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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0. 6. 8.~6. 9.(월,화)
- 음력(4. 17.~18.), 일몰 19:52, 일출 05:09
●산행지: 한북정맥 2구간(노채고개-말머리고개)
●산행코스: 노채고개-원통산-구노채고개-숯고개-운악산(서봉,동봉)-절고개-철암재-화현고개-명덕봉-아치산-천마지맥분기점-명덕삼거리(서파고개)-수원산-불정산-국사봉-육사생도참전비-큰넉고개-작은넉고개-죽엽산-비득재-노고산-고모리산성-다름고개/무림리고개-수락지맥분기점-귀락터널-축석령-왕방지맥분기점-백석이고개-천보능선-로얄골프장-고읍지구-오리동고개-덕고개-막은고개-큰테미산-샘내고개-청엽골-불곡산-오산삼거리-대모산성/양주산성-작고개/어둔동고개-호봉산-신주고개-한강봉-오두지맥분기점-말머리고개
●먹거리: 생수2,500cc, 크림빵1, 빠다코코넛, 샤브레, 다이제, 사탕30, 자유시간2, 토마토케찹3, 게비스콘2,
●준비물: 외투1, 스틱, 썬글, 충전지2, 충전짹, 헤드랜턴1, 구급약, 경광점멸등, 손수건, 머리띠, 휴지, 물티슈, 예비양말, 부직반창고, 햇, 팔토시, 무릎보호대, 마스크
●거리: 약 74.94km
●소요시간: 33.40h
●누구랑: 나홀로
●경비: 버스7,400, 택시7,700, 큰넉고개편의점10,150, 축석령편의점7,100, 고읍편의점3,600, 한승아파트편의점3,600, 식사8,000, 뒤풀이14,000
●날씨: 17~31
●산행경과:
- 08:30 : 노채고개
- 08:54 : 원통산
- 11:46 : 서봉
- 11:52 : 운악산 동봉(935.5m)
- 12:04 : 절고개
- 12:30 : 철암재 (635m)
- 13:45 : 화현고개/아리랑고개/47번국도
- 14:13 : 명덕봉 (445m)
- 14:23 : 아치산
- 15:19 : 천마지맥분기점
- 15:38~15:55 : 명덕삼거리
- 17:14 : 수원산 (709.7m)
- 18:32 : 불정산
- 19:19 : 국사봉 (574m)
- 19:55 : 육사생도6.25참전기념비
- 19:55~20:52 : 큰넉고개, 편의점 식사
- 21:22 : 작은넉고개 (185m)
- 23:00 : 죽엽산 (601m)
- 23:45 : 비득재
- 00:12 : 노고산 (380m)/고모리산성
- 01:47~02:33 : 마름고개/무림리고개정류소
- ??:23 : 수락지맥분기점
- 03:38~04:12 : 축석령, 편의점 요기
- 04:40~05:04 : 휴식
- 05:13 : 왕방지맥분기점
- 06:30~07:05 : 휴식
- ??:08 : 오리동고개
- 09:28 : 큰테미산
- 10:12 : 샘내고개
- 12:00 : 청엽골
- 13:05 : 불곡산/임꺽정봉
- 13:46~14:30 : 오산삼거리, 식사
- 15:14 : 작고개, 어둔동고개
- 16:11 : 호명산
- 16:41 : 신주고개
- 17:14~17:21 : 한강봉/감악지맥분기점
- 17:43 : 오두지맥분기점
- 18:00 : 말머리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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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북정맥: 236km (추가령~장명산)
* 한북정맥: 160km (수피령~장명산)
* 신한북정맥: 224km (추가령~오두산)
* 신한북정맥: 148km (수피령~오두산)
* 한북오두지맥: 41.3km
* 도봉지맥: 53km
-. 노채고개~명덕삼거리 18.2km
-. 노채고개~화현고개 12.5km
-. 화현고개~명덕삼거리 5.7km
- 화현고개~축석령 32.4km
-. 화현고개~명덕삼거리 4.24km
-. 화현고개~큰넓고개 16.8km
-. 큰넓고개~축석령 16.2km
- 명덕삼거리~축석령 26.6km
-. 명덕삼거리~큰넉고개(87국도) 9.53km
-. 명덕삼거리~비득재 18km
-. 비득재~샘내고개 15.7km
-. 축석령~샘내고개 17.6km
-. 샘내고개~한강봉 10.7km
-. 한강봉~됫박고개 10km
* 사전정보(식수보충지)
- 화현고개: 개짖는 민가 수도
- 명덕삼거리: 언덕 안쪽 민가
- 큰넉고개: 편의점 300m
- 작은넉고개: 민가 식수
- 비득재: 식당, 편의점 200m
- 축석령: 식당, 편의점
- 고읍지구(덕고개): 식당, 편의점
- 의정부터미널앞 찜질방
- 샘내고개 한승아파트: 편의점
- 대교아파트 오산삼거리: 식당, 편의점
- 대모산성 들입목: 약수터
- 신주고개: 홍복약수터 100m
* 서울에서 노채고개 가는길
- 동서울~일동 06:40, 7,400, 1.10h
* 말머리고개에서 서울 오는길
- 15-1 미니버스, 구파발역,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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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욕심 부릴 일이 아닌데, 산정에 냉장고 바람이 부니 낮에 더위를 생각하면 철야로 산행하는 재미도 나름 있었습니다. 시커만 밤에 묵은 묘지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도 따먹는 여유가 있는데 목덜미에 떨어진 송충이를 떼어내고는 그 물컹하는 감각에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이 다 나오더군요. 예상치 못한 곳에 약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ㅋ~
쐐기에 쏘이고, 가시에 긁히고, 더위에 적응이 일러 엉덩이는 짓무르고, 무릎보호대로 오금에 피부 발진도 있고, 발바닥은 일어나고 난리가 아니네요.
그런데 오두산성이 광개토대왕이 쳐내려온 백제의 관미성이 맞는 걸까요?^^ 여유있게 도착해 임진강과 한강이 합수해 조강을 이루는 오두산통일전망대도 구경해야겠죠.
신한북정맥 1구간 55km, 2구간 75km, 마지막 구간 53km 예상하고 있습니다. 도상거리보다 실거리가 40km 더 나오네요. 공부를 더 하라는 건지 여러 시간을 투자해 풍족하게 모아둔 졸업 자료를 한꺼번에 날려 먹었습니다. 에구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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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시(議政府市)
의정부시는 대한민국 경기도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위성도시로 서울특별시의 군사기능을 담당한다. 6·25전쟁 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군사도시로 발달한 지역이다. 계속된 인구유입과 도시화에 따라 1963년 시로 승격되어 양주군에서 분리되었다. 1963년에 의정부시가 분리, 독립될 때까지 이 지역은 양주의 영역이었다.
민락동에서 흑요석기를 포함하는 제4기층이 발견되어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금오동·고산동·용현동일대에서 간돌칼·간돌화살촉·민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고조선시대에는 진(辰)에 속했고,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초기에는 백제에 속했으나 475년 이후 고구려에 속하여 매성군(買省郡, 일명 昌化郡)이라 하였으며,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내소군(來蘇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견주(見州)로 이름을 고쳤고, 1012년(현종 3) 양주의 절도사가 폐지되고 안무사로 개편되었다. 1018년 양주에 편입되었으며, 1308년(충렬왕 34)에 한양부로 개칭되었다.
조선 초인 1394년(태조 3) 다시 한성부로 개명되면서 부치(府治)가 동촌 대동리(大東里: 현재의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부근)로 옮겨지고 지양주사(知楊州事)로 강칭되었다. 1397년에 부치가 다시 옛 치소인 견주(현 양주시 고읍동)로 이전되고 양주부라 불렸다. 1413년(태종 13) 양주도호부로 고쳐지고 속현으로 견주(見州)·사천(沙川: 동두천시 전역과 양주시의 은현면지역)·풍양(豊壤: 남양주시의 진접읍·진건읍지역)의 3현을 두었다. 1466년(세조 12)에 다시 양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504년(연산군 10) 양주목이 폐지되고 왕의 수렵지구로 될 때 의정부시는 잠시 폐허가 되기도 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다시 복구되어 양주목의 소속이 되어 계속 갑오개혁 때까지 양주목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의 팔도제가 폐지되고 23부 336군이 새로 설치되게 되어 양주목이 한성부 소속의 군이 되었을 때 의정부시는 양주군의 시북면(柴北面)·둔야면(芚夜面)지역에 속하였다. 1912년 행정구역개편 때 양주군 32개 면 중 시북면·둔야면지역으로 오늘의 의정부시의 모체를 이루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시북면과 둔야면이 시둔면(柴芚面)으로 개칭되었고, 1922년에 주내면 유양리에 있던 양주군청사가 시둔면 의정부리로 옮겨오게 되어 의정부시는 양주군의 심장부를 이루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38년 시둔면이 양주면으로 개칭되었고, 1942년 양주면이 의정부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25사변 때는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었고, 전쟁을 거치면서 군사도시로서의 변천을 겪기도 하였다. 1963년 1월 1일에 시로 승격되면서 한수(漢水) 이북의 경제·사회·문화·군사·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1980년 4월 1일에는 양주군 별내면의 고산리와 산곡리가 편입되었으며, 1994년 7월 1일 장곡동이 장암동과 신곡동으로, 1995년 3월 2일에는 신곡동이 신곡 1,2동으로 분동(分洞)되었다. 1998년 10월 14일 의정부 1동과 4동이 통합되었고, 2003년 2월 3일에는 호원동이 호원 1,2동으로, 송산동이 송산 1,2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와 같은 15개 행정동이 되었다.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은 한남정맥의 지맥인 천보단맥이 뻗어 있다. 추가령구조곡이 서부를 남북방향으로 관통한다. 시의 동부에는 용암산(477m)·깃대봉(289m) 등이, 서부에는 사패산(552m)·도봉산(717m) 등이, 남부에는 수락산(638m) 등이 솟아 있으며, 북쪽은 천보산(337m)으로 가로막혀 있다. 중랑천이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흐르며, 그 지류인 백석천·회룡천·부용천 등이 동부와 서부 산지에서 발원해 중랑천에 흘러든다. 이들 산지 사이의 시 중앙부에는 100m 내외의 구릉지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시가지는 평야 위의 구조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기후는 중부내륙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산이 많아 한서의 차가 심하다. 경원선과 수도권 전철이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중서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서울 교외선이 북서부를 가로질러 경원선의 의정부역에 연결된다. 서울-동두천을 연결하는 국도가 경원선·수도권전철·중랑천과 나란히 달린다. 또한 양주시 장흥면 방면으로 연결되는 국도와 포천-남양주를 잇는 국도가 나 있다. 북부와 동부의 시계(市界)를 따라서 탑고개·백석이고개·비루고개·박수고개·사기막고개 등이 있어 과거에도 이 시가 경기도 동북부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길목이었음을 보여준다.
* 양주시(楊州市)
경기도 중북부에 있는 시로 조선시대에 양주도호부·양주군이었던 지역이다. 수도권의 도시화로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63년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80년에는 2개읍 6개면 일대를 남양주군으로 신설하여 분리했다. 1981년에는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의정부시·구리시·동두천시·남양주시가 독립·분리됨에 따라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매성군 또는 마홀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947년(정종 2)에 견주군으로 개칭했다.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하고 진(鎭)을 두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양주를 없앴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면서 중심지를 불곡산 남쪽으로 옮겼다. 양주의 별호는 광릉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한성부 양주군, 1896년에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두입지인 신혈면을 고양군에, 산내면과 청송면을 포천군에 이관하고, 광주의 비입지인 초부면을 편입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백석면·이담면·장흥면·주내면·회천면·은현면·광적면·시둔면·별내면·진접면·진건면·화도면·와부면·미금면·구리면·노해면으로 개편되었다. 1938년 군청을 주내면에서 시둔면으로 옮기면서 양주면으로 개칭하고, 1942년에 양주면을 의정부읍으로 승격시켰다.
1946년에는 파주군의 남면을 편입했으며, 1963년 이담면을 동두천읍으로 승격하고, 수동면을 새로 설치했으며, 의정부읍을 시로 승격시켜 양주군에서 독립했다. 또 같은 해에 서울에 연접한 노해면과 구리면의 5개리를 서울특별시로 이관했다. 1973년에는 구리면이 읍으로, 1979년에 미금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80년에 구리읍·미금읍 2개읍과 6개면을 분리하여 남양주군을 신설했다.
1981년에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는 등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서울 및 수도권의 도시화에 따라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85년 회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7년 파주군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2000년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했고, 의정부시에 있던 군청사를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2001년에는 백석면이 백석읍으로, 2003년 10월에는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했다.
전반적인 지세는 추가령구조곡이 시의 중동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중앙부가 저평하며, 동쪽과 서쪽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시의 동쪽에는 천보지맥이 뻗어 있어 칠봉산(506m)·천보산(337m) 등이 솟아 시경계를 이루며, 서쪽에는 감악산(675m)·노고산(401m)·앵무봉(622m)·형제봉(545m) 등이, 남쪽에는 상장봉(534m)·도봉산(717m)·사패산(552m) 등이 솟아 있다. 그밖에 도락산(441m)·불국산(361m)·챌봉(516m) 등이 시내 곳곳에 솟아 있다. 주요하천으로는 강화천과 그 지류인 청담천이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북류해 한탄강으로 흘러든다. 청담천 연변에는 범람원과 낮은 구릉의 저지대가 펼쳐져 있다. 화강암 지역에 침식분지로 발달한 이 저지대는 경기편마암복합체의 변성암에 형성된 동두천시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한탄강으로 연결된다. 그밖에 곡릉천이 남부 산지 사이를 곡류해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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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채고개(366m) → (1.40km) → 원통산(圓通山/567.2m) → (0.76km) → (원)노채고개(412m) → (5.22km) → 암릉갈림길 → (0.42km) → 애기바위(925m) → (0.40km) → 운악산서봉(雲岳山西峰/935.5m) → (0.32km) → 운악산동봉(雲岳山東峰/937.5m) → (0.64km) → 절고개갈림길(905m) → (0.80km) → 철암재 → (2.4km) → 화현고개(47번도로/320m) → (0.8km) → 443.6봉(명덕봉) → (3.44km) → 명덕삼거리(37번도로/300m) → (1.8km) → 수원산(水源山/709m)
수원산(水源山/709m) → (2.4km) → 585.5봉 → (3.4km) → 국사봉(國師峰/547m) → (2.14km) → 큰넋고개(200m) → (1.8km) → 작은넓고개(170m) → (3.02km) → 죽엽산(竹葉山/610m) → (2.3km) → 비득재(14번도로/200m) → (0.24km) → 노고산(380m) → (5.0km) → 다름(무림)고개(200m) → (1.5km) → 축석령(43도로/150m)
축석령(43번국도/150m) → (1.5km) → 백석이고개(220m) → (1.5km) → 골프장삼거리(210m) → (1.0km) → 오리동고개(116.5m) → (0.8km) → 사당 → (1.7km) → 덕고개(360번도로/94.3m) → (1.0m) → 막은고개(100m) → (1.0km) → 큰테미(219m) → (1.5km) → 샘내고개(3번국도/112m)
샘내고개(3번국도/112m) → (1.5km) → 도락산갈림길(303m) → (1.0km) → 청엽국고개(264m) → (1.0km) → 임꺽정봉(449.5m) → (1.5km) → 오산삼거리(98번도로/165m) 오산삼거리(98번도로/165m) → (1.0km) → 양주산성(212.9m) → (1.0km) → 작고개(180m) → (1.0km) → 호명산(423m) → (3.0km) → 한강봉(474m) → (0.8km) → 오두지맥분기점 → 0.9km → 말머리고개(39번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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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채고개 가평 현리 조종면 방향입니다. 일동터미널에서 택시로 7,500원 나왔습니다.
원통산까지 몸풀기로 알맞은 거리입니다. 바닥에 쏠개미가 엄청나네요.
원통산에서 내려서서 운악산 방향으로 0.76km 진행하면 원 노채고개입니다.
♤ 원통산(圓通山/567.2m)
경기 가평군 조종면과 포천 일동면 유동리와 화현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이산의 서쪽 기슭에는 높이 8m, 폭 4m의 3단계의 층암폭포를 이루고 있는 원통폭포가 있다. 폭포소리도 우렁차지만 거송노수(巨松老樹)로 우거진 숲의 경치도 아름다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케 한다. 이러한 폭포가 영평(포천의 옛이름)8경에서 빠진 것이 원통해서 원통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난 구간 갈미봉에서 노채고개 내림길에 잡은 운악산 모습입니다. 우측 능선으로 달라붙습니다.
운악산 오르며 바라본 포천 일동입니다. 좌측이 금주산일까요?
건너편에 운악산 병풍바위
애기봉 애기바위입니다. 애기봉 직전에 바위봉우리는 날등으로 넘어다녔는데 위험해서 아래로 우회길을 냈습니다.
서봉에서 만경대까지 50m 거리인데 다녀오질 못했네요.
♤ 운악산(雲岳山/937.5m)/현등산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과 가평군 하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운악산 정상은 서봉과 동봉의 별도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 동봉이 조금 높으며, 서봉에서 50m 떨어진 곳에 만경대가 있다. 화악산, 감악산, 송악산, 관악산과 함께 경기 5악중의 하나다.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리며 그 빼어남을 자랑한다. 한북정맥은 포천군과 경계를 이루는데 운악산을 중심으로 국망봉(1,168m), 강씨봉(830m), 청계산(849m), 원통산(567m), 주금산(813m) 등이 솟아 있다.
'산원후기(山圓後期)'에는 "한양 동쪽의 현등산으로 중조(中祖)를 삼으니, 운악산은 뭇 산의 조종(祖宗)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견성지 산천조'에는 "운악산은 포천현의 동쪽 25리에 있다"라고 적혀 있다. 운악산은 이름 그대로 뾰족한 기암(奇岩) 괴석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서, 그 모습이 마치 서기(瑞氣)를 품은 한떨기 향기로운 꽃과 같아 소금강으로도 불리워져 왔다. 그래서 그 지명이 雲岳山이 되었다고 한다. 유적지로는 궁예성터, 궁궐터, 망경대, 신선대, 병풍바위, 미륵바위, 코끼리 바위, 눈썹바위 등이 있고 주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하고 기암괴석들이 어울려 있어 구름이 산을 감돌때는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동봉에 가평군에서 세운 정상석엔 운악산(운악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쪽 등산객 옆에 정상석은 포천군에서 세운...
운악산 남근바위라는데 제눈엔 외계인으로 보인다는...
현등사에서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절고개입니다. 운악산을 제일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최단 코스이기도 하지요.
♤ 운악산 동봉(935m)
운악산의 동봉을 청화대라 부르기도 한다. 넓직한 동봉에는 정상을 알리는 표시석이 3개나 설치되어 있다. 운악산 정상은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935m로 표기된 봉으로, ‘동봉 정상’이라 불린다. 일명 청학대라고도 불리는 이 봉은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서 명상하며 십현담서론이라는 유명한 글을 생각했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세운듯한 표시석은 “운악산 비로봉”이라 쓰여져 있고, ‘악’자를 岳대신에 嶽으로 달리하였으나, 두 글자 모두 ‘큰산 악’으로 같은 뜻의 의미이다. 비로봉은 예전에는 없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설악산은 嶽으로 화악산, 치악산, 관악산은 岳으로 표기한다.
가평 조종면 철암마을 철암폭포 계곡에서 올라가는 철암재
♤ 백호능선 아기봉/ 삼면봉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와 가평군 조종면, 상면의 삼면 경계지점)
정맥길은 백호능선을 두고 우틀하고 직진 방향은 백호능선이다. 언덕 너머에 전망바위가 있어 잠시 들린다. 운악산은 북에서 원통산(567.2m)으로 이어져온 한북정맥 마루금을 남으로 아기봉(772m)으로 건네주는 위치에 있다. 아기봉은 운악산을 어머니 산으로 보고, 어머니의 품에 안긴 산세라 하여 예부터 주민들이 불러온 이름이다.
길원목장쪽으로 내려섭니다.
한남정맥과 한북정맥을 이어주는 47번국도입니다. 당정역 지나 안양cc앞에서 이 도로를 건너 감투봉으로 올라갔죠.
♤ 화현고개(花峴)/ 아리랑고래/ 포천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47번 신,구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이 고개 부근에 꽃이 많아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화현고개 양편으로 군부대가 포진해 있다. 군부대 울타리로 부대 외곽을 따라 돌아야 한다.
명덕봉에서 다녀와야 한다. 정상 아래 전망바위에서 운악산 조망이 좋다.
아치산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운악산, 포천에서는 양옆의 절을 기점으로 오른다.
서파에서 포천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명덕삼거리이다. 서파쪽으로 밭에 컨테이너박스가 있고 스타렉스가 서있어 수도라도 있는지 물어보려 가보니 사정이야기를 듣고는 삼다수 500cc한병과 막걸리 한잔을 주신다. 들머리 고개너머에 민가가 두어 채 보이는 게 거기서 물을 구할 수도 있겠다.
♤ 명덕삼거리(37번도로/ 300m)/ 본격적으로 포천으로 들어선다.
명덕봉에서 직좌틀하여 내려서면 군부대 철망을 만나 철조망 바깥으로 명덕삼거리까지 한북정맥 마루금을 이어 간다. 서파 삼거리 지하차도를 타고 올라오면 만나는 포천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56번 지방도로에서 급경사가 심한 곳이며, 천마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수원산 오름길에 만나는 능선이 천마지맥 들머리이다.
천마지맥분기점 명패가 엉뚱한 곳에 있습니다. 명덕삼거리 수원산입구 반대편으로 옮겨 두는건데....
♤ 천마지맥이란
한북정맥상에 있는 운악산과 수원산 직전 서파의 424.7m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되어 개주산-주금산(812.7m)-철마산(709.5m)-천마산(810.2m)-백봉(587m)-고래산(528.5m)-갑산(547m)-적갑산(561m)-예봉산(683.2m)-직녀봉-견우봉을 지나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팔당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49.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그리고 천마지맥의 주금산에서 분기한 축령지맥은 조종천(북한강의 지류.길이 39.3km)의 서쪽 벽을 이루며 서리산, 축령산을 거쳐 깃대봉 직전에서 청평대교로 내려선다. 이 다리를 건너면 한북정맥에서 귀목고개로 내려서서 명지산, 매봉, 대금산, 불기산, 호명산을 거치며 조종천의 동쪽 벽이 된 명지지맥의 끝에 이르게 된다. 수원산에서 분기한 천마지맥이 만들어 낸 수동천(구운천)과 기타 수많은 개울들이 추억의 대성리유원지와 화도읍 신도시를 만들어내고,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문화유적지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팔당호를 이루며 비로소 한강 물길이 열린다. 이후 축석령까지는 왕숙천으로 흘러들어 퇴계원, 남양주시, 구리시 등 많은 신도시들을 거느리며 구리시 수택동에서 한강으로 합수된다.
♤ 천마지맥 개념도
♤ 서파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이다. 신팔리의 지명은 일제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 마을에는 예전부터 나무를 해서 팔아먹고 사는 나뭇꾼과 나무장수들이 많은 동네로 주로 나무를 베어 장작을 만들어 수레나 등짐에 지고 대도시에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살았다. 장작바리나 땔감을 섶이라고 한다. 섶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섶나무신(薪)과 팔다를 가차한 팔(八)로 해서 신팔리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섶파는 섶파리-서파로 변음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예전엔 삼거리였는데 지금은 사거리가 되었다. 검문소는 도단위나 행정구역이 바뀌는 길목에 있는데 전방으로 통하는 길목이므로 으레 이곳에서 군 헌병의 검문이 있었다.
ETO하라~ 제가 국통사 325마이크로보다 한끗발 더 높은 326주특기 출신입니다. ㅋㅋ
명덕삼거리에서 수원산 정상까지 오름이 은근 빡시네요. 수원산 정상 군부내 울타리 동쪽으로 물줄기가 있어서 아래로 조금만 따라 내려가면 아쉬운 대로 물을 구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배낭에 빨대를 하나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 수원산(水源山/709.7m)/ 경기 포천시 군내면 영산리
수원산은 한북정맥에 속하는 산이다. 운악산을 지나온 한북정맥이 남서쪽 방면 수원산에 이르면 포천시 군내면과 내촌면 경계를 이루며 계속 국사봉(國師峰/547m) ~ 죽엽산(竹葉山/610m) 방면으로 이어진다. 운악산으로부터 연봉되며 옛날에는 수원산을 두고 포천의 진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포천천 본류를 서류하는 구읍천의 수원(물이 처음 시작되는 곳) 되는 넓은 산이다. 수원산(水源山)은 하천의 발원지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쪽에서 발원한 수원은 왕숙천(남양주와 구리시를 거쳐 한강 유입), 북쪽과 서쪽에서 발원한 수원은 포천천(포천시를 관통하며 영평천으로 바뀌어 한탄강 유입), 동쪽에서 발원한 수원은 조종천(가평을 거쳐 북한강으로 유입)이다. 산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1.5㎞에 달하는 자연발생 유원지인 수원산 계곡이 있다. 산기슭에 300년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460호로 지정된 부부송(夫婦松)이 있다. 두 그루가 서로 부둥켜안아 마치 한 그릇인 듯 보인다. 뿌리는 다르지만 가지가 붙어 한 나무처럼 자라는 나무를 ‘연리지(連理枝)’라 하는데 아주 진한 부부애의 상징이다.
수원산 지명 유래담으로는 '수원산'은 포천에 있는 산이다. '수원산' 이란 이름 때문인지, 수원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수원의 산을 빌려 갔다면서 포천에 와서 해마다 세금을 받아갔다. 어느 해 포천에 똑똑한 신임군수가 들어왔다. 이제까지 수원에 세금을 냈다는 말을 들은 신임군수는 '올해부터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드디어 수원 사람이 세금을 받으러 왔다. 신임군수는 '세금을 달라'는 수원 사람의 말에, '이제부터는 산이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 재치 있는 대답에 놀란 수원 사람은 슬금슬금 도망을 쳤다.(대진대 국문과 제2차 답사 자료집(군내면), 1993. 10.)
수원산에서 바라본 천마지맥의 초입부 주금산이다.
♤ 왕숙천과 팔야리
왕숙천은 포천군 내촌면 신팔리 수원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흘러 남양주시 진접읍을 지나 진건면과 퇴계원을 거쳐 구리시 토평동과 남양주시 수석동 사이에서 한강에 흘러드는 한강의 지류로 길이는 38.5㎞다. 조선초 왕자의 난으로 함흥으로 떠났던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한양으로 환궁한던 중에 지금의 진접면 팔야리에서 8일을 머물렀다고 해서 이 마을을 팔야리(八夜里)라 부르게 되었고 이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왕이 자고 갔다'라는 뜻으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설에 따르면, 세조를 광릉에 안장한 후 '선왕이 길이 잠들다'라는 뜻에서 왕숙천이라 명명했다고도 전하며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는 '왕산천'(王山川)이라 표기되어 있다.(포천시)
이 이정표에서 내촌방향으로 좌틀해야 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불정산 정상
불정산에서 건너편으로 바라본 주금산 자락 채석장
국사봉에서 큰넉고개가 가까워지니 엄청 시끄러운 소리가... 채석장이 정맥길 바로 아래에 있네요.
♤ 국사봉(國師峰/546.9m)/ 경기 포천시 군내면 우금리
한북정맥의 수원산(710m)과 죽엽산(610m) 사이의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에 있다. 국사봉(國師峰)이란 한나라의 스승으로 또는 신라와 고려때는 불교(佛敎)에서 최고의 職位에 있던 승려(僧侶)를 칭하였고 우리나라에 같은 山名만도 25개나 있다고 한다. 아마 백운산 다음으로 많은 지명인것 같다. 정상에는 국사봉이라 쓴 표지목이 한북정맥 이정목에 걸려있고 또 그 옆에는 국사봉이라고 한글로 쓴 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가는 길은 47번 국도를 따라 진접지나 포천시 내촌면에서 좌회전 포천시 가는 큰 도로를 따라 가다 큰넓고개 아래서 우측 구도로로 진입하여 공장지대 중간 채석장 지나 육사생도 6.25 참전기념비 주차장으로 가면 된다.
북한군의 6. 25남침으로 다음날 새벽 육사생도 재학생들이 기간장교와 함께 포천 가산면 우금리 큰넉고개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싸운 최초 격전지로 1979년 동기생들이 모은 기금으로 건립되었다.
큰넉고개는 공장지대로 식당은 찾아 볼 수 없다. 다행히 300m 거리에 편의점이 있어 물을 보충하고 기름을 주유한다. 비포장 작은넉고개에는 민가가 바로 있어 물을 구할 수 있겠다.
♤ 큰넉고개(200m)
큰넉고개는 포천시 가산면과 내촌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남북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이 고개는 50여리나 된다. 고개 마루턱에 올라서 보면 전후좌후가 탁 트여 광활한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크고 넓은 지형이라 하여 ‘큰넉고개’라 부른다고 한다.(포천시)
광릉 수목원이 국립수목원으로 바뀐 모양이다. 근데 이곳부터는 독도에 유의해야 하고 지도를 자주봐야 한다. 수목을 보호한다고 표지기도 없애 놓았고 이정표도 없다. 정맥꾼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다 제거했다.
♤ 광릉수목원(光陵樹木園)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목원인 광릉수목원은 산림청에 딸린 임업연구원 부속기관으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의 광릉 주변 약 500ha(150만 평)에 자리잡고 있다. '광릉'은 세조의 능으로, 조선시대 세조의 묘지로 결정된 뒤부터 소나무·잣나무·전나무 등을 심어왔으며, 엄격하게 보호되어 왔다. 한일합병 뒤 1922년 임업연구원의 전신인 임업시험장이 생기면서, 이곳은 임업시험장의 부속시험림이 되어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했으며, 1989년에 산림욕장이 개장되었고, 1991년 야생동물원을 만들었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공원이나 휴식공간 또는 산림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2,800여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며, 1,600여 종류의 동물들이 산다. 이들 중에는 광릉물푸레·광릉개고사리·광릉용수염풀·광릉골무꽃·광릉요강꽃 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오직 광릉숲에서만 자라는 식물들도 있고,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들도 900여 종류에 이른다.
해는 떨어지고 국사봉에서 내려서다 바라보는 죽엽산...
펑퍼짐한 죽엽산 오름과 내림은 빡시지는 않지만 길게 느껴집니다. 야간에 산정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네요. 내리는 중간에 산림감시원초소가 있는데 초소 바로 옆으로 하산길이 이어집니다.
♤ 죽엽산(竹葉山/610m)/ 경기 포천시 내촌면 마명리
명지산(1,267m)과 운악산(936m)을 빚은 백두대간의 줄기 한북정맥이 의정부에 이르러 나즈막하게 솟구쳐 오른 산이 죽엽산(竹葉山)이다. 국수봉(605m)과 소리봉(536m)을 이웃하고 있으며 굴곡 없는 육산이다. 언뜻 보기엔 밋밋하고 신통치 않게 보이는 산이지만 이산의 특징은 울창한 수림에 있다. 죽엽산(竹葉山)은 옛날에는 대 죽(竹)이 아닌 물댈 주(注)자를 써서 주엽산이라는 이름으로 포천읍지와 대동여지도에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곳은 실제로 대나무는 흔적도 없다. 요즘은 서울근교에도 기온 상승으로 인해 대나무가 심심찮게 보이지만, 옛날에는 날씨가 추운 탓에, 충청도 이북에는 대나무가 거의 없었다. 나뭇잎이 물 흐르듯이 많다고 하여 주엽산이라고 했는데 어떤 연유로 죽엽산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400여 년 전부터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나라의 엄격한 보호 아래 관리되어 온 보호지역이다. 특히 남쪽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서쪽 소흘읍 직동리 일원에는 약 30㎢ 넓이인 국립광릉임업시험장이 있다. 임업시험장 서쪽인 소리봉과 물푸레봉 일원에는 국립수목원을 비롯한 시험림을 가득 메운 수령 400여 년 노목들이 천연의 수해를 이루고 있다. 임업시험장 내에는 수백여 종의 나무와 풀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수림 속에서는 크낙새와 장수하늘소 날다람쥐 등 20여 종에 달하는 천연기념물과 700여 종이 넘는 곤충, 새, 짐승들이 서식하고 있다. 국립수목원 내에는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원, 삼림욕장시설 등이 있다. 죽엽산은 큰덕고개에서 작은넉고개 ~ 히미기고개를 경유해 정상에 이른 다음, 비둘기 고개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서릉)을 타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비둘기고개 북쪽 보문정사(고문3리)에서 북서릉(히미기고개 남쪽)으로 오르는 코스는 이 지역 등산인들이 산보코스로 많이 찾는다.
비득재는 에코브릿지 위로 통과합니다. 편의점 200m 라는 안내표지판도 보입니다.
♤ 비득재(鳩峴), 200m/14번도로
비득재의 좌.우로 노고산과 죽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비둘기를 닮았다 해서 비득재라 이름 붙여졌다고 하며 그래서 한자로 비득재를 '비둘기 鳩'字를 써서 구현(鳩峴)이라 한다.
♤ 노고산(380m)/ 고모산 고모리산성
노고산 정상 이동통신 송신탑 울타리에 '노고산 380m'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노고산 정상부에 자리한 포천군 향토유적 제43호인 고모리 산성이 있다. 노고(老姑)라면 할머니를 뜻하는 것인데 지명유래를 찾기가 힘들다.
고모산이 노고산으로 바뀐 내력은 찾아볼 수 없다.
♤ 고모리산성(경기 유형문화재 185호)
포천 고모리 고모산(古毛山, 386.5m, 일명 老姑山)의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이 산성에 대해서는 지리지 등에 전혀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그동안 지명의 유사함을 들어 ‘광개토대왕비’와 ‘중원고구려비’의 비문에 나타나는 ‘고모루성’으로 비정하려는 견해가 있어 주목을 받아왔던 곳이다. 고모산 정상부에 형성된 평탄대지를 감싸고 있는 내성과, 서쪽에 외성이 결합된 형태의 성으로, 대부분 토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지형에 따라 일부 구간에 석축과 토석혼축 기법을 혼용하였다. 산성의 둘레는 내성 967m, 외성 240m이며, 전체 둘레는 1,207m이다. 성안 시설물은 문지 1개소, 건물지 7개소(내성 6, 외성 1), 우물지 1개소 등이 확인 되었다. 성벽은 남쪽에 솟은 정상부(해발 386.5m)의 봉우리와, 북쪽 봉우리(해발 380.1m)를 중심으로 하여, 서벽은 봉우리를 연결하는 가지능선 상에 축조하였으며, 동벽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계곡부의 상단면에 축조하였다. 서벽은 무봉리, 이곡리 일대 방향으로 대부분 삭토에 의한 토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축조 방법은 외벽은 경사면을 거의 직각으로 삭토하고, 상면에 내벽을 성토하여 토루를 조성하였다. 북벽은 고모리 저수지 방향으로 멀리 포천평야 일대와 포천읍에 소재한 반월산성이 조망이 된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경기북부인 포천의 남동편에 해당된다. 북쪽으로는 한탄강의 지류하천인, 포천천을 중심으로 발달한 포천 일대의 평야지대와 낮은 구릉이 드넓게 펼쳐진 시야가 멀리까지 확보된다. 따라서 남진세력이 이곳 일대를 점거하지 못하고 한강방향으로 진출하였을 때는 쉽게 배후를 차단할 수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천주교공동묘지를 지나 군부대 울타리를 만나니 왠지 든든한 느낌,,,ㅎㅎ 정맥이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서 울타리를 따라 길게 돌아야 무림리고개로 내려선다.
땀에 절어서 냄새가 말도 못하는데... 다행히 무림농원 옆 이 건물에 수도가 나온다. 한숨 자고가고 싶지만 도로옆이라 시끄러워서 잠이 올성 싶지 않다.
♤ 수락지맥이란
수락지맥이란 한북정맥이 내려오면서 운악산과 죽엽산을 거쳐 무림리고개로 내려와 잠시 남진하다가 무명봉에서 한북정맥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축석령으로 이어지고, 또 한줄기는 동남쪽으로 뻗어 용암산(477m)-깃대봉(288m)-수락산(641m)-불암산(510m )-망우산(171m)-아차산(287m)을 걸쳐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7.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수락지맥의 끝을 자양동과 성수동을 지나 서울숲공원에서 중랑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지점까지 연장하는 견해도 있다.
♤ 수락지맥 개념도
무림고개에서 축석령 위로 떨어지는 곳에도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야 한다. 차소리는 들리는데 내려가는 날머리를 찾지 못해 조금 헤맨 곳이다.
♤ 귀락터널
귀락은 포천시 소흘읍과 경계를 이루는 의정부시 자일동의 최북단(最北端) 마을로 조선 영조(英祖) 중엽 박해문(朴海文)이라는 사람이 평안도 도사(平安道 都事)를 지내다가 이곳에 와서 마을을 개척하여 살면서 산수가 아름다운 이 곳에서의 삶을 늘 만족하게 생각했다는데 하루는 그의 가노(家奴)들이 마을 이름이 없어서 불편함을 털어놓고 이름을 지어 줄 것을 간청하자, "내가 이곳에 돌아와서(歸鄕) 여생을 즐겁게 지낸다(樂業)"라고 말하면서 마을 이름을 '귀락'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다른 일설에 따르면, 이곳의 지형(地形)이 거북이가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귀락(龜落)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길건너로 다음 구간 들머리가 보이고....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며 잠시 쉬어간다. 없애자고 말이 많은 전통의 호국로 표지석...
♤ 축석령(祝石嶺,150m)/ 이백리고개
축석령은 천보산(天寶山) 기슭에 있는 고개로, 포천군 소흘읍(蔬屹邑)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이백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석령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3백여년 전,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吳伯周)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귀성도호사(龜城都護使)로 있을 때, 고향에 계신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벼슬을 버린채 고향에 돌아와 부친의 병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약도 차도가 없어 하늘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는데, 꿈에서 산신령이 크게 꾸짖으며 "네 아비의 병은 석밀(石蜜)을 먹으면 낫는데 게으름만 피우고 있느냐"하고 호령하자, 그는 석밀을 구하기 위해 정과 망치를 들고 온 산을 헤매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내가 죽으면 부친을 누가 돌보단 말인가"하며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만 남아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왔다. 이에 부친의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렸으며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 백석이고개
백석이고개는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서 포천시 소홀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차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호랑이가 극성을 부려 백 명씩 다녀야 하는 고개라 붙여진 설이 있다. 백석이현, 축성령이라고도 부른다.
축석령에서 잠깐 올라서면 분기점이다. 백석이고개 방향으로 좌틀하여야 한다.
♤ 왕방지맥이란
운악산, 수원산, 죽엽산을 지나온 한북정맥이 의정부와 포천의 경계인 축석령에서 1km 지나 천보산맥의 천보산 3보루가 있는 285.7m 봉우리 조금 못미친 무명봉에서 북동 방향으로 뻗어 올라 어하고개, 회암고개, 천보산(423m), 해룡산(660m), 오지재, 왕방산(737.2m), 국사봉(755m), 청산고개, 개미산, 반석고개를 지나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수되는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의 아우라지 나루에서 명성지맥의 끝지점과 마주하며 그 맥을 다하는 약 43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소요지맥은 왕방지맥상의 국사봉에서 북서 방향으로 분기하여 수위봉(648.7m), 소요산 상백운대, 감투봉을 거쳐 초성리의 말턱고개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4.8km의 산줄기다.
♤ 왕방지맥 개념도
천보산 줄기를 따라가다 어느순간 우측 로얄골프장으로 내려서는데 전엔 골프장 안을 통과했건만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오리골을 지나 고읍지구로 들어서는 덕현마을 주택가에 보리똥열매가 대추만 하다 그런데 손대는 사람이 없다. 시간은 없고 서너개를 따 한주먹씩 입에 몰아 넣었다. ㅋ~
- 이후 비산비야를 달리며 샘내고개, 불곡산, 호명산, 한강봉, 꾀꼬리봉까지 신천(강화천)으로 흘러들어 동두천시를 아우른다. 이 역시 한탄강으로 흘러든 후 연천군 전곡읍 남계리 도감포마을에서 한탄강은 소임을 다하고 임진강물이 된다. 즉 여기까지의 한북정맥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예외 없이 전부 한탄강으로 흘러들어 철원·김화·포천의 젖줄이 되고 있다. 이 한탄강의 북쪽과 임진강의 남쪽으로는 차탄천이 연천과 전곡들판의 젖줄이 되고 이내 휴전선을 만나 갈 수 없는 그리운 땅이 있다. 샘내고개, 불곡산, 도봉산, 우이령까지 수많은 개울들이 중랑천으로 흘러들어 양주시 의정부시를 지나 서울 도봉구, 노원구, 성북구, 중랑구, 광진구를 관통한다.
고읍지구 신도시를 지나 농협유통센터 건물로 가서, 119소방센터 옆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의정부에서 동두천으로 남북을 연결하는 신설 고속화도로로 보입니다.
여기도 땡볕에 그늘이 없는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올라야 한다.
- 비산비야 밭 농장 등이 계속되며 덕고개, 막은고개, 큰테미, 회천지구신도시 경원선 철로를 건너 고개 같지 않은 3번국도 샘내고개를 지난다. 그리고는 청엽골고개를 지나 불곡산(임꺽정봉) 하나 달랑 올려치고는 다시 자지러들어 360번 지방도로로 내려서 산성 작고개에서 가까스로 400m급 봉우리들로 끌어올려 호명산, 한강봉, 꾀꼬리봉에서 서쪽으로 오두산으로 가는 신한북정맥 산줄기를 들어올린다.
큰테미산에서 우측 한승아파트로 내려서며 건너편에 불곡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 동네 근처에 야전병원이 있다는거 같다. 경원선이 끊고 지나는 얕은 능선을 깍아 거의 평지에 가깝다.
♤ 샘내고개
샘내고개는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에서 덕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임진강으로 흘러들어가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한강과 합류한다. 샘내는 지질이 희고 푸석돌이 많은 석비레로 되어 있어 여기서 솟아나는 맑은 물은 약수로 유명하였다. 그 중에서도 꽃바위 우물 즉 화암정(화암정)이라는 약수가 유명하다.
이 지역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서평강이라는 평강군수가 있었다. 그는 가렴주구에 수탈만 일삼는 악정을 하였으나 세력이 기울자 짚둥어리를 타고 이곳에 와서 살게 되어다고 한다. 그는 동네 복판에 큰 못을 파고 그 흙으로 못 옆에 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옆에 이상스럽게 생긴 바위가 있어 마치 큰 뒤주와 같은데 이 바위를 대감바위라고 했으며, 바위 밑에서 옥수가 나오니 이곳을 샘내라고 했다고 한다. 한편, 샘내고개는 달린고개라고도 한다. 고개가 높아서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샘내고개라는 이름은 회천읍 덕계동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는 샘내고개가 산북동에서 회천읍 덕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기 때문이다. 산91-2(도)번지 부근이다.
청엽골은 불곡산의 북쪽 골짜기이고 임꺽정이 태어난 청석골은 남쪽 골짜기이다.
예전에 통과할 땐 울타리도 없었고 군인도 보이지 않았는데 들입구를 다른 데로 돌려 놓았다.
♤ 청엽(靑葉)골, 천여곡(千餘谷)
불곡산 자락의 산북읍과 백석읍 방성리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숲이 우거져 푸르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천여개가 될 정도의 많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청엽골고개는 양주시 산북읍과 백석읍 방성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며, 샘내고개를 지나서 불곡산을 오르기 직전에 위치한 고개로서 한북정맥길이다. 현재는 군유격장이 있어 출입금지구역이다.
불곡산 정상 보루지에서 백석읍 서쪽 멀리 최고봉 고령산이 조망된다.
- 양주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격전지로 삼국통일 후 신라와 당나라의 최후의 일전이 치러진 곳이 양주지역이다. 양주에는 수많은 보루가 이를 증명하는데 산들은 산성을 만들기에는 부적절해 영토를 각 능선의 봉우리에 작은 보루를 많이 만들었다. 양주의 진산 불곡산에도 9개의 보루가 불곡산 북쪽의 도락산, 퇴뫼산, 포천으로 이어지는 천보산에도 6개의 보루, 고성산과 노고산, 독바위, 소래산, 기산리보루, 태봉산까지 크고 작은 보루에다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중축한 대모산성이 자리한다.
왼편으로 한북정맥 대모산성 호명산, 정맥과 조금 떨어져 있는 홍복산이 보인다. 홍복산은 양주와 의정부의 경계가 된다.
불곡산 오름에 올빼미들을 기다리는 레인저스들 눈이 퍼렇게 빛난다. ㅋㅋ
♤ 불곡산(佛谷山, 470m)/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북동의 경계
양주시청 뒤편에 솟은 산줄기 불곡산(일명 불국산)은 대동여지도에서 '양주의 진산'이라 불릴 정도로 양주의 주산이다. '해동지도'(1760)나 '대동여지도' (1861) 에는 불곡산(佛谷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양주목지도'(1872)에는 불국산(佛國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회양목이 많아 겨울철이면 빨갛게 물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나라국(國)자를 사용해 ‘불국산(佛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규모는 작으나 기암들로 이어진 오밀조밀한 산세를 자랑한다. 인근 도봉산에 밀려 빛을 못 보고 있다. 불곡산은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도락산과 더불어 둥글게 자리 잡은 양주분지의 중심부에 해당된다. 남쪽의 의정부 일대와 동쪽의 3번국도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보루성' 흔적이 남아있다.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에 고구려는 불곡산 능선을 따라 9개의 보루성을 쌓았다. 보루성은 성을 쌓기에는 규모가 적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봉우리에 돌로 쌓은 작은 축대이다. 불국산에는 9보루 까지 안내표지가 있는데 주봉인 상봉(470.7m)이 6보루, 상투봉이 7보루, 임꺽정봉(449.5m)이 8보루이다. 불곡산엔 조선시대 의적(義賊) 임꺽정이 태어나 활동하던 청석골과 임꺽정봉이 있다. 임꺽정봉, 상투봉, 주봉인 상봉은 암봉으로 밧줄이나 철사다리가 설치된 암릉구간이 여럿 있었으나 2009년 등산로를 일제 정비하여 위험구간에는 데크계단이 설치되었다. 유양리에는 양주목사가 4백여년간 행정을 펴던 동헌과 어사대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양주향교(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국가 무형문화재 제2호) 전수회관, 양주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금화정, 양주산성(경기도 기념물 제143호) 등 문화재가 모여있다.
불곡산에서 대교아파트를 보고 내려선다.
뒤로 산지가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옹안, 샘말, 단촌, 골말 등이 있다. 옹안은 뒷산에 기러기떼가 흔히 앉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말은 만병통치의 샘물이 논 가운데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 무병마을로 알려져 있다. 단촌은 홍죽천과 신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물줄기가 광적면 경계에서 끊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골말은 북쪽을 등지고 있고 골이 깊어 붙은 이름이다.
대교아파트 오산삼거리에서 대모산성 입구로 가면 정자가 있고 그 옆에 약수터도 있다. 약수터 바로 아래에 있는 들머릴 필히 찾아야 한다. 아님 가파른 산성아래를 기어오르는 수고를...
♤ 작고개/ 어둔이고개/ 180m
양주시 어둔동에 있으며 덕재고개 혹은 작고개로 불리운다. 양주 대모산성(212.9m)과 호명산(423m) 사이에 있으며 실제 지명은 덕적고개이다. ‘작고개’는 의정부시 5번과 8번 시내버스가 통행하고 있다. 시내버스 노선 정류장 명칭으로는 ‘어둔이고개’로 부르고 있다. 어둔이고개에서 남쪽 한북정맥은 사유지다. 그래서 사유지 안쪽은 등산 코스가 아니다.
길가에서 오이와 토마토 등 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직접 판매한다. 건너편 입구가 호명산 들머린데 풀어놓은 개가 달려들며 짖어대 스틱을 한바퀴 휘둘르니 꼼짝을 못한다.
♤ 어둔동(於屯洞)
어둔동은 양주시의 법정동으로, 양주군 구 읍내면과 주내면을 거쳐 양주읍에 속했던 지역이다. 담당 행정동은 양주1동으로, 양주산성이 있는 대모산을 둘러싸는 농촌 지역이기도 하다.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호명산(虎鳴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해지는 시각이 빨라 쉽게 어두워지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애둔지·왜둔치·왜벌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와평동(瓦坪洞)·와평·왓벌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적어도 19세기 말부터 사용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일본 군사 지도(1895)를 보면 이곳은 야광리(夜光里)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이‘어두운 지역’이라는 뜻에서 오래 전부터 어둔리로 불려온 이 지역 이름을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 뜻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1일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양주읍 어둔리가 되었다가,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양주1동 관할의 어둔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청평의 호명산이 여기에도 있다.
♤ 호명산(虎鳴山, 423m)
양주 백석읍 복지리 남쪽 지역과 방성리 및 어둔동 일대에 걸쳐 있다. 양주시 중심가에서 서북 방향에 있으며, 산세가 좋으며 상살미라고 불리는 12골의 험한 골짜기가 있다. 호명산(虎鳴山)은 산에 바위가 많으며 호랑이가 많이 울어 대던 산이라 해서 범울산이라 부르다가 호명산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각종 산짐승이 많이 살았으며 특히 호랑이가 밤마다 사납게 울어 대어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세조 대에 김질이 녹양평 일대[현재 양주시 어둔동, 의정부 일대]에서 호랑이 7마리를 잡았다는 기록도 있다. 동두천시의 핏줄인 신천은 양주시 호명산에서 발원하여 방성천 등 12개 소하천을 지천으로 양주와 동두천을 거쳐 한탄강에 합류한다.
군부대가 있는 홍복산을 옆으로 지나 임도를 따라 신주고개로 내려서면 홍복약수터(신천의 발원지)가 100m라는데, 직진하여 중종 땅이라고 써있는 푯말을 열고 문을 통과해 오르면 된다.
마지막이라 호명산도 힘들고 한강봉도 힘들게 올랐습니다. 한강봉 정상에 정상석은 없고, 전망좋은 정자가 있네요.
살짝 보이는 이정표 아래 봉우리가 챌봉입니다. 챌봉으로 가는 길은 저절로 걸어지네요.
♤ 한강봉(漢江峰, 474m)/ 감악지맥 분기봉/ 삼강봉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가업리, 장흥면 부곡리에 걸쳐 있다. 산 정상은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에 있으며 산줄기의 일부가 홍복리까지 걸쳐 있다. 한강봉은 맑은 날 올라 남쪽을 내려다 보면 한강이 보인다 하여 한강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또한 이 봉우리에 비가 내려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들어가고 북으로 흐르면 신천과 덕계천을 흘러내려가 임진강이 된다. 동두천시를 지나 양주시와 의정부시로 이어지는 산간 분지의 남쪽 끝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양주시 백석읍의 복지리와 가업리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해서 봉화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봉화는 장흥의 송추를 거쳐 한양으로 이어졌다.
♤ 감악지맥(紺岳枝脈)이란
감악지맥이란 한북정맥이 양주시 백석읍 한강봉(460m)에 이르러,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436봉~느르미고개~은봉산(379m)~소사고개~팔일봉갈림길~하우고개~노아산갈림길~개내미고개~세우게고개~노고산(401m)~스르네미고개~266봉~무건이고개~368봉~설머치고개~임꺽정봉~감악산(675m)~간패고개~마차산(588m)~431봉/능선분기봉~구정산을 거쳐 그 맥이 3번국도 신천과 한탄강 합수점에서 다하는 약 4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남쪽 한강봉에서 산줄기가 시작하여 북쪽으로 태고산을 찾아가는 풍수에서 말하는 회고룡이다.
감악지맥도 춘천지맥과 마찬가지로 지맥의 끝을 어디로 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지맥의 끝을 한탄강변의 한탄교까지 정하기도 하고, 마차산과 밤골재를 지나 위치해 있는 능선분기봉인 431봉에서 임진강과 한탄강의 합수점인 도감포를 끝으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느 쪽을 택하여도 별 문제가 없으며 도상거리는 비슷하다. 또한, 도상거리가 약 4km 정도 더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임진강변의 삼화교를 그 끝자락으로 보고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또한 산줄기를 머리로 이해하면 될 일이기에 선답자님들의 의견을 공유하면 무방한 일이다. 오히려 알량함으로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사이비 산꾼들이 더 문제가 되는게 아니겠는가? 감악지맥은 서사면은 문산천을 동사면은 신천을 이루며 모두 임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 감악지맥 개념도
문지방이 닳아있는 신한북정맥 갈림길...
♤ 신한북정맥삼거리/ 한북 오두지맥(漢北 鰲頭枝脈/ 漢北 開明枝脈)/ 신한북정맥(新漢北正脈)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한북정맥이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 지점인 교하의 장명산에서 그 맥을 다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산경표(저자 박성태)에는 한강봉에서 도봉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말머리고개로 내려가 수리봉, 고령산, 박달산, 월롱산, 기간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면서 한강과 임진강의 경계를 이루는 파주의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1.3km의 산줄기를 한북정맥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산행인들이 이 마루금으로 종주한 후 이 길을 새로운 한북정맥이라 부르고 있다.
가까이서 반가운 차소리가 들립니다. 말머리고개에서 한강봉과 챌봉까지 거리가 비슷하군요.
말머리고개 내려서기 직전 도봉산이 가깝게 보인다. 도봉산의 저런 뒷면목은 처음이다.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북한산, 북한산은 서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야 진정한 뒷면목이 보일듯...
고개가 높긴 한가보다 대형 덤프와 컨테이너트레일러 중장비 특수차량들이 힘겹게 넘어 다닌다. 사고가 잦은지 견인차도 어슬렁거린다.
서울 구파발에서 장흥유원지를 지나 말머리고개를 통해 백석읍으로 넘어간다. 노선버스로 30분 거리, 가까운 편이다.
해유령(蟹踰嶺)에서 장흥으로 넘어가는 길로 들어서면 커다란 고개를 넘는데 이곳이 말머리고개이다. 송추유스호스텔은 없어지고 그 자리는 크라운해태 연수원으로 바뀌었다. 원마루금은 연수원 안으로 들어서 건물 우측 녹색 철책을 지나 좌측 능선으로 진행한다. 크라운제과 입간판 뒤로는 우회로가 지난다.
♤ 말머리고개/ 말구리고개/ 39번지방도로 장흥과 백석읍을 연결
말머리고개(말굴이고개) 유래는 중국 사신이 타고오던 말이 굴렀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굴이에서 말구리로 이후 말두리로 그리고 말머리로 변하면서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음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말부리고개라고도 불리였다. 말부리의 어원은 말(馬)과 '짐을 부리다'가 합성된 말로 옛날 마차, 수레로 짐을 나를 때 '고개가 가팔라 마차에 실은 짐이 부려졌다(마차가 뒤로 넘어져 짐이 부려졌다)'는 데서 말부리 고개라 불려 졌다고 한다.
서울에서 김신조루트를 한 분이라면 노고산과 노아산 사이에 이 게너미고개를 지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김신조루트는 일영 내려서기 전에 신세계공원묘지도 능선을 따라 지나는데 가수 배호가 묻혀있는 공원묘지이다.
♤ 해유령(蟹踰嶺)/ 게너미고개
해유령은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피난말에서 광적면 비암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게(蟹)가 넘어간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인근 노고산에 노고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노고할머니가 오줌이 마려워 다리 한쪽은 노고산에 걸치고, 다른 한쪽은 반대편 도락산에 걸친 후 광적면 우고리와 광석리 경계 지점 부근 황새등고개에 있는 요강바위에 오줌을 쌌다고 한다. 그런데 요강바위의 오줌이 넘치면서 인근 개울에 뜨거운 오줌이 흐르게 되었다. 개울에 살던 민물 게들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이 고개를 넘기 시작하여 이웃한 광적면 비암리와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 쪽으로 갔다고 한다. 실제로 연곡리에는 민물 게가 보이지 않지만 비암리와 발랑리에는 민물 게가 있다 한다. 혹은 400여년 전 소나기 빗줄기를 따라 양주 게가 파주로 넘어갔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도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는 적성현의 토산물 가운데 하나가 게[해·蟹]라고 하였다. 고개의 이름은 대개 게너미고개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해유령(蟹踰嶺)·해현(蟹峴)·해유현(蟹踰峴)이라고 한다.
♤ 해유령전투(蟹踰嶺戰鬪)/ 양주전투(楊州戰鬪)
해유령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부원수 신각이 경기도 양주에서 조선 육군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였으나 작은 전투이고 이치전투에 밀려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지명의 이름을 따서 양주전투(楊州戰鬪)라고도 불린다. 조총이라는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동래포구를 통해 상륙한 왜군은 속전속결의 작전을 펼치며 전쟁 발발 20여 일만에 도성인 한양에 도착하게 된다. 한양도성을 침탈한 왜군은 몽진하는 선조를 따라 북진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 때 지나야만 했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양주였다. 이곳에서 임진왜란 전투사상 최초의 육지 전투인 해유령 전첩이 벌어지게 된다.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신각이 도성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자 당시 조정에서는 도원수 김명원은 체직시키고, 부원수 신각은 군율에 따라 엄격하게 죄를 주자는 논의를 진행하였다. 물론 당시 신각은 도성을 방어하는 도중 이양원과 함께 후일을 기약하면서 도망쳤다. 그런데 5월 초 왜적들이 양주 지방을 염탐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경병사 이혼의 군사와 합류하여 해유령에 매복하고 있다가 왜적을 급습하여 70여 명의 왜병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우리 역사에 치욕을 남겼던 임진왜란 당시 육지 전투 최초의 승전지로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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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번에 많은 거리를 가셨네요.
역시 대단 하십니다.
저는 수피령에서 장명산까지 진행했었고 6회차로 나누어서 진행했었는데 퐁라라님 글 읽으면서 제가 걸었던 길들 떠올려 봅니다.
네~ 여유를 갖고자 한 구간은 조금 길게 잡기로 하고 3구간으로 계획하였습니다.
첫구간에서 길게 갈것을 비때문에 두번째 구간으로 잡았는데 그게 더 전화위복이 되었고요.
마지막 구간은 플라이 빼구 이너텐트만 짊어지고 가볼려구요. 여유가 있으니 한밤중에 숙면 취하고 진행해도 될것 같습니다.^^
한북정맥은 노채고개에서 말머리고개까지 긴 여정이어지셨네요.
이 구간 운악산, 노고산, 불곡산, 한강봉 등 명산을 지납니다.
한북정맥에서 갈래친 지맥들도 자주 만나면서~
지난 추억을 상기시켜 줍니다.
남은 구간도 무더위에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멋지고 굵직한 산줄기가 계속 되네요.
그 중에 수원산 오름과 한강봉 오름이 약간 깔딱이었구요.
한강봉은 호명산 올랐다가 또 2단으로 오를려니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홍복약수터가 100m였지만 물이 충분해 가질 않았는데 거기서 조금 쉬어간들 어떨까 싶습니다.
군부대 울타리를 많이 지났습니다.
망루 초소에 감시카메라만 있을뿐 초병이 보이질 않으니 경계임무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
신한북정맥 많은 후기를 들여다 보고 애써 만들어 놓은 자료가 옮기는 도중 다 날라가서 허탈합니다. 에효~~
이곳저곳에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건져낸건데,,, 기억에 의존해 다시 작성할려니 엄두가 쉽게 안 납니다.^^
갑자기 찾아온 6월초 무더위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원통산에 개미떼가 바글바글해서 후다닥 지나쳤던
생각이 나네요 ㅎㅎ
졸며졸며 운악산에 오르고 ....
퐁라라님 산행기 보며 많은생각이 휘리릭 지나네요.
쉽지 않은 장거리 홀산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고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릎보호대는 완전 비추 입니다. ^^
위약효과처럼 습관인가봅니다.
병원에서 구입해 착용하는데 안 하면 무릎에 신경이 많이 갑니다.
무릎뼈 위 무릎 인대 부분을 눌러주니 피로감이 덜하던데 밴드로 그 부분만 누르는 식으로 착용해 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한북정맥 두번째 구간이군요
신산경표상 오두산으로 방향을 잡으니 한강봉지나 챌봉으로 아니가고 말머리재에서 걸음을 멈추었네요.
다음주에는 신한북정맥을 끝으로 1대간 9정맥을 졸업하시겠습니다.
갑자기 찿아온 무더위에 수고 많으셧습니다.
네~ 부뜰이운영자님!
예전에 한북정맥을 도봉지맥으로 진행할 때 사패산에 이르니 하늘이 캄캄해지고 라디오를 듣던 누군가가 벼락이 떨어져 수락산과 북한산에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던 기억입니다. 사패산에 똑따기카메라를 놓고 하산한 적이 있는데 그날이 그날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더위에 한북정맥 운악산 불곡산 명산들을 지나셨네요 넘 아름다운 한북정맥 입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세요 화이팅입니다 ~~~
네~ 세르파선배님! 감사~~
이제 정맥은 마지막 한구간 남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장마기간이 끝나면 본격 무더윈데 그때 기맥위에 서있을까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