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시도 수줍음도 ‘적’
외국인 앞에선 벙어리… 한국인 앞에선 유창
남과 비교 말고 하나씩 배운다고 생각하라
한국에선 교실에서 이뤄지는 영어수업이 문화적 문제와 연관되기도 한다. 한국의 교실에서 학생 개개인의 영어 실력은 종종 신분(status)의 문제와 직결된다. 영어학원에선 잘못을 지적받을까 봐 입도 뻥긋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모두 알아차릴 만한 실수를 하는 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이들은 막상 교실 영어 수업시간엔 자신의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동급생이 최대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이야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해외연수나 어학원 등 영어 사교육 경험을 뽐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나 수줍어하는 것 모두 언어를 배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언어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들의 생각을 알아듣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과도한 분석이나 막연한 공포 모두 한국인의 영어 학습을 저해하는 요소이므로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한국인은 본래 소심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게 한국인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 기질이 한국인을 친절하고 평화로운 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오히려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국민들, 예를 들어 러시아인의 경우 천성이 활달하고 시끌벅적하며 공격적이다. 그들의 영문법 점수는 낙제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언어 규칙 같은 건 무시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한국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영어라도 자신감 있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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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 박상철
- 그럼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금 당장 문화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한국인은 한국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그걸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언어 학습에 관한 한 한국인은 자신감의 가치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으레 가지기 쉬운 스스로의 콤플렉스부터 떨쳐버려야 한다. 교실에서 우리는 모두 학생일 뿐이다. 그러므로 섣불리 다른 학생과 자신을 비교해선 안 된다. 영어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남의 흉허물을 사사건건 지적하기보다 서로를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영어 전쟁’에 뛰어드는 아이들에게도 자신감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 그 나이 때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정보들로 머리를 채우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이나 평가는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는 데는 어떨지 몰라도) 누군가의 어학 실력을 판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다. 형편 없는 점수가 기록된 성적표는 당신의 자신감에 보기 좋게 ‘한방’을 날리기 때문이다. 그건 “당신은 영어를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정말 영어를 잘 말하고 싶다면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보자. 당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어를 익히고 배워왔는지 말이다. 그 기억 속에 시험이나 평가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 딸(아들) 잘 한다”는 부모님의 친근하고 긍정적인 격려만 존재할 것이다. 영어도 다를 게 없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나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르자. 서양인이 다가올 때마다 돌처럼 굳어버리는 한국인을 더 이상 양산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영어 교육 체계에 ‘자신감’이란 요소를 이식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영어교사를 위한 충고 |
1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라
학생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에서 서로의 견해를 활발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의견이 활발하게 제시될 수 있는 집단토론 수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특히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학습자에게 이 방법이 적절한 건 아니다. 때론 ‘식료품점에 갔을 때’와 같은 상황을 정해 역할놀이를 하게 하거나 간단한 드라마 스케치를 해보라고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업 방식을 찾아나가야 한다.
어떤 상황을 설정하든 사전에 대본을 만들고 그걸 읽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되 그걸 기록하게 하지 말고 머릿속에서만 기억하도록 지시한다. 그런 다음 다른 학생들 앞에서 연기를 펼치게 한다. 교사는 연기 중 그들이 실수한 부분을 기록해 두었다가 수업이 끝날 때쯤 간단한 평가를 곁들여 지적해준다. 사람들 앞에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학생들의 자신감은 배가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2수업에서 ‘종이’를 없애라
영어뿐 아니라 모든 수업에서 교과서와 노트는 필수 준비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영어수업에서만큼은 이 ‘공식’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업에 사용하는 종이의 양과 수업의 효율성은 반비례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므로 수업 계획을 짤 때는 되도록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자.
한국에선 수업시간에 교사가 문서로 된 자료, 일명 ‘프린트’를 나눠주는 순간부터 학생들의 사고 구조가 수학적으로 흘러간다. 수업내용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프린트에 적힌 단어의 뜻을 알아차리는 데 골몰하는 것이다. 교사가 독해나 작문 기술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종이 한 장 없이도 얼마든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교과서와 노트가 수업에서 사라지면 학생들은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영어로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결국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3학생들을 떠들게 하라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수업 중엔 한 순간도 교실을 조용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언어는 곧 의사소통이다. 따라서 어학시간에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곧 수업을 허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읽고 쓰는 업무는 과제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영어 수업을 할 땐 교사나 학생을 가리지 않고 쉴새 없이 떠들어야 한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교실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학생에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영어 울렁증’ 이렇게 극복했다 |
“당당하고 좀 뻔뻔해지는 게 최고 ”
의류업체에 근무하는 이나정(35)씨는 영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국 바이어를 상대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영어 사용빈도가 높은 편이지만 입이 생각만큼 잘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꽤 많이, 열심히 공부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전히 제 영어 실력에 별로 자신이 없어요. 외국인과 마주할 때마다 불편하죠. 틈날 때마다 영어 단어장을 파고들고 영국으로 단기 연수를 다녀온 후에도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나 연수 시절 그를 변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제가 다니던 학원에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어요. 스페인, 이탈리아인도 있었고 동유럽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죠. 제가 보기에 그들의 영어 실력은 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놀랄 만큼 빠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영어를 말하는 거예요. 실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어요. 그보다는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지 여부에 더 신경을 쓰더라고요.”
그런 광경을 처음 접한 이씨는 명백한 실수를 뻔뻔스럽게 건너뛰는 외국인의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들이 서툰 영어 솜씨로 사람들과 말하는 게 제 생각처럼 그리 이상한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거죠.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니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그들이 저나 아시아에서 온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영어를 말하며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후 이씨는 연수 때 학원에서 만난 외국인들을 흉내내며 영어를 배워나가고 있다. “실수할까 봐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예전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됐죠. 지금은 영어 공부에 ‘당당하고 뻔뻔스럽게’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팀 알퍼(Tim Alper) |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로 현재 코리아IT타임스(ittimes.co.kr) 에디터.
영자지 코리아헤럴드·코리아타임스·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칼럼 기고. 파고다어학원 영어 강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