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끊기
양소운
세상 살아가면서 선연이든 악연이든 인연의 고리는 실핏줄처럼 엮여있다. 한번 맺은 인연, 선연으로 이어가고 싶은 것이 모든 이의 바람이다.
작은 아이가 뒤뚱거리며 겨우 걸음을 뗄 쯤이다. 난데없이 비둘기 한 쌍이 아파트에 날아들었다. 조류가 집에 찾아들면 길조라 하지 않았던가.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인간과 친화적 동물이다. 환경 문제로 둥지 트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이것도 인연이겠지.'라며 그들에게 공간을 허락했다. 궁둥이를 좌우로 흔들며 걷는 모습이 아들의 걸음마를 닮아 정감이 갔다. 비둘기들과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발코니 난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눈치다. 그들이 노린 곳은 에어컨 실외기가 걸려있는 자리다. 실외기를 받쳐주는 거치대는 신접살림을 꾸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으리라. 둘은 주둥이를 마주치며 흡족해하는 모습이다. 거치대 주변에 젓가락만한 나뭇가지를 가로 세로로 엮고 있다. 얼기설기 짓는 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암컷이 둥지에서 두개의 알을 품고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침입자는 없을까 경계하는 수컷의 자세가 자못 삼엄하다. 새 생명 출산의 과정을 지켜보는 나마저 진지해진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새끼들은 고고지성呱呱之聲을 터뜨리며 세상의 빛을 보리라. 아이들도 신기한 눈빛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생한 모습을 직접 체험하니 산교육을 받는 셈이다. 비둘기와 한 가족 된 것이 내심 흐뭇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날이었다. 엄마 비둘기는 온몸으로 알을 감싸 안았다. 열 달 동안 태아를 뱃속에 품고 고통을 참아내는 인간과 다를 바 무엇이랴. 비를 송두리째 맞는 모습이 안쓰러워 우산을 받쳐주었다. 지켜보는 아이들 모습도 진지하다. '너희들도 엄마의 모성애를 조금은 깨닫겠지.' '비둘기와 인연을 잘 맺었구나.' 삼 주쯤 지났을 무렵, 알에서 깨어난 두 마리 새끼가 둥지에서 꼼지락거렸다. 귀여운 솜털 옷을 입은 놈들이 앙증맞다. 어미는 산후 조리도 하지 않은 채 바쁘게 움직인다.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모습은 감동 자체였다.
나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온 비둘기가 어느 날부터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구름이 짙게 내려앉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창문을 여는 순간, 퀴퀴하고 고약한 냄새가 거실과 안방으로 밀려왔다.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자식 기저귀 채우기도 벅찬데, 비둘기 똥까지 치워야 하나.'감정조절이 안 됐다. 새끼들이 성장하여 날아가기만을 기다렸다.
비둘기와의 인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역시 놈들의 둥지였다. 알은 아직 안 보였다. 알을 낳은 뒤 그들을 쫓아내면 너무 야박하지 아니한가. 인연을 끊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좋은 감정일 때는 배설물이 구수하게 다가왔지만, 막상 마음을 정리하고 보니 그 냄새가 그렇게 고약할 줄이야. 그들의 둥지를 강제 철거하고 그물망으로 실외기 전체를 씌웠다. 밤송이처럼 뾰족한 스파이크를 난간에 설치해 그들의 설 자리를 원천봉쇄해버렸다.
물리적 힘으로 그들을 보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살면서 집 한 칸 장만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전세를 전전하다 내 집을 마련했을 때의 기쁨처럼, 비둘기도 둥지를 틀고는 행복감에 젖었을 터인데. 한 때는 가족처럼 오순도순 지내다가 사소한 똥 문제로 그들을 매몰차게 내쳤으니….
"비둘기야, 그동안 많이 봐주지 않았니?" 인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자기 합리화의 극치이다. 쫓겨난 비둘기는 주인을 향해 어떤 말을 던졌을까? '잠자리 나래가 바위를 스쳐도 인연이다.' 라고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