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공 종회 공덕비 제막식 및 시향제 개최
지난 2009.11.29(일요일) 대종회에서 건립한 성주이씨도정공파종회 공덕비 제막식을
전남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비봉재에서 시욱 대종회장님을 비롯하여 석용 대종회 상임고문,
응상 농서장학회 이사장, 상길 문열공파종회장, 윤환 종손, 각 파종회장 및 지역종회장등
도정공 종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고 의미 있는 제막식을 가졌다.
공덕비는 대종회 이사회와 총회 결의에 따라 대종회 예산 5백만원으로
와비석(600☓1810☓1950)을 비봉재에 세웠으며 비문은 시욱 대종회장이 謹撰 하였다.
제막식에는 선조님에 대한 묵념과, 공덕비 건립 경과보고, 비문낭송, 상권 도정공
종회장님의 인사말, 시욱 대종회장님의 인사말 등이 있었다.
상권 도정공 종회장님은 인사말을 통해 “때 늦은 감은 있으나 모든 전국 종친들의
축복 속에 훌륭하셨던 선조님의 업적을 알리는 공덕비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세우고
또 종친 간에 화합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참으로 기쁘기 한량없습니다.”라고 말을 했고
시욱 대종회장은 “ 얼마 남지 않는 제 임기 중에 대종회와 장학회에 큰 공을 세운
도정공 종회 공덕비를 세우게 되었고 ,또한 전 종친이 서로 화합하면서 축하하는
제막식을 갖게 되어 영광스럽다고 말 했으며,공덕비를 길이 보존할 것을 당부하였다. ”
이날은 또 지난 3.19일 비봉재를 참배한 시욱 대종회장, 태섭 5대회장, 석용 6대회장의
비봉재 방문 기념식수도 하였으며, 특히 화환을 보내 제막식을 빛나게 하여 주신 시욱
대종회회장, 상길 문열공파종회장, 태섭 문경공파종회장 , 응상 농서장학회 이사장
등에게 박수를 보내며 공덕비 건립 축하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참석자 기념촬영도 가졌다.
제막식이 끝난 후 바로 도정공 이하 6대조 시향제를 올렸으며 참석자 모두 잘 가꾸어진
비봉재를 돌아 보았다.
功 德 碑
都正公 諱 詮은 中始祖 隴西郡公 諱 長庚의 第七代孫이며 文烈公 諱 兆年의 六代孫, 領議政 亨齋 文景公 諱 稷의 曾孫, 判尹公 諱 師厚의 孫, 章節公 諱 正寧의 셋째 아드님으로서 朝鮮朝 太宗의 外孫이다 公은 일찍이 文科에 급제하여 成宗 12년(1481년)에 벼슬길에 올라 司憲府持平 漢城判官 通政大夫 南陽府使 敦寧府都正을 역임하셨다. 國王으로부터 賜牌地로 받은 땅이 累代에 걸처 傳受되어 오다가 日帝强占期와 6ㆍ25 한국전 등 혼란기를 틈타 이를 不法으로 占有 착복하는 자가 있음을 本孫들이 認知하고 大宗會의 도움을 받아 10 餘年의 訴訟 끝에 지난 1972년 3월 31일 大法院 確定判決로 還收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일대 답 22번지 외 27필지와 임야 104-1번지 외 23필지가 바로 그 땅이다. 이에 大宗會와 都正公 門中은 1976년 12월 6일(음 10월 15일)전남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飛鳳齋 會議에서 財産處理問題를 논의 한바 上記 遺産을 都正公 門中으로 10분의2, 判尹公 門中에 10분의1, 나머지는 辯護士受任料 10분의 3을 포함 10분의7을 大宗會에 獻納하여 爲先事業과 獎學事業등 後孫育成에 쓰도록 決意하였다. 大宗會는 그 基金으로 서울시 마포구 노고산동 31-158 번지의 현 星李빌딩을 구입하고, 隴西獎學會를 설립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刻苦의 노력을 기울인 故 明燮 辯護士등 關係 宗親과 큰 재산을 大宗會發展을 위해 흔쾌히 獻納해준 都正公 門中에 全 宗親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都正公 先祖님과 여러 先代 祖上님의 큰 蔭德에도 衷心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그 빛나는 功績과 功德을 이 碑에 새겨 後世萬代까지 길이길이 傳하고자 하는 바이다.
2009년 11월 29일 (음10월13일)
星州李氏大宗會長 李時煜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