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에 전남대학교 신경외과 의국이 창설 되고,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37이니 의국은 저보다 13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 중 2002년 전공의 1년차로 신경외과 의사의 삶을 시작한 저로서는 반세기 의국 역사의 아주 일부만을 경험하고 함께 공유하였기에 아직은 풋내기 신경외과 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때부터 이름부터 심상치 않아 동경을 갖게 되었던 신경외과에 2001년 12월 전공의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 말씀처럼 합격한 날이 제일 좋았을 것이란 말처럼, 그날의 술자리 이후로 바로 다음날부터 제 호출기는 불이 나게 울려댔으며, 저는 이리저리 쉴 틈 없이 뛰어다녔던 기억만 남은 것 같습니다. 2002년 3월 정식으로 신경외과 전공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하던 날 당시 과장님 이셨던 김수한 교수님께서 하얀색의 전공의 명찰을 달아주시던 때 한 없이 자부심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1년차 때는 주로 두부 외상과 단순 고혈압성 뇌출혈 환자의 담당의와 2년차 담당의의 백업 요원으로서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뛰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저희 때부터 군보와 비군보의 구분이 없어져 군대를 다녀온 김연성, 박성근 두 학교 선배들과 전공의 근무를 시작 했는데, 두 형들이 비군보 이지만 오히려 저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주었고, 오히려 저는 능구렁이 같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2년차 주치의때는 뇌혈관분야로 시작했는데 이제혁교수님께서 대학원장의 임기를 마치시고 다시 복귀하여 교수님의 동맥류 수술 환자를 제가 맡아 보았는데, 곧 정년을 남기신 상황에서도 중환자실 환자를 돌보시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3년차때는 담당의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정태영 선생님과 화순병원에 3, 4월 출근하면서 외래 및 의국을 셋팅 하던 기억, 처음 학회 가서 엄청 긴장하면서 발표했던 기억이 나고,
4년차때는 수술의 1조수와, 가끔 집도의 기회를 가지게 되어 이제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보람된 일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시기가 많았던 신경외과 전공의 4년은 인생에 비교하자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의어려움과 고달픔, 의국에 있는 백련강이라는 말처럼 다듬어지는 과정이 없다면 결코 신경외과의사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제 인생은 신경외과 의사로서는 청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이 성숙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경험과 여러 교수님, 선배님들의 조언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이제 신경외과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는 많은 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 후배들이 너무 쉽게 쉬운 삶 만을 선택해 가는게 가끔은 안타깝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저나 주니어 스텝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됩니다.
과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앞선 교수님들과 선배님들께서 신경외과라는 큰 나무를 뿌리내리게 하고 이를 견고하게 해주셨다면, 청년기에 위치해 있는 저나 앞으로의 후배들이 이 나무를 잘 가꾸고 가치 있게 만들어 가야 할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100주년을 기념할 때 미래의 후배들에게 이 잘 가꾸어진 신경외과 나무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첫댓글 수고했습니다. 언제든 첨삭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