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빚어내는 풍경과 사진이 그리는 풍경의 조화로움
문학박사 · 평론가 황 갑 윤
부산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항구도시, 해운대, 오륙도, 자갈치, 생선회 등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 속에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 그리고 푸른 물결의 비릿함과 자갈치 아지매의 억세고도 정감어린 경상도 사투리도 함께 녹아 있을 것이다.
김쌍주 시인의 시편 ‘부산의 100경’에서는 부산의 100가지 경치를 소재로 한 부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부산사람들의 애환, 그리고 시인의 끈끈한 부산사랑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최상의 시(詩)라 할 것이다.
그 침묵하는 신의 창작품을 언어로 그려내는 작업은 감히 감당하기 어려울 진데 시인의 통찰력과 인생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시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는 시편들을 내어 놓음으로써 부산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하는 동시에 사진이나 그림이 담아내는 풍경과 언어가 빚어내는 풍경의 조화로움과 이색적인 면을 함께 느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섯이었다가
여섯이 되었다가
밀물이거나 썰물 때에도
혼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날선 파도의
매서운 회초리는 각자의 몫이었으리라
동생 대신 벌을 서는 형의 아픔도
헛간에 숨은 동생의 두려움도
파도에 젖고 깎이며
검푸르게 서 있다
비릿하고 푸른 피를 나눠가진
너희들은 한 형제
어깨동무하고 다독이며
격랑 이는 바다 위에서 당당하여라
침묵하며 격려하여라
한 모태에서 태어난
영원한 나의 형제들이여
시「五六島」전문
예전 농경시대에는 집집마다 오남매, 육남매 나아가 십남매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형이 아우를 업어 키우는 집들도 많았다. 그 속에서 끈끈한 형제애를 느끼며 사람의 도리와 인간관계의 기초를 배우고 자라났다. 형은 아우를 감싸고 아우는 형을 존경하며 자란 가정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봉양하는 효자가 반드시 나왔으며 그 자녀들은 밖에서도 어른을 섬기며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현대 핵가족화와 더불어 사회구조의 급변화로 가정마다 자녀를 하나 아니면 둘만 낳게 되면서 그 끈끈하고 든든하던 형제애는 물론 인간관계의 예절을 배울 수 있는 계기도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할 것이다.
오륙도는 부산의 명소 중의 으뜸가는 명소의 한 곳이다. 밀물 혹은 썰물에 따라 다섯으로 혹은 여섯으로 보여 진다고 하여 그 이름이 오륙도(五六島)라 불려진다 . 김쌍주 시인은 어린 시절의 올망졸망하던 형제들을 오륙도에 투영시키며 형제들이 당당히 세상의 험한 파도를 이겨나가기를 소망하며 서로 격려하던 끈끈한 형제애를 그 특유한 섬세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여름햇살이 더위를 물고
쨍하게 몰려오면
바다는 포말을 일으키며
너울너울 파랑을 세운다
백사장은 빈자리 없이
오색 파라솔들로 빼곡하고
출렁이는 파도의
부풀은 어깨는
튜브를 물 위에 띄워
완강한 땡볕과 물놀이를 한다
꽉 조였던 옷끈 느슨하게 풀고
물살에 온 몸을 맡기고 유영하면
여백을 찾아
가파르게 달려온 일상이
수면 위에서 휴식한다
해운대의 여름은
싱싱한 갯내음과
파도의 아우성,
조개껍질의 언어들이 뒤엉겨
추억나무 하나 둘 환한 등을 켠다
시「해운대의 여름」전문
국제적 명소이자 부산의 대표적 해수욕장 해운대는 명실상부한 부산의 자랑거리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수백만 인파들이 몰려든다. 오색 파라솔들로 빼곡한 해수욕장은 그야말로 젊음과 열기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일상에서 긴장하고 피곤했던 사람들이 여가를 찾아 오는 해운대의 여름은 낭만과 휴식의 공간이다. 그곳은 코끝으로 느껴지는 싱싱한 갯냄새, 쉼 없는 파도소리, 그리고 정감어린 대화들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결국 추억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지게 되고 마침내 열매처럼 환한 등불이 켜지는 것이다.
좌판에 누워있는
눈알 투명한 생선보다
더 싱싱한 목소리로
손님을 이끈다. 생선 사이소.
선홍빛 아가미는
제 떠나온 바다를 품고
아직도 팔딱이고 있다
그 언제 이었던가
아리답던 얼굴이
그을리고 주름지는 동안
생선좌판에는 삶의 얼룩이 물들고
여인의 향기 대신
비릿한 생선 내음을 감은
억척의 눈물이 바닥을 질척인다
큰 바다, 작은 바다가
비닐봉지에 담겨 팔려가는 동안
아낙의 젖은 앞치마에는 환한 웃음이 담긴다
사람냄새 짙은 자갈치 시장에는
푸른 새벽부터
별빛 내린 저녁까지
그녀들의 푸른 꿈들이 출렁이고 있다
시「자갈치시장 풍경」전문
부산의 시장하면 으레 자갈치 시장을 떠올린다. 싱싱한 해산물이 지천에 깔려 있는 곳. 바다의 풍요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자갈치 시장의 명물은 바로 ‘자갈치 아지매’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낙의 억척스런 삶이 가정을 지탱하고 자녀들을 키워냈다. 긴 시간 자갈치 시장의 파수꾼이 된 그녀들. 여인의 향기를 포기한 강한 우리네 어머니들의 표상이 아닐까. 생선이 떠나온 바다와 그녀들의 바다는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거나 젊은 시절일 것이다. 그 그리움마저 접고 바다를 팔아 앞치마에 담는 현실의 그녀가 짓는 환한 웃음 속에는 푸른 꿈들이 출렁이고 있다.
살갑게 흐르는 바람에다
기울어진 햇살로 반짝이는 한 낮
단풍으로 물든 범어사가
참선에 들어있다
온산이 붉게 타오른다
크고 작은 나뭇잎들
푸른 계절을 지나
발화하여 재가 되려한다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다시 환생되며
몇 겁이나 지나야
저처럼 무심(無心)으로 돌아가
붉게 타오를 수 있을까
죽음은 생의 연속
내가 죽고 네가 살고
붉은 단풍잎 하나
뚝-
떨어지며
바라보는 마음마저 물들이고 있다
시「범어사의 가을 전경」전문
이 시편에서 시인은 붉게 단풍든 범어사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접하는데 붉게 물들어 마치 타오르는 듯 한 단풍잎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연초록 새싹으로 돋아나 가을이 되면 붉게 타오르다 겨울이 되어 탈락되는 순환을 하는 나뭇잎의 일생, 특히 썩어서 그 나무의 자양분이 되는 낙엽이 들려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결국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 내가 죽음으로써 네가 산다는 깨달음을 얻고 시심마저 붉게 물들어 영적 안식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마음이 머무는 풍경
광활한 다대포 모래펄이
강과 바다를 모두 다 품었다
그 경계 없는 가슴에
내안에 박힌 수심도 어스름도 녹아든다
석양은 산 능선 타고 주저앉아
서편 하늘을 잉걸 빛으로 물들이며
이제, 밝은 세상을 등지고
어둠을 취하려 한다
누구나 한번은 왔다가 가는 길
동녘에서 서편까지
빛나던 날들을 누가 기억해줄까
지나온 길 되돌아보는
홍조빛 아름다움이여
강과 바다가 한 몸으로 흐르는 곳
나아갈 길도
돌아갈 길도
지혜의 바다 모래펄에 묻고
한량없는 편안함으로
어둠속 깊이 제 육신의 뼈를 묻는다
시 「노을 진 다대포」 전문
강과 바다가 한 몸으로 만나는 다대포에 노을이 진다. 그 잉걸 빛 아름다움 앞에서 시인은 지혜의 눈을 뜬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짧은 하루의 생(生)이 모든 만물의 삶과 죽음을 해석하는 열쇠로 맞닿아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어둠을 취해야만 하는 삶의 뒤안길에서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게 하고 한량없는 안식을 주는 노을 지는 다대포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드는 것이다.
부산 100경은 사진작가들이 촬영한 사진작품들과 함께 김쌍주 시편들의 접목이 시도되어 ‘사진’과 ‘시’가 만나 또 다른 질감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는 무척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부산에 사는 시민들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100가지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과 시를 읽으며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라며 다시금 그 고유성을 지켜가며 보존을 위해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도 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부산의 향토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이 한권의 책이 부산시민은 물론 부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분명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첫댓글 선생님, 제목에 오타가 있네요. <언어가 - 어너>로 되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