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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시대구분 방법에는 왕조 교체에 의한 방법, 사회경제사적 방법, 민족정신의 전개에 의한 방법, 문예사조에 의한 방법, 절충적 방법, 문학의 발전 단계를 설정하는 방법 등이 있어 왔다. 문학을 그 자체로서 다루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조건을 중요시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한국 문학사만의 시대구분으로 만족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 문학사와의 관련에서 기준을 얻거나 결과를 확인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시대구분 방법론의 저변에서 작용하고 있다. 맨 처음으로 나온 문학사인 안확(安廓)의 ≪조선문학사≫(1922)에서는 시대를 상고시대·중고시대·근고시대·근세시대·현대로 나누었다. 이름은 시간의 원근에 의한 구분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왕조 교체에 의한 구분이다. 상고시대는 삼국 성립 이전이고, 중고시대는 삼국시대이고, 근고시대는 고려시대이고, 근세시대는 조선시대이고, 현대는 갑오경장 이후이다. 그 뒤 왕조의 이름을 표면에 내세우고 시대구분을 한 문학사가 적지 않게 나왔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김사엽(金思燁)의 ≪조선문학사≫(1948) 및 ≪개고국문학사 改稿國文學史≫(1954)이다. 거기서는 문학사의 단계를 상고문학·삼국시대문학·고려문학·이조문학·현대문학으로 나누었다. 왕조 교체에 의한 시대구분은 기준에 혼란이 없고, 구분 결과가 명확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반면에, 왕조사와 문학사가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점을 두고서 제기되는 의문을 해소하기 어렵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의문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방법을 개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왕조 교체가 문학의 변모와 연결되어 있는 양상을 애써 부정하는 것이 능사일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방법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 통용되고 있으며, 다만 몇 가지 수정안이 제기되었을 따름이다. 이병기(李秉岐)·백철(白鐵)의 ≪국문학전사 國文學全史≫(1957)의 제1부 고전문학사에서는 왕조 교체에 의한 구분을 택하되, 조선시대의 문학은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뚜렷한 특징을 드러냈다고 보아 표기 형태에 의한 시대구분을 아울러 고려하였다. 그런가 하면, 김준영(金俊榮)의 ≪한국고전문학사 韓國古典文學史≫(1971)에서는 조선시대의 문학을 임진왜란을 경계로 전후기로 나누어 각기 독립된 시대를 이룬다고 하였는데, 문학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 점을 왕조 교체와 함께 고려한 결과이다. 이처럼 다른 기준과 절충시켜 왕조 교체에 의한 시대구분을 다소 수정해서 이용하는 것이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방식이다. 사회경제사적 시대구분이 문학에서는 역사의 경우만큼 진척되지 못하였으며, 이명선(李明善)의 ≪조선문학사≫(1948)라는 단 하나의 예만 남겼다. 이명선은 세계사가 노예제사회·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로 전개되어왔다는 유물사관을 따라야 한다면서, 신라통일 이후가 봉건사회이고, 갑오경장 이후가 자본주의사회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방법은 기본 전제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의 실상에 대한 고려나 입증 없이 시대구분을 서둘렀으므로, 그 결과가 불신되고 있다. 서구의 전례를 대입하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진 시대구분이 이루어진다는 소박한 낙관론, 무리하게 파악된 사회구조의 변화가 문학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단순한 결정론, 봉건사회가 신라통일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시대구분을 민족사의 견지에서 이룩하려는 노력이 조윤제(趙潤濟)의 ≪국문학사≫(1949) 및 ≪한국 문학사≫(1963)를 통해서 나타나 이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조윤제는 민족사가 민족정신에 따라서 전개된다 하고서, 문학사는 민족정신의 생명체적 발전을 기준으로 삼아 이해되고 서술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에 따라서 시대구분을 한 결과는 태동시대·형성시대·위축시대·잠동시대·소생시대·육성시대·발전시대·반성시대·운동시대·유신시대·재건시대를 설정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민족정신이란 모호한 개념이고 이론이 관념에 치우쳤다는 비판은 받을 수 있으나, 실제로 시대구분을 하는 데 있어서는 사회적 여건의 변화와 문학의 실상이 달라진 과정을 다각도로 고려한 편이다. 가령, 고려 전기는 국문문학이 타격을 받아 위축시대로 들어섰다가 무신란과 더불어 사회적 여건이 달라지자 시조와 경기체가가 나타나 잠동시대가 시작되었고, 고려 후기에 이룩된 성과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 조선 전기에 전개된 소생시대의 문학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국문문학이 민족정신 구현의 핵심영역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그 타당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구비문학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고, 한문학은 부수적인 분야로 하였으며, 현대문학은 민족정신의 내재적인 전개의 결과라기보다 서구로부터 들어온 충격의 소산이라고 한 점 등이 문제로 남았다. 민족정신은 대립을 넘어서야 온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도 문학의 여러 영역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면서 지속과 함께 변화를 구현하였던가는 설득력 있게 파악할 수 없었다. 다른 무엇에 의거하지 않고 문학의 실상을 포괄하는 방안이 있다면 그것은 문예사조에 의한 시대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예사조가 서구에서 정립된 전례에 따라서 이해되고 현대문학사에 국한하여서 먼저 논의되었으므로, 이 방법은 문제를 안고 들어갔다.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 朝鮮新文學思潮史≫(1948·1949)에서는 현대문학사가 서구의 문예사조를 이식한 역사라고 하면서, 낭만주의·퇴폐주의·자연주의·신경향파 등의 사조가 어떻게 이해되고 수용되었던가를 고찰하는 것으로 문학사 서술의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단절은 의심할 바 없이 논증된 것 같고, 서구 문예사조를 표방하지 않은 작가는 고려할 여지가 없는 듯이 처리되었다. 그 결과 현대문학은 여러모로 기형적인 문학이라고 하게 되었다. 문예사조에 의한 시대구분은 이가원(李家源)의 ≪한국한문학사 韓國漢文學史≫(1961)에서 다시 시도되었다. 여기서는 현대문학이 아닌 한문학의 사조사를 서술하면서 문예사조를 특히 두 가지 각도에서 설정하였다. 하나는 유학사조와 불교사조의 관계를 다룬 것이고, 또 하나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교체를 살핀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사조와 불교사조가 사상적인 성향에 그치지 않고 문학의 존재 양상이나 표현 방법과 밀착된 문학의 사조임을 입증하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낭만주의와 사실주의가 한국 한문학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졌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여증동(呂增東)의 ≪한국문학사≫(1973)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시도를 하여서 어느 특정영역만이 아닌 한국 문학사 전체의 전개를 문예사조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감성주의 운문시대’, ‘지성 개발의 18세기’ 등으로 시대구분을 하였는데, 우선 용어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감성’이나 ‘지성’은 각기 그 시대의 사상과는 밀착되지 않으며, 서구어의 번역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한 개념으로 문학의 실상을 포괄하고자 하면 무리한 적용을 배제하기 어렵다. 문예사조에 의한 시대구분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 하겠으나, 문예사조의 개념을 추출하고 정립하는 작업이 적지 않은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 나온 문학사 몇 권은 시대구분의 방법을 중요시하면서도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왕조 교체에 의한 구분을 근간으로 하면서 다른 사정까지 고려한 절충론을 택하는 것으로 특징을 삼았다. 김석하(金錫夏)의 ≪한국문학사≫(1975)에서는 시대구분이 문학의 질적 변화가 나타난 과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고, 사회나 사상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고려를 하면서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시대구분은 원시종합예술기·고대문학기·중세문학기·근세문학기·개화문학기·현대문학기로 나타났다. 각 시기는 왕조와 일치하는 셈이나, 조선시대인 근세문학기는 다시 서론에서는 전기·중기·후기로, 본론에서는 전기·후기로 나누었다. 시대를 구분하고 설정하는 기준이 경우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절충적 방법의 특징이므로 결과가 유동적이게 마련이다. 장덕순(張德順)의 ≪한국문학사≫(1975)에서는 왕조 교체와 문학 갈래의 전개를 함께 고려하여서, 각 시기마다의 대표적인 갈래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였다. 먼저 구비문학을 다룬 다음에, 고대가요·향가문학을 각기 한 시기를 포괄하는 갈래로 내세웠다. 그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보아서, 고려문학 또는 중세문학은 가요와 서사문학으로, 조선문학 또는 근세문학은 소설·가사·시조 등으로 나누어서 고찰하였다. 이렇게 하자, 선택된 갈래가 아닌 것들은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을 수 없으며, 여러 갈래에 걸쳐서 나타난 변화를 밝힐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 어려웠다. 김동욱(金東旭)의 ≪국문학사≫(1976)는 비교문학적 관점을 강조하고 문화사로서의 포괄성을 가지고자 애쓰는 한편, 시대구분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은 편이었다. 왕조 교체에 따라서 상대문학·중세문학·근세문학·근대문학을 차례로 고찰하면 문학사의 중요한 국면을 밝힐 수 있다는 태도이다. 근세문학이라고 한 조선시대 문학을 다시 나누지 않았지만, 판소리의 등장과 더불어 국민문학이 나타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 국민문학이라고 한 것과 근대문학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룬 문학사에서는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이 갑오경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데 대해서 그 어느 것도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근대문학이 서구 근대문학의 이식이라는 전제를 구태여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작용하였다고 하겠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학사에서 가장 큰 쟁점이다. 서구의 영향과 자극은 인정하여야 마땅하지만, 근대문학을 지향하거나 이룩한 내재적인 성과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논의의 각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비평적인 논란이 있고 난 다음에 김윤식(金允植)·김현(金炫)의 ≪한국문학사≫(1973)가 나오자 새로운 관점이 문학사 서술을 통해서 부각될 수 있었다. 거기서는 영·정조 시대인 18세기에서 4·19까지의 문학사를 서술하면서, 갑오경장 이전에 이미 근대의식의 성장이 문학에서 나타난 자취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되자 근대문학의 개념과 형성을 두고 만만하지 않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근대문학이 문학발전의 한 단계라면 그 앞 단계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구와의 접촉을 통해서 근대문학을 이해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시정하자면, 고대문학·중세문학·근대문학이 각기 그것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전개되어온 양상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하겠는데, 조동일(趙東一)의 ≪한국문학통사≫(1982∼1988)에서는 그러한 논의에 착수하였다. 고대의 자기중심주의, 중세의 보편주의, 근대의 민족주의가 문학의 존재양상, 문학 갈래의 체계, 문학 담당층의 성향을 통해서 구현된 바를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조선 후기 문학은 보편주의를 벗어나지 않았으면서도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한문학과 국문문학, 사대부문학과 시민문학이 공존하고 있어서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 문학이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서의 시대구분은 새로운 제안을 내세울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널리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은 역시 왕조 교체에 의한 구분이므로 일단 거기에 기초를 두고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전·후기로 나누어 각기 독립된 시대를 삼고자 한다. 이렇게 하여야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관련성이 어느 의미에서는 고려 전기와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의 관련성보다 더 크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지장이 없게 된다. 조선 후기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계기는 개항도 갑오경장도 아니고 1860년에 동학이 성립된 것이라 보고, 1919년 이후의 신문학운동을 겪고 그 다음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관점을 택한다. 1945년 이후의 문학을 끝으로 다룬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