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釋菜禮(석채례)
景山書堂(경산서당)은 晦齋 李彦迪(회재 이언적)선생의 맏손자인 無添堂(무첨당) 李宜潤(이의윤)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서당이다. 건립 당시에는 후학을 가르치며 書堂(서당) 기능을 하였으나 오늘날은 講學機能(강학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음력3월 下丁에 제향을 올리며 2일 齊戒(재계)를 한다.
1)享禮(향례)
抄執(초집)시 천망된 제관들이 서당에 도착하면 외삼문 밖에서 具服(구복)하고 먼저 강당에 마련된 到記所(도기소)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 성명, 연령, 주소를 기록한 연후에 上堂(상당)에 가서 인사를 하고 나와 禮祝房(예축방)에 가서 인사를 나눈다.
2)到任床(도임상)과 중식
제관들이 모두 입소하면 도임상이 들어오며 상을 물린 후에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점심상이 나오는데 이때 개좌는 없다. 점심상을 물리고 커피 한잔씩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執事分定을 하게 된다.
3)석채례 제관
석채례는 廟宇(묘우)가 있는 서원의
향사와 많이 다르다.
일반 서원과는 달리 單獻(단헌)이다. 位版(위판)을 쓰는 題位官(제위관)이 있으며 이를 돕는 掌議(장의)가 있고 이하 임무는 서원과 같다.
4)爬錄(파록)
초집 시에 천망된 五執事(오집사) 內定者 중에 單子가 없으면 曹司(조사)가 분정기에 祭官(제관) 이름을 올리고 나머지 제관은 당일 入所(입소)한 諸儒(제유)들을 골고루 추천하여 분정기에 기록을 한다. 분정이 끝난 다음에 犧牲(희생)을 검사하러 監牲場(감생장)으로 이동한다. 이때 알자가 헌관을 모신다.
5)監牲(감생)
경산서당은 석체례(釋菜禮)지만 제향은 2일 제계를 하기 때문에 牲(생)을 구입하여 외삼문 밖에 자리를 펴고 생의 머리를 강당 방향으로 보게 둔다. 또한 제관은 남에서 북으로 보고 헌관,제위관 순으로 우측으로 도열하면 고자가 “상읍 아래오” 하면 모두가 상읍을 한다. 재임은 감생장에 도열한 헌관부터 좌측으로 제관들 앞을 돌면서 모퉁이에 가서 천신, 지신, 조상신(天神, 地神, 祖上神)께 발 뒤끝으로 세 번 울리며 告하고 3회를 돈 다음에 관수세수 하고 牲을 검사한 다음에 또 손을 씻고 초헌관 앞에 가서 充(충)하면 헌관은 腯(돌)한다. 이렇게 3회를 하고 나면 庫子(門有司)가 上揖아래오 하고 고하면 제관 모두 마주 보고 상읍을 하면 감생은 끝이 난다.6.茶果床(다과상)
감생이 끝나고 파좌를 하면 다과상이 나오는데 저녁 식사까지 제관들이 좌담을 하는 자리가 된다.
7.食床開座(식상개좌)
저녁 6시가 되면 저녁상을 받는데 이때는 개좌(開座)가 있다. 식상 개좌에는 左에서 右(헌관입장)로 헌관, 제위관, 장의, 집례, 순으로 식상 배석이 완료되면 문유사가 “상읍아래오” 하면 일제히 상읍을 하고 헌관부터 차래로 않아 헌관이 숟가락을 들면 차래로 든다. 식사를 할 때는 조용하게 해야 하며 헌관 보다 먼저식사를 했으면 숟가락을 판에 놓지 말고 국그릇 위에 걸쳐 두었다가 나중에 식사가 끝나면 내려놓으며 “파좌 아래오”하면 모두 일어선다.
8.夜話床(야화상)
저녁 식사가 끝나면 파좌(罷座)하고 각자 방으로 가서 쉬고 있으면 저녁 9시가 넘어 야화상이 나온다. 제관들이 둘러 않아 야식을 나누고 난 다음에 상을 물리면 도포를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취침을 한다.
6)祭壇 設置(제단 설치)
익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세수를 하고 구복하여 강당 마루에 모든 제관이 모인다. 석채례를 지내는 서당에는 위폐를 모시는 별도의 廟宇(묘우)가 없으므로 번거롭지만 제사 때 마다 강당 중앙에 위에는 仰帳(앙장)을 치고 좌우에는 揮帳(휘장)을 두른 다음에 가운데 제상을 놓는다.
7)陳設(진설)
제단 설치가 모두 끝나면 휘장 중앙에 제상을 놓고 제수를 차린다. 제수는 사변사두(물기가 있는 제수는 두(豆)에 담고 건조한 제수는 변(籩)에 담는다)에 희생(犧牲 은 생으로 쓰지 않고 반쯤 익힌 반숙(半熟)으로 하며 희생은 전체 몸통 7곳에 칼집을 내어(七體) 대나무 꼬챙이를 사용하여 반으로 자른 반숙을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꼬지를 하여 끈으로 묶어 놓는다.
8)寫祝(사축)
진설이 끝나면 사축을 하는데 이때 장의와 제위관이 강당 제단 앞 좌우에 서서 마주 보고 상읍을 한 후에 대축이 사축을 하고 재위관(題位官)이 위판을 쓰도록 장의가 지필묵을 준비하고 벼루에 먹을 갈아 준비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축관은 사축을 하고 제위관은 붓으로 정결하게 위판을 쓰는데 경산서당을 예를 들면 “無忝堂先生李公”(무첨당선생이공)이라 쓴다. 지방을 위판에 붙여서 제상 중앙에 놓으면 모든 제사 준비가 완료된다.
9)祭享(제향)
題位官(제위관)과 집례(執禮)가 배례(拜禮)와 관수세수를 할 때까지 창홀(唱笏)은 재임(齋任)이 하고 집례에게 홀기집을 넘긴다. 다음 순서부터 집례의 창홀에 맞추어 제사를 엄숙하게 지내는데 헌관은 강신례와 헌작례 시에 두 번을 관수세수를 하는데 한강(정구선생) 예는 잔을 올릴 때마다 매번 손을 씻는 것이 일명 寒岡禮(정구선생)예라고 하였다.
석채례는 單獻(단헌)이므로 헌관 헌작이 끝나면 바로 음복례(飮福禮)를 하고 곧바로 망예례(望瘞禮)로 이어진다.
10)음복(飮福)
모든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는데 이때는 개좌가 있다. 음복주를 한 잔씩 나눈 후에 재임이 헌관에게 오늘 제사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십시오 청하면 헌관은 대부분 예에 맞추어 잘하였으며 모두 수고했다는 말을 한다. 음복 파좌(罷座)를 하면 도포를 벗고 유건을 벗어 개복한다.
11)조식(朝食)
모든 제향이 끝났기 때문에 식상(食床) 개좌는 없다. 각기 머무는 방에서 식상을 받아 편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씩을 대접받고 서당를 나선다.
-용어 해석-
➀都執禮(도집례)는 望(망)을 받은 獻官(헌관)이 單子(단자)를 내면 제향 당일에 개좌를 열고 헌관을 뽑는데 이름을 헌관이라 하지 않고 都執禮(도집례)라 한다.
➁半熟(반숙)을 사용하는 이유는 大賢(대현)은 牲(생)을 쓰고 일반 賢人(현인)은 반숙을 쓴다고 어느 儒林이 궁색한 설명을 하는데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 백방으로 문헌을 찾아보니 예기에 정확한 예가 실려 있어 참고로 시생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아래 5쪽에 참고로 게재하였다.
➂釋菜禮(석채례) : 그해 봄에 새로 나는 나물과 생 채소로 스승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석채례라 한다. 제수비가 풍족하지 못할 시에 나물로도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④題位官(제위관) 지방을 쓰는 제관
⑤掌議(장의)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 즉 전사관이나 같다.
⑥四籩四豆(사변사두): 대나무로 만든 제기 4개(四籩)와 나무로 만든 제기 4개(四豆)를 말한다. 마른 제수는 대나무 제기에 담고 물기가 있는 제수는 나무 제기에 담는다. 王이나 聖賢(성현)은 “八籩八豆(팔변팔두)”를 흔히 사용하고 황제는 十二籩 十二豆(십이변 십이두)를 사용한다.
⑦開座(개좌): 개좌는 개별 식사가 아니고 헌관, 대축, 집례 순으로 도열하여 재임이 “상읍아래오” 하면 일제히 상읍을 하고 헌관부터 않아 숟가락을 들면 이하 차래로 식사를 하는 것을 식상개좌라 하는데 개좌는 식상개좌와 음복개좌가 있다.
⑧罷座(파좌):식사가 끝나면 문중 유사가“파좌 아래오”하면 식사가 끝이 난다.
⑨到任床(도임상):제관이 모두 도착하면 당가에서 茶果床을 내오는 것을 말한다.
⑨夜話床(야화상): 2일 제계 시 밤에 제관들에게 주는 야식이다.⑩上揖(상읍):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 잡고 무릎 아래에서 끌어 올려 눈높이로 올렸다 내리는 동시에 허리와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방식(손 위 어른들에게 하는 인사)
⑪米飮(미음) 허기를 달래기 위하여 제향 전에 제관들에게 주는 별식.
⑫中揖(중읍) 상읍과 같이 하여 입술까지 올렸다, 중지하며 허리를 조금 구부리고 머리를 조금 숙여 인사하는 방법(친구나 동년배).
⑬下揖(하읍): 두 손을 배꼽에서 중지하며 허리와 머리를 약간 숙이면서 하는 인사 (손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답하는 인사)
⑭上堂(상당) : 헌관이 머무는 방
⑮禮祝房(예축방): 축관과 집례가 머무는데 대부분 강당 좌측 방을 말한다.
冠(관)과 儒巾(유건) : 관은 우리말로 갓이라고 하고 유건은 선비의 모자라고 한다. 경주 院(원), 祠(사), 堂(당) 享祀(향사)에 三獻官(삼헌관)은 갓을 쓰고 禮祝(예축)이하 모든 諸儒(제유)들은 儒巾(유건)을 쓰고 祭祀(제사)를 지내는데 언제부터 由來(유래)가 되었는지 文獻(문헌)에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獻官(헌관)과 禮祝 그리고 諸儒들 간의 分別(분별)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區分(구분)하여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성칠체(豕腥七體)
정의 : 왕실의 제향에 올리는 돼지 혹은 멧돼지의 7가지 살코기 부위의 제물.
개설 : 왕실이 주관하여 종묘, 사직, 선농단 등에서 거행하는 제향에서 올리는 제물로 돼지 혹은 멧돼지의 7가지 살코기 부위를 가리킨다. 본래 시(豕)는 멧돼지를 가리킨다. 본래의 뜻에 따라 관원들이 제향을 앞두고 멧돼지를 잡으려 동원되기도 했다. 성(腥)은 날고기, 칠체(七體)는 고기 일곱 덩어리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돼지고기 부위의 명칭에 근거하면 칠체는 등심 한 덩어리, 목심 두 덩어리, 갈비 두 덩어리, 다리 살 두 덩어리이다. 이것을 도마처럼 사각의 틀인 조(俎)에 담아서 진설한다.
내용 및 특징 : 시성칠체의 예학적 근거는 『예기(禮記)』「예운(禮運)」에 있다. 성(腥)은 조(俎)이고 숙(熟)은 효(殽)이다. 체(體)는 개[犬], 멧돼지[豕], 소[牛], 양(羊)이다. 주석에서 말하기를 성기조(腥其俎)는 희생 동물을 해체한 날고기를 가리키는데, 7가지로 구성된다. 숙기효(熟其殽)는 날고기를 해체하여 익힌 것을 가리키는데, 21가지로 구성된다. 체(體)는 개, 멧돼지, 소, 양으로 뼈와 살코기의 귀천을 나누어 구분하여 조(俎)에 담는다. 칠체는 척(脊: 등심 부위), 2가지의 견(肩: 어깨 부위), 2가지의 박(拍: 갈비 부위), 2가지의 비(髀: 넓적다리 부위)이다. 이것이 기준이 되어 소, 양, 돼지의 3가지 희생을 제물로 사용하였다.
변천과정 :정조는 여름에 멧돼지를 봉진(封進)하지 못하도록 하였다[『정조실록』12년7월16일].백성들이 농사로 바쁜데 멧돼지 잡는 데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예기(禮記)』
참고사항 : 경산서당 제향 시 돼지를 잡아 칠체(七体)로 잘라 반숙(半熟)를 하는 원인도 아마 상기 예기에 준하여 제향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도 실제로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성 반숙은 옛날 왕실에서 주관하는 각종 제향(종묘. 사직. 선농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일반 선비집안에서도 반숙은 제수를 반쯤 익혀야 하니 7등분으로 잘라서 잘 익게 하기 위함이지 혹자가 말하는 “성인은 생을 쓰고 현인은 반숙”을 제수로 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예기에 있는 데로 따라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2017년 4월20일
국가공인 실천예절지도사 진재윤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