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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형시는 고시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오늘날 시조단에 정격시조는 드물고 파형시조 또는 변형시조가 범람하여 시조를 정형시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시조가 정형을 잃고 파격으로 치닫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1) 정격시조는 글자수를 맞추어야 함으로 쓰기가 어렵고, (2)고시조의 여러 형을 현대시조의 정형인양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3)우리말 자체가 음보 또는 음량으로 이루어짐으로 자수를 고정시킬 수 없다는 주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격 ‘3.4.4(3).4 3.4.4(3).4 3.5.4.3’ 은 고시조에서 제일 많은 형이므로 현대시조의 표준형이 된 교과서적인 정형이다.
이를 벗어난 주장들이 많지만 거의 공통적이고 대표적인 논리는
“글자 수만 세고 자수율만 따지고 고정된 자수틀에 글자 수가 조금 넘치거나 모자라면 파격이라고 우기고 있는 한심한 작가들도 있다. 이는 하이쿠나 한시보다 폼이 넉넉하고 다소 여유 있는 우리의 전통시조를 잘 모르는데서 오는 소치이다. 우리말은 교착어이며 어미와 조사가 발달되어 있어 고정된 자수틀에서 앞뒤 가변적 여유가 원천적으로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이쿠나 한시처럼 고정된 틀로 못 박아 둘 수 없고 그래서 자수율이 아닌 음보율도 나오고 음량률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우리의 시조도 주어진 여건의 틀 안에서 운용의 묘를 살리고 내용의 변화 등으로 시대에 걸맞도록 변모해야 한다.”(시조예술2009겨울호P110)는 것이다.
이 논리의 부당함을 짚어 보면
(1) ‘우리의 전통시조가 넉넉하고 여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조는 고정된 자수틀로 못 박아 둘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현대시조를 고시조의 연장으로만 이해하는데서 나온 단견이다.
현대시조는 창(唱)이 탈락되고 정형이 있는 순수 문학으로서의 정형시이다. 노래를 듣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고 감상하는 것이다. 고시조에서와 같은 노래가사가 아니며 곡조가 없는 대신 고도의 문학성과 철저한 정형이 필요한 글이다. 현대시조는 전통시조(고시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형은 고시조에서 나왔지만 제일 자주 나오는 형, 단 하나이며 고시조의 모든 형이 현대시조의 정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도외시하고 고시조의 모든 형을 뭉쳐 정의하려고 하니 잡다한 설이 나오고 ‘정형시이면서 정형시가 아니며 정형시가 아닌듯하면서도 정형시(定型而非定型 非定型而定型)’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음보율을 넘어 음량율까지 확대하는 것은, 1자를 느리게 읽으면 3자의 음량을 낼 수 있고 5자라도 빨리 읽으면 3자의 음량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몇 자까지 가감해도 되는지 기준이 없다. 자유시와의 경계를 허물고 사이비시조가 창궐하도록 더 좋은 바탕을 만들어 주게 된다. 어차피 우리말은 1자가 발음의 최소단위이며 글의 길이는 자수로 따지게 되어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편 시조를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는 것은 자수를 가감하는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형안에서 글을 잘 다듬어 표현력을 넓히고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내용을 충실히 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2) 우리말은 교착어이며 어미와 조사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하이쿠나 한시처럼 ‘고정된 틀’(자수정형)로 못 박아 둘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일본어도 교착어이며 어미와 조사가 우리말 못지않게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같은 조건인데 하이쿠는 자수정형이 가능하고 시조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억지이다.
한마디로 엄격한 자수정형으로는 창작이 어려우니 음보율 또는 음량율까지 확대하고 고시조의 모든 형을 적용하자는 주장은 논리에 결함이 많다. 정형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태생적으로 정형시는 어렵고 자유시는 쉬운 것이다. 어렵다고 형을 벗어나면 이미 정형시가 아니며 이를 극복하고 문학성을 갖출 때 정형시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정형시도 아니고 자유시도 아닌(작자가 시조라고 우기는) 사이비시조는 존재가치가 없다. 현재의 정격시조는 음보율을 바탕으로 한두 자의 가감을 허용하고 종장 둘째마디는 5자이상이라는 느슨한 자수정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갈고 다듬어 완벽한 자수정형이 완성될 때까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하 2009년 겨울과 2010년의 봄 시조단을 살펴 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09.10월호
시조 11편 중 [애사](오기일), [장마뒤끝](김숙희), [지명(知命)의 강을 건너](이낙금) 등 3편은 정격시조이나 나머지 8편은 깨진 음보가 있는 사이비시조이다.
[가시고기 이야기](金鄕山) 8수중 7번째 수는 종장 둘째음보가 4자로 되어있어 시조가 아니다.
* 일곱째 수 종장 : 새끼는 지아비를 뜯어 먹고 자란다.
시어 [지아비를]도 [제 어미를]이 되어야 맞다(지아비=남편).
조약돌
박상문
얼마 만큼/ 거센 파도면/
돌 재갈을/ 이리 윤낼까/
계란처럼/ 동그랗게/
모서리가/ 다 닳도록/
이만큼/
갈아 만들려면/
몇 천 시간/ 걸릴 것인데/
쓰레기/ 인간 성품/
둥근 돌처럼/ 되려면//
어느 정도/ 세월이면/
이만하게/ 다듬을까?/
그 세월/
기왓장 갈아/
거울 만들 때쯤/ 될까?/
수의 구별이 없고 깨진 음보가 6개나 되는 파형시조이다. [거울 만들 때쯤/ 될까?/]는 6.2조가 되어 껄끄럽다. 글자수만 억지로 맞춘다고 옳은 음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나쁜 인간성품은 세월이 가도 조약돌같이 둥글게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지만 표현이 이상한 곳이 많다. 파도가 돌을 굴려 계란처럼 만드는데 [몇 천 시간]만 걸리는지? [인간 성품]이 모두 [쓰레기]인지? 기왓장을 오래 갈면 거울같이 되는지? 또 [거울 만들 때쯤 될까?]는 [거울같이 만들 시간이면 될까?]로 되어야 구문이 맞다.
(2) 09.11월호
시조 11편 중 [타관장터](신필영), [능소화를 곁에 두고](권영춘), [탈춤](박필상) 등 3편은 흠잡을 데 없는 정격시조이다.
풍령(風鈴)
최승범
개오동나무/ 우듬지 끝/
매달린/ 풍령이/
해질녘/ 빈 골짜기를/
개우랑개우랑/ 흔들고 있네/
오늘이/
상강절후인 것도/
나는 잊고/
있었다/
깨진 음보가 5개이다. 시조로서는 실격이지만, ‘10월 하순 해 질 무렵 개오동나무 열매가 방울이 되어 빈 골짜기를 흔드는 듯한 광경’을 잘 그려 내고 있다. 북한어인 [개우랑개우랑]은 방울의 소리와 흔들리는 모양을 표현하는 [딸랑딸랑]으로 하면 음보도 맞고 더욱 좋을 것 같다.
(3) 09.12월호
시조11편 중 6편은 정격시조이나 6편은 파형 또는 변형시조이다. [해](문무학)는 초장과 중장이 없는 변형시조(단장시조)이며, [세상이 웃네](엄순용)는 2수 모두파형음보가 많아 변형시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과실이 익는 날
채명호
햇살 좋은/
가을 나절/
친구 과원/ 찾아가니/
주인은/
졸고 있고/
과실은 바쁘더라/
아뿔싸/
안전사고로/
또 한 놈/ 떨어진다./
과수원의 가을을 잘 그려내고 있다. 1자도 버릴 것 없이 쉬운 말로 여러 내용을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형상화되어 있고, 종장의 반전효과도 돋보이는 가작이다.
(4) 10.1월호
시조 8편 중 정격시조는 [돈다 돈다](이기라) 1편뿐이다. 특히 [부석사 소묘](李準文)는 6수의 장문으로 대부분 정형에 맞으나 셋째 수 종장에 큰 결함이 있어 실격이다.
* 셋째 수 종장: 대석단 아름답고 웅장함이 더하다.
또 한 해를 보내며
정완영
하루하루/ 붓끝 다듬듯/ 지성스레/ 살아왔건만/
등불이/ 잦아들듯이/ 또 한 해가/ 잦아들고/
무어라/ 아쉬운 생각이/ 낙엽처럼/ 자꾸 밟히네/
만날 사람/ 다 만나고/ 가고픈 곳/ 다녀왔건만/
그래도/ 또 한 사람을/ 덜 만나 본 것/ 같고,/
한 자리/ 못 가 본 자리가/ 남아 있는 것만/ 같네./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파형음보가 유독 많다.
한 해가 저물어 가면 누구나 느끼는 감회를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현대시의 특징적인 표현이 한 군데도 없어 마치 산문을 읽는 기분이다.
(5) 10.2월호
시조 7편 중 [꽃무릇 연정(戀情)](김옥중)만 정격시조이고 [할미꽃](金光洙)은 정격이나 수(首)의 구별이 없어 아쉽다. [거울](유병규)은 5수의 연시조로 거의 정격을 갖추고 있으나 넷째 수에 1음보의 파형이 있다.
동심초(童心抄)
박경용
혼자 놀아도/ 마냥/
신바람난다는/ 아저씨/
“오늘/ 내 단짝 친구가/
일자리를/ 얻었거든!”/
등나무/
쌈지공원 그늘이/
바깥쪽보다/ 밝다./
- 마음 그늘.2
(4편중 둘째 편)
4편의 작은 시로 구성된 시조이나 많은 음보가 깨져 있고 그중 둘째와 셋째 것은 파형이 심하여 변형시조라고 함이 마땅하다.
(6) 10.3월호
아직도 수의 구별을 없애버렸거나 음보가 깨진 작품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정격에 가까운 작품이 많이 늘었다. 시조 12편 중 [부석사](이무식), [삶](임권신), [시령](황능곤), [우산 쓴 가인](한상철), [파도의 몸부림](벽송) 등 5편은 정격시조이며 내용도 좋은 작품들이다.
파도의 몸부림
벽 송(본명: 김홍래)
울울한/ 물결위에/ 웅성거린/ 하얀 사연/
살가운/ 달빛 애련(哀戀)/ 철석철석/ 율(律)을 띄워/
모래밭/ 펼친 연서(戀書)가/ 들숨날숨/ 등을 든다./
(3수 중 셋째 수)
하얀 파도와 모래밭에 연서를 쓰듯 들락날락하는 바닷물, 그 위를 밝혀주는 달빛이 잘 형상화되어 있어 밤바다 가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 속에 웅성거리는 슬픈 사랑과 가락도 있다.
이 작품은 3수의 연시조이지만 한 음보도 깨짐이 없이 정격을 유지하고 있어 ‘우리말은 교착어임으로 자수틀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논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09겨울호>
시조 13편중 [쏟아지는 장맛비](이정자)와 [망초](장인석) 외에는 정격시조가 없다.
[낙화암에서](전현하)는 4수의 연시조로 모두 정격을 유지하고 있으나 첫째 수 초장 [칠백년 사직이]는 3.3조에 그쳐 완벽한 정격이 아니다.
심한 파형으로 시조의 모습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종장 첫마디 3과 둘째마디 ‘5이상’도 못 지킨 사이비시조가 4편이나 된다.
[석양길](김태은) 첫째수 종장: 당신을/ 알고부터/ 의미 있는 여인이/ 되고 싶었다./
[향수](정임현) 둘째수 종장: 지기가/ 앞에 나와/ 신고조차/ 못하게 하는구나/
[계백의 얼](신익현) 첫째 수 종장: 바람 한 점/ 부소산 중천에/ 붉은 달빛/ 그린다/
[하구(河口)](이용식) 첫째 수 종장: 철조망 너머엔/ 먼 하늘/ 부서지는/ 저녘 노을./
더욱이 시조정형을 난도질 한 작품이 버젓이 시조의 가면을 쓰고 나와 있다.
여름밤
이갑상
낮이 가고/ 밤이 오면/
세상은/ 닫히고/ 4433
마음이/ 열리며/
부분이 아닌/ 전체가 된다/ 3355
빈 고요/
세상은 밖으로 돌고/
마음은/ 안으로 흐른다/ 3836
모든 것/ 내려놓고/
잠든 세상/ 344
잠이 든/ 나/
누가/ 내 눈을/ 감겼는가/ 31234
하루 이틀/ 삼일이 가고/
날마다/ 줄어드는데/
내 삶의/ 무엇이 늘까./ 453535
[계절문학]<10봄호>
시조 10편중 [반달](고두석)만 정격이다. 수의 구별이 없거나 한두 음보 깨져 아쉬운 작품이 2편 있다. 나머지 7편도 대체적으로 큰 파격이 없는 반면 뛰어난 시상이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도 발견되지 않는다.
(2) [현대 시조]<09겨울호>
기성 시인들의 신작발표장인 [현대시조단]에 실린 작품 중 26편은 정격시조이다.
그런가하면 시조의 형을 마음 내키는 대로 주물러 놓은 사이비 시조도 눈에 뜨인다.
(A) 봄
오영환
톡/ 1
톡/ 1
톡/ 1
낱말들이/ 하나 둘/ 자판 위/ 걸어 나와/ 4334
튼 입술/ 콕콕대며/ 이파리/ 등 떠밀고/ 3434
가슴 속/ 털 뽑아가며/ 언강을/ 덮고 있다./ 3534
(B) 기도
박규해
무릎이/ 시리도록/
기도하는/ 사람아/ 3443
내 어이/ 예수님을/
동경하고/ 기도 하는가/ 3445
하느님/
굽어 살피소서/ 36
자기의/ 소원 빌겠다고/
무릎이/ 닳도록/ 3633
그렇게/ 기도하면/
무슨 일이/ 이룰지니/ 3644
굽어 살펴/ 영화로다./ 44
작품(A)는 불필요한 의태어를 달아 시조의 모양을 비틀어 놓았고, 작품(B)는 어느 모로 보아도 시조가 될 수 없는 ‘나 홀로 신종정형’을 만들어 놓고 독자를 속이고 있다.
[현대 시조]<10봄호>
[현대시조단]에 25편의 정격시조가 발표되었다. 정격시조 또는 정격에 가까운 파형시조는 비교적 내용도 충실하여 독자를 즐겁게 해 준다.
[겨울단상](김 산)은 수,장,구의 구별이 없으며, 3.4조 음보가 한군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종장 3543도 없는 5연 18행의 완전한 자유시이다. 이런 작품이 어떻게 시조라는 이름으로 실렸는지 알 수 없다.
[낯선 땅이 환하다](윤드레)는 첫째 수 종장 첫마디3을 지키지 못한 사이비시조이다.
* 살풋살풋/ 날개짓 털며/ 봄의 내성을/ 키운 날./
이것도 부족하여 4장시를 버젓이 내어 놓고 시조를 희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심우재
노종래
감감한/ 무소식에/ 마음 졸인/ 그 어머니가/
가물가물/ 흔들리는/ 등잔불을/ 앞에 놓고/
소식도/ 다 끊어져/ 마음 졸인/ 그 어머니가/
밤마다/ 사립문을/ 늘 열어놓고/ 있던 집./
(3수중 첫째 수)
비
김병훈
비님은/ 양반인가/ 비님은/ 사또인가/
비님은/ 언제와도/ 구름을/ 타고 오고/
비님은/ 언제와도/ 구름과/ 같이 오고/
비님은/ 추위를 타나/ 여름철/ 좋아하네/
(2수중 첫째 수)
(3) [시조문학]<09겨울호>
100편에 가까운 신작시조가 발표되었지만 정격시조는 가물에 콩 나듯 찾아보기 어렵다. [겨울시조단]에 실린 [고인돌](오민필)과 [신석정 생가](오인필)는 가을호에 실렸던 작품을 재탕하고 있다.
내장산 단풍구경
김 준
온 산이/ 붉게 타고/ 구름도/ 취해 잇다./
구경 온/ 사람들은/ 가을 하늘/ 내려 놓고/
저마다/ 가득 담느라/ 떠날 줄을/ 모른다./
파격시조의 잡초 속에서 어렵게 찾아낸 정격시조이다.
1자도 가감 없는 43자로 가을 산의 붉은 단풍, 구름마저 붉게 보이는 시적화자의 감흥, 맑은 하늘을 끌어내려 자기 가슴에 가득 담는 단풍놀이 관광객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행시는 특정 장소의 경관을 묘사하면서 작자가 혼자서 흥분하고 감탄하는데 그쳐 그 곳을 가보지 아니한 독자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실패작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내장산에 관한 기행시이지만 작자가 자기함몰에 빠지지 않고 일반인의 공통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독자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손상철
떨구는,/
해살 한 줌/
묻은 감빛 물감이/
이마에/ 3473
쏟아진다/
병아리들이/
막/ 부화실 깬 듯/ 4515
종소리 없이/
어느 뒷골목 지하/
대구./ 572
-간판.3
햇살 한 줌 미술학원
이것도 시조인가? 3장6구는 커녕 종장 3과 5도 어디 갔는지 흔적이 없다. 시어들은 연결이 안 되게 일부러 떼어 놓은 곳도 있다. [해살]이라고 했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햇살]이라고 한다. 시조는 고사하고 자유시로도 읽을 수 없는 문학의 파괴이다. 내용도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횡설수설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본문과 제목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모자를 벗어 발로 밟고 서있는 미치광이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돌출 글 장난으로 명성을 얻으려는 것인가?
이와 비슷한 글이 [신작특집]의 이름으로 5편이나 나란히 실려 있다.
[시조문학]<10봄호>
아직도 수의 구별을 일부러 없애버린 ‘자유시 흉내 내기 작품’이 몇 편 있다. 종장 둘째 마디를 10자까지 늘여 놓은 것도 있다.
*[바닷가 여인숙](김 종)첫째 수 종장: 판자로/ 막아놓은 여인숙에서의/ 뒤척이던/ 하룻밤./
바닷가 여인숙
김 종
아/ 세월은/ 흘러가고/ 그리움만/ 남은 지금/ 13444
그/ 여인숙도/ 헐리고/ 모텔이/ 들어 섰다/ 14334
멍하니/ 바라보는 눈시울에/ 바람소리만/ 쓸쓸한/ 3853
(4수중 넷째 수)
외형은 시조모양을 하고 있지만 속살은 자유시의 운율이다. 종장 [바람소리만 쓸쓸한]은 말을 하다가 끊어 버려 완성미가 없다. 도치법으로 해석할 수도 없는 맥이 끊어진 글이다.
병실
김봉근
회색 빛/ 늘어진 창/
빛 바랜/ 장미 하나/
거울 속/ 묻힌 세월/
가시 끝에/ 그려 내고/
가랑비/
이고 온 사연/
툇마루에 / 신발 벗네./
* 2006년 돌아가신 어머님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원하셨던 병실에서 쾌유를 기원하며.
늙고 병든 환자가 누워 있는 병실에서 가랑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리는 시적화자의 말을 듣는다. 깔끔한 정격시조를 만나 반갑고 읽을수록 시의 세계에 빠져 들게 하는 가작이다. 주를 달아 작자의 시작노트를 적어 놓은 것은 오히려 작품의 문학성을 떨어트리는 사족이다.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09.10월 (심사위원 : 박기섭· 박현덕 )
<장원> 그 아침의 비밀 (김영주)
잠이 덜 깬 새벽 유리컵을 닦다가// 살과 살이 부딪치며 비명을 내지른다//
순간을 놓아버린 손//바르르 떨고 있다//
날선 살점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함께 한 시간들이 거품처럼 사라진다//
환상을 담았던 것이// 꿈이었던 것이//
잃어버린 아픔은 그러모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 붙들어 둔 은밀한 욕망이다//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이 아침//
버리고 못버리는 미련조차 짐이다// 가벼운 아주 가벼운 비밀하나 가져갈 뿐//
살면서 손바닥 위에// 건져 놓은 손금 하나//
<차상> 담배 (서덕)
1. 외로운 사내는// 청동향로가 되었다/// 담배향 불붙이고// 길게 한숨 쉬어///
밤하늘 흐릿한 구름처럼// 하얀 번뇌 꽃 피웠다.//
2. 담배 끝머리에// 붉은 별이 내려 앉는다/// 덧없는 이들을 희롱하는 붉은 몸짓///
사내의 숨결에 맞춰// 거짓희망이 명멸한다.//
3. 잠깐의 위로 뒤// 남은 자리는 더욱 외롭다/// 구름도 별빛도 없는// 식어버린 향로에///
희미한 잔향을 담은// 담뱃재만 스산하다.//
<차하> 가을 삽화 (김현실)
서귀포로 가는 길 귤나무가 무성하다// 누군가 손수건을 가지마다 걸어둔 듯//
바람은 헛기침하며 그리움을 뱉어낸다.//
햇살이 올레길의 억새에 둘둘 말린다// 무자년 뼈아픈 시간들을 들춰보는//
올레에, 하늘로 길게 뻗은 오름이 봉분 같다//
여름을 비워내던 그 귤밭 아래에는// 숨비소리 간직한 금빛 알이 자리 잡고//
못 이룬, 거친 유랑의 푸른 꿈을 피울까//
* 필자의 작품평
당선작 3편 모두 정격시조는 아니지만 수,장,구의 구별이 뚜렷하다.
차상작의 [길게(한숨쉬어)]는 3자음보로 정격이지만 장원작의[날선(살점들이)], [(잠이 덜 깬)새벽], [(꿈이었던)것이] 및 차상작의[담배(끝머리에)]는 2자음보로 파격이다. 음보율로 정형을 재단할 때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날선]은 띄어쓰기 잘못임으로 [날 선]으로 바로잡으면 정격이다.
장원작은 비명, 시간, 미련, 비밀 등 관념을 형상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나열하였으나 차상작은 시상이 선명하여 내용면에서는 장원작 보다 낫다. 그러나 심사위원의 심사평과 같이 정형을 벗어난 음보가 많아 시조로서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2) 09.11월 (심사위원 : 박기섭· 박현덕)
<장원> 혀, 말미잘 같은 (민경자)
팽팽한 근육질에 독을 품은 돌기 안고// 날름날름 집어삼킨다. 설익은 풍문들을//
세 치 혀 마수에 걸려 소리들이 넘어진다//
때로는 칼날 세워 목덜미를 겨누다가// 반 뼘도 안 되는 게 한 생을 쥐락펴락//
누구도 함부로 못할 그 아비는 지옥 불//
벌렸다 오므렸다, 한 구멍에 들락날락// 피비린 배설물이 입술 타고 흘러간다//
말미잘 입질을 따라 붉은 꽃잎 찰랑이듯//
입 닫고 잘근잘근 혓바닥을 씹어볼까// 문지기 보초를 세워 근신을 명해볼까//
내 것이 내 것이 아닌 괴물과 살고 있다.//
<차상> 거울속-아버지의 부활 (서노)
버섯갓 주름켜 속 홀씨 모두 떠난 뒤// 아버지 이마 위엔 이랑사래 깊어가고//
빈 둥지 불 꺼진 방엔 수전증이 춤을 춘다.//
한평생 흙 속에서 화석이 된 뼈마디에// 소잔등 등에같이 찌든 가난 붙어 있고//
앙상한 삭정이 위로 검은 반점 번져간다.//
관솔불 옹이 속을 헤쳐온 불사조도// 세월로 풍화되는 아쉬움과 아픔 있어//
축 처진 지게 밑뼈가 사부곡을 듣고 있다.//
* 어느 날 거울 속 나는 없고 아버지가 서 계셨다.
<차하> 포도주 (성국희)
햇살과의 약속을 송이송이 움켜쥐고// 스스로 그늘을 엮어// 갈증을 조절해 본다//
온몸에 먹을 풀어서 새길 것은 무언지//
멀리서 채워왔던 싱그러운 날들이여// 달디단 음모(陰謀) 속에// 또 하나의 빗장 채우면//
바람도 환한 달빛도 서로 손을 잡는다
살갗이 터질수록 드러나는 한 생애의 뼈.// 덩굴이던 꿈을 접고// 눈시울이 붉어지면//
비로소 황금비율의 유혹이 시작된다//
* 필자의 작품평
차상작은 한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자녀들을 키워 출가시킨 후 홀로 남은 아버지의 모습을 거울 속 환영을 통하여 보여준 정격시조이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장원작보다 낫다. 사족에 불과한 주(註)를 달음으로서 시적세계를 작자의 사생활 수준으로 끌어내려 문학적 가치를 감소시켰다.
장원작과 차하작은 약간의 깨진 음보가 있어 정형시로서는 감점을 받는다. 내용면에서도 장원작은 ‘혀’의 움직임을, 차하작은 ‘포도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어렵게 묘사하고 있어 차상작보다 선명하지 못하다.
(3) 10.1월 (심사위원: 정수자· 강현덕)
<장원> 가죽나무의 詩 (김성현)
껍질이 벗겨진 날 뼈도 훤히 드러났다// 널브러진 상처만큼 할 말도 많았는데//
창문에 펼쳐진 마음 더듬으며 보낸 시간//
녹녹한 지난밤에 그 무엇을 생각했나// 다리가 저려오고 허기지는 새벽이면//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안개여//
참고 또 견딜수록 음각되는 빗살무늬// 아픔도 닦아내면 붉은 세상 떠오를까//
몸속에 새겨진 길이 선명해진 아침에//
<차상> 채플린, 채플린 (고은희)
차바퀴가 먹구름처럼 떠 있는 하늘 보이고// 동백나무 뿌리와 칭칭, 몸 섞는 지하셋방//
내게서 나를 떠나는 머리칼만 쌓여간다// 쓴 잔 든 이력서는 깨어날 줄 모르는지//
저무는 날들 위로 뒤척뒤척 마음 얹으면// 바람이 불쑥 찾아와 가슴 텅텅, 때린다//
아찔한 빌딩 숲 헤쳐 방청객 알바 간 날// 곧 무너질 동굴 같은 눈동자로 묻는다//
“거시기, 여가 손짓 따라 미친 듯 웃는 데지라”// 허기진 오장육부 배배꼬는 박수소리//
어질머리 앓다가도 머춤하게 길에 누워// 눈물빛 가난으로도 별꽃 같은 웃음을 깔던//
<차하> 옥사, 그리고 밤눈 (김동우)
(1)네놈의 철통같은// 방어망이 뚫린다/// 담장이 헐려나고// 망대가 꺾여 진다///
더러운 잡동사니들// 잿더미로 쌓인다.///
고요속 속박의 찌끼 비명을 외쳐대는// 압박된 전중이들이 들먹이는 몸부림//
날개속 포근한 은빛 세상이 눈부셔라.///
(2)허우대는 멀쩡한 곰뱅이의 속살 위// 암행길 만만의 천사 훨훨 내리고 있다//
제 한 몸 평화를 위한 천지개벽의 긴 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정격시조이다. 심사위원들의 평과 같이 “정격을 갖춘 형식 운용도 든든”하고 작자 자신의 이야기인 듯이 풀어나가는 솜씨도 좋다.
이에 비하여 차상 [채플린, 채플린]은 깨진 음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1연 12행의 자유시이다. ‘채플린’을 제목으로 삼은 것은 적절하지 못하고 끝 행의 완성미도 없다.
차하 당선작 또한 깨진 음보들이 거슬리며 수의 구별이 어렵고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초점이 흐려져 있다.
(4) 10.2월 (심사위원 : 정수자· 강현덕)
<장원> 아버지의 염전 (홍선영)
수차에 올라앉은 아버지가 우뚝 서면// 게워낸 바닷물이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쳇바퀴 돌리고 있는 바다 위의 다람쥐인가//
해질녘 노을 안에는 검붉은 그림자 하나// 아버지 발검음에 눈물들만 딸려 나온다//
짠맛을 희석하는가, 아버지의 두 다리//
바다가 복부를 열어 푸른 속살 내보이고// 소복이 드러나는 흰 뼈를 만들어내고//
뼈마디 알갱이들마다 서해 빛이 시리다//
염전을 일구어낸 등이 휜 장화 한 짝// 누런빛 장화 위에 눈물이 스미고 있다//
하얗게 뿌리 내리는 아버지의 눈물밭.//
<차상> 입동 무렵 그 달빛 (엄미영)
초저녁 바람 불고 뚜벅뚜벅 별이 돋고// 무겁게 흔들리는 하늘과 하늘 사이//
겨울은 환한 적막에 밥을 마는 것이다// 부풀어 산란하듯 내려앉는 그늘 저 편//
서늘한 가슴에는 그리움도 고봉인데// 누군가, 주발을 깨며 새하얗게 오시는 이//
<차하> 5교시 수영시간 (이태훈)
점심시간 끝나면 5교시 영어시간// 새까만 칠판을 보면 졸음이 밀려온다//
졸다가 놀라서 깨면 파도 같은 알파벳들///
문장들이 일어서고 단어들이 부서지고// 망망대해 속에서 나는 자꾸 난파된다//
칠판에 가득한 물결에 정신 없이 헤엄친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많은 파형시조이다. 염전을 일구어 낸 아버지의 노력과 희생정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람쥐에 비유하고 눈물로 고생만 하는 사람으로 격하시킨 개운치 못한 작품이다.
차상작은 깨진 음보가 없는 정격이지만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1연 6행의 자유시이다. 산뜻한 시상도 없다.
차하작은 1개의 깨진 음보가 있지만 영어시간 졸음과 싸우는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시조다운 형식과 내용이 가장 좋은 작품이다.
(5) 10.3월 (심사위원: 정수자· 강현덕)
<장원> 어느 후보 선수를 위하여 (배종도)
삼베를 찢는 소리 축구장을 갈라놨어// 수입선수 스타선수 빛살같이 달리는데//
컴컴한 벤치에서 지른 외마디 비명이었어//
정말이야, 저 구석에 돌부처 된 후보 선수// 깨끗한 유니폼에 땀 한 방울 못 적시고//
등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대다 멈추었어.//
교체시기 되었어도 눈길 한 번 안 주니까// 말초신경 복장 쳐서, 복장 쳐서 죽였지만//
저 안쪽 동맥 속에는 분노 펄펄 끓었나 봐.//
계륵(鷄肋)이 되기 전에 기회 한 번 찾아올까// 축구화를 풀어놓고 토하는 한 숨 속에//
고막을 찢는 소리가 내 눈으로 파고들었어//
<차상> 춘설(春雪) (김경숙)
강보에// 싸인 채// 잠이 든 듯 고요한///
삼칠일이// 지나고// 배꼽도 떨어져///
해맑은// 첫 옹알이에// 천지가 젖 물린다///
<차하> 겨울나기 (김석인)
고독이 눈을 떠야 내가 나를 볼 수 있지// 빈 하늘 등에 지고 바람 앞에 서게 되지//
그제사 내가 보인다. 더덕더덕 군살 붙은///
주릴 만큼 주려봐야 창자가 맑아지고// 여윌 만큼 여위어야 칼바람도 비켜가지//
석 삼동 허기로 채웠다 마음속에 각을 세워///
봄으로 가는 길은 속살 꺼내 보이는 일// 겹겹이 쌓인 각질 한 땀 한 땀 걷어 내면//
홍매화 등불을 내건다. 씨알 같은 꿈을 담고///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2음보 파형을 범하였고 차상작과 차하작은 정격시조이다.
차상작의 ‘춘설’은 ‘갓난아기’이기보다 ‘늦둥이’에 가까운 이미지이므로 제목과 본문이 어울리지 않는다.
올해 들어 중앙시조백일장에도 자유시흉내내기가 현저히 줄었고 정격시조가 자리를 굳혀 가고 있어 다행이며 반갑다.
(끝)
*현대시조 2010 여름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