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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록키 산맥(Rocky) 2006/02/14 07:02 | |
콜라라도주 아스펜의 화이트 리버 국립공원에서 바라다보이는 머룬 벨즈 모습 흑백사진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흑백사진처럼 나왔다
"도시는 인간의 얼굴이고 시골은 인간의 영혼이다"라고 흔히들 말한다 미국 콜로라도주를 지나는 록키산맥 속에서 나는 미국 대륙의 영혼을 보았다 그곳은 여름 태양이 무색하게 백설이 산꼭대기를 덮고 있었고 거울같은 호수 속에 푸른 산이 담겨 있었다 아스펜(Aspen)의 화이트 리버 국립공원 안에 있는 머룬 벨즈( Maroon Bells)가 그곳이었다
머룬 벨즈는 산봉우리가 두개 나란히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적갈색의 삼각 벨모양을 하고 있다고 붙인 이름이다 산봉우리 위로는 눈으로 닾힌 벨들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산 아래 초원에는 야생화가 뒤덮혀 있다 그리고 눈녹은 물이 콸뢀 내려오고 있는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밑바닥이 그대로 들어나보이는 투명한 호수가 펼쳐진다 게다가 하늘은 눈빛에 반사되어 푸른색이 더욱 선명하고 아스펜잎들은 바람에 살랑거리며 설레듯 떨고 있었다
손을 적셔본 작은 호수 , 역시 머룬 벨즈의 모습이 보인다
그곳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영원의 한 순간이 포착되는 별천지였다 때묻지 않은 미국 대륙의 영혼이 첨단 과학과 공학에 의해 황폐해가는 도시의 얼굴에 가려져 그처럼 깊숙이 감춰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LA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뉴욕의 록펠러 센터를 아스펜의 머룬 밸즈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건가? 이곳에는 보다 진보된 물질 세상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씻어주는 섬세한 힘이 넘치고 있었다 또한 흥분된 즐거움이 아닌 잔잔한 평화와 행복감이 전율처럼 번져온다 그리고 오랜 정신적 짐이 사라지고 육체마저 새처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마치 영혼과 육체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여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는 황홀경에 이끌려 들어가는 착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호숫가에 앉아있는 연인들이 사랑과 자연에 취한 듯 몽롱한 모습이다 호수로 내려가 손을 담궈보니 얼음처럼 차고 시리다 마치 물질 세계에 오염되어 흐리멍덩한 영혼이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같다 자연이 제공하는 찬란한 아름다움에 취해서 나는 도대체 자연은 왜 이토록 인간을 우롱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건 인간의 고뇌를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기 위한 자연의 사려깊은 의도인가 ? 아니면 황홀한 에덴의 즐거움과 기쁨을 잠시나마 맛보게 해주는 대신 인간 현실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이 다가서는 온갖 고통들을 감수하라는 선심인가?
그곳 하늘이 너무 아름답고 선명해서 찍은 사진
콜로라도주의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록키산맥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나며 나는 자연이 부리는 조화의 절정 앞에서 야릇한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82번 프리웨이를 따라 록키 산맥을 향해 가는 길 역시 절경이다 어쩌면 콜로라도 주 전체가 아름다운 공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 눈덮힌 산봉우리, 눈이 녹아 내리는 작은 폭포, 호수들, 콜로라도 강으로 흐르는 계곡들, 그리고 울창한 나무 숲 등 미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주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스펜에서 출발하여 록키산맥 공원으로 가기 위해 하이웨이를 많이 바꿔야했다 82번 서쪽, 24번 서쪽, 91번 북쪽, 70번 동쪽, 40번 북쪽.... 이렇게 가는 동안 산을 몇개나 넘었는 지 모른다 중도에서 피라미드 파크가 나오고 Indepence Pass(12095피트의 대륙 분계선)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흐르는 물길이 달라진다는 곳이다 이곳 산봉우리에서 눈이 녹은 물들이 바위 틈으로 스며 들었다가 다시 골짜기를 따라 흘러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호수에서 강으로 다시 밀려나가 마침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인데 그 물길이 대륙 분계선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광대하게 펼쳐진 산봉우리들과 평야를 내려다보며 보이지않는 가운데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 대자연의 운동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도에 해가 저물어 모텔에서 하루 밤을 묵고 다시 Winter Park Highland 에서 출발하여 목적지로 향했다 또 다시 많은 산을 넘고 호수를 지나 록키 산맥 공원 입구에 있는 Alpine Visitor Center에 당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내 지침서와 지도를 얻어서 자동차로 록키 정상을 향해 등정을 시작했다
멀리 눈쌓인 산이 보이는데 가까이는 노랑 들꽃이 피어있었다
"우주로 들어가는 확실한 길은 야생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죤 무어(John Muir)가 말하지 않았던가? 산 아래에는 완전 봄날씨로 노란 민들레와 야생화가 덮힌 초록색 초원이었다 멀리 하늘을 찌르는 산봉우리에는 눈이 덮혀 있고 수정같은 호수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러나 점차 가문비나무, 소나무, 전나무 등 울창한 침엽수림이 보이면서 여름을 만나게 된다 그 다음에는 기이하게 꼬여 난장이 모습을 한 나무들이 땅을 기듯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Trail Ridge Road는 미국에서 제일 높은 하이웨이라고 했다 50마일에 이르는 이 길을 따라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노라면 마치 천상으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최고 12000피트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불과 한시간여만에 4계절을 다 경험하게 된다 보통 만피트가 넘는 절벽길을 운전 기어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울라가도 흡사 롤러 코스트를 타고 있는 듯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사라져가고 있는 산양(bighorn)을 국립공원에서 다시 번식시키고 있다고 했다
길가로는 Dip이라는 표시판이 계속 나오는데 급경사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산의 정상을 향해 높이 올라갈수록 점차 나무가 사라지면서 눈이 두껍게 쌓인 Tundra 지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는 전혀 없고 아주 작은 풀들만 군데군데 보인다 날씨는 완전히 차거운 겨울로 시베리아 동토인데도 그곳에는 Bighorn 이라는 뿔달린 양들이 살고 있었다
continental divide 모습
중도에 다시 대륙 분계선(Continental Divide)이 나타났다 산 위로는 번개와 천둥이 치며 폭우가 난데없이 쏟아지더니 갑자기 비가 그치면서 무지개가 산등성이에 걸렸다 항상 기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록키는 마치 인간에게 온갖 조화의 극치를 다 보여 주겠다는 의지다
록키의 지붕이라는 말대로 과연 이곳에는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검은 구름을 배경삼아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이 일년내 덮여있는 12000피트가 넘는 산봉우리가 78개나 있다고 한다 그 중에 Longs Peak는 14700피트의 높이로 주변의 산을 난장이로 만든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대도시에 교만하게 서있는 마천루들의 모습들을 가소롭게 만들고 있었다
산은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산을 대지와 하늘을 연결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특히 구름으로 덮혀있는 산꼭대기는 신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성시했다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신이 사는 곳이며 신의 몸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나바호 인디안들도 산을 자연의 영이 사는 몸이라고 믿었다 록키 산맥은 분명히 거대한 생명체였다 곳곳에서 솟아난 바위는 산맥을 이루는 빼대요, 시냇물은 이들의 피였고 식물들은 머리카락이며, 구름은 호흡이었다
록키산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이곳은 예술과 신화와 전설과 그리고 종교가 탄생되는 곳이었다 신비한 아름다움 그 자체인 산의 침묵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을 묵상하게 하고 영성을 풍요롭게 해주고 그리고 상상력과 창조력을 불러 일으켜주는 강력한 힘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헨델의 천지창조, 바흐의 파이프 올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비발디의 4계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은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 예수님이 승천하신 감람산,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읠 말씀을 들은 호렙산의 신비 그 자체였다 록키 산맥은 인간의 영혼 속을 파고 들어오는 감동적인 시였고, 그림이었고, 노래였고, 그리고 조각품이었다
"이 거대한 자연의 품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어떤 사상도 그것에 근접할 수가 없다" 라던 파스칼의 말대로 이곳에는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장엄하고 숭고한 신성이 깃들어 있었다
다행이 신은 이곳에 금을 숨겨놓지 않았다 만약 금이 발견되었더라면 이곳은 국립공원이 되기도 전에 인간들에 의해 엄청난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곳에는 금대신 금빛이 나는 운모가 많다고 했다 록키 산맥에 광택을 주기 위해 신은 금대신 금빛이 나는 운모를 사용하셨나 보았다 신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아스펜 나무껍질을 먹고 사는 비버와 다람쥐 등 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했다 산을 내려오다가 유유히 들판을 산책하고 있는 Cougar(퓨마 어메리컨 라이언)을 만났다 그는 멀리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함성을 올려도 전혀 상관치않는 태도였다 그저 우아하게 위엄있게 사방을 한번씩 돌아보면서 걷고 있었다 대형 카메라를 지고 있던 사진사가 퓨마가 돌아보면 뒷걸음질쳤다가 전진하면 같이 따라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퓨마의 태도에는 록키 산맥의 당당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록키로 가던 도중 무지개가 뜨는 모습을 몇번이나 보았지만 사진을 잘 찍지 못해 이 사진은 록키산맥 소개용 팜플렛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불란서의 모피상인이었던 Joel Estes가 1859년 , 이곳에 당도해서 뜻밖에 만난 놀라운 록키 산맥의 정경을 보고 "어떤 말로도 나의 놀라움과 기쁨과 신비감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곳의 Estes Park는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이었다 그리고 1915년, 이곳은 박물학자인 Enos Mills의 노력에 의해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는 이곳을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태양이 이곳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곳은 없다 꽃이 이곳보다 더 아름답게 피는 곳도 없고 물이 최면술을 부리듯 음악을 속삭이는 곳.....
산 아래는 다시 눈이 사라지고 녹음이 우거진 푸른 벌판이다 에노스 밀즈의 말처럼 꽃과 태양과 날씨가 최면술을 부리듯 언제 비가 왔느냐는듯한 모습이었다 이곳에는 족제비가 많다고 하더니 록키 산맥이 겨울에는 하얀털이 나고 여름에는 깜쪽같이 금갈색털로 바뀌는 족제비(Ermine)를 닮았나 보았다 그러나 록키가 족제비를 닮았는지 족제비가 록키를 닮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는 록키의 모습을 뒤로 하며 꿈꾸듯 산을 돌아나오는데 호수의 수면 위로 태양이 춤추는 것이 보이고 노란 꽃망울에 무지개가 걸린 것이 보이고 삼라만상에 깃든 신의 손길이 보였다 록키의 강력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나도 모르게 나는 시인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