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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위구르 실크로드 7일차 '26.6.9 카스고성, 향비원
□ 여행트랙
< 카스고성 >
<향비원>
□ 여행일시 : 2026년 6월 9일 화요일 맑음, 영상 38도
□ 여행코스 : 부얼진호텔 ~ 카스고성 ~ 향비원
□ 동 행 인 : 등산지부 31인, 산바라기투어 임경성 부장, 현지 가이드 김정길
시내에 있는 고성을 돌아보는 길은 우리 한양도성길 순례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었다. 주변이 모두 상가이고 대로변이라 고성이 아닌 상점 순례길이다. 그래서 고성을 벗어나 시내로 다니며 카스 본연의 거리를 찾으러 다닌다. 이런 명소에와서 제일 기다려지는 게 자유시간인지라,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대가 크다.
고성에서 나가는 길이 지도와 사뭇 다르다. 고성 외곽은 삶의 현장이라 관광객이 지나가기가 조심스럽다. 바이두지도와 오룩스맵을 켜고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GPX 기록을 하며 고성외곽으로 나온다. 먼저 인민공원으로 나가서 공원을 한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도로를 건너서 동호공원에서 시원한 도심 호반을 걷는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카스대학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냥 발길을 돌려 집합장소인 카스고성 앞으로 향한다.
향비원은 우리나라의 비원과 같은 궁중 정원으로 가는 곳마다 향비가 지나간 발자취를 느끼려고 한다. 가끔 오디가 익어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입술을 검게 물들인다. 조지아에서는 하얀 오디가 그리 달콤했었다. 향비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모처럼 여유로운 일정으로 호텔로 향한다. 수영을 하는 이들이 있고 별도로 모여서 즐거운 실크로드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호텔 ~ 이민국 ~ 카스고성 경로>
<오전 이동경로 요약>
<향비원 ~ 호텔 경로>
<오후 이동경로 요약>
<향비원 구글사진과 이동경로>
<여행앨범>
14:31 카스고성(喀什古城, 약1273m, 호텔출발부터 이민국(移民事服务中心)을 경유하고 27.8km, 호텔출발부터 2:31), 카스고성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의 성벽만 고성 형식으로 보이고, 그 뒤로는 관광상각로 채워져 있다. 카스고성을 돌아보는 것은 이들 관광상가에서 파는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다만 그 옛날에도 이런 상점들이 있었는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주어진 자유시간에는 관광상가는 간단히 보고 시내 걷기를 하고자 한다.
카스관광구 걷기 : 카스고성 입구 ~ 15:07 마오주석상(약1284m, 2.1km, 0:36) ~ 인민광장(마오주석상 건너편) ~ 15:15 인민공원(2.5km, 0:44) ~15:26 탈리무로(塔里木路, 약1292m, 3.3km, 0:55) ~ 15:32 동호공원(东湖公园, 약1285m, 3.9km, 1:01) ~ 15:54 카스고성 동문입구(약1275m, 5.5km, 1:24)
14:31 카스고성(喀什古城, 약1273m, 호텔출발부터 27.8km, 호텔출발부터 2:31),
카스고성 안내도를 보고 어떻게 지나갈까를 계획한다.
이 더운 날씨에 카스고성 안에서 인기있는 곳은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전통복장을 입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매력이다. 카슈가르 바자르는 현지 최대 규모의 시장 중 하나로 현지인들의 활기찬 일상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향신료와 말린 과일, 전통 의상, 카펫, 공예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옷을 빌려주는 곳이 많다.
이정표를 보고 출구를 찾는다. 한글로 부기한 내용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내도나 주요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한글로 안내한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가게마다 파는 것이 다르지만, 거의 같다는 생각도 든다.
커다란 동충하초를 파는 곳이 있다.
모자가 만원 미만에 파는 것도 있어 상품 가격은 아주 싼 편이다.
자수제품은 아주 비싼 편이다. 개와 사슴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이 거리를 나가고 싶어도 출구를 제대로 찾을 수 없다.
14:57 서남쪽 막다른 골목, 지도상으로는 이 곳에 출구가 있는데 폐쇄되어있다.
15:03 카스고성 남문(약1292m), 이제 겨우 출구를 찾았다. 입구와 출구에서는 짐검사를 위한 스캔이 필수이다.
15:07 마오주석상, 인민광장(약1284m), 마오주석상 건너편에는 탑이 있고, 마오주석상 뒤에는 시정부(시청)이 표기되어 있다.
이 공원은 법률로 특화된 공원으로 보여진다. 민법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사회생활의 백과사전과 같으며, 총 7편에 1260조의 조문이 총칙, 물권, 계약, 인격권, 혼인가정, 상속 등의 법에 대한 설명이다.
법치문화 명인으로 당태종 이세민을 비롯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15:15 인민공원(2.5km, 0:44), 미루나무가 주종인 것은 특이하다.
다른 도시의 공원과 다르게 수수한 멋이 있다. 일단 뜨거운 햇빛을 가리니 너무 시원하다.
시민들이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15:26 탈리무로(塔里木路, 약1292m, 3.3km, 0:55)
카드게임을 즐기는 이들을 지나 호수공원으로 이동한다.
15:32 동호공원(东湖公园, 약1285m, 3.9km, 1:01), 시원한 호수공원에는 여유로운 산책을 하며,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다.
자귀나무가 핑크빛 꽃을 피웠다.
반달그네를 타 보며, 호수를 맴돌고 있다.
육교로 오르면 집합장소인 고성동문으로 갈 수 있다. 고대민가는 카슈가르 고성 동북쪽 절벽 위에 자리한 전통 위구르 주거지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생활문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흙벽돌로 지어진 가옥들이 층층이 이어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며,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성채처럼 보인다.
마귀성으로 돌아오라고 유혹한다.
대관람차가 돌아간다.
15:54 카스고성 동문입구(약1275m, 5.5km, 1:24), 카스고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아이스크림도 사 먹는다.
15:54 카스고성 동문입구(약1275m, 5.5km, 1:24), 햇빛을 피하여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17:08 향비원 도착(香妃园, 1297m), 카스고성 관광을 마치고, 바로 건너편에 있는 향비원으로 향한다.
향비원은 청나라 건륭제의 비였던 ‘향비(香妃)’의 고향이자 가족 묘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향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아름다운 돔과 정교한 타일 장식이 특징이며 신장 지역 이슬람 건축의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부에는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과 관련 전시가 마련되어 있어 카슈가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광지이다.
<아박 코자 묘소 안내판>
아박 코자 묘소는 아팍 코자 묘소 또는 아팍 코자 무덤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코자 무덤"
이라한딘. 강희제 9년(1670년)에 착공하여 무함마드 유수프(아팍 코자의 아버지)와 그의 중앙아시아 출신 후손 5대에 걸친 72명의 가족 구성원을 안장했다. 현재는 58개의 무덤이 남아 있다. 강희제 33년(1694년)에 흑산파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불에 탔다. 아팍 코자는 수만 냥의 은을 들여 수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묘소를 재건했다. 동치제 재위 13년(1874년), 코칸드 침략자 야쿠브 베그는 중국식 묘소 양식으로 재건축을 명하여 대규모 종교 능묘 단지를 조성했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주변의 수많은 무덤들과 함께 점차 황폐해지고 훼손되었으며, 본당은 1948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이 능묘의 건축 양식과 격자 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1957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중대문화재로 지정되어 복원되었으며, 1988년에는 국무원에 의해 제3차 국가 중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아팍 코자는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 걸쳐 신장 지역 백산파 이슬람교의 지도자였으며, 잠시 동안 준가르 칸국의 남부 신장 통치 대리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폭정은 광범위한 고통을 초래했고, 그는 곧 반란으로 사망했습니다. 청나라가 신장을 재정복하고 통치하는 동안, 두 명의 호자(Khoja)와 장거얼(Zhang Ge'er)을 비롯한 그의 후손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분열시키고 모든 민족을 탄압했습니다. 마침내 청나라는 광서제(廣羲帝) 즉위 초기에 남은 잔당들을 완전히 진압했습니다. 이 시기는 12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현대 전승에 따르면 청나라 건륭제의 위구르족 후궁(용비, 전설적인 향기로운 비비)이 이곳에 묻혔다고 하여, 이곳은 "향비릉"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무함마드 유수프(Muhammad Yusuf)의 가족 중 용비의 삼촌과 형제들은 청나라의 신장 재정복 및 통치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이후 베이징으로 이주했습니다. 룽비(永君帝)는 사후 허베이성 쭌화현 동청릉의 옥릉(玉陵) 내 황비원묘에 안장되었다.
17:06 향비원 매표소(약1294m)
향비원은 향비가족의 무덤이 주로 이루고, 그외 기념관, 조각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비단길을 재현해 놓았다.
향비원 입구로 들어간다.
향비원을 돌아보는 순서를 적어놓았다. 1향비표지석 ~ 2향비소광장 ~ 3향비애정수(나무) ~ 4향비부조담 ~ 5도강장랑 (항아리 장식) ~ 6향비소무대 ~ 8 건륭제와 향비 동상 ~ 9보월루 ~ 10 향우문 , 석류자탑 ~ 12 자유지(기름짜기) , 경지(연못) ~ 13 묘지 ~ 14 정경당 ~ 15 가만청진사(모스크) ~ 17 고저예배사 (모스크) ~ 26 애정탑 등이다.
향비가 놀던 누각인 것 같다.
향비부조상, 애정수 설명판을 바라본다.
건륭제와 향비의 애정스토리를 부조로 표시한 담벼락이다.
보월루, 향비과원, 문향정으로 가고 있다.
보월루
문향정, 향비가 춤울 추던 곳이라는 설명이 있다.
항아리가 있는 장랑에서 햇빛을 피하여 쉬고 있다. 도기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경지(Mirror Pool), 거울 보듯 그대로 비쳐준다.
석류자탑, 건륭제와 향비의 동상
묘지는 대충 보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향비원의 중심이라고 한다.
아팍코자마자르, 또는 아팍 코자묘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일반적으로 코자 무덤이라 한다. 1670년에 차가공하여 무함마드 유수프(아팍코자의 아버지)와 그의 중앙아시아 출신 후손 5대에 걸친 72명의 가족을 안장했다. 현재의 58개의 무덤이 남ㅇ나있다. 1694년에 흑산파 이슬람교도에 의해 불에 탔으나, 아팍 코자가 재건했다. 1874년 코칸드 침략자 야규브 베그는 중국식 묘소로 재건축하여 종교묘지로 조성했다. 청나라 말기에 점차 황폐화된다. 1948년 지진으로 본당이 파괴디고, 1957년 자치구의 중대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국가 중대문화재로 지정된다. 아팍코자는 명 말기 신장지역 백산파 이슬람교의 지도자였다. 준가르 칸국의 남부 신장 통치자였으나 반란으로 사망한다. 청나라는 광서제가 잔당을 진압한다. 건륭제의 위구르족 후궁(용비, 향기로운 비비)이 이곳에 묻혀 "향비릉"이라고 불린다. 용비의 삼촌과 형제들이 청나라에 협조하여 베이징으로 이주했으며, 사후 허베이성 황비원묘에 안장되었다.
향비가 그네 타기( 秋千[qiūqiān] )를 좋아했던 것 같다.
민속 전통에서 그네는 "그네 타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네 타기는 다양한 민족 집단 사이에서 전통적인 민속 놀이이며, 많은 유명한 시에 그네 타기를 묘사하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네가 일정 높이에 도달하면 소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시를 읊는 것입니다. 위구르족 소녀들은 그네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높은 그네에서 뛰어내려 근처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춥니다. 소녀들이 그네를 타고 있을 때, 젊은 남성들은 그네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노래와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그들은 소녀들에게 다가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향비원의 또 다른 안내판이다.
향비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향비와 관련이 없어보이는 자수작품이 걸려있다.
19:07 향비원 출구(약1290m, 1.7km, 1:01), 향토 문물을 구경하며 출구를 드디어 찾아낸다.
저녁식사를 위하여 이동을 준비하며 거리의 여행사 앞을 지나간다. 현지 여행사에서 카스에서 갈 수 있는 명승지를 소개한다. 중국의 서쪽 경계선을 서극이라 표시한다. 우리가 내일 가게 되는 카라쿨러호수와 백사호가 소개되고 있다.
18:35 저녁식사 식당, 현지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고 호텔로 들어가 각자 수영, 한담회 등을 갖으며 내일 새벽 출발을 준비하게 된다.
매일 매일 식단이 바뀐다고 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매일 똑 같은 음식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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