰았다.
먼저 밤을 수매하러 오신 남자 노인네의 허리가 우리 장모님처럼 90도로 구부려지셨다, 그 분이 주워 오신 밤은 여섯 자루나 되었다
나를 보고 먼저 물으신다.
“어느 동네에 사시나 ?” 못 보던 사람이라 궁금하신가보다
“예 용두리요”
“응 용두리. 용두리는 아래말, 웃말 두 개로 나뉘어있지”
“예, 어르신께서는 어디 사세요 ?”
“나는 요넘어 ○○리에 살아” 잘 못알아 듣겠다
“예, 그런데 어르신 혼자 저 밤을 다 주우셨어요 ?”
“그럼, 혼자 주어야지.”
“그럼 어떻게 나르셨어요 ?”
“등에 지고 나르지“
놀랍다. 저 구부러진 등으로 어떻게 저걸,,,,,
요즈음 시골의 형편이 그렇다.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버리고 나이 많으신 분들, 몸도 성하시지 못한 분들이 모든 일을 떠맡고 계신다.
내 나이 정도는 어렵다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우리 농촌의 앞날이 걱정된다.
“올 해 밥값이 비쌀거야” 귀가 번쩍 뜨인다.
“예, 추석이 지나면 뚝 떨어질 텐데요.”
‘밤이 없어 ?’ “이제 만생종이 많이 나올텐데요 ?”
“올해 가물어서 밤이 크지도 못했는데 비가 이렇게 안 오면 밥송이가 다 떨어져 버려” ‘아하 그럴 수 있겠다. 큰 일이구나’
“저 밤 좀 봐봐” 수매장 앞쪽 농장의 밤을 가르키신다
“저 밤이 종자가 좋은 밤이야. 작년에는 주먹만했는데 올해는 조만밖에 안하잖아.” 확실히 어른 주먹만하던 밥송이가 애기 주먹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며칠만 비가 안오면 밤송이가 쏟아진단다.
‘안되지. 물을 주어서라도 살려야지’ 하지만 보통일이 아니텐데.....
하루하고 한나절 주운 내 밤은 28만 4천 8백원이 나왔다.
밤알의 크기로 봐서는 서운하지는 않다
빨리 집에 가야지
집에 도착해서 경호의 장인상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정림동 대청병원.
1남 5녀의 자손들을 두신 고인의 장례식장은 다복해 보이고 푸짐했다
‘그래, 이래서 자손을 많이 둘 필요가 있는 거야’
‘딸 하나 더 낳자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