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하게 포장된 도로가 더 이상 뻗어 나가기를 마감했다.
"길이 끝났습니다. 돌아가십시요."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가는 길에 이런 안내문구가 적힌 팻말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포장되지 않은 거친 흙길이 그 밑으로 숨은듯이 이어지고 있어 그냥 돌아서는게 무슨 큰 손해라도 볼것같은 심사라 농로 사이를 더듬으며 바닷가를 찾는다.
횟집의 흔적들은 제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문을 닫은곳도 있었지만 가리비 양식장 간판도 보이고 조개류며 해물칼국수를 파는 두어곳의 해변가 식당에는 적지않은 차량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아마도 인근에 대산석유화학단지가 있으니 근무자들이나 가족들이 이용을 자주하는 맛집들인가 보다.
닻에 묶인 고깃배가 한가로이 졸고있는 바다는 고요하고 인적드문 몽돌해변에는 뙤약볕만이 내리쬐는 끝마을 독곶리에 배낭을 울러멘 또 다른 행렬들이 줄을 잇는다.
근래에 군 작전지역에서 개방이 되어 인기몰이를 하고있는 황금산이 있어서 그렇단다.
해발이 무려(?)156m나 된다는 등산안내도를 보면 임경업사당등등을 지나면서 산 너머 몽돌해변으로 내려서면 코끼리바위등 갖은 모양새의 바위들이 도열하는 기암지대도 있어서 찾는이들이 날을 거듭할수록 증가한다는 얘기다.
물론 정상에서 조감되는 서해의 풍광을 빼 놓을 도리는 없을게 분명하고.
건너다 보이는 벌천포해수욕장 마을도 적막감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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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같으면 사람깨나 붐볐을 간이식당들도 쉬고있는 고깃배들과 한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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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갯마을 .
대중가요 속에서 애절하고도 정겹게 불리우던 귀에 익은지명.
붉은 낙조풍경에 오버랩 되는 바지락이며 낙지,쭈꾸미에 각종 조개류등의 모습이 연상되고 우럭을 건져 올리는 낚시꾼들의 큰 웃음소리가 금방이래도 갯바람결에 들려올 것만 같은 곳.
그런가 하면 한 때 온 나라를 온통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서해안 기름유출사건"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천혜의 관광자원과 푸짐한 바다 먹거리가 적지 않으니 세상 모든이들의 고향같은 서산이다.
벌천포 해수욕장은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의 끄트머리 작은 언덕 넘어 가로림만 바닷가 한 귀퉁이에 숨어 있어 아직까지는 이런 곳입네 하면서 세상에 들어내놓고 알려지기를 반가워 하지 않는 것처럼 감춰져 있다.
갯벌들이 많은 서해바다 답지 않게 깨끗한 물살이 돋보이고 뭍으로 부딪히며 부서지는 파도 끝으로는 작은 몽돌로 이뤄진 해변이 자연스럽게 반달형으로 길이를 연장하고 있는 벌천포해수욕장.
그곳에서도 한 발자욱 더 끝자락 갯가 솔밭동산에 서산Auto캠핑장.(011-211-2111)
노송들이 운치를 돋구는 너른 야영장과 뒷산으로는 때 묻지 않은 숲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주위의 해안경관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버려지다 싶이하던 땅, 만여평의 임야를 10여년동안 갈고 가꾸어서 번듯한 야영장을 만들고 수입해 들여 온 10대의 이동식 캠핑카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은 불의의 사고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지고 어렵사리 제2의 인생행로를 살고있는 길두현(59세)씨를 만났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여기까지 이룬 과정도 너무나 많은 설음과 눈물로 지낸 세월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해상 조각공원을 만들고 싶어하는 원래부터의 꿈은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인간인가 봅니다"
자조섞인 말투같지만 속내 깊이 배어있어 접을 수 없는 집념이 들여다 보인다.
대도시에서 구리나 주석등 철물을 이용해서 조형물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조각가가 원래의 직업이였으나 작업중에 당한 불의의 추락사고로 전신마비까지 가는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뼈아픈 사연이 길씨의 파란만장한 인생행로를 그려내고 있었다.
인삼의 고장 금산땅이 고향이지만 역지사지로 제2의 인생 터전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 외진 바닷가를 발견하고 정착지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해수욕장 물길에 고래며 물개등의 조각물을 설치하여 찾는이 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구색 갖춰진 조각공원을 캠핑장에 만들어 보는게 남은 인생의 꿈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내년에 다시 한 번 찾아 주시면 아주 많이 변해 있을겁니다. 동네 이장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그럴듯한 서산의 명품마을 벌천포로 가꿔 놓곘습니다."
여태까지의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불협화음으로 지치고 피곤하기는 하지만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각오로 서산의 내일을 향해서라면 일조를 하겠다는 결의가 결코 허구만은 아니라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귀농, 귀촌하는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많은 희망자들이 훗날을 기약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서산의 외진 바닷가에서 만난 길두현씨도 틀림없는 귀농인이지만 성치못한 육체의 고달픔이 그의 소원대로 아름다운 해변조각공원으로 이루어져서 승화될 날을 기대해 본다.
철이 늦었다고는 하지만 늦여름 답지 않게 시원한 바람이 붉은 석양의 서산 갯마을로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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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장 주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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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에서 내다 본 벌천포해수욕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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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시설이기는 하지만 화장실이며 상수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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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떨때는 정말 피곤을 느낍니다. 그러나 내년쯤 와서 보세요. 여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애저녁에 이런 의욕마저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과정도 여기에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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