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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입춘첩(立春帖). 입춘방(立春榜)
벽산 추천 0 조회 49 14.12.10 15: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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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24절기 (18)

입춘(立春)

 

추위 시샘에도 봄기운은 대문을 넘어오고…

 

 

 

 

 

 

 

 

입춘(立春)은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절기의 새로운 시작이다.

입춘은 정월(正月), 즉 새해를 시작하는 달에 들어 있어 옛사람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고도 하였는데, 절분은 ‘해넘이’라고도 불리며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니 집안을 청소하여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새 기운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날 밤 붉은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하기도 한다.

 

춘(春)이라는 글자는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 나오는 모양이다. 즉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과 시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날은 모든 것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글씨를 써 붙였다.

‘입춘대길’은 그야말로 새봄에 크게 좋은 일들이 있으라는 의미이고, ‘건양다경’의 ‘건양’은 고종황제 때의 연호로 나라와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런 글씨들을 ‘입춘첩(立春帖)’ 혹은 ‘입춘방(立春榜)’이라 하는데, 본래 궁에서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신년을 축하하는 시 중에서 잘된 것을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 등에 붙였던 것이 민간에까지 퍼져 유행하게 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대개 집안의 가장 어린 아이가 글을 써 붙이곤 하였다.

 

특히 입춘에는 입춘절식(立春節食)이라 하여 햇나물 무침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는 경기도 일대 산이 많은 양평·가평·연천 등 6개의 고을에서 멧갓·승검초 등과 같은 산나물들을 눈을 헤치고 캐내 임금께 진상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궁궐에서는 이 나물들을 겨자와 함께 무쳐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쓰고 맵고 쌉쌀한 다섯가지 나물은 겨우내 묵은 입맛을 씻어내고 새 입맛이 돌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 겨우내 결핍된 신선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에서도 이를 본받아 눈 밑에서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 먹는 풍속이 생겼다.

 

입춘이 되면 매서웠던 북서풍은 점차 잦아들고 동풍이 불어 얼어붙었던 땅을 녹이니 농가에서도 농사 준비를 시작할 때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자들은 겨우내 넣어 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해 농사에 대비했다. 농사를 도울 소를 보살피고, 재와 거름을 잘 섞어 부지런히 재워 두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두엄을 만들기도 했다. 또 입춘 때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이때 받아 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봄은 그야말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계절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와 ‘입춘한파’나 ‘입춘 추위가 김장독을 깬다’라는 말들도 생겨났다.

 

예전에 농가에서는 이날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들에 나가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이요, 두가닥이면 보통, 한가닥이면 흉년이라 점쳤던 것이다. 또 오곡의 낱알을 솥에 넣고 볶아서,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서로 작황을 가늠하기도 했다.

보리 뿌리가 세가닥으로 튼튼히 자랐다면 기후가 농사짓기에 알맞다는 뜻이겠고, 솥에 볶아서 잘 튄다는 것은 곡식이 제대로 영글었다는 뜻일 테니 나름 과학적인 농사 예측법이 아닐 수 없다.

 

김상철<미술평론가>. 농민신문 

 

 

 

‘입춘첩’에 새해 각오 적어 보세요

 

 

 

 

 

■대문이나 기둥에 양쪽으로 붙이는 대련(對聯·대구 글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여라.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 : 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고르니, 시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든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 부모님은 오래 살고, 자손들은 길이 번영한다.

 

 

■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단첩(單帖)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 봄이 문 앞에 당도하니 부귀가 늘어난다.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 봄빛은 길인의 집에 먼저 온다.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 봄날의 온화한 기운이 문에 가득하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 )….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인 서예가 김성태씨(44·경기 부천시 오정동)는 1월 말이면 ‘입춘첩(立春帖)’을 쓴다고 정신이 없다. 입춘(올해는 2월4일)을 앞두고 명필에게서 입춘첩을 받으려는 이들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글귀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가져와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복을 나눠 주는 마음으로 기꺼이 부탁에 응한다”는 김씨는 “입춘첩은 상서로운 한해를 위한 자기 다짐용 글귀로도 훌륭하다”고 귀띔한다.

 

요즘은 쉬 볼 수 없지만, 한세대 전만 해도 입춘첩 붙이기는 집집마다 행해지던 대표적 풍속이었다.

 

입춘첩이란 입춘 날 아침, 새봄이 온 것을 축하하고 한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문·기둥 등 집안 곳곳에 붙이던 글귀다. 다른 말로는 입춘축(立春祝)·입춘방(立春榜)·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한다.

 

원래 중국에서 시작된 입춘첩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 때다. 고려 말의 문신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는 5언 또는 7언시로 된 춘첩자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 초기에 만든 역사책인 <고려사>에도 ‘입춘에 왕이 신하들에게 춘첩자를 내려 줬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궁궐이나 양반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입춘첩을 써서 널리 붙였다.

 

민간에서는 입춘 날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요사스러운 귀신들을 물리친다는 벽사( 邪)의 의미까지 부여했다.

 

입춘축은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써서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해 붙였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 안팎, 세로 70㎝ 안팎의 한지를 두장 마련해 짝을 지어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춘첩은 붙이는 위치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기도 했다.

대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기둥에는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天增歲月人增壽 春萬乾坤福滿家)’,

아버지 방에는 ‘부주평안(父主平安)’,

어머니 방에는 ‘모주평안(母主平安)’,

곳간에는 ‘의이장지 절이용지(義以藏之 節以用之·의롭게 저장하고 절약해 쓴다는 뜻)’를 붙이는 식이다.

 

한편 한번 붙인 입춘첩은 이듬해 입춘 때까지 떼지 않고 그대로 붙여 뒀으며, 상을 당한 집에서는 입춘첩을 붙이지 않았다.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새봄을 맞는 각오를 다지는 데 입춘첩이 갖는 주술적 의미는 크다”면서 “가훈이 한 집안의 생활 지침서 역할을 하듯, 올봄에는 집집마다 입춘첩을 붙여 놓고 가내 평안을 기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농민신문 

 

 

 

 

입춘첩(立春帖)

입춘방(立春榜), 춘첩자(春帖子), 입춘서(立春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節氣)인 立春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그 해의 첫 節氣로 황도(黃道 ; 외견상으로 본 태양의 궤도. 적도에 대하여 23.5의 기울기를 이루며, 그 적도와 마주치는 점이 춘분점과 추분점이 된다)이 315도에 위치할 때이고 이 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며, 음력으로는 正月인데 때에 따라서는 섣달(12월)에 들기도 하는데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한다.

윤월(閏月)이 들어있는 해(年)는 반드시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들게 되는데 이것을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 전날을 철의 마지막이라는 절분(節分)이라고 하며, 이 날 밤을 ‘해넘이’이라고 부르며 입춘을 마치 年初처럼 생각하였다.

 

옛 사람들은 입춘 15일간을 5일씩 3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中候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입춘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하는데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먼지를 털어 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계를 손질을 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를 하였다.

또한 입춘 날이 되면 대문이나 기둥에 새로운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봄을 송축(頌祝)하는 글귀를 붙이는데 그 이름은 위의 제목에 나열한 것들이다.

 

대궐에서는 설날에 文臣들이 임금에게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 신년축시)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붙였는데 그 글을 春帖子라고 하였고, 民間에서는 춘련(春聯 ; 입춘 날 문이나 기둥 등에 써 붙이는 주련(柱聯))을 써 붙인다.

 

특히 양반 집안에서는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옛 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춘련을 써서 봄을 축하했는데 이것을 춘축(春祝)이라 하고, 이 때 댓구(對句)를 맞추어 두 구절씩 된 춘련을 대련(對聯)이라 부른다.

이 춘련들은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또는 문설주 등에 두루 붙인다.

 

입춘첩의 대표적인 글귀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국태민안 건양다경(國泰民安 建陽多慶) ;

나라가 태평하며 국민 생활이 평안하고,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

※ 고종황제가 첫 年號(군주시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 해부터 그 자리를 물러날 때까지의 기간에 붙이는 年代的인 칭호)로 건양(建陽, 1896?1897)을 사용하자 백성들이 대한제국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며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써서 대문에 붙인 것이다.

 

* 입춘대길 소문만복래(立春大吉 笑門萬福來) ;

한 해의 시작인 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며, 웃는 집안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

 

* 입춘대길 만사형통(立春大吉 萬事亨通) ;

봄기운이 시작되었으니 큰 행운이 따르고,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잘 되어가기를 바람.

 

*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所持黃金出 開門百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

농사에 알맞게 기후가 순조롭고, 집집마다 생활 형편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함.

 

* 건양다경 가화락(建陽多慶 家和樂) ;

햇볕이 따스하니 경사가 잦으며, 집안이 화목하고 즐겁다.

 

*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란다.

 

* 당상부모 천년수 슬하자손 만세영(堂上父母 千年壽 膝下子孫 萬歲榮) ;

집에 계신 부모님 오래 사시고(부모님 방 문기둥에 붙임), 자손들은 오래 영화를 누림(대청 기둥에 붙임)

 

* 부귀문전 수수화(富貴門前 樹樹花) ;

문 앞의 부귀가 나무마다 핀 꽃과 같다(대문에 붙임)

 

* 우여맹호 경백묘(牛如猛虎 耕百畝) ;

맹호 같은 소는 백 이랑의 밭을 간다.(소 외 양간에 붙임)

 

* 마이비룡 행천리(馬似飛龍 行千里) ;

비룡 같은 말은 천리를 간다(마구간에 붙임)

 

♤입춘방을 붙이는 모양

* 한 개를 붙일 때는 세로로(↓) 그냥 붙이면 된다.

* 두 개를 붙일 때는 기울여서 /\같은 모양으로 붙이면 된다.

 

♤ 입춘방을 붙이는 장소

* 대문 ; 좌측은 입춘대길, 우측은 건양다경을 붙인다.

* 아파트 ; 현관문 안에 있는 작은 문의 문설주에 좌우로 붙인다.

 

♤ 아홉 자리

이날은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福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들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아홉 가지의 빨래를 하고,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아홉 번을 한다는 뜻은 우리 조상들이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이나 대보름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만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이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가에 나가서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을 한 솥 지어서 갖다 놓는다든지, 병든 사람에게 약을 모래 지어준다든지 하는 것이 적선 공덕행이다.

 

♤ 속담

*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이라.

잠결에 기지개를 켜면 발은 마당 밖으로 나가고, 두 주먹은 벽 밖으로 나가며,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동네 사람들이 거치적거린다고 “궁둥이를 불러 들이라”고 하여 깜짝 놀라 일어나 대성통곡하는 그런 집을 말한다.

그런 집 기둥에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格에 맞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 입춘날 무(사투리로는 무우) 순(荀) 생채(生菜)냐 ?

맛있거나 신나는 일’을 비유할 때 立春時食으로 먹던 무 순이나 생채에 비유했었다.

아무튼 제철 음식이 가장 맛있고 보약이다.

 

* 입춘수(立春水)

입춘 전후에 받아둔 빗물을 말하는데 이 물로 술을 빚어 입춘 날에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 추로수(秋露水)

가을 풀섶(풀이 많이 난 곳)에 맺힌 이슬을 털은 물인데 이 물로 엿을 고아 먹 으면 백병(百病 ; 온갖 병)을 예방한다고 하였다.

 

* 입춘시기에 가장 큰 일

장(醬)을 담그는 일인데 시기는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 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다.

메주는 늦가을(음력 10월)에 쑤어 겨우내 띄운 것이 맛있다.

장은 팔진미(八珍味)의 주인이어서 장맛이 없으면 모든 음식에 제 맛을 낼 수 없다.

 

출처 : http://traveleven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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