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오늘도 거룩하기를 소망하는 동역자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그동안 저희 카페를 통해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 교회 소식을 올려주시고 현장에서 정말 피튀기는 싸움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사, 삼성교회와 광주중앙교회 성도님들께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금번 광주중앙교회 사태를 보면서 저는 소망과 절망 두 가지를 모두 보았습니다.
금번 사태를 통해 교회에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저의 부정적인 시각이 "아니다! 아직은 교회에 소망이 있다."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아직 무언지 모르고 그냥 살아 온것 같은 무지랭이 대중성에서 벗어나 영적 억압과 착취의 독재성을 자각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용트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광주중앙교회에서 채목사를 영입하고 그에게 목회권권 재정권 인사권을 대폭 허용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성도들을 영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내적 외적 모든 조건들을 갖게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 성도들의 무지와 목사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 암암리에 각인된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이러한 잘 못은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돌아 왔습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한 편가르기, 독단적인 재정운용 등으로 철저히 보답하였습니다. 뒤 늦게나마 이를 깨달은 성도들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두 번 째 이유는 감사하게도 노회에서도 이런 채목사의 전횡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타 노회에서는 일방적인 목사 편들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 노회에서는 중심을 잘 잡아 주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다음으로는 절망적인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목사파와 반대파로 분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전삼성교회와 다르게 광주 중앙교회에서는 목사파와 반대파가 청장년간 갈등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독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이 주로 쓰는 수법이 바로 감성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감성에 더 민감합니다. 이들에게는 목사의 자신감 넘치는 언변과 친근한 행동이 백마디의 설교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옵니다. 설교속에 이단성이 있건 그러지 않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목사의 관심이 있다면 이성적이고 지적으로 판단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필요도 없이 목사의 편에 서게 됩니다. 채목사는 이런 젊은 감성을 누구보다 잘 이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목사들이 언제든지 흉내낼 수 있는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젊은이들의 영성을 바로 잡아주어야 할 지도자가 오히려 이들의 영성을 왜곡시켜 이들이 더 이상 건강하게 교회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데 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젊었을 때 영적으로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은 떠나는 것을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채목사가 "여자 문제만 아니면 자신은 물러날 일 없다."고 했다 합니다. 이게 사실인지 본인에게 듣지 않았으니 잘 알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자문제만 아니면 공금횡령이나 공문서 위조와 같은 기타 사회악적인 범죄는 교회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부패 목사나 상당수 교인들이 생각한다는 것이 교회의 절망적인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작은 죄에도 민감하여야 할 거룩한 교회가 이미 너무나 심각한 죄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총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기로하겠습니다. 총회가 부패의 중심을 보지 않고 부패한 목사를 지키기 위해 겁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총회의 무용론을 만방에 선포하는 자가당착이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안에서 소망을 가져봅니다. 교회에 분쟁이 발생하므로 지금까지의 오염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교회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화평케하려 오신것이 아니라 죄와 전쟁케하려 오셨기 때문이며 이제는 교회가 오히려 죄의 본산이 되어 버려 성전을 정화시키셨듯이 교회를 정화시키시려는 주님의 강력한 뜻이 내재해 있어서입니다.
플레비언에는 주님께서 이런 뜻을 실현시키시기 위해 부르신 사명자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플레비언 한 분 한 분들이 이런 소명을 잘 감당해 나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