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주 할머니의 척왜분투기 1 외 1편
문 창 길
1922년 왜정시대 나는 뼈대 있는 집 장녀로 태어났다 똑똑한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하다 병을 얻었고 그러다 이른 귀국선을 타고 고향집 구들장에서 병치레를 했다 아버지의 소일은 남이 좀처럼 읽지 않는 왜국신문을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신문을 면사무소에서 가져다 아버지에게 배달하는 역할을 했다
아버지의 병세는 심각했다 그래서 이 딸년은 서울서 장사를 하는 큰 사장님 첩의 살림을 맡기로 하고 아버지의 약값 100원에 양녀가 되어 상경했다 그 집 첩은 참 고약하고 잘 때리기도 하였다 하도 힘들어 양부에게 일렀는데 이번엔 함흥 본처 집으로 100원에 다시 보내졌다 만져보지도 못한 100원은 중간 거간꾼이 나꿔채가고 그래서 200원의 빚을 지게 된 황금주 그러나 어쩌랴 내 인생의 팔 할은 왜놈과 그놈들 발밑에서 머리 조아리는 거간꾼의 손아귀에서 옴싹달싹 못했으니,
양모는 다행히 이 촌년을 가상히 여기시어 열일곱 되던 해 사람은 배워야 잘 살 수 있다며 포장지붕 야학교에 보내주었다 예수쟁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함성여자강습소에 다니면서 나는 일본어와 산수 과목들을 배웠다 조선어는 일주일에 두 시간, 조선사람 조선어를 왜국어보다 늘 짧게 배웠다 촌가시내는 그저 배우는 것이 좋았고 무엇인가 희망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역시 조선가시내로 뜨개질과 바느질이 특출해 동무들 간 부러움을 샀다
아 내 운명의 2할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야학 2년 마치고 중퇴한 나는 같은 마을 살던 왜놈반장 마누라에 속아 일본 군수공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느니, 한 집에 한 명은 의무적으로 가야한다느니 은근 협박을 해대는 바람에 양부는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인 큰딸과 고등여학교에 다니는 작은딸을 공장에 보낼 수 없다며 괴로워했다 보다 못해 이 년이 가겠다고 했다 주인집 딸들은 공장생활하면 안된다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그러면 200원의 빚도 갚고 3년만 열심히 일하면 돈 꽤나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안주인 양모는 반색을 하며 3년만 참고 잘 갔다 오면 좋은 곳으로 시집 보내주겠단다 생각만 해도 달뜨고 포만한 생각이 훅 올라온다 내 나이 스물일곱 되던 음력 2월 같은 운명의 유똥치마 가시내와 함흥역으로 나갔다 검은 기름종이 커텐이 드리워진 기차는 떠난다……
샨족마을 동승 출가의식을 보며
3000미터 고산지대 외딴 산간마을
나의 어린 친구가 속세를 떠나 단기출가를 한다
절 마당에서 동무들과 대나무공 세팍타크로를 차거나
말고삐를 잡고 풀밭을 찾아다니던 코코 아웅
짧지만 긴 불가의 세계는 높은 산 저 안개밭보다
무궁한 고행을 어린 도반에게 수행케 하리라
뜻도 다 헤아리지 못할 불경을 외우게 하고
붉은 단지를 안고 마을로 내려가 탁발승이 되라 하고
그러다 뜨거운 햇볕 내리쬐면
노승이 주는 샨스타일 얼음과자를 받아 빨면서
맨발의 학승이 되기도 할 것이다
코코 아웅
내일이면 스님으로 불러야 한다
그러다 열흘 후면 다시 속세의 어린 친구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 그의 엄마는 파르라니 빛나는
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
그래 이제 엄마를 떠나거라
너의 고향은
너의 모태는
궁극적 평안에 이르는 니르바나에 있느니라
스님의 엄마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과 왕관을 씌운다
붉은 흙가루와 나뭇잎을 개여 화려한 분장을 하고
마을에서 뽑은 붉은말 잔등이에 올려주며
순진무구한 너의 세계를 지키라 한다
불성은 너의 손바닥 안에 있느니
너의 집에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 올 것이다
문창길 _ 1984년 『두레시』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미네르바 2014 여름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