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상대하게 나를 말하다.
스펀지
성교육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대상기관에 전화를 걸어 교육 참여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교육제공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이후 관심을 보이는 기관들에게 프로그램 안내와 함께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된다. 이런 내용의 통화 수 십통 하고 나니 급 피곤해지며 얼굴에 열이 올라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전화를 하기 전.. 나는 꼭 전달해야 할 내용들과 알아야 될 것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왜냐하면 그 시나리오를 토대로 통화를 시도하면 진행이 훨씬 순조롭기 때문이다. 외부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소속을 밝힌 후 성교육 관련 담당교사를 먼저 찾고 혹 특별히 담당하는 교사가 없다고 하면 주임교사 또는 부장교사와의 통화를 요청한다. 이 절차를 나는 각 기관과 통화할 때마다 행해야 한다. 같은 질문이지만 펼쳐지는 상황은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이러한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무조건 자신에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절히 프로그램 참여 방법과 신청절차, 내용을 안내하니 갑자기 다른 교사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했던 말을 또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아~ 이런 비효율적인 일처리에 탄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하기도 할 테고 여러 이유가 있더라 하더라도!! (본인이 확인한 다음에 나중에 전화하여 답변해도 되는데... ) 전화를 건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기분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성교육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도 하고 성교육을 정말 받고 싶었다는 등의 반응을 접할 때는 기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어떤 분위기인 곳일까 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지만, 힘들게 하는 곳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찍어 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화는 대면해서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투와 목소리, 용건만을 가지고 나와 상대방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속해 있는 기관에 대표성을 띠고 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화 한통이 기관의 얼굴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화건 사람에 대한 배려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이도 역시 생각해 보았다. 내 자신의 행동을 짚어보니.. 무슨 용건인지 먼저 묻고, 그 다음에 통화를 원하는 분과 연결한다. 간혹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목소리에 티가 날 것 같지만, 되도록이면 친절하게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교육 건으로 많은 전화를 걸고 받는 지금... 어떤 상황이라도 나만 친절해도 다른 사람만 친절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나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에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대접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내 스스로 온화한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