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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만난 반가운 옛 친구,
화려한 딱지날개의 '길앞잡이'
시골에서 보낸 짧은 유년시절 이후 도시인으로 살아가며 늘 흙냄새가 그리워 주말 농장에서
채소를 가꾸어 먹은 지가 10여년 되었다.
농작물을 심기에는 이른 봄날 산 밑에 있는 밭을 일구다가 땅속에서 보석을 발견했다.
검은 흙속에서 빛나고 있는 보석!
바로 겨울잠에서 곧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던 화려한 딱지날개를 가진 길앞잡이였다.
나는 어린시절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길앞잡이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설픈 농부가 되어 우연히 마주친 길앞잡이를 본 순간 어린시절이 생각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초등학교(내가 다니던시절에는 국민학교였다) 등하교길은 산비탈 아래 신작로었는데 하교길에 터덜터덜 걷다보면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듯 내 앞에서 앉았다 날아가고 또 앉았다 날아가던 곤충이 길앞잡이였다.
길앞잡이가 나타나면 나른한 귀가길이 정신이 반짝 든다.
잡힐듯 잡힐듯 하다가 덮치는 순간 날아가 버리곤 해서 놓치고 말지만 내 앞에 나타나면
어쩔수 없이 신나게 뒤쫓아 가던 추억속의 곤충이다.
그런데 이날 주말농장에서 본 길앞잡이는 어린시절 무심코 뒤쫓던 흔한 딱정벌레가 아니라 귀한 보석 같은 벌레로 보이기 시작했다.
길앞잡이는 가을에 땅속에서 어른 벌레가 되어도 지상으로 나오지않고 번데기방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나와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주말농장에 가면 땅을 살피고 멋진 길앞잡이를 찾아 산길을 다니며 그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화려한 색깔로 치장하고 뜀박질하는 길앞잡이는 눈에 확 들어온다.
5월 초에는 먹이사냥을 하거나 짝짓기 하는 성충을 햇볕이 잘드는 산길에서 만날 수 있다.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걸음걸이가 빨라서 땅에서 기어다니는 벌레를 큰턱으로 덥썩 잡는 육식성 곤충이다.
큰턱으로 사냥하는 모습과 툭 튀어 나온 큰 눈은 압도적이고 수컷은 짝짓기 할 때 큰턱으로 암컷를 미끄러지지않게 꼭 붙잡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되면 성충은 알을 낳고 사라지고 애벌레가 관찰되기 시작한다.
어느 여름날 길앞잡이애벌레 굴을 발견하고 먹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뜨거운 땡볕에 굴 근처를 지나는 벌레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듯 길앞잡이애벌레도 먹고 살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부러 귀뚜라미를 잡아다 굴 주변에 놓아주니 애벌레는 배가 고팠는지 굴속에서 망설임없이 냉큼 나와 먹이를 낚아채어 굴속으로 깊이 들어가버린다.
이처럼 굴속에서 숨어 있다가 귀신 같이 나와 개미를 잡아 먹는다고 해서 길앞잡이애벌레를 개미귀신이라고도 부른다.
애벌레는 단단한 땅속에 굴을 만드므로 풀이 나지 않은 다져진 땅이나 산길 가장자리어서 많이 보였다.
굴의 구멍은 수직으로 되어있고 지나가는 먹이는 빛의 명암을 이용해 가까이 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의 일부를 빼 낚아채서 굴 속으로 들어가 먹는다.
그리고 먹지 못할 부분은 굴 밖으로 버리기 때문에 주변에서 찌꺼기를 보면 무엇을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9월 초가 되면 밭 옆을 지나 산으로 이어진 넓은 길에서 또 한 번의 화려한 성충 무리를 볼 수있다.
나비가 날고 길앞잡이가 뜀박질하며 새소리가 들리는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즐거워진다.
그런데 이곳도 예전하고 다르게 길앞잡이의 서식처 주변이 개발되고 차량 통행도 많아졌다.
길앞잡이는 지나가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습성상 오히려 앞으로 날아가 앉기 때문에 결국 빠르게 달리는 차 바퀴에 치여 죽음을 당하고 만다.
모든 동식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서식처는 그들의 낙원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안식처라고 생각한다.
편의를 위한 개발로 우리가 위로 받을 안식처를 잃어가고 있다.
길앞잡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나는 어디서 꿈꾸며 뜀박질하던 어린시절의 신작로길을 회상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