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가을사람이 되려 합니다
|
진정한 가을사람이 되려 합니다 |
|
배례를 하던 중 마음이 혼란하여 운장주와 태을주를 외우는데 머리에 구멍이 나는 듯 개미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진한 꽃향기가 났습니다. 내 몸이 꼭 꽃이 된 듯했습니다. 몸은 가벼워져서 배례가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입도를 앞두고 심란했던 마음이 순간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런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증산도, 나도 이제 어엿한 증산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지언정, 삶을 후회하지는 말자’고 항상 되뇌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증산도에 입도하는 지금, 지난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진정한 가을사람이 되려 합니다. 고등학생일 때 저를 정의하면 이러합니다. ‘민족주의자’ 아니 ‘편협한 국수주의자.’ 친구들이 일제 볼펜 쓰는 것을 보면 볼펜을 휴지통에 버려버렸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로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였으나 나중에는 친구들이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일본의 독도 망언을 규탄하기 위해 원고지 100장 분량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교지에 글을 실으려면 두 장으로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을 줄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제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사회과학대학 선배들은 거의 대부분 진보적이었고,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선배들과 1년 넘게 사상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초기의 별명은 Nationalist가 되었다가 다시 NEO-Nationalist가 되었습니다. 선배들과 싸우면서, 저는 안재홍(1891~1965, 독립운동가) 선생님의 신민족주의자가 되었고, 다음에는 인본주의자로, 그 다음에는 사회주의자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랑한 것은 민족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울었으며, 1997년 겨울 용산구 도원동 철거촌의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 침묵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여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렇게 제 대학생활은 절반이 학생회실, 나머지 반이 거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년에 영화 한편도 보지 않고 오로지 투쟁하며 과(科)학생회를 살리는데 온힘을 쏟았습니다. 존재하지 않던 학생회를 2년 동안 힘을 들여 살려냈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과대표로 처음 MT를 주최했을 때 7명의 학우가 왔었는데 학생회장 임기 마지막 행사에는 100명 가까운 학우들이 참석했던 것을…. 그리고 입대를 했습니다. 군대는 지친 저에게는 쉼터였어요.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안목을 넓혀 주었습니다. 제대하고 한동안은 다시 길거리에서 투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늘어가는 어머니의 주름살을 보면서 더 이상 불효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가지고 있던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부하고 담을 쌓은 지 6년만에 공부를 하니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원형탈모가 일어날 정도로 열심히 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차례 시험을 거치는 동안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잡념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 방황의 와중에서 대순진리회 (이하 대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21일 동안 정성을 들이기로 마음먹고 대순에 나갔지만 나의 삶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그들은 해결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하루하루가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거의 무지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교리를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상제님을 만났습니다. 상제님의 말씀은 저를 매료시켰고, 너무도 좋아서 몇 번씩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조철제와 박한경에 대한 부분에서 아무래도 의심쩍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조철제가 상제님의 묘소를 파헤쳤다는 증산도인의 글을 읽고 다음날 대순에 가서 따졌습니다. 하지만 대순은 증산도가 음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들과 증산도가 모순된 주장을 하니 증산도의 해명도 들어야겠다면서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고 포정님 포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벽 4시까지 도담을 했는데 너무도 재미있었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를 보면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포감님의 말에 다음날 바로 증산도대학교 교육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태사부님과 사부님을 뵙고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여기까지 오게 하려고 그동안 그토록 날 힘들게 하셨나 보다.’ 이번 시험에서는 불합격했습니다. 총점은 합격점수를 맞고도 한 과목에서 과락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두 문제 차이로. 슬퍼해야겠지만 저는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저는 너무도 행복합니다. 지난 13일 동안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이젠 분열된 정신이 하나로 되었어요. 머리 위 정수리가 아직도 숨을 쉽니다. 맑은 기운이 들어옵니다. 이러한 기쁨을 평생 모르고 살았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이었을까요? 과연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구조가 의식을 결정하는가 의식이 구조를 결정하는가? 아님 변증법인가? 인간의 참된 자유와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하나씩 풀리고 있습니다. 상제님 진리 속에 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많은 서양철학자와 동양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답이 상제님 진리 속에 있었습니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추수합니다. 우주도 인간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추수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대자연의 역사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대자연의 순리로부터 벗어나서는 살 수 없으며, 대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는 하루하루가 바로 인간의 역사입니다. 『도전』 을 읽어보면 거기에 참 하나님이 계십니다. 참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집행하신 천지공사, 그 공사의 현장 위에서 제가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공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하루빨리 진리를 꿰뚫어 사람을 많이 살리고 싶습니다. 저 자신을 비우고 상제님의 진리대로 살아가는 삶, 저의 모든 삶의 중심이 진리인 삶,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많이 공부하고 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주신 신대방 포정님과 포감님, 그 밖의 많은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불쌍하게 난법에 빠져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대순진리회 사람들도 하루빨리 증산도에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상제님께 빌어봅니다. _ 이00 男,29세 / 서울 신대방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7.07월호 |
|
첫댓글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