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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코로나19로 불발되었던 오프라인 학술대회를 다시 개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학술대회 주제는 ‘김교신의 독서’입니다. 발표자 강성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김교신 선생은 ‘지식인’입니다. 선생은 하나님 앞에서 산 신앙인인 동시에 역사 앞에서 산 지식인이었습니다. 기도로 믿음의 중심을 잡았고, 독서로 사상을 형성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한 신앙인이자, 신앙을 전공 영역으로 확장한 학자였습니다. 선생의 「조선지리소고」는 지리학자로서 ‘신앙과 학문의 합금’이 무엇인지 보여준 명논설입니다. 무교회 학파의 출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공부는 신학밖에 없고, 교회 안에만 하나님이 있다는 교회주의자들과는 그릇이 다릅니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우주와 역사를 교회로 삼았습니다.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는 물론 비기독교 쪽에서까지 널리 존경받고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인물로 김교신 말고 달리 누가 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1930년 전후 ML당 지도자로 4년 6개월 형기(실제 구속 기간은 5년 3개월)를 마치고 서대문형무소를 나온 공산주의자 한림(韓林)은 김교신의 올곧은 신념과 한결같은 신앙에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했습니다. 『성서조선』이 검열로 휘청거리고 창간 동인 일부가 등 돌리고 떠나던 무렵, 한림은 단테를 인용하면서 김교신을 격려하고 잡지 발간에 힘을 실어줍니다.
아, 군이여, 철저! 종시일관(終始一貫)! 확호부동(確乎不動)!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오늘 같은 ‘비상시’에 있어서. 분발하기를 바란다. ‘네 길을 가라.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하도록 버려둬!’”(단테)
한림의 편지를 읽은 선생은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무신론자 모 친구(한림)로부터 격려의 편지를 받고 감격의 눈물이 두 뺨이 흘러내림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시 언론에 떠돌던 풍문에 따르면 한림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원문(독일어)으로 읽은 ‘유일한 조선인’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엘리트 지식인이었습니다. 인물이 인물을 알아봅니다. 이념과 지향은 달랐지만, 김교신도 한림을 존경했습니다. 김교신은 1933년 ‘일기’에 “한림 군을 백두산기슭에 성장한 거목(巨木)에 비한다면, 오늘 기독교 신자의 대부분은 고층 건물의 옥상 분재(盆栽)에 불과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의기(意氣)의 세계’에서 이념을 초월해 우정을 나눈 거인들의 배포가 범인(凡人)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김교신은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오히려 기독교인과는 언어와 사상이 통하지 않는 데 반해, 소위 반(反)종교인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완전한 일치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서로 일맥이 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디 가서 기독교인이란 말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기독교가 조롱거리로 전락한 현 세태에서, 김교신은 한국기독교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마치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준비된 인물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전통적으로 무교회 그룹은 ‘신학’보다 ‘고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 노평구 선생의 고전 독서회에서 단테와 밀턴을 읽었습니다. 밀턴을 전공하고 칼라일을 번역했습니다. 신학은 머리로 하는 사변이지만, 고전은 믿음의 투쟁과 승리한 영혼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김교신의 문장은 ‘한국기독교의 고전’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선생은 일생 『성서조선』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습니다. 수익성이라곤 전혀 없는 잡지라 매호 월급을 쪼개 비용을 댔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일제의 온갖 치사한 간섭과 압력을 받으면서도 끝내 발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잡지 발행을 포기했더라면 집안 살림도 피고 삶도 훨씬 윤택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 유일의 성서 잡지’ 명줄을 스스로 끊을 수 없어, 1942년 3월 ‘성서조선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타살당할 때까지 버텼습니다. 일신의 편안을 포기한 삶입니다. 돈에 목숨 거는 요즘 세태에선 이해할 수 없는 삶입니다.
선생이 『성서조선』에 목숨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의 힘’, ‘책의 가치’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 존 밀턴이 책에 바친 헌사를 읽어봅니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인 이성적 창조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파괴하는 자는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것이며, 말하자면 눈앞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좋은 책은 위대한 영혼의 고귀한 생혈(生血)입니다. 책은 한 생명이 죽은 뒤에도 그 영혼을 불멸의 보물로 고이 간직합니다.
독서를 통해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밀턴의 말을 공허한 수사라고 말하지는 못할 겁니다. 책에는 저자의 영혼이 ‘불멸의 보물’로 간직되어 있다고 밀턴은 말합니다. 성경이 바로 그런 책이죠.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처럼 김교신은 책을 통해 길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책을 통해 길을 찾은 선생은 자신이 발견한 길을 『성서조선』을 통해 동포에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성서조선』과 『김교신전집』은 김교신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명실상부 한국기독교의 고전입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김교신에게 ‘영혼의 고귀한 생혈’을 공급해준 ‘책’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는 자리입니다.
끝으로 ‘김교신과 책’을 주제로 한 자리이기에 한가지 부탁드립니다. 기념사업회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김교신 관련 누락자료를 빠짐없이 수집해 『김교신전집』의 최종완성본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기념사업회는 초대 이만열 회장님 재임 시 『김교신일보』와 『성서조선영인본·색인』 발간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작업이자 가장 까다로운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밀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대한 영혼의 고귀한 생혈’의 누락분을 모으는 일입니다. 고전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김교신 연구의 100년, 500년 초석을 놓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한 분이라면 이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합니다. 자료 발굴에 나설 분을 기다립니다. 김교신을 사랑하는 분이면 됩니다. 인문학과 책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더욱 좋겠지요. 고상한 야심(noble ambition)을 품은 연구자의 등장을 고대합니다. 항상 큰 힘이 되어주시는 김정옥 선생님, 김승진 이사장님 등 유족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2년 11월 19일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장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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