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군읍지 (富平郡邑誌) : 검색 - 디지털장서각
발행일 : 1899(광무 3년)
표제는 ‘光武三年(1899)十一月日富平郡邑誌’, 권수제는 ‘富平郡邑誌’이다. 不分卷 1冊(46張) 구성의 5침 線裝本으로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표지는 황색 종이에 문양이 없고 서명은 표지 위에 묵서하였으며, 표제 아래에 ‘京畿道’라고 표기하였다. 본문은 四周單邊, 有界, 無魚尾의 붉은색 筆寫印札空冊紙에 쓴 8行 字數不定 小字雙行 筆寫本이나, ‘富平郡先生案’부터는 3段 4行 字數不定이다. 채색 지도가 수록되어 있고 표지에 정방형의 ‘富平郡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권수에 富平郡地圖 채색본이 첨부되어 있다. 내용은 邑號, 四界, 建置沿革, 鎭管, 官員, 姓氏, 形勢, 風俗, 山川, 島嶼, 土産, 烽燧, 學校, 館舍, 驛院, 橋梁, 堤堰, 佛宇, 祠廟, 塚墓, 古蹟, 名宦, 人物, 富平郡先生案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치연혁조에는 1698년(숙종 24) 章陵에 불을 지른 崔弼成이 태어난 고을이라 현으로 강등시켰다가 10년 뒤에 복구시켰다는 기록까지 수록되어 있다. 형세조에는 삼면이 모두 물과 접해 있어 궁벽하고 황폐하며 낮고 습기진 땅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풍속조에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차마 볼 수 없다는 李奎報의 시를 인용하였다.
도서조는 산천조에서 분리하여 물차도, 호도, 응도 등 12개 도서의 위치와 둘레를 기록하였다. 고적조에는 自娛堂과 草亭을 언급하였는데, 모두 이규보의 기문으로 설명하였다. 선생안에는 尹瓘 등 고려 명환 6명, 權踐 등 조선 명환 4명을 비롯하여 1498년(연산군 4)에 부임한 李繼福부터 총 277명의 부임ㆍ이임 연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1896년에 부임한 申贊熙까지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 읍지는 1698년(숙종 24)경에 작성된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 『富平府邑誌』를 그대로 전사하고 부평군선생안을 덧붙인 책이다. 따라서 다른 부평군 읍지에서 중시되는 방리, 전부, 조적, 봉름, 군액 항목 등이 수록되지 않았고 선생안 외에는 읍지를 제작할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지만, 17세기 부평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