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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받은 김동연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공무원입니다. 열정락서에서 그동안 아주 훌륭한 강사분들이 많이 오셔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듣기로 열정락서에 오신 강사분들중 제가 유일한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이렇게 강연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요청을 받고 사양을 했습니다만 우리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이라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와 오늘 저는 국회에 갔었구요. 지금도 국회에서 오는 길입니다. 국회의원들께서 오늘 총리와 장관들에게 대정부 질의를 하는 날이라 다녀왔습니다. 어제는 국무회의가 있어서 참석을 했습니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장관들이 다 모여서 국정을 논하는 곳입니다. 아침에는 또 경제 장관 회의가 있었습니다. 많은 국정에 저희 국무조정실에서 참여를 하고 있고 저는 그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정부에는 대충 50개 정도의 중앙행정기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아시는 것처럼 외교부 같은 부도 있고 또 국세청 같은 청도 있습니다. 다합치면 50개 정도의 중앙정부 기관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총리를 보좌하면서 50개 중앙행정기관의 일들을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전체적으로 감독하는 그런일을 하고 있고 저는 그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비유가 꼭 맞을런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전체적으로 하는 일을 오케스트라라고 한다면 국무조정실은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오늘 제 강의를 톨스토이 얘기부터 시작을 할까 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전쟁과 평화라든지 부활 이런 대작을 많이 쓴 작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단편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에서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톨스토이는 한 단편 당 세 개 정도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톨스토이 단편중에 세가지 질문이라는 단편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세가지 질문이라고 하는 단편 속에 나오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겠습니다. 톨스토이가 그 단편에서 던진 질문은 이렇습니다. 첫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냐, 둘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냐, 셋째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냐 입니다. 여러분도 재미있게도 프랑스의 작가 베르베르도 작품 속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오래전이긴 합니다만 베르베르의 대표작 개미에서 개미여왕을 통해서 비슷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도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은 언제냐, 중요한 일은 무엇이냐, 그 다음에 행복의 비결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열정락서 시즌5의 주제가 저는 새로운 성공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공을 추구합니다. 성공해서 행복한 것일까요, 아니면 행복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까요.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강연 말미에 이 이야기를 다시 하겠습니다. 저도 오늘 여기에 세가지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제가 드릴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어려웠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두번째 여러분 하고 싶은 일이 뭡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찾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할 때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십니까. 이 세가지가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어려웠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제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제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입니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판잣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가지 못하고 상업고등학교를 갔습니다. 대학교는 가지 못하고 나이 17살 때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이대로 이야기한다면 대충 중학교 1학년 때부터 20대 초반에 이르는 제 인생의 과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화면에 보시면 왼쪽이 지금의 모습이죠. 지금의 청계천입니다. 오른쪽이 60년대 청계천의 모습입니다. 60년대 청계천은 저렇게 무허가 판잣집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많이 살았고 서울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저기 살았는데 정부에서 저 판잣집을 철거를 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성남시입니다만은 그때는 경기도 광주군 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맨땅에다 이주를 시키고 땅을 20평 30평씩 떼어주고 거기서 살게 했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허허벌판이니까 천막을 짓고 살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시절이었습니다. 집이 이렇게 어렵다보니까 제가 인문학교를 가지 못하고 상업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은행시험을 봐서 11월달부터 은행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3학년 재학중 11월입니다. 교복입고 찍은 사진이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은행 시험볼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이 직장생활을 하던 은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희집은 그때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 셋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저는 소년 가장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니겠지만 저희 가정 입장에서 보자면 서광이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를 도와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동생 셋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은행은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돈도 번다고 우쭐하기도 했지만 곧 현실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들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고등학교 졸업한 은행원으로 끝낸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학을 다니는 주경야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갈증이 가실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목이 말랐지요. 어느날 은행 합숙소에서 있었는데 옆방에 선배 방에 갔다가 나오는데 그 선배가 쓰레기통에 책을 버려놨더라구요. 제가 그 책을 집어서 나왔습니다. 그 책이 고시잡지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고시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책을 보고 제가 고시공부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가 어느정도 되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저희 가정형편이 고시공부에 전념할 형편은 못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낮에는 은행을 다녔고 밤에는 대학을 다녔고 학교가 끝나면 공부를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공부했는지 얘기를 하자면 굉장히 길어질 것 같으니까 한마디로 표현하겠습니다. 그때 제가 가졌던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 세상에 누구도 지금 내 자리에 갖다놓으면 나보다 열심히 할 사람 없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제가 야간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고시가 두개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직장을 계속 다녔기 때문에 제가 공무원 발령을 받는 날 은행에 사표를 냈습니다. 지금도 제가 공무원 발령을 받은 날과 은행에 사표를 낸 날이 같은 날입니다. 11월달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 어려움과 곤란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상황에 주어집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열정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것을 눈먼 열정이라고 표현합니다. 두번째는 낙관적인 자세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한쪽면이 보이면 한쪽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한쪽 면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면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많은 경우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는 부분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어려운 보이는 부분에 지배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보석까지 숨어있는 걸 생각하면서 긍정적인 생각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남이 낸 숙제입니다. 제가 세가지 질문 중 첫번째 질문은 남이 낸 숙제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젊은 시절의 어려움들을 위장된 축복이라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축복은 어려움이라는 탈을 쓰고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여러분 그 탈을 깨면 그 뒤에는 보석같이 빛나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탈을 깨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 선택을 강요 받았던 상당히 긴 어린시절이 지금 생각을 해보니까 정말 위장된 축복이였습니다.그때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 입니다.여러분 만약에 어려움이 위장된 축복이라고 한다면은 여러분이 낙관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여러분 스티브 잡스 잘 아시죠.제가 영상을 하나 준비 했습니다.잡스 얘기를 한번 보실 까요? 여러분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를 창업을 한 뒤 크게 성공을 한 뒤에 전문 경영인을 영입을 했는데 그 젊은 경영인에 의해서 애플사에서 쫒겨납니다. 해고를 당합니다. 스티브 잡스에게 주어진 상황이죠. 잡스는 해고된 뒤에 아주 참담한 상황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 났으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지금 이 연설은 스티브 잡스가 죽기 몇해전에 스텐포드 대학에서한 유명한 졸업식 연설입니다.스티브 잡스가 해고 당했던 것은 자기 인생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최고의 하나 였다고 했습니다.그러고 그 기간동안에 자기의 창의력이 가장 최고조로 달했다 그랬습니다.여러분 제 버전으로 이야기 하자면은 그것이 스티브 잡스에게 주어진 위장된 축복이였던 것이 였습니다.첫 질문에 대한 제 답입니다.여러분 지금 많이 어려우실 겁니다.앞으로는 더 큰 어려움이 닥칠 것 입니다. 지금 앞으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분 눈먼 열정을 가지셔야 합니다. 죽기 살기로 얼마 동안의 기간이 될지도 모르는 기간에 자기 자신을 쏟아 붇는 눈먼 열정을 가지셔야 합니다.동시에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마셔야 합니다.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려분들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위장된 축복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이제 두번쨰 질문입니다.여러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일을 찾으셨습니까.입니다.
아 제가 공무원이 되서 경제기획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의 전신이죠 .그 당시 경제기획원은 내노라 하는 엘리트 들이 모여 있는 그런 조직 이였습니다.저는 이름 없는 야간대학을 나왔고 맣은 열등감을 가지고 조직생활을 시작을 했습니다.제가 겪었던 예를 하나 말씀드릴까요 처음에 발령을 받아서 저희 고시동기 4명이 같이 배치를 받았습니다. 어느 방에 갔더니 신입 사무관들에게 학교 어디냐고 물어 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어느 학교나왔다고 이야기 하고 나가는데 제 뒤에서 그런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요즘은 참 희안한 학교 나온 사람도 고시가 되네’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조직에서 내가 생존할 수 있을까? 내가 비빌 언덕이 과연 있는 것일까? 제가 그떄 26살떄 이였습니다.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이 조직에서 명함이라도 내밀라면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점 더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떄의 공부를 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학을 가는 것이였습니다.유학을 가려면 자기 자비로 가는 형편은 못되었으니까
국비 유학 생각이 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꿈을 유학을 가야겠다 국비 유학생이 되야 겠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그리고 그 당시에 경제기획원이라는 조직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붙어 온 사무관들은 누구나가 다 유학을 가기를 원했기 떄문에 아주 치열한 경쟁을 뚤어야만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정말 열심히 시험을 붇기 위해서 공부를 했습니다.영어 공부를 고시 공부 할떄보다 몇배를 열심히 했습니다.너무나 절박하게 했습니다.제가 이걸 꼭 가야 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나중에 집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자면서 잠꼬대를 영어로 했다고 그러더라구요.지금 화면에 나와있는 언론기사 몇 달전에 제목입니다.’판자촌 소년 가장에서 장관까지 나는 언제나 다음 꿈을 꾸었다.’였죠.
다음 꿈이 유학이였습니다.근데 여러분 나중에 성공이라는 것 정의를 내리겠지만 중간에 하나 말씀드리자면 성공은 다음 꿈을 늘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제가 국비 유학생으로 선별을 했고 또 미국 정부에서 주는 풀부라이트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풀부라이트 장학금은 미국에 가서 박사 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장학금이 였습니다.정말 간절하게 제가 원했던 미국에서 공부 할 기회를 잡은 것이였죠.저는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일을 하면서 야간으로 다녔기떄문에 미국에 그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풀 타임으로 공부 할수 있다 하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두학기를 공부를 했는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잘 나왔습니다.그런데 세학기째 접어들면서 제게 엄청난 회의가 왔습니다.슬럼프가 왔고 처음에는 왜 이런 회의가 왔는지 그 회의의 정체도 알 수 없었습니다.주 세달을 고민했습니다.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런 것이 였습니다. 제가 두가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겠 더라구요.
첫번째는 왜 공부하는가 였습니다.두번쨰는 무슨 공부를 하느냐 였습니다.그런데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떄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보았습니다.그떄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이제 까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떄 돌이켜 보니까 제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던게 아니라 남이 하고 싶은일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되면 좋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며 살아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것은 제게 엄청난 충격이였습니다.제가 그떄 삼십때 초반이였구요.경제기획원에 사무관이였고 장학금을 두개나 받아 가지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그 한심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제가 너무 충격적이 였습니다.그동안에 했던 제 공부는 다 시험 공부였습니다.공무원시험도 그렇고 학점도 그렇고 취직시험도 그했고 모든 것이 시험공부였습니다.시험이 끝나면 학기가 끝나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는 그런 공부였었고 그런 성적 그런 스펙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하는 굉장히 큰 위기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그러면서 제가 자신을 바꾸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였고 그동안 쌓아온 제 틀을 깨는 것이였습니다.정말 죽기살기로 제가 하고 싶은 일 들을 찾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지금은 이렇게 쉽게 말씀을 드리는데 그당시에는 제게는 페러다임 시프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일이였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였습니다.돌이켜 보면 제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제 인생에 가장 큰 전기가 바로 그 때였다고 생각했습니다.이것은 아까 첫번쨰 질문에 어려운 문제가 주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제가 상황을 만든 것 입니다.제가 사서 고생을 했던 것 입니다.아주 독하게 마음을 먹고 저 자신을 바꾸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그렇게 마음을 먹고 노력을 하면서 제인생에 크게 두가지가 바꿨습니다.첫번쨰는 제가 공부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꿨습니다.그전에는 학점 잘딸 수 있는 과목,빨리 끝낼 수 있는 과목을 들었는데 그렇게 마음 먹고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습니다.아무리 학점이 따기 어려울 것 같아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습니다.그러고 박사학위 논문도 가능하면 짤리 학위를 끝낼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했었는데 그 길이 계량 모델을 돌리는 것 이였거든요.제 마음소에서 제가 계량 모델을 돌리는 그런 논물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저는 박사학위 논문도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주제를 찾아서 하자는 생각을 하고 주제를 찾았고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제 논문 주게를 정했을 적에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그 논문 주제를 가지고서는 아마 10년 이상 걸려야지 박사를 할꺼다 이렇게 했습니다.저는 그떄 결심을 했습니다.아까 이렇게 살순 없다고 했기 때문에 공부가 많이 늦어져서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공무원에 복귀를 해서 제 경력에 결정적인 손해가 온다고 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렇게 결심을 했습니다.
첫번쨰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주어진 상황입니다만은 두번쨰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스스로 만든 상황에 대한 답입니다.
여러분 주어진 상황에 부딪쳐서 아까 눈먼 열정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고 나면은 그다음 단계는 여러분들이 만든상황에 여러분들이 가셔야지 도약을 합니다. 아까 제가 첫번째 질문은 ‘남이 낸 문제 풀기라 그랬죠?’ 두번째 문제는 자기 스스로가 낸 문제 풀기 입니다. 아까 제가 그 톨스토이하고 베르베르 작품얘기를 했습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도 참 재미있지만 저는 사실은 더 관심있는 것이 그 작품 속에 주인공들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였습니다.
세가지 질문에서 주인공인 왕은 자기가 궁을 나와서 온갖 고초를 격으면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서 답을 찾습니다. 개미에서 개미여왕은 역시 마찬가지로 가자에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목숨을 건 사투끝에 자기가 찾고자 하는 답을 찾습니다. 여러분 제 두번쨰 질문은 여러분들이 사서고생을 하고 상황을 만들어서 도전을 하고 그래서 답을 찾아야 하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첫번째의 질문에서 제가 눈먼 열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분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극복을 하고 꿈을 찾기 위해서는 눈먼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눈먼 열정을 가지고 어느정도 경지에 도달하시게 되면은 이제는 하고 싶은걸 찾아서 하는 눈뜬 열정을 갖게되고 가져야 합니다. 아까 제가 스티브 잡스이야기를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텐포드 연설중에 보면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교1학년을 다니다가 중퇴을 합니다. 상당히 명문대학이였는데 중퇴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서 몸으로 부딪쳐서 답을 찾은 시도를 한 것이죠 .스티브 잡스는 연설에서 그 당시에 대학을 중퇴하기로 결심했던 것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내린 결정중에서 가장 휼륭한 결정중에 하나라고는 그런 이야기 랍니다. 여러분이 만약 저에게 이제 까지 살면서 내린 결정중 제일 잘한일이 무엇이냐고 만약에 여쭤보신다면은 제가 내린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30대 초반 그 깊은 회의 속에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위해서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제트를 깨기로 결심했던 그것이라고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려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내린 가장 휼륭한 결정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휼륭한 결정을 이걸 토대로 만드셔야 되겠습니까? 두번쨰 질문에 대한 제 답입니다. 여러분 하고 싶은 일 찾으십시요. 이것은 꿈을 의미합니다. 남이 만든 꿈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만든 꿈입니다.그리고 그 일에 여러분들이 눈뜬 열정을 마음껏 쏟아 부으셔야 합니다.
제 세번쨰 질문 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하실 적에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꼈습니까? 쉽지 않은 질문이죠? 제가 국무조정부 실장을 하기 전에 기획재정부 차관을 했습니다.기획재정부 차관떄 있었던 일을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강원도의 어느 조금한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학교는 농촌에 있는 중학교 인데 전교학생이 21명 밖에 안되는 작은 중학교 였습니다. 그선생이 제게 편지 쓰기를 ‘우리 학교 학생들이 너무나 집들이 어려 워서 아무런 꿈도 없는데 언론에서 보니까 차관님이 굉장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자리에 왔다고 하는데 우리학교를 한번 방문해서 우리 학생들에게 꿈을 줬으면 좋겠다. ‘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희 직원들이 전부 그 학교를 가는 것을 말렸습니다만은 저는 조용히 제 비서관 한 사람을 데리고 그 학교를 갔었습니다. 가면서 책을 21권을 샀습니다. 21명 학생이 전교 학생이니까 그 학생 한명 한명에게 맞는 다른 책을 샀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책에다가 학생들 이름을 다 써가지고 그 책을 나눠주고 한시간 반 동안 그학생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가 이제껏 만났던 청중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청중이였습니다.중학생들이니까요. 무슨이야기를 이학생들에게 해줘야 할까 이 학생들 눈 높이게 맞춰야 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중학교떄 이야기부터 했습니다. 아까 제 중학교때 이야기 잠깐 들으셨죠? 제 판자집이 중학교떄 시작이고 텐트에서 생활했던 그 생활입니다. 제 이야기를 한시간 반동안 듣던 학생들이 많은 학생들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뿐만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듣던 그 학교의 선생님들도 우셨습니다.제가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들 나를 보십시요. 내가 이런 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여러분들이 나보다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희망을 주었습니다.그 학생들 만나고 나왔더니 학생들이 손편지를 써서 저에게 보냈더라구요.정말 감동적인 사연이 많았습니다. 제가준 책을 평가 가지고 있으면서 정말 꿈을 잃지 않고 열정을 갖겠다는 학생도 있었고 또 어떤 학생은 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꿈을 꼭 달성하겠다.라고 했습니다.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갔다와서 제가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저 학생들이 자기가 열심히 노력을 하면은 우리 사회에서 신분의 상승 사회적인 지위의 어떤 상승 이런 것이 되는 것이냐 사회적 이동이 되는 것이냐 영어로 말하면social mobility 가 되겠죠. 이런 질문에 제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을 내리기가 어렵더라구요.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습니다. 그리고 개천에서 용이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 교육을 통해서 였습니다. 어려운 집 학생이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은 잘될 수 가 있었고 신분의 상승과 사회적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는 오히려 우리 교육이 빈곤의 세습이나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그런 악순환에 어떤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문제에 벽에 대해서 생각을 하니까 제가 맘이 많이 무거웠습니다.제가 이 학교에 가기전에 그당시에 기획재정부 차관이다만은 그전에 기획재정부 예산 실장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산 실장은 우리나라의 전체 예산을 편성하고 책임지는 자리 입니다. 예산 실장으로 있으면서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어떻해야면 어려운 사람들이 사회적 이동을 할 수 있을까? 사회적 이동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 입니다. 하는 생각에서 많은 사업들을 만들었습니다.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만은 특성화 고등학교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예산안을 편성을 했고요. 또 고등학교 학생중에 정말 집이 어렵지만 공부에 뜻이 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외국에 유학가는 사업을 정부 예산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낫겠금하는 그런 것들이 제게는 큰 즐거움과 보람이였습니다.아까 제가 두번쨰 질문에서 그와 같이 자기 틀을 깨는 노력을 하면서 두가지 제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공부하는 방법을 바꿨다고 이야기를 드렸고 두번째는 제가 공직을 하는 이유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왜 공무원을 하냐고 이야기를 하면은 제 답이 궁했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머쓱했구요.고시붙어 가지고 출세하려고 답을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공부를 마치고 다시 공직에 복귀해서 제가 일을 하면서 공부할떄가 가졌던거와 같은 고민 정말 내가 공직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찾자라고 하면서 열심히 시도를 했습니다. 어느직급 어느 자리에 있든 이 자리에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하고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속에 제가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여러분 제가 공직을 하는 이유를 찾았다고 말씀을 드렸죠.제답은 사회변화에 대한 기여 입니다.
세번쨰 질문은 사회간의 문제 입니다.사회간의 문제를 풀때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까 첫번쨰 질문은 남이 낸 문제라고 그랬죠.두번쨰 질문은 자기가 안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세번쨰 질문은 사회간의 문제 입니다.제가 이렇게 공직을 하는 이유를 찾은 뒤에서 제 공직 생활자체가 바꿨습니다. 남이나 상사가 어떤 일을 하라고 시켜서 일을 하지 않고 제가 어느자리에 있던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찾았습니다. 아젠다 셋팅을 했고 제가 그위치에서 하고 싶은것을 무었이냐 해서 제가 먼저 그일을 개발했습니다.그랬더니 정말 즐거운과 성취감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진에 조그만 명패가 나옵니다.제가 공무원 생활 32년쨰 입니다. 32년전 제가 공무원 생활 처음 했던 적에 사용했던 명패 입니다. 제가 그후에 계급이 올라가고 자리가 높아 지니까 자게로 만든 큰 명패도 줄려고 하고 또 최근에는 더 큰 목재로 만든 아주 근사한 명패를 만든다고 해서 제가 만들지 말라고 하고 제가 처음에 공무원생활 시작 했을떄 사용했던 조금한 명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처음 제가 가졌던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어려분 만약에 저보고 언제 행복했냐고 물어 보신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 할 것입니다.제가 장관이나 차관같은 높은 자리에 있을때도 아니였고 예산 실장과 같이 굉장이 남한테 영향력이 큰 자리에 있을 떄도 아닙니다.제가 제 틀을 깨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다음 부터는 매일 매일 그일하는 매일매일이 저는 행복했습니다.여러분 혹시 제 강의 지루하실지 모를것 같아서 제가 영상하나를 더 준비 했습니다. 한번 같이 보실까요?
내 여러분 왕이된 남자 광해 입니다.관람객 천명에 넘게 온 영화입니다. 왜 웃으시죠? 제가 뭐 실수 했나요? 아 죄송합니다. 천만명 아니죠 몇 만명이죠? 네 천만명 제가 그렇게 이야기 안했나요? 제가 천명이라 했나요.죄송합니다. 제강연이 별로 재미가 없어서 웃을 기회가 없는데 제가 실수 하니까 웃으시는 군요. 고맙습니다. 여러분 왕자와 거지라고 하는 소설 아시죠? 왕자와 거지가 서로 옷이 바꿔가지고 역활이 바뀐겁니다. 그 왕자와 거지 저자가 누구 인줄 아십니까? 무대는 영국이고 모델은 에드워드 8세인가요 그런데 작가는 미국 작가인 마크트웬입니다.이왕자와 거지라고 하는 소설하고 이 광해라는 영화하고 공통점이 있습니다.뭐죠? 서로 주인공 있는 두사람의 자리가 바뀐다는 것 입니다.그런데 이 재미있는 스토리 들의 백미는 ____씨가 바뀌었는데 거지가 왕자가 되고 광대가 왕이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원래 사람 못지 않게 역활을 잘 수행하는데 재미있는 측면이 있습니다.어려분 우리 사회에 엘리트는 누구 일까요? 여러분 우리 사회에 진짜 엘리트는 누구일까요? 아까 왕자와 거지와 광해에서 나오는 것처럼 왕이나 왕자가 이끄는 의복처럼 어떤 높은 자리 좋은 학벌 휼륭한 가문 이런 걸 까요? 아니면 문제해결능력이나 리더쉽이나 개인의 능력일까요.아니면 이 두개가 합쳐진 것이 우리사회의 진정한 엘리트 일까요.
여러분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왕자와 거지에서 거지였던 톰은 왕자가 되어가지고 악법을 폐지하고 성정을 배풉니다.광대는 왕 노릇하면서 아까 보셨지만 명나라와 당차게 맞서는 모습을 보이고 아주 따뜻한 인간미를 보입니다.이렇게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따뜻한 가슴을 가지면서 그 역활을 했을적에 많은 박수를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저는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앨리트라고 생각을 합니다.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고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만 생각하고 또는 자기는 남들과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데 내가 어떤 자리에 있음 으로써 사회를 위해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은 그 사람들은 진짜 엘리트가 아닙니다.그런 사람들은 속물 엘리트 이거나 사이비 엘리트 일 것입니다. 어려분 진짜 엘리트는 사회 변화를 위해서 낮은 곳으로 내러 설줄 알고 힘든일을 앞장서서 하는 일입니다. 이런 진짜 엘리트 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자기 분야에서 진정한 엘리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 세번쨰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자기 이익을 구하고 자기 뿐만 아니라도 남을 돌아 볼 줄 알고 사회를 위해서 뭔가 기여를 할 적에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것 입니다. 제 세번쨰 질문은 다른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한 것 입니다. 여러분 성공 중에는 행복 하지 않은 성공도 있고 존경받지 못하는 성공도 있습니다. 나 자신에만 유익하면 결코 행복한 성공이 될 수 없습니다. 남과 다른 사람과 사회에 주는그런 의미를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남을 돌아 볼 줄알아야지 행복한 성공이고 사회 변화에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거창하게 생각 필요 하실 필요 없이 손 쉽게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강의를 마루리 할 시간입니다. 저는 오늘 세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일관되게 여러분에게 화두를 던졌습니다.아까 톨스토이 질문 세가지 이야기 했죠. 그답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톨스토이에 의하면은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 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나와함꼐 있는 사람에게 선과 사랑을 베푸는 것 입니다. 저도 세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번쨰로는 여러분 언제 어려우셨습니까. 어떻게 극복 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있는 지금 자리와 어려움을 뒤집어 엎으란 이야기 였습니다.
두번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찾으셨습니까.
이것은 지금있는 자기의 틀을 뒤집어 엎으란 이야기 입니다.
세번째 언제 어떤 일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셨습니까.
이것은 사회변화와 건전하게 사회를 뒤집어 엎으라는 그런 질문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질문을 한 귀로 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뒤집어 엎는 것이죠.
바로 반란입니다. 그렇습니다. 반란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고 뒤집어 엎는 것 입니다.현실을 타파하러는 꿈과 도전이고 그것을 이룰려는 노력입니다. 여러분 반란을 이르키십시요. 첫번쨰로는 환경과 어려움에 대한 반란을 이르키시구요.두번째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반란을 이르키십시요. 세번쨰는 사회에 대해서 건전한 반란을 이르키십시요. 저는 이것을 유쾌한 반란이라고 부릅니다.왜 유쾌합니까.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기떄문에 유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유쾌한 반란이 성공을 이르킬 까요. 아까 제가 내린 세가지 질문에 답과 일치하는 답 입니다.첫번쨰로는 여러분 눈먼 열정과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셔야 합니다.결과를 보장 받지도 못한채 죽기살기로 여러분의 눈먼 열정을 쏟아 부으셔야 합니다.두번째로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를 잊지 마셔야 합니다.그래서 지금 처한 어려움을 위장된 축복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그런 생각의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두번쨰는 틀깨기 입니다.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자신만의 꿈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꿈은 진열장 속에 전시 되는 물건 중에 하나 집는 것이 꿈이 아닙니다.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명사라긴 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동사에 가까운지 모르겠습니다.그리고 그 꿈을 찾고 서는 이제는 눈먼 열정이 아니라 눈뜬열정을 쏟아 부으셔야 합니다. 그런 행동의 결단을 내려두시면 참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쨰는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사회 변화에 항상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기여를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의 결단을 여러분이 내려주시면은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기자가 최근에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제게는 삼무인생이였다.세가지가 없어다고 하더라구요.돈과 학력과 인맥이 없었다고 합니다.그렇습니다.제 젊은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습니다.그렇지만 제게는 다른 세가지가 있었습니다.전 삼유라고 표현했는데 저에겐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했습니다.이 세가지 유 삼유가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 하면 많은 분들이 오해하실 것 같아서 제가 간단하게 두가지를 추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쨰 오해 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니까. 저 김장관은 하는일 마다 다 성공을 했네.라고 생각을 하실 것 같아서 오해를 풀어 드려야 겠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저도 수 많은 시행 차고와 실패를 겪었습니다.제가 은행을 다니면서 야간대학 시험을 떨어져도 봤구요. 고시 일차 시험에서는 객관식인데160개 문제 입니다. 한 문제를 더 틀려서 수석으로 떨어져도 봤습니다. 그다음에 이차 논술시험에서는 다 잘봤는데 어느 과목에서 너무 시험을 잘 봤다는 흥분감에 답안지를 가지고 나와서 실격을 당했습니다.아마도 그떄 실격을 안당했다면 제가 아마 한해더 빨리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웃으시죠.저는 그떄 실격되서 그떄 한성대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요 그 비탈길 내려오면서 제가 혼자 한 없이 울었습니다. 나중에 성적을 알아보니까 기왕에 봤던 점수가 너무나 좋더라구요.그담에 아까 말씀드렸죠. 공무원 처음 시작하면서 가졌던 열등감 또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공무원 생활하면서 여러분 혹시 책상 빼 아시죠.제가 과장떄 부장떄 책상뺴 라는 얘기를 제가 두번 들었습니다.여러분 실폐가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어떻게 보면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여러분 절대로 정말로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오히려 지금 여러분 만한 나이대는 그것을 환영하십시오.두번쨰 오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여러분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성공 이야기가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자리가 많이 올라간 사람, 돈 많이 번 사람 얘기가 아닙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여러분 주위에서 얼마든지 우리 인생에 진짜 주인공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있습니다.어느 위치에서나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성공입니다. 여러분 거창한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공을 위해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유쾌한 반란은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니고 나 다운 삶 살기 위한 도전 입니다.
그 도전 자체가 아름답고 자기가 원해서 하는 길이기 떄문에 그 과정 자체에서 많은 경우에 행복을 느낌니다. 살면서 보면은요 어떤 결과 보다도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행복할떄가 참 많습니다.여러분 그거는 한참 인생을 살면은 많이 느끼시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쾌한 반란으로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되도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아까 제가 질문 드렸죠.여러분 성공해서 행복한건 아닌 것 같습니다.행복하기 떄문에 성공하게 되는 것 이지요. 이것이 바로 진짜 성공입니다.어떤 위치 어떤 환경에서나 성공은 내 인생에 주인공이 되는 것 입니다.각자가 자기 인생에 CEO 가 되어야 합니다.여러분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이나 직장에서는 다들 CEO 가 되려고 하는데 자기 인생에 CEO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는 조금 둔감한것 같아요.피터드러커라고 하는 경영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리더가 되기 위한 공통된 자질이 없다.다만 자기 다움이 유일한 자질이다.이랬습니다. 여러분 자기 삶을 살아야지 성공을 합니다. 여러분 일에 끌려 다니실 겁니까.아니면 내가 일을 끌고 갈 것 입니까.
여러분이 시간에 끌려가시겠어요. 아니면 여러분이 시간을 끌고 가시겠습니까.여러분 대부분이 학생이실 테니까 여러분이 공부에 끌려가시겠습니까.아니면 내가 공부를 끌고 가시겠습니까.같은 일 같은 공부라 하더라도 여러분이 주도권을 쥐셔야 합니다.다른 사람을 끌고 가는 리더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를 끌고 가는 리더쉽입니다. 다시 한번 되풀이 하지만 성공은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나 다운 삶 내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이 성공할 수 있는 장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세상이 여러분의 열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리고 이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여러분의 유쾌한 반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제가 여러분들과 많은 소통을 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제가 블로그를 안하는데 새로 블로그 하나를 만들었습니다.여러분 제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혹시 저와 소통을 원하시거나 질문 있거나 하면 제 블로그나 이메일에 연락을 주시면 제가 즉각즉각 100%한다고보장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과 소통을 했으면 합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꿈과 열정을 가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모두가 되시기를 바래 봅니다.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