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8주 목(성시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릴 때의 이야기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예수의 모델을 찾았다. 로마 시내 구석구석을 찾아다녔으나 좀처럼 예수와 닮은 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변두리의 교회에서 기도하는 청년을 보게 되었다. 빛나는 눈동자, 맑고 기품이 있는 얼굴, 그 모습에서 우러나는 위엄과 광채는 예수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다빈치는 다가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그 청년을 모델로 삼는 데 성공했다.
예수의 그림을 다 그린 후 사례금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단호히 거절했다.
“선생님, 저는 돈을 바라고 모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잠시나마 예수님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다빈치는 그 청년의 마음씨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그 후, 다빈치는 그림 그리기에 온 힘을 다하여 여러 해 만에 예수를 비롯한 열 한 명의 제자를 그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를 팔아먹은 배신자 유다였다. 그러나 유다의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빈치는 또다시 유다의 모델을 찾으러 로마 시내를 샅샅이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범죄와 마약 환자의 소굴인 뒷골목에서 마침내 유다의 모델로 적합한 사람을 찾게 되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 사람은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기․도둑질․도박 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니던 비열한 위인임이 분명했다.
다빈치는 서슴없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희멀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 돈만 많이 주면 되어 주지요. 나에겐 돈이 필요하니까.”
마침내, 그 사람을 화실로 데려와 마지막 그림인 유다를 그리기 시작했다. 거의 유다의 모습이 완성되어 갈 즈음 갑자기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작품이 다 되어 가는데 왜 눈물이오?”
“선생님!…….”
“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라도 있소?”
“정령,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저는 처음 이 그림을 그리실 때 예수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한심해서 이렇게 눈물이 나온답니다.”
“아니, 뭐라고?”
다빈치는 깜짝 놀라 소리치며 사나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의 모습에서 지난날 예수님 모델 때의 모습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다빈치는 울고 있는 그 사람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독일 속담에 「사람은 자기 운명의 건축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의 모델이 될 정도로 건장하고 훌륭했던 청년이 몇 년 만에 그렇게 폐인(廢人)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운명은 좋은 쪽으로 개척할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빠질 수도 있지요. 확실한 것은 ‘행복도 내가 짓는 것이요, 불행도 내가 짓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로 완성되도록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고통 없는 영광이 없음을!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어지는 고통과 힘겨움은 결국,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란 영광스러운 존재로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자 하심이다.
세상의 유혹과 가치의 혼란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의심이 일고, 더이상 주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의미 없다 여겨질 때 우리는 오늘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 더 열심히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첫댓글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아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마라."
하느님께서 늘 제게 들려주시는 말씀인데ᆢ
행복도 불행도 내가 짓는 것임을 새기며ᆢ
아멘.
아멘 좋은 강론 감사합니다
처음 듣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인생반전은 쉬 잊혀지지 않을.것.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늘.비유를.들어 말씀하셨듯이,
비유를 들어.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다듬어주셔서.감사합니다.
무너진 집 한귀퉁이 허름한 곳간에서
그분의 자비에 감사와.찬미를.드리며
소박하게 늙어가는 한 노파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