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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모습
아가들이 몇이 모여
참 잘 논다
헤헤 호호 하하
그 모습이 참 예쁘다
아가들이 잘노니
엄마들도 잘 논다
헤헤 호호 하하
그 모습도 참 예쁘다
무슨 얘기로 저리 즐거울까
저들끼리 노는 거지만
아마 남 모르는 무슨 뜻이 있을테지
참 잘 논다
2-451
승공통일의 길
1970년대
그 어릴적 학교에서 배운
무시무시한 빨갱이가
다시 나타났다
손에 물 한 방울 묻지 않게 해주겠다고
굳은 맹세한
요 새빨간 거짓말쟁이
나는 빨갱이다
2-452
겨울 아침
아침에
선호네 집이 두런두런
못보던 사람들도 많고
봉당에서
‘야, 선호야’ 부르니
쪼르르 달려나와
천원짜리 세장
팔랑팔랑 흔들며
배추적 입에 물고 싱글벙글
‘울 할배 돌아가싯데이’
그 할부지 돌아가셨구나
맨날 똥냄새 지겹다 하더니
선호 니 좋겠다
‘고생이야 맨날천날 똥치운 선호가 했지, 지야 뭐’
선호네 아부지도 싱글벙글
2-453
외로움5
12시 10분전
습관대로
라면 물을 잡는 나는
그날 자췻방에
손만 꼭 잡고 누워있던
그 날
그 아련함 허기져
라면 봉지 뜯고 있다
계란 두 개, 신김치
2-454
교회
목사님 딸 선희가
교회 가면 사탕주고 공책도 준단다
그래서 줄래줄래
동네 꼬맹이들 몰려갔는데
하나님 아버지 뭐라뭐라
예수님 아버지 뭐라뭐라
문을 나서며
‘야, 선희가스나 너그 아부지 둘이가’
2-455
역전다방
점촌역앞
2층 역전다방
인생 역전패한
김마담 서양 홍양 나양
그리고
필터달린 청자
맛나게 피워문
내가
연탄난로 껴안고
선데이서울
표지에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닮은
어설픈 여배우
흠잡기에 침 마른다
역전다방
김마담 서양 커피 한잔에
내편이고
아차
고리뗑바지 눌었다
홍양아 제발 뽀꿈담배 좀 피지마라
담배 아깝다
2-456
기다림
1984년 아마 여름
민주와 자유로 세상은 뜨겁고
첫 휴가를 나온 군인은
문경여고앞
작은 문방구 옆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너를 기다린다
이미 두 번이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닦았지만
종알종알종알
수많은 여고생들에게 발가벗기워도
그때가
그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어
2-457
1980, 대방
가난한 재수생과
더 가난한 인쇄소 공돌이
둘이서
대방역
여자교도소가 내려다보이는 자췻방
이슬처럼 내려있던 하얀 쪽지
그 높직한 위엔
창살과
수많은 사연들
무슨 요일인가
햇볕 좋은 마당을 금잉어처럼 유영하는
여자들
가난한 재수생과
더 가난한 공돌이가
수음하던 선데이서울 18페이지
1980
대방역
그리고
여자교도소
그위
가난한 청춘
2-458
소금
눈 오는데
뭐 저리 좋아
아이들 들뛰는데
똥개들은 왜 난리야
하나도 안 좋다
하필이면
동갑가스나 옥순네 집에 가
소금 얻어오라는
엄마가 너무 밉다
정짓문 안에서
키 뒤집어 쓰고
일단 아이들 눈치를 보자
저쪽으로 가
멀리멀리 가
이왕이면
옥순이도 같이 가
제발
2-459
타령조
아무려면 어떤가
이미 온 세상이 핏빛인데
소복이 내려앉아
내가 가진 사념속을
온통 핏빛으로 엉키어
어떻게 자알 죽어갈 것인가가
궁극일진데
어젯밤에도 무척 괴로운 꿈으로 뒤척였다
내 어머니
내 아이들의 어머니
두분께
똑같은 크기로 꿇고 사죄드릴
내 어리석음이여
다만
꿈같은 일이 일어나
웃으며 볼 수 있기를
내 타령에 묻어나는
눈물 한방울만큼의 설움
서러웁다
2-460
겨울 바람
오늘같은 날은
아랫목이 좋아
휘이이 휘이이잉
찬바람이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
카랑카랑 카라랑
누구네
설덮은 돼지우리 양철스레트조각 날아가도
귀신이 휘파람 부는 날
아무도 내다보지 않아
귀신 바람 부는 날
온 동네가 정물화가 된다
2-461
소처럼
소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꾸역꾸역 그저 잘먹고
열심히 일만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굵은 퉁방울 꿈뻑이다
움메
그저 제 어미 한번 부르면
힘든 무논 쟁기질
해내는 것 같은
그런 성실로 닮아왔다고
자족했는데
아니여
힘들 때마다
어머니
두손을 모아도
반도 못 따라 한거야
여름날 온종일
쇠파리 쫓아주는
꼬맹이 친구하나 옆에 없는
이 외로움은
2-462
강 흐르다
섶에 몇몇
갈대가 느린 바람에 저항하고
모래알도
아직 얼어 있다
강은
밤마다
조금씩 얼어
헐어버린 껍질 벗겨지듯
하얀 딱지로 아물며
외로운 사람을 유혹한다
길 잃은 철새 한쌍
잠시
그 귀퉁이 깨진 얼음조각으로
허기를 달래고
바람은 더 꽁꽁
겨울 강 얼리고 있다
그 속
너무 예쁜 빙어라도 한 마리 낚아야
강태공은
흐르는 겨울강가에서
봄을 기다리겠다
2-463
사모곡
어머니
어머니
시렁에 숨겨논 팥고물떡
누나 몰래
엄마 몰래
훔쳐 먹었을때
훔쳐 먹고 모른 척 시침 뚝 떼고 있을때
애꿎은 누나 등짝 싸리비로 맵게 때리시기 전에
이미 절 알아보셨어야 해요
두어번 더
어린 도둑을
가없이 용서하신 그 마음을
모질게 다잡으시고
뺨을 후려치셨어야 해요
어머니
겨울 밤
별들이 찬 바람에 깍이어
빛을 잃은 밤
둥둥 착하다고 창식이
우리 창식이
안아주시고
얼러주시고
보담아주신
가장 아랫목에
손 잡아끌어 닿게해 주시던
어머니
별들이 뿌연 건
제가 울기때문 아닙니다
2-464
여동생
‘나이는 같지만 생일이 빠르니 동칠이가 오빠다’
‘동칠이가 오빠니 잘 보살펴야 한다
순임이도 잘 따르고’
‘예’
고개 숙이는 작은, 작고 귀여운
먼 사촌 여자아이
당분간 우리 집에 산단다
엄마아빠가 서울로 가며
자리잡을 때까지 맡겼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너무 좋다
백 번도 더 조른 내 여동생
꿈에서 본 모습과 똑같다
‘순임아 이거 니 주까?’
보물 1호 왕딱지 내민다
465
흰고무신
엄마가
맨날천날 신어
옆구리가 이만큼 찢어진
그래서 두어번은 꿰매어 신는
그 신말고
하얀,
코에 쪼그만 꽃 하나 그려진
흰 고무신 신는 날은
고운 한복 입고 어디 다녀오신다
일찍 오시든
밤 늦게 술취한 모습으로 돌아오시든
내 꼭 껴안고
펑펑 우시며
누구누구누구
꼭 복수해 달라
잠드실 때까지
서러운 원망 풀어 놓으시는 날
2-466
아궁이3
가마솥에 끓는 밥 냄새
좋다
옆에 앉으면 궁둥이가
뜨겁도록 따스하고
이따끔 부지깽이로
불 일구는 엄마는
그림같다
‘똥칠아 인자 밥먹자’
쪼매만 더 있으면
나도 그림으로 그려질텐데
후욱 뜨거운 김
맛있는 내음에
얼굴 파 묻고
이대로
이대로
그대로
있고 싶다
2-467
떡국
떡국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거란다
많이 먹어라
어머니 말씀 아니라도
매년 나와 형은
두 그릇씩 먹고
‘어 그 맛있네’
아버지도 두 그릇 먹고
그 때 왜
상을 물리고 나면
부엌에서 솥을 박박 긁어
반도 더 탄 떡국
조심스레 드시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지
하얀 떡국 맛있는 생알
얹어진 예쁜 꾸미들이
엄마께 죄송하다
2-468
緣
허허
힘들고
무거워
내려놓으렷더니
쿵
그 무게 보통 아니라
아차
끊어질라
다시 진다
허허
무거워
땅만 바라보다
어랏차 힘을 내
올려다 보니
어차차
마주보이는
그 사람은
머리위에
나를 얹었고
2-468
사정
맘 다잡아 먹고
오늘은 꼭 하리라
그래도 만나면
마음만
언제인가
네게
하고 싶다
한올 미련 남김없이
속시원히
2-469
대승사 윤필암에
그렇게
굽이굽이
오르시고
얼만큼 높은
자비 일구셨습니까
어머니
누님같은
스님
산새 쪼롱쪼롱 쪼로롱
길가에 민들레, 질경이
쑥부쟁이같은
보잘것 없는 것들
스님
모르겠습니다
이 눈길
헤쳐 가시는 길
스님
녹아 철푸덕 쏟아지는
저 소나무 위 울음 우는 눈
스님 종종종 걷지 마셔요
제발
너무
예쁘게 가지 마셔요
윤필암
풍경소리가
천둥처럼
겨울에게 작별합니다
또
겁탈당한 세월만
흐릅니다
2-470
꽃상여
어어이 어어이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어이 어어여
막곡할배는 구성도지고
어찌 저리 긴 사설 외웠을꼬
꽃상여 뒤에
아이고데고 에고에고 서러울세
백관들 건덩건덩 따르는데
만장도 파닥파닥 울어제낀다
꽃상여 간다
흙먼지 뿌연 둔덕 넘어
제석산 가는 길
뗑그랑뗑그랑
상둣소리만 길다
그래 가면
오기야 하겠나
꽃상여 흐느적
봄맞으러 가는데
막곡할배
처량한 소리
계곡을 휘돌아
2-471
굴레4
춘향아 춘향아
니 목에 씌워진 칼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던
제 에미 잡아먹은
문디겉은 년
나야 뭔 죄야
죽으며 낳으라캤나
낳으며 죽으라캤나
꼬장한 할매요
난 모르는 일이요
문디겉은 세상
문디겉은 평생
문디겉은 서방
문디겉은 자슥
에라이 문디 씹구녕겉은 인생아
새벽 네시
뭐 있나
한 장 박스 더 챙기려
이 무딘 걸음 뗀다
새벽 칼같은 바람에
온 몸 찢기우며
나보다 작은 리어카에
그 두어배 됨직한 박스 모우고
1800원 벌이 했다
내게
춘향이 칼로
씌워진
굴레
다만 곤한 잠자다
잠자다
벗어나길
잠자다
곤한 잠 자듯이
벗길
2-472
니 시 쓰나
뭐하노
궤쉐키
머하나 들다보다
답답은지
뭐하노카는데
궤쉐키야
내사
끌적끌적
시를 쓰든
무신 개지랄을 하든
실없기는
궤쉐키
엄청
쪽 시룹다
내 먼 시나 쓰겠노
실실실
웃지마라
미얀타
미얀타
다들 내 미얀타
내 먼 시 쓰겠노
그저
숭내나 내다
에, 헛지랄 했네
그럴 택이지
2-473
아나?
며칠동안
맘에 안들어도
덜 들어도
지랄마라 지랄마
다들
한번씩
해 봤으니
그 맘 알것제?
헤아리것제
아나?
밤 가는데
시나브로
서럽도록 맑은 정
그 정 때문에
좀은
빼앗긴 듯 해도
더 가진 니가 참고
나는 지랄맞은 세상
으아아아아
단말마다
2-474
김연아
아마
그 갸느린
날개같은 옷 속에
정말이지 아마
꼬리 일곱 개는 숨어 있을 것이여
기껏 4분여
4분동안 숨 한번 못쉬었다면 믿겄어
그 짧디짧은 동안
몇 번은 천국을 갔다오고
안타까움으로
눈물 날 뻔도 했을 것이여
그냥이야 아니것제
넘어지고 엎어지고
다시 다시 다시
그래서 얻은 것이것제
장혀
대단혀
연아
저런 종목은 평생가야 따라가것나 했더만
따라가는 기 아이라
넘쳐도 촬촬 넘쳐부럿어
만세
김연아 만세
2-475
속마음6
며칠 전
미련한 태호
방학숙제 다했나
묻는데
아아니 하니
흐뭇한 얼굴로
나도 안해야지
들킬라
참아야지
심드렁한 얼굴로
그 뭐할라 다해
전부 숙제 내놔라
하시는데
태호 책상위
딱 두개
퍼뜩
내 책상위 보는데
짐짓 딴데보며
아이고 우스워
태호 황소눈 되겠다
입도 씰룩씰룩
2-476
안미카엘 고바오로
성당 다니던
친구 세례명
미카엘
안미카엘
너무 폼났다
그래서
한 친구
나는
고
바오로다
고바오로
얌마 바오로는 교황인데
그래서 뭐 불만이냐
내가 바오로 한다는데
성당한번 간적없이
교황이 된 친구
고바오로
2-477
쇼팽 어깨를 들썩여
엘비스가 불타는 사랑을 외쳐부를 때
그때도 쇼팽이 그리웠다
그리움처럼
소롯한 낭만은
쇼팽
아이들이
거위처럼 꽥꽥거리다가
풀쩍풀쩍 먼지를 내며 들뛴다
앞에 몇 놈만 휘파람을 부는게 아니라
이방인조차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인다
쇼팽
니가 옆에 있었다면
색다른 이미지와
또 시대를 앞서가는
멋진 곡 몇 개 남겼으리
쇼팽
시대가 너무
급박하게 달려간다
그래서
폭굉같은 선율에
몸을 맡긴다
쇼팽
같이 어깨를 들썩여
같이
2-478
병아리
그 놈이 그 놈인데
유난히
울음이 처량한 한 놈
안됐다
유난히
눈가가 붉은
무척 빨강색을 좋아하나부다
온통 빨강색이다
귀여운 놈
제법 어른테를 낼 때도 있지만
곳곳에 유치한 아이냄새
병아리떼 속에
유난한 한 놈
귀엽다
너
빨강색
귀엽다
2-479
편지 왔어요
딩동 편지 왔어요
오빠 나....성희...어떻게 지내?
보고싶었어
1남 1녀, 그리고 아내
40대 후반
중년의 평화를 뒤흔드는
그녀의 문자
실로
20년, 어찌 알았을까 내 번호
다 보여줄게
아니 아니 아니
그녀 아닌
못된 스팸
스팸문자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잠시 두근거림에
고맙기도 해
그냥 삭제
2-480
봄
한참 동안
나를 내동뎅이 친 채 제 갈 길 바삐가는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버스를
돌아다 보았다
잘가라
어차피
다시 보려면
지구 반바퀴 돌고
너덜한 다음에야 보려니
잘가라 부디
벌써
부지런한 놈은 뒷다리를 달고
볼록한 배로 유영하고 있다
봄이다
콧등으로
드르륵 들바람이 한차례 지나고
돌개바람을 신호로
땅끝에서 생명수를 길어올리고 있다
요란한 봄이다
버스가 저만치 안보일 때쯤에야
또 봄이 왔다
그 봄이
2-481
추신
2월이
다 지나는 사연 주절대도
겨울이 허망하게 달아난다고
서러워 해도
돌아서 눈물 흫리는 건
바람때문이라고 해도
정작 꼭 할 말은
추신 : 오늘 외롭다... 알지? 꼭 전화 도고
술이나 한잔 하자
보고싶다
2-482
태동
돌아누운 풀잎들이
지쳐 우는 날
볕살받은 지구가 들떠 일어섰다
반짝이는 건
땅의 호기심
언제나 봄을 기다리고
곧 봄은 왔다
언땅 찢으며
새 움 트는 것
억만년 동안 잊지 않고
진리처럼 번쩍이는 섭리
이렇게 지독한
새 봄 맞으려
지구를 관통하려
들썩이고 있다
봄이다
2-483
봄맞이
겨우내
긴 휴업 마치고
정미소 기계가 탕탕탕 돌면
봄이 기지개를 편다
허기진 참새떼
연신 정미소 지붕위를 날고
연한 새순 뜯어먹을 생각에
어쩌면 신난 날개짓일지
똥칠이오빠야가
데려가 주는
봄오는 길목
얼음 녹는 소리만큼
버들강아지 새가지 벗고
얼핏
눈앞에 다른세상
아지랑이 어지럽다
뛰다 걷다 걷다 뛰다
오빠야 옆얼굴에 흐르는 땀방울
허연 김 뒤집어 쓴
오빠야가 봄이다
2-484
이별이 남긴 것
살다살다
이런 오한은 정말 처음이다
뼈가 시리다
목이 타고
온 몸에 얼음이 박혀
아프다
이대로
정신 줄 한 가닥
톡 놓으면
아마 죽음일 게다
아파 아파
너 떠난 후
벌써 몇날
열감기 떨치지 못하고
몇가지 약 털어넣고
솜이불 속에서
베갯잇 푸욱 적셔도
끝없이 아프다
이별은
무한대로 아픔만 남기고
2-485
그림자
그래서 너의 이름이 그림자였구나
해는 서산마루 간신히 걸쳤는데
허망한 발걸음 타박타박 따르다
긴 아쉬움으로
꼴딱 넘어
어느 찰나에
잊혀진 이름
너, 그림자였다
물론 존재하겠지
2-486
생
원대로라면
생이 이렇겠나
친다 쳐
아들 놈이 만든 말중에
가장 그럴 듯한
친다 쳐
그래 나도 친다
마흔 험한 고개
다 넘고
반환점 돌고 한참을 왔다
내 중년
안됐다
헛손질에 오십견 앓는 어깻죽지
다시 찢어져
생
울 기력도 없다
2-487
패배자
잡어매운탕에
쪼맨한 메기 한 마리
불쌍타
메기매운탕에 있지 못해
입맛 없다
소주는 쓰다
매운탕에
그 메기가
불쌍코
감히 그 대가리
씹지 못하겠다
번들한 이마에
연신 땀을 닦으며
몇 번째 덜어처먹는
니놈 식성에 분하다
드디어
메기대가리
빠자작 씹는데
내 온 몸이
으스러지고
분하다
2-488
그 언덕길 돌개바람 부는데
도련님
나라면 그리 안했을테요
담너머
까치발로
끝에서 끝으로
가시는 걸음따라
한걸음 한걸음 따르는 날
그리 맵게 외면하진 않았을테요
어디 마음따라 가나요
살아보니
그저 바람따라
세월따라 왔네요
그 언덕길
버스가 툴툴툴툴
힘겹게 오른후에
한바탕 돌개바람 불면
도련님 가신대로
그리움 한바탕 울어내렸지요
살아보니
그 훤칠한 도련님
마음속 깊숙이 파묻은 그리움
사랑인지 아픔인지
아무것도 아니지
질긴 목숨 끊기지 않도록
한끼 때꺼리 구하는 것
그것만 진리였더이다
다시라면
다. 시.
라면
혹은 모르겠지만
그 언덕길 돌개바람이라도 불지
2-489
영강
저 회색 적막 속에
아이들 함성소리
호래이미꾸라지
모래속 미처 숨기지 못한 꼬리 팔랑
그래서 내 귀에 들리나부다
아이들 소리
영강교
깡패같은 버스기사와
못잖은 화물차기사가
중간으름에 대치하고
일제가 만든 다리처럼
견고하게 마주섰다가
드디어
중앙파출소 김순경이 와서
줄자를 대고서야
빠꾸, 빠꾸
그도 회색풍경인 체로
수정 바위위에선
이꼴, 기꼴, 외꼴 아이들
그리고 문중앞, 느티나무껄
온 동네 아이들 모여
물수제비 한번에 조개 하나
종달새만 알 지키기 바쁘다
그때 그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자갈같던 아이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2-490
연희누나
순자처럼 그냥 단발인데
어쩜 저리 달라
윤기가 흘러 반짝인다
울 어메
‘어쩜 저리 곱기도
인자 연흰 시집가도 되겠어’
그 소리에
하얀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지는
연희누나
그뺨에
살짝 뽀뽀하고픈
속 맘 들켰을까
내 얼굴도 붉게 타고
2-491
봄의 음모
흐드러진 봄아니라
좀 불만이구나
삐죽빼족 가엽기도
온세상
청록으로 물들일 야심
아직 그 미약한 나섬은
흘려보게 한다
봄이다 봄
등허리부터 궁둥이까지
간지럽다
스물거리는
너의 음모에
저 처녀 시퍼런 다리
하얗게 피는 춘심
봄이다 봄
너무 정략적인 너의 음모
이겨내지 못하겠다
밖으로
나가자
2-492
봄꿈
순임이가
방싯방싯
우린 언제나
이렇게 친했지
순임아
뺨에 뽀뽀해도 돼나
아니 요기
입술에 해 줘
앵두보다 더 발간
예쁜 입술
인나라, 학교가야지
에이 참
햇살 밝은 아침
아쉬움에 싫지만
기대에 차 학교로 간다
창가쪽 순임이
볼수록 무정하고
찬바람 부는 냉동인간 순임이
꿈속 다정은 한점도 없고
꿈으로 돌아가고파
2-493
새 브라우스
엄마가 왠일이래
아마
아마도
엄마가 혼이 떴나봐
‘혼이 떴어’
할매가
술에 취해 비틀걸음 걷는 아부지 보면
노상 그 소리 했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하얀 레이스 나폴나폴
서울내기 민희만 입는 줄 알았던
저런 예쁜 브라우스 어찌 샀을까
국회의원 반형식 얼굴을 가리고 걸린
저어기 내 브라우스
너무 예뻐 긴 밤 꼴딱 샜네
더 정성을 들여
머리까지 예쁘게 묶고
학교 가는데
머스마들 힐끔힐끔
그 눈초리, 힐끔거림 참 좋다
교실문 열며
얘들아 안녕!!
기쁜 인사하는데
아! 맞은 편
꿈에서도 본 브라우스
똑같은
아주 똑같은
우리 반에서
꼴등만 맡아하는
모자라기 춘화가스나가
똑같은 브라우스 입고
히죽히죽 웃는데
2-494
기도
몰랐는데
아빠는 주무실 때
무서운 꿈 꾸시나봐
얼굴을 찡그리고
힘들게 숨쉬시네
우리들 키우기
너무 힘드신가봐
밥도 덜먹고
과자도 사달라 조르지 말아야지
편안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며 주무시는 모습
보고 싶어
아빠 좋은 꿈 꾸세요
매일매일 밤마다
두손 모아 기도드려요
2-495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사나?
이모 경호관
사고 전날 발령받아 온 사람인데
지가 어찌 알아
빨간 불알 내놓고
들뛰던 시절부터
귀향해와
날마다 오르던 그 바위에
혹시 나모르게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사나?
뭘 남기고 싶었을까?
아니 뭘 말하고 싶으셨을까?
뭘 생각하시고 싶었을까?
뭘 생각하게 하고 싶으셨을까?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사나?
니들 아나
나 이리 괴롭히는 니들
나 때문에 괴로움 겪는 니들
샛별같은 내 손녀
언제나 보듬을 아이들
여보 당신
혹시 거기 하느님
아시요, 으이?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사는지?
오늘 나 노무현
훌훌 털고 떠나는 길에
이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한 마리 훨훨 날게 해 주소
그거 아요?
나 바보 노무현
부엉이로
날고 싶소
두고 보시요
이 부엉이바위에
나가 사오
바보 부엉이 한마리
틀림없이 사오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사나?
다시 물어도
부엉이바위에 부엉이 사나?
2-496
유월
코끝
향기로운 아카시아향
장미향
여운처럼 걸려
약간 고개 들고
천천히 걷도록,
상쾌하던 5월은 갔다
그 내음새
알지
퀴퀴한 자췻방
제발 하지마라
암만 사정해도
이불 속 꼼지락
그놈들이
흥건히 배설한
그 내음
밤꽃내음새
온 동리 가득 흐른다
나처럼
불순한 생각으로
그 내음
얼굴 붉히며
들이키는 사람
있을까
유월은
에로 영화처럼
질펀히 흐르고 있다
2-497
마흔 넘어
마흔 넘어
정열적인 밤
이렇게 달뜨게
달구는 게
과연 너의
벗은 몸일꺼냐, 여자야
저녁
푸지게 먹던
쌈냄새, 장냄새, 고기냄새
귓가에 후욱 훅
불어 넣어도
참아주는 게
남자야, 사랑인 줄 아느냐
마흔 넘어
생리통처럼 찾아오는
허전함 메우려
그러는 거 안다
나도
가끔
생리통으로
너를
안는다
2-498
아내5
곱다
눈물나도록
미친 듯
울고 싶도록
니가
곱다
내 사랑아
아이들 자란만큼
고맙다
그래서
새벽마다
찌그러진
니 유방이
그립다
손
뿌리치지마라
고마워
고마워
2-499
14좌
이세상
가장 높은
14좌 오른
14명
영웅
보통사람같은
영웅같은
그 사람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한왕용
누구요???
세상에 가장 높은
더 높은
14좌
꾸역꾸역
울며 오른
한왕용
당신은 정말 모르겠소
히말라야 휴머니스트 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