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말, 새 공장 준공식을 앞둔 신국주 사장은 요즘 많은 감정과 추억들이 머릿속에 교차된다.
어린시절 부모님 속을 무던히 썩히던 일, 객지로 나가 온갖 험한 일을 하던 일, 그리고 약초시장에서 첫발을 내딛던 일들이 마치
한순간에 일어난 일 마냥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기 때문.
이제 다음달 금산군 복수면에 3천평 대지에 750평 공장 신축이 완성되면, 8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한국인삼생약영농조합법인으로 재탄생될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어린시절의 저요? 한마디로 무척이나 불효자식이었지요. 7남매중 넷째였는데 좋게 말하면 개성이 너무 강했다고나 할까요(웃음)
하여간 부모님 속을 어지간히 태우며 자랐습니다."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에서 태어난 신 사장은, 사춘기를 거칠게 보내며 학업에 대한 의욕이 없었던 일이 지금도 가장 후회로 남는다. "그때는 무작정 도시로 나갔어요. 하지만 가방끈도 짧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닥치는 대로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했지요. 제 청년기는 그냥 그렇게 힘들고 외롭게 흘려보냈습니다."
객지에 나가서야 비로서 잘못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지만 후회가 깊어질수록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오기도 생겨났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들어선 시점에, 더 내려갈 것도 더 실패할 것도 없었던 맨 주먹의 그였다.
"제가 남들보다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러면서 돈을 벌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자나깨나 오로지 부자가 될 생각만 했지요.그때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젊은 날을 치열하게 산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자산이 아닐까 합니다."
신사장은 1990년 객지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뚜렸한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난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온 절반의 금의환향인 셈.
고향에 돌아와 섣불리 일을 벌이기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중, 어머니의 작은 제안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약초시장에 작은 평수로 가게가 하나 났는데 한번 해보라고 제의하시더라구요. 처음엔 좀 의아했습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인삼 홍삼 같은 것은 지겹게 봐왔지만, 저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일단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신 사장은 그날로부터 장사꾼의 길로 들어선다. 주변 선배상인들에게 열심히 배우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하여 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간혹 열심히 장사를 하고도 손해 보기도 다반사.
"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일하고, 팔아서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겼 을때의 그 뿌듯함... 그리고 고객과 내가 모두 만족할 만큼의 거래가 성사 되었을 때의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더욱 더 원동력이 되어서 가게를 더 알차게 꾸려나갈 수 있었지요." 뒤돌아 보면 앞만 보고 뛰어온 나날이었다. 점점 일머리를 알고 지혜롭게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어느새 통장에 새록새록 자산이 늘어가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신 사장에게 초유의 위기가 찾아오니 온 국가적인 위기였던 바로 IMF였다.
"정말로 파리를 날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더라구요. 당장 먹고살기도 급급한 때이니 건강식품을 소비한다는 건 언감생심인 때였지요." 그래도 마냥 손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신 사장이 아니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전라도 건강원협회지회장님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분이라면 해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이었지요."
신 사장은 지금도 그날을 생싱히 기억하고 있다. 마이산 뒤쪽에 살고 있던 그분은 그때 건강원에서 약초를 달여, 전국으로 배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 지금의 쇼핑몰 개념이었다. '이거다!' 싶었던 신 사장은 금산으로 돌아오자 마자 특유의 순발력으로 인삼액과 인진쑥 제품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전국판매망 구축을 위해 발에 불이나도록 뛰어다니던 결과, 놀랍게도 이 두 제품이 날개 돋힌듯 팔려나갔다.
"처음엔 그렇게 신기하더라구요. 남들에게는 분명 위기였지만, 저에겐 또다른 기회가 되었던 셈이죠.이때 번 돈으로 사업도 늘렸으니 저에겐 IMF가 분명 효자죠.(웃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 그것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함께 다른 신 사장의 노력에 대한 보답은 아니었을까.
신사장에서 좋읐던 일들만 들어도 끝이 없겠지만, 그에 반대로 궂은 일도 많았다. 사람들로부터 겪은 배신감, 피 눈물나게 가난했던 시저들..., 하지만 신 사장은 모두가 현재가 있기 위해서 겪은 재산이라 여기고 싶다.
"신제품으로 홍삼즙까지 출시되다 보니, 이제 직원들도 늘고 연매출액도 28억이 넘을만큼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에 준공될 공장시설은 GAP GNP시설을 갖춰 기능성 식품회사로 업그레이드 될 전망이죠. 제2의 공장으로 준공하고자 하는 계획은 100억이 아닌 200억, 300억 500억 규모를 갖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신 사장은 자신의 성공 뒤에는 눈물로 뒷바라지 한 가족들이 있다며 자랑한다. 특히 부모님께는 지난달 속만 썩혀드렸던 철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그래서 공장 준공식과 동시에 새로 이사할 집에는 부모님도 함께 모시고 가 여생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는 꿈을 전한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어린나이에 나만 믿고 결혼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던 아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부모님도 계시니 말입니다. 이런 가족들의 정성이 있기에 하루하루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신사장의 앞으로의 꿈은 두 가지.
첫 번째는 못 다한 공부를 더 하는 것. 이미 대전대학교 한방최고 과정을 마쳤고, 금산 자치대학 CEO과정도 입학해서 다니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두번째는 이제는 내 고향 벌전에 힘쓰고 싶습니다. 사업체를 잘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앞으로는 봉사단체 등을 통해서 지역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의 걸어온 이력답게 사훈으로 '도전정신, 노력, 진실'을 내걸고 있는 신 사장. 그 자신도 아직도 '도전하는 정신력과 노력을 최고로 생각하며 살자' 는 것이 생활의 신조이다. 평소 고인이 된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가장 존경한다는 신 사장은,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 질문하곤 한다.
작년도 신고실적 28억을 기록한 한국인삼생약 영농조합법인을 이끌어 가는 신 사장은 요즘 또다른 비전과 목표를 세우기에 분주하다. 새 공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법인의 청사진을 미리 그려보는 것.
" 현재 우리의 모습은 28억이지만, 앞으로 300억 500억을 넘나드는 크나큰 기업으로 세우는 것이 저의 긍국적인 목표입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금산의 정주영'이 되겠다 는 저의 꿈이 부럽지 않겠지요(웃음)."
끊임없는 열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에너지를 전파시키는 신국주 사장으로 인해 금산의 내일은 한층 더 밝지 않을까.
첫댓글 사업가로 존경할만한 어렸을적 부터 친구인 국주에게 빛날만큼 성과를 이룰 미래가 있다고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친구여..홧팅!!
멋있는 분이세요 대박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