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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정벌의 승리에는
탁월한 사격술을 지닌 200명의 조선 조총병,
그리고 조선의 명장 신유가 있었다!
"조선의 원수와
힘을 합쳐 싸워야 했던
맹렬한 전투 현장에서
신유가 느낀 것은 무엇일까?
▶ 한국 방송 최초 현장 취재 "나선정벌의 전투지, 흑룡강"
중국대륙과 시베리아가 만나는 흑룡강. 그 곳에서 조선·러시아 연합군과 러시아 코자크의 전투가 있었다. 나선정벌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던 흑룡강. 350년 후, 검은 강물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을 <한국사 傳> 제작진이 찾아가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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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한 전투 중, 신유의 감정을 토로한 기록,<북정록>
- 신유는 전쟁의 전개과정과 전투 기간 중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일기에 기록하였다. 1658년 4월부터 8월, 4개월간의 기록, 북정록. '망망한 대해를 보며 고국과 어버이 생각으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 '뱃속에 오로지 도둑놈 심보만 가득한 청나라 호장' 등 북정록에는 청나라에 파병 온 수장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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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위를 떨친 조선 조총병의 사격술!
- 17세기, 효종은 북벌정책을 추진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총을
끊임없이 개량하고, 전문적인 조총병을 양성한 결과 조선의 조총병은 청나라로부터 파병을
요청받을 정도로 뛰어난 사격술을 지니게 된 것이다.
17세기 세계 최고의 전투력, 코자크와 맞서다.
그리고 200명의 조총병을 포함한 260여 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청을 돕기 위한 파병군의 장수로서 신유는 청나라 대장군 사이호달의 명령을 받들 수밖에 없었다. 사이호달은 병자호란 때 부원수로서 조선을 침공했던 인물. 신유는 조선의 원수가 내리는 명령을 좇아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다. 치욕스러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었던 효종.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북벌정책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내세우고, 조총병을 육성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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