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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결단에 보답하기 위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오는 7일부터 8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실무 방문한다고 대통령실이 2일 오후 밝혔다.
이참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지난 과거를 사과한 예를 찾아보기로 한다.
일본은 독일처럼 사과하지 않았다.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맞는 말일까.
1. 일본은 이제까지 총리나 장관급 인사에서 38번 이상 사과했다. (글 맨 아래 첨부)
2. 일본이 1965년 배상한 금액은 총 8억 달러 이상에 달한다.
국내 물가 상승률을 기준으로 하면 이 돈은 현재의 7조 7900억과 맞먹고,
정부 예산이나 GDP 증가율을 지표로 삼아 환산하면 엄청난 액수가 된다.
(65년 한 해 예산의 87%를 현재 한 해 예산의 87%로 치환하면 470조 가량의 금액, GDP를 기준으로 잡으면 500조 이상의 가치)
1965년 일본에게 받은 6억 달러는 당시 일본 외환 보유고의 절반 가까이에 달했고,
이는 식민지 지배국이 보상한 사례 중에도 전례가 없던 액수였다.
(동남아 국가 배상금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동원된 승전국 보상이었다.)
65년 이후 박정희 정권은 이 돈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포함한 수도권 집중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전체가 수혜를 봤다고 하나, 민간인 보상에 쓰여야 할 배상금을, 한국 정부가 국가 발전에 사용한 셈이다.
따라서 일본이 강제 배상 판결을 이중 배상이라며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도,
피해 사실을 부정한 게 아니라 재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국 민간인들의 청구권은 국제 조약으로 소멸되었기에, 한국 정부에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이 맞다.
결론적으로 어느 제국도 식민지에게 일본만큼 배상한 사례는 없다.
더군다나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으면서, 한반도 땅에 남은 일본 민간인들의 재산도 포기했다.
쉽게 말해 그들이 만들어둔 도로•건물•공장•광산의 값을 청구하지 않았다.
여타 유럽의 식민국들과 다르게 민간 투자자들의 손해를 감수하고 철회한 것 또한 20억 달러에 다다르는 거액이었다.
사실 조선(대한제국)은 국제법상으로는 패전국인 일본의 부역국 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적어도 금전적으로는 최대치의 보상을 받았다.
또한 1998년 IMF 지원금 지원의 대부분을 일본과 미국이 지원하기도 했다.
3. 어느 나라나 역사를 뒤틀고 인정하지 못하는 부류는 존재한다.
독일 음지에도 여전히 네오 나치들이 있고, 영국에도 제국주의 단체들이 존재한다.
소수의 무책임하고 과격한 발언들을 인용해, 마치 다수의 가치관이거나 일본 정부의 공적 발언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대한민국 언론 지형의 문제다.
4. 독일은 일본과 다르게 철저하게 사과하고 반성했다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추모하는 장면이다.
그 이면에는 국가 차원 배상은 요구하지 않을 테니 개인 피해 청구를 한다는 폴란드와,
1953년 런던 부채 협약으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던 서독 간의 줄다리기가 있었다.
또한 탄자니아나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의 식민지국들에 대해서 침략이나 학살 등에 대해서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의 배상과 사과가 이뤄진 적이 없다.
대신 경제적 원조를 약속한 사례는 있으나, 한국에 외환 보유고의 절반 가까이를 지불한 일본에 비해,
외환 보유고의 1%에 해당하는 적은 금액만 지원했을 뿐이다.
즉, 독일은 유대계와 주변 유럽국들에게만 제대로 사과했다는 것인데, 사실 영국이나 타 제국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원래 먼 국가일수록 더 긍정적으로 보이고, 가까운 국가일수록 부정적인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5. 학술지, 논문, 교과서 등에 자국 우선주의 관점으로 편향된 역사를 기술해둔 것은,
한-일-중 세 국가 모두 해당된다.
6. 한국의 편향된 교육에서는 이런 부분을 말하지 않는다. 또 배상을 하면 돈이면 다냐며 사죄를 말하고,
사죄 표시를 하면 배상에 대해 말한다. 또 진정한 사과는 한 적이 없다고 한다.
7. 식민 지배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사과한 적 없다는 게 선동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반일 감정은 후천적으로 교육된 것이다.
학교 교육부터 대중문화, 역사 프로, 정부 발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도가 들어 있다.
2년 전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태 때 국민 다수가 불매에 동참했으나, 정작 이유는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한•미•일 정상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언에 일본은 반발했다.
그리고 한 해 뒤 이미 배상이 끝난 강제 징용 문제를 두고 한국은 다시 판결해 일본에 이중 보상을 요구했다.
그래서 세계분쟁위원위에서도 일본 편을 들었고, 일본은 불복의 의미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린 게 아니라 편의를 봐주던 것을 해제했을 뿐이었다.
우호국으로서 편의를 봐주던 것을 이제 타국과 똑같이 대하겠다는데,
정부와 언론은 마치 한국에게만 피해를 끼친다는 식으로 선동했다.
원인을 제공하고는 상대방을 후안무치한 국가로 만들어버렸다. 역사적 사실은 건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남긴 것들은 사회 전반의 밑바탕으로 쓰였다. 도로와 근대식 건물, 공장과 광산이 그랬다.
다른 유럽 제국의 경우 보상과 동시에 남겨두고 간 민간 사업체에 대해 재산을 청구했다.
현실적으로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는 인프라의 기초는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8. 이스라엘 총리가 과거는 잊고 독일을 증오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대인 특유의 자신들의 죄 때문에 불행이 발생한다는 가치관도 있겠지만,
그들의 수반은 비극이나 지배를 당한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는다.
반면 대한민국은 조선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모든 역사의 요인은 외부에 있을 뿐이다.
9. 더 이상 현대의 일본인들을 증오할 이유가 없다.
누가 나에게 찾아와서 당신 증조할아버지가 우리 증조부에게 해를 입혔었다,
그러니 내게 사과하고 배상하라 하면 아마 무시할 것이다.
그게 일반 대중이어야 한다. 일제 시대의 피해는 지금까지 오지 않는다. 이미 6.25로 한 번 뒤집힌 대한민국이다.
일제 시대 직접적인 피해자 분들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책임을 지고 보상해드려야 한다.
이제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남은 여생을 편안히 보내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
일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들은 이제 우호국이고 한•미•일 군사적 동맹국인 만큼 현대의 일본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
당장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에게도 관심이 없고,
동네 어르신 한 분 신경 써드리지 않으면서, 민족이니 국가니 떠드는 건 위선이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병폐다. 대체 현 시대 일본의 아이들이나 유학생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기사 댓글에 욕이 달리고 쪽바리라는 인종 차별을 당해야 하나.
고려부터 조선 후기까지 몽골-중국에 당한 걸 지금 기억하고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사실 한두 세대만 지나도 양국의 갈등은 많은 부분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나는 오히려 노년을 피해자로만 보내게 하면서 중간에서 후원금 가로채는 정의기억연대 같은 단체야말로
아직 잔존한 전범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10. 정치적으로 일제 시대나 비극을 이용하는 세력에게 표를 줘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나의 가난이나 슬픔까지도 언제든지 이용하고 폐기할 수 있는 이들이다.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유치원생들이 쪽바리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초등학생들이 죽창가와 토착왜구 거리고, 고등학생과 청년들이 불매에 동참하는 이 국가에
어떻게 세계사적 인식이 자랄 수 있겠나. 역사 연구가들에게 향하고 있는 지금의 폭력은 파시즘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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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키시 노부스케 (국무총리) - 우리는 전쟁 중에 우리가 저지른 괴로움을 깊은 후회로 바라봅니다.
속죄를 위한 의지로 일본은 전쟁 배상에 대한 호의와 의무를 충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이 아닙니다.
1965년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부 장관) - 우리의 두 나라, 특히 대한민국의 긴 역사는 불행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유감이며 우리는 깊게 후회합니다. (한일 조약에 조인하며)
1970년 다나카 카쿠에이 (국무총리) - 일본 측은 전쟁을 통해 중국인에게 저지른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스스로 책망합니다.
더욱이 일본 측은 중국 정부가 제시하는 ‘관계 복구를 위한 세 개의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두 나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입장을 재확인합니다. (일•중 공동 성명)
1982년 스즈키 젠코 (국무총리) - 난 과거 아시아 국가들에 심각한 피해를 가했던 일본의 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비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2년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 장관) -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과거 우리가 했던 행동들과
파시스트 정부의 길을 따랐던 것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야기했던 사실을 알고 그런 행동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후회가 깊습니다.
그리고 일중공동성명을 통해 일본이 야기한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감을 인정했습니다.
이 성명들에 대한 결정과 진술과 인식이 모두 바뀌지 않았음을 확증합니다.
지난 두 성명의 정신은 당연히 일본의 학교 교육과 교과서 인증에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1984년 히로히토 (일왕) - 오늘날 이 기간 동안 우리 사이의 불행한 과거는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리고 난 이것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전두환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198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국무총리) - 일본이 당신의 나라와 국민들에게
거대한 고통을 끌고 왔던 기간이 이 세기에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일본의 정부와 국민들이 이 오류에 대해 유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진술합니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국무총리) - 1945년 6월 6일에, 유엔 헌장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되었을 때,
일본은 40개 국가와 무의미한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전으로부터, 일본은 걷잡을 수 없는 민족주의와 군국주의,
세계 많은 나라의 국민들과 나라에 대대적인 파괴를 가져온 전쟁의 촉진을 깊게 후회했습니다. (유엔에서의 연설)
1989년 타케시타 노보루 (국무총리) - 우리가 이전에 명료히 했던 것같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은
과거 일본의 행동이 이웃 국가들의 많은 국민들에게 괴로움과 상실감을 주었던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회와 해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런 일들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평화로써의 과정을 따라왔습니다. 이 의식과 후회는 특히 일본과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반도 사이의 관계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기회에 한반도에서 새로운 상황을 직면한 것 같이, 과거 관계에 대한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큰 후회와 슬픔을 표현하길 원합니다. (일본 국회에서의 연설)
1990년 나카야마 다로 (외무부 장관) - 일본은 이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된 한국인 분들이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일본 정부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 당한 것과 종전 후에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던 비극에 대해 깊게 사죄합니다.
(188번째 외교 국회 회의 하원위원회)
1990년 아키히토 (일왕) - 우리 국가에 의해 전해진 불행한 기간 동안, 당신의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비추어 볼 때,
가장 큰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1990년 가이후 도시키 (국무총리) - 과거 특정 기간 동안 일본의 행동으로 한반도의 국민들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겪었는지 겸손하게 직면하고 사죄를 표하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국무총리) - 위안부에 대하여, 난 내 마음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사과합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던 분들에게 유감을 느낍니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국무총리) - 우선적으로 일본인들은 우리 국가의 행동으로 인한 과거 타국민들이 경험했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사실을 마음속에 품고, 뉘우침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무총리로서, 난 한 번 더
마음 깊은 곳의 유감과 당신 국가의 국민들에게 사죄를 표합니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국무총리) - 우리 국가와 당신 국가 사이에 잊지 말아야 할 관계는 수천 년 동안
우리가 공격자였고 당신들이 희생자였던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난 다시 한 번 우리 국가의 행동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당신들이 경험했던 괴로움과 슬픔을 위해 가슴 깊은 유감과
사과를 표하고 싶습니다. 최근 군 위안부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난 이런 부분이 진심으로 애처롭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대한민국 방문 중의 정책 연설에서)
1992년 가토 고이치 (국방 장관) - 정부는 군 위안부로서 그들의 국적과 출생지에 관계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곤란을 겪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유감을 표합니다.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깊은 양심의 가책과 결단력으로,
일본은 대한민국과 다른 국가들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평화주의 국가로서 자국의 위치를 관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난 정말로 이 쟁점에 관해 몹시 슬픔을 느낍니다.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음으로서,
난 그런 곤경을 겪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슨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싶습니다. (관방 장관 성명)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 - 의심할 여지없이, 당시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심한 상처를 입혔던
군 당국의 만행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다시 한 번 자국의 진실한 사과와 참회를 출신 장소와 위안부 여성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치료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부상을 겪은 이들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넓힐 기회를 두고자 합니다. (위안부 조사 발표에 대한 고노 담화)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국무총리) - 나 자신은 이것이 공격의 전쟁이었고,
잘못된 전쟁이었음을 믿습니다. (취임 기자 회견에서)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국무총리) - 그 때로부터 48년 후,
우리의 국가는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지난 전쟁에서의 궁극적인 희생과, 이전 세대 국민들의 업적의 산물 위에 설립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빌어 과거와 새로운 결정에 대한 참회를 확실하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 경우에서, 우리는 과거 일본에 의한 침략과 식민 통치가 많은 이들 위에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사죄합니다. (일본 국회 127회 회의에서)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국무총리) - 난 정직하게 일본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난과 슬픔을 불러왔다는 인식과 다시 한 번 깊은 유감과 사과를 표현하기 위해 ‘공격한 전쟁’과 ‘공격의 행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일본 국회 128회 회의에서)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국무총리) - 과거의 특정 기간 동안 일본의 행동은 수많은 희생자들과
근처 아시아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이 공격 행위들, 식민 통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야기했던
일본의 역사를, 이웃 아시아와 함께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일본의 미래 진로가 반전 책무에 맞춰 세계 평화를 만드는 데에 전념해야 할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나의 신념을 진술하고자 합니다. 오직 굳건한 상호 이해와 양면에서의 고통을 극복함으로 건설되는 자신감만이
우리와 이웃 나라들이 함께 아시아-태평양의 미래를 깨끗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흐렸던 군 위안부 논쟁에서, 난 다시 한 번 이 기회를 이용해 나의 깊고 진실한 유감과
사과를 표하고 싶습니다. (‘평화, 우정, 그리고 진취성을 교류하다’에서)
1995년 일본 국회 - 2차 세계 대전 50주년에서 의회는 만행에 당한 사람들과 전쟁의 희생자들 그리고
비슷한 만행에 당한 각 세계에 신실한 조의를 표한다. 많은 식민 통치와 현대 세계 역사 속 공격 행위,
그리고 일본이 그러한 행위들을 과거에 행한 것을 인정한 것, 고통과 곤경을 다른 나라들의 국민들,
특히 아시아에서 가한 것에, 하원 의원들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 (하원 평화 결의 후의 발표문)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국무총리) - 이른바 군 위안부에 대한 문제는 당시의 일본군과 관련된,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심각하게 더럽힌 하나의 흉터입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난 군 위안부로서, 감정적, 육체적 부상을 겪은 사람들에게 깊은 사죄를 표합니다.
(아시아 여성 기금을 설립하며 국무총리 성명)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국무총리) - 멀지 않은 과거의 특정 기간 동안, 일본은, 자국의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입혔습니다. 미래에는 그런 실수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난 생각합니다, 인류애의 정신에서, 이 반박할 수 없는 역사의 사실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기에 나의 깊은 후회를 표하고,
내 가슴 깊은 곳의 사과를 전합니다. (8월 15일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국무총리) - 일본화 정책 같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 양상이 얼마나 한반도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혔을지는 상상 이상입니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어떤 것도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이것보다 더 해칠 수는 없으며, 깊은 유감과 마음속 사죄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1998년 국무총리 대변인 - 2차 세계 대전 전쟁 포로들에 대한 국무총리 하시모토 류타로의 성명입니다.
일본의 하시모토 국무총리는 지난밤 직접 영국의 블레어 수상에게 2차 세계 대전 중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깊은 참회와 진심어린 사죄를 표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만남이었고, 우리는 특히 올해 회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국무총리는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유감과 사죄를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사죄에 대한 감정과 참회에 대한 감정은 지난 세계 대전을 경험했던 모든 나라들에게 연설되었습니다.
1998년 하시모토 류타로 (국무총리) -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일본 정부는
국립 보상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하여 아시아 여성 기금과의 긴밀한 협력을 진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과거 네덜란드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국민들에게 일본에 의해 야기된 거대한 피해와 고통에 대해
깊은 참회와 진심어린 사과를 갱신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작년 6월 네덜란드 방문에서 이런 감정으로
인도 기념비에 헌화했습니다. (네덜란드 수상 윌리엄 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998년 아키히토 (일왕) - 일본이 한반도에 크나큰 고통을 준 기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찬 연설에서)
1998년 오부치 게이조 (국무총리) - 이 시대에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식민 통치로 인한 피해와 고통의 역사의 사실을 참회합니다. (한일 공동 선언 중)
1998년 오부치 게이조 (국무총리) - 양 국은 정면으로 과거를 응시하는 것과 정확하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일본과 중국 사이의 관계 발전을 위한 중요한 토대라고 믿습니다.
일본 측은 1972년 일.중 공동 성명과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국무총리 성명을 준수합니다.
일본 측은 과거 특정 기간 동안 중국에 가한 공격을 통해 중국 국민들에게 야기한 피해와 곤궁에 대한 책임을 심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해 깊은 사죄를 표합니다.
일본 측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서로의 평화와 발전의 길에 붙길 희망합니다.
이것에 기초해서, 양쪽은 우정의 관계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일본-중국 관계에 대한 성명)
2000년 우메즈 이타루 (일본 총영사) - 일본은 반복해서 자국의 진실한 참회와 사죄를 표해 왔고,
배상 문제를 진실하게 처리해 왔습니다. 이 사과들은 반박의 여지없이 표현됐고,
특별히 1995년 국무총리 모리 요시로를 포함해서, 내각 결정과 성공적인 총리들에 의해 그 뒤로 유지되어 온 것에 기초한
내각총리대신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공식 성명에서, 일본이 자국의 식민 통치와 공격성을 통해,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거대한 피해와 고통을 야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실수가 미래에 만들어지지 않기 위한 희망에서, 난 겸손한 마음으로, 이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내 깊은 참회의 심정과 가슴 깊은 사죄를 진술합니다. (8월 10일 홍콩 극동 경제 검토에서)
2000년 고노 요헤이 (외무부 장관) - 난 일본의 역사의 자각이 2차 세계 대전 종전 5주년 기념일에서 내각 결정에 따라,
국무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제기했던, 성명 속에서 출발되었다고 분명하게 믿습니다.
내각의 구성원으로서, 난 그 성명의 초안에 참석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이후 성공적인 관리에 의해 가결되었고,
지금은 일본 국민 대다수의 일반적인 관점입니다. (중국 방문 중의 연설)
2001년 후쿠다 야스오 (관방 장관) -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기간 동안,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큰 피해와 고통을 일으켰던 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이것에 대해 깊은 참회와 진실한 사죄를 표합니다. 이러한 인정은 이후 내각에 의해 계승되었고 현재 내각에선
이것에 관한 변화가 없습니다. (2002년부터 고등학교 학생에게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방 장관의 논평)
2001년 다나카 마키코 (외무부 장관) - 우리는 지난 전쟁 동안 일본이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일으킨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소중한 생활을 잃었고 부상을 당했습니다.
전쟁은 포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대면하면서,
난 오늘 1995년 무라야마의 성명에서 표현된 우리의 깊은 참회와 가슴속 사죄를 재확인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체결 50주년 기념행사에서)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국무총리) - 담화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총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참회와 사죄를 표한 서대문 독립 공원에서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국무총리 방한 이후)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국무총리) - 일본의 국무총리로서, 난 이와 같이 위안부 여성들에게
가장 진실한 사과와 참회를 넓힙니다. 우리는 과거의 무게와 미래에 대한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정면으로 과거 역사를 바라보고 자국의 도덕적 책임을 미래 세대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1995년 이후부터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모리 요시로를 포함해 모든 국무총리에 의해 서명됨)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국무총리) - 일본 측은 과거 식민 통치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거대한 피해와
고통을 야기한 역사적 사실에, 깊은 조의와 사죄를 표합니다. (조•일 평양 선언)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국무총리) - 전쟁 동안, 일본은 많은 타국인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야기했습니다.
일본의 국민을 대신하여, 나는 이로써 내가 희생자들에게 신실한 애도를 표하고 내 참회의 심정을 갱신합니다.
(전사자에 대한 58기 기념행사에서 국무총리 연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국무총리) - 일본은 겸손한 정신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항상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깊은 참회와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으로,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끊임없이 경제적 힘을 군사적 힘으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모든 문제를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원칙을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은 다시 한 번 세상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신뢰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을 세계의 국가들과 즐깁니다. (2005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에서 일본 국무총리의 연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국무총리) -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국내와 해외 모두의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끔찍한 전쟁의 교훈을 악화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전쟁을 다시 수행함 없이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2007년 일본 의회 – 생존 위안부에 대해 공식적 사과를 제기했습니다.
2007년 아베 신조 (수상) - 위안부 여성들에게, 인간으로서 또 총리로서 진심으로 동정하며,
그러한 지극히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진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20세기는 인권 침해가 많았던 세기이며, 21세기가 인권 침해가 없는 평안한 세기가 되도록 일본도 공언하고 싶다.
또 이러한 말을 오늘, 부시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다. (미•일 정상 회담에서)
2009년 일본 정부 – 죽음의 바탄 행진에서 고통을 겪은 미국인 전쟁 포로들에게 사과합니다.
2010년 오카다 가쓰야 (외무 장관) - 백 년 전 한국인들의 나라와 국가적 자존심을 박탈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식민지 합병 100주년 성명에서)
2010년 간 나오토 (국무총리) - 일제의 식민 지배 시기 동안의 한국에 가한 가학 행위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덧붙여, 대한민국이 요구하고 있었던 귀중한 문화 유산은 돌려줄 것입니다.
2010년 오카다 가쓰야 (외무 장관) - 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인들에 의해 수감자로 갇혔던
6명의 전 미국 참전 용사 집단에게 사과합니다.
2010년 간 나오토 (국무총리) - 식민지 지배로 인한 큰 피해와 고통에 대해 깊은 유감과 마음 깊은 사과를 표합니다.
일본이 한국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여서 한국을 식민지화 했고,
역사를 해결하기 위해 정직한 관점으로 자국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2011년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 장관) - 일본 정부의 내빈으로서 제국시대 일본 포로였을 동안
그들이 받은 학대에 대해 사과합니다.
2013년 하토야마 유키오 (국무총리) - 중국 내의 일본인 전쟁 범죄에 대한 희생자들에게 정식 사과를 제기합니다.
(난징 방문 동안)
2015년 하토야마 유키오 (전 국무총리) -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방문하여 헌화하며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다.
2015년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 - 위안부로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합니다.
진정성이 어찌 되었든 간에 국가 수반이 40여 차례에 가깝게 사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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