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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날자 : 2017년 10월 14일 (토요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전형적인 가을 산행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0도에서 영상 2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대광리역-도신리-방아교-도신로(376번 2차선 포장도로)-자향교차로-답곡리-답곡1교-답곡리 사격장 갈림삼거리-군부대 정문-바람터농장-부령골고개-능선진입-185 무명봉-지독한 칡넝쿨 지대-
우측 자작나무 조림지-205 군부대 삼각점봉-230 지독한 칡넝쿨 지대 무명봉-248 교통호 무명봉-254 공터와 작은 바위봉-250 교통호 무명봉-오르지 못하는 왕재지맥(월야산과 천덕산) 조망-
225 무명봉-비포장 임도-263 군사시설 콘크리트 말뚝-지독한 칡넝쿨 지대-교통호 따라-259 자작나무 공터봉-257 자작나무봉-비포장 임도-223 무명봉-220 참나무봉-비포장 임도-221 무명봉-
비포장 임도-멧돼지 목욕탕-193 무명봉-194 무명봉-우측 자작나무 조림지-자작나무봉-166 무명봉-녹슨 철조망-와초리고개(1차선 포장도로)-간이 군 화장실-군 훈련 이정판-183 군부대장 경고문-
전주이공 묘지-194 공터봉-군부대 훈련용 표적들-밭 경작지-밀양박공 묘지-시멘트 포장도로 고개-평산신공 묘지-무명안부-지독한 칡넝쿨 지대-비포장 임도-잣나무 등로-군 훈련 이정판-
178 분소대전술교장 이정판-철조망 지대-가선대부 묘지-거대 축산단지-콘테이너 임도-벗꽃나무 조림지와 굴뚝봉-127 벗나무 조림지 정상봉-두리농장 앞 시멘트 포장도로-군부대 철조망과 폐초소-
시멘트 포장도로-상리고개(78번 2차선 포장도로)-초지지대-녹슨 철조망-교통호와 위장막-교통호-142 비포장 임도-상리 평화누리길 이정표(신탄리역 14.1 Km, 군남홍수조절지 9.9 Km)와 연천군
이정표(망곡공원 4.29 Km와 읍내리 군자산 등산로 6.27 Km, 즈믄해 1.29 Km, 상리 약수터 0.81 Km)-158 화생방 종봉-비포장 임도-평화누리길 이정표(신탄리역 14.4 Km, 군남홍수조절지 9.6 Km)-
간벌지대-교통호-청화산(189.1미터, 군진지 HQ, 삼각점)-위장막-비포장 임도-옥계리 평화누리길 이정표(신탄리역 15.1 Km, 군남홍수조절지 8.9 Km)와 연천군 이정표(망곡공원 3.11 Km와 읍내리
군자산등산로 5.09 Km, 청화산 0.22 Km, 상리 약수터 2.1 Km)-계속되는 평화누리길과 연천군 이정표-차탄리 평화누리길 이정표(신탄리역 16.4 Km, 군남홍수조절지 7.6 Km)-옥계리 평화누리길
이정표(신탄리역 16.4 Km, 군남홍수조절지 7.6 Km)-연천군과 주위 산군들 조망-묘지지대-읍내리고개(6번 2차선 포장도로)-읍내리-연천군청-연천역-산행종료
산행거리 : 생각보다 좋은 산행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18.4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왕재지맥 산행 부령고개에서 읍내리고개까지 약 10.7 Km
접속구간 총 7.7 Km (대광리역에서 부령고개까지 6.0 Km와 읍내리고개에서 연천군청까지 1.7 Km)
산행트랙 : 20171014 왕재지맥 제2구간 부령고개-읍내리고개__20171014_0856.gpx
산행시간 : 산행하기 좋은 가을날씨에 좋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여 05시간 39분 (08시 55분에서 14시 34분까지)
교통편 :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 옴
갈때 - 2호선 지하철로 봉천역에서 신도림역까지 간 후 1호선으로 환승하여 동두천역까지 이동
동두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39-2번으로 대광리역까지 이동
대광리역에서 부령고개까지 도보로 이동
올때 - 읍내리고개에서 연천역 앞 버스정류장까지 도보 이동
연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39-2번 버스로 소요산역까지 이동
소요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신도림역까지 와 환승하여 2호산으로 봉천역까지 이동하여 귀가
왕재지맥이란 ???
왕재지맥은 한북정맥 장암산(1063봉)에서 분기하여 임진강과 한탄강 경계를 이루며 휴전선을 넘어 한탄강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 도감포에서 감악지맥과 마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99.4 Km되는 산줄기인데 장암산 분기봉에서 보개지맥이 분기하는 소이산(362봉)까지 55 Km는 이북 또는 군사분계선부근이라 갈 수 없고 나머지 44.4 Km중 야월산(485.9봉)분기점 아래 고개부터 천덕산(476.7봉) 지나 376번도로 부령고개까지는 출입금지구역이라 갈 수 없으니 실제로 갈 수 있는 구간은 39.5 Km 정도된다.
왕재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고성지맥(68.8 Km.이북)과 보개지맥(31.2 Km)이 있다.
현재 남한 산경도에서 전구간을 완주할 수 없는 산줄기는 백두대간 향로봉(1287.4봉) 북쪽 943.2 Km, 한북정맥 수피령 북쪽 73.2 Km, 도솔지맥 돌산령 북쪽 35.3 Km, 향로지맥 전구간(46.1 Km), 왕재지맥 소이산(362봉) 북쪽 55 Km, 적근지맥 분기점에서 1056.1미터봉까지 16 Km가 되겠다.
산행하기 좋은 화창한 가을 날씨에 멋진 조망을 즐기며 분단으로 인해 보이는 마루금을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늘은 2017년 홀대모 가을정기모임이 속리산 피앗재산장에서 있는 날이기에 참석해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오래전부터 산친구들과 약속되어 있는 일요일 영월지맥 산행으로 포기하니 많이 아쉽지만 다시 내년 봄을 기다려 본다.
오늘 토요일 하루 그냥 보낼 수 없어 진행하다 중단한 지맥 산행 중 가장 난이도가 낮고 거리도 짧은 왕재지맥 제2구간 산행을 생각해 보는데 가고오는 대중교통 편이 쉽지 않아 고민하다 새벽 같이 일어나 가장 빠른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행 들머리로 이동을 해 본다.
하지만 대광리역에서 산행 들머리인 부령고개로 이동하는 시갑누터 문제가 발생해 고민을 하게 되는데 몇달 전까지만 해도 선답자들이 이용했던 대광리의 택시가 영업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 신고를 한 후 연천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이기에 대광리역까지 올라 와 다시 연천택시를 불러야 할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돈도 아깝지만 오늘 산행거리도 그리 길지 않고 또한 산행 날씨도 좋아 택시 대신 천천히 산행 들머리인 부령고개로 걸어 들어가니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아 정확히 한시간만에 부령고개에 도착을 해 즐거운 마음으로 왕재지맥 제2구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진행을 하다보니 몇군데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만나지만 역시나 계절이 변하면서 칡넝쿨의 기세도 한풀 꺽이며 생각보다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계획보다 빠르게 진행을 하고 중간에 빤히 보이는 천덕산과 야월산이 가깝게 보이는데 오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진행하니 큰 알바 한번 없이 10여 Km의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날머리인 읍내리고개에서 좌측 아래로 빤히 내려다 보이는 연천읍내가 아름다워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30여분만에 연천읍에 도착을 하는데 몇달전까지 영업을 하던 목욕탕도 영업이 안되었는지 폐업이 되어 연천읍에는 그 흔한 목욕탕 하나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귀가를 하니 새벽 일찍 서둘러서 그런지 저녁 7시도 되기 전에 도착을 해 마음 편히 쉬면서 내일 새벽 산친구들과 만나 진행해야 할 영월지맥 산행 자료들을 챙겨보니 하루가 정말 의미있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약간의 바람이 불어 줘 생각보다 편안하게 빨리 진행하여 해발 189.1미터 정상에 군작전본부 같은 시설물들과 교통호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청화산에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산행을 마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던 갈마동고개가 우측 움푹 파인곳으로 보이고 그 좌측으로 민통선 안에 있어 눈으로만 바라보고 오르지 못하는 야월산과 천덕산 봉우리와 이곳으로 이어지는 왕재지맥 마루금이 평이한 일자 능선을 그리며 달려오고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을 남기며 발걸음을 고장시키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좋아 홀로 새벽잠도 자지 못하고 이곳 민통선 가까운 비산비야를 찾아 왔는지 스스로에게도 이해시키지 못하며 그냥 웃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마음 놓고 저 야월산과 천덕산을 오를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을지 그저 안타깝고 아쉬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청화산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즐긴 후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평화누리길을 만나 우측으로 자동차가 지나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 본다.
망곡공원과 읍내리 군자산등산로 이정표를 만나고 차탄리 군남홍수조절지라는 이정표 방향을 타고 진행하니 드디어 옥계리로 들어서고 잠시 후 임도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이는 곳으로 올라 살펴보니 연천읍 현가리쪽이 내려다 보이는데 용도를 알 수 없는 넓은 부지를 둘러싸고 직선의 도로들이 나 있고 그 뒤로 이름없는 연천읍 현가리 산줄기가 제법 옹골찬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이제 오늘 산행도 잠시 후 마무리가 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조금 더 힘을 내 보는 시간이다.
드디어 읍내리고개로 이어지는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연천읍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뒷쪽으로 성산줄기와 그 성산 넘어 보개지맥의 봉우리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오래 전 군 생활을 했던 연천이지만 이곳 연천읍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던 곳이라 올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이 왕재지맥 산행을 하면서 새롭게 인연을 맺어가는 연천이지만 생각보다 작아 목욕탕 하나 없다는 사실은 이 산객을 실망시키고 있다.
새벽 일찍 일어 나 간단하게 준비 후 베낭 메고 집을 나서 봉천역으로 내려가니 시간은 이제 새벽 5시 20여분을 넘어가고 있다.
잠시 홀로 쓴 웃음을 지어 보는데 어제 대중교통을 확인하면서 신도림역에서 동두천가는 첫 열차만 확인하고 내려 와 지하철 2호선이 운행하기 훨씬 전 시간이라 잠시 고민하다 택시를 이용해 신도림역으로 이동을 한다.
옆지기에게 부탁한다는 것이 생각지도 못하고 내려 와 벌어진 헤프닝이었다.
그래도 신도림 역에서 쉽게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어 졸다 보니 오느덧 동투천 역에 도착을 하는데 나오니 안개가 심해 걱정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식사를 할만한 곳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아침부터 굶어 허기를 느끼는데 먹을 식당 하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동두천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추위를 느끼며 39-2번 버스를 기다리니 10여분 후 버스가 도착을 하는데 15인승 미니 버스이다.
제일 뒷쪽에 어렵게 자리 하나 얻어 앉아 가는데 작은 버스이다 보니 왜 그리 덜컹거리던지...
거의 한시간 가까이 달려 어렵게 대광리역에 도착을 하는 시간이 아침 8시 20여분을 넘기고 있는데 이곳 대광리역 또한 문을 얄고 장사하는 식당 하나 없어 24시 편의점으로 들어 가 햇반 하나에 컵라면 그리고 김치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대광리에 하나 있는 택시를 부르니 택시 기사는 연천에서 전화를 받으며 장사가 안돼 몇개월 전 연천읍으로 내려 왔다며 필요하면 올라 갈 수 있는데 이곳 연천부터 운행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이란다.
버스를 타고 연천에서 이곳 대광리까지 온 거리와 시간 및 식당이 없어 이미 부실하게 먹은 아침을 생각하니 택시 비용도 아깝고 특히나 오늘 산행거리가 선답자들 기준으로 약 12 Km에서 13 Km 정도 된다고 알았기에 산행 들머리인 부령고개까지 천천히 걸어 가기로 하고 출발하니 생각보다 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걷기 좋은 아침이다.
대광리역 앞 신서파출소에서 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인 연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 우측 골목길로 들어 가 강변 도로를 따라 계속 남쪽 방향으로 걸어내려가니 강변도로 우측으로는 생각보다 큰 차탄천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묵은 밭과 논 그리고 비닐하우스들이 보이는데 그 뒷편으로 진행하다 중단한 보개지맥 옆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대산과 그 줄기들이 강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연천군에 속해있으면서도 연천군청 서쪽으로 한참을 떨어져 있는 백학의 전방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기에 연천이 낮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곳도 아닌 곳이었는데 산행을 위해 또 이곳을 이토록 자주 찾게 될줄이야 꿈에도 몰랐던 사실이다.
잠시 후 강변도로는 좁은 포장도로로 변하는데 살펴보니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들어 차량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자전거는 한대도 만나지 못하고 가을거지에 바쁜 농민들만 몇명 만나 인사를 나누며 걸어가니 드디어 37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방아교에 도착을 해 그 방아교를 건너 부령골 방향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 본다.
방아교 건너 좌측으로는 신서물새롬센터라는 커다란 입간판도 보이고 마을들도 보이는데 이 산객이 살던 어릴적 고향 생각이 나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도 해 보며 걸어 본다.
잠시 걸어가니 차량 두어대가 올라 와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보지만 다른 곳과 달리 냉담하기만 한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할아버지 한분이 웃으면서 이곳은 모두 군인과 관련된 차량들이 대부분이라 차량 얻어 타기가 쉽지 않다면 고생 좀 해야 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제야 이해가 되며 히치 하이킹을 포기하고 아침 공기를 만끽하며 걸어 오르니 도로 옆에는 계속 열쇠전망대란 입간판이 보인다.
궁금해 찾아보니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통일의 열쇠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이름붙여진 열쇠전망대는 육군 열쇠부대가 북녘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인 연천군 신서면 답곡리에 안보 교육과 망향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1998년 4월 11일 건립하여 일반인에게 오픈하고 있다.
군인들이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를 마친 뒤 전망대로 향하는 바리케이드를 열어주면 전망대로 오르고 그 전망대에 오르면 푸른 신록으로 둘러쌓인 북녘 땅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데 이곳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열쇠전망대 내부 전시실에는 북한의 생활 용품과 군사 장비가 전시되어 있어 북한의 생활상을 간단하게나마 엿볼 수 있으며 전망대 주변에는 교회, 성당, 법당 등 종교별로 평화 통일을 기원할 수 있는 종교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열쇠전망대는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 위치하여 분단의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수 있으며 안보불감증에 빠진 현 세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의지와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곳이다.
철책선 바로 앞 울타리에는 관광객들이 소원을 적어놓은 리본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러니까 열쇠부대에서 전망대를 만들어 일반인들도 올라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전망대란 의미인데 오늘은 갈 수 없으니 아쉽기는 하다.
그렇게 계속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동두천과 연천으로 갈 수 있는 3번 지방도로와 갈리는 자향교차로인 삼거리를 지나 답곡1교를 건너고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우측으로는 답곡리사격장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다.
좌측으로는 저 멀리 군부대가 보여 이곳에서 한동안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알바도 한 다음 지도를 꺼내 확인 후 제대로 된 좌측 도로를 타고 부령고개 방향으로 오를 수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군막사가 보이고 음악소리가 크게 흘러 나오는데 신세대 군인들답게 토요일 오전부터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잠시 후 군부대 정문으로 통하는 초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초병2명에게 부령골 가는 길을 확인하니 이 산객이 가는 도로가 맞다면서 다른 별다른 확인은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나무고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한동안 걸어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고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바람터농장 시멘트표석을 지나 오르니 좌측으로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설치되어 있는 부령골고개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토해보는 시간이다.
부령골고개는 현재 민통선 안에 있어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연천군 중면 마거리에서 오늘 이 산객이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 온 신서면 답곡리의 부령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이 부령골고개를 넘어 도로를 따라가면 부령골이 나온다.
다시 부령골고개를 넘어 좌측 잡풀들이 자라난 공터에서 간단히 산행 준비 후 앞에 보이는 타이어 등로를 따라 오르니 약간의 이슬들이 등산화를 적시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지독한 칡넝쿨들도 보이지만 이미 선답자들이 오르며 등로를 터 놨기에 큰 무리없이 짧은 절개지를 오르니 금새ㅔ 웅덩이가 있는 18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자작나무 식재지를 지나 지독한 칡넝쿨이 우거진 곳 위로 올라 뒤돌아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오늘 아침 이 산객이 걸어 온 대광리쪽으로 이어진 376번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대광리 뒷쪽으로는 고대산과 금학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왕재지맥 산줄기에 속하지만 오를 수 없는 야월산과 천덕산 방향도 뒤돌아 보니 그리움을 가득 남긴채 미국군 초소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당당히 북한과 맞서고 있다.
아쉽지만 눈으로만 그 야월산과 천덕산을 다녀오고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등로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205미터의 군삼각점을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군삼각점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조망을 살피며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칡넝쿨 더미가 펼쳐지는데 어떻게 통과를 해야할지 난감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들이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이제 칡넝쿨도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은 순순히 길을 터놓고 있다.
어렵게 그 칡넝쿨 지대를 빠져 나오니 부령골고개 넘어 이어지는 왕재지맥 산줄기를 조금은 보여주며 고생했다고 위로를 해 주는 듯 하다.
생각보다 잘 그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빠져 나오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교통호 주변에 자라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참호 위에 자라고 있는 24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그 248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원마을과 에이원님 띠지가 반겨주고 자시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공터 좌측 구석에는 작은 돌 위에 바위각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모습도 눈에 보인다.
아마도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돌처럼 보이는데 사진 한장 남기고 트랙을 확인해 보니 254미터의 공터 무명봉이다.
공터를 지나 교통호를 따라 진행을 하니 빛바랜 낙원 APC 띠지가 반겨주고 잠시 후 타이어 방커를 지나 뚜렷한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잠시 후 활엽수들이 자라고 있는 교통호 옆 방커를 만나고 계속 교통호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과 덩쿨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25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보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교통호를 타고 걸어가니 녹슨 파이프3개가 묻혀있는 곳 공터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펼쳐지는데 잠시 살펴보니 우측 끝자락으로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 온 갈마동고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야월산과 천덕산의 군 기지들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여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출발한다.
다시 출발해 커다란 참나무 2그루와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교통호 위 무명봉을 넘고 계속 이어지는 교통호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벗나무들을 짧은 크기로 잘라 사각형으로 잘 쌓아 둔 22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살펴본다.
아마도 군인들이 군 작전상 필요해 벗나무들을 잘라 이렇게 각을 잡아 쌓아 둔 것처럼 보이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일부는 쓰러져 있는 더미들도 보인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는데 그 임도는 잘 정리되어 고속도로처럼 보인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중앙에 나무와 함석으로 만든 작은 구조물이 보이는데 그 용도는 알 수가 없는 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걸어 본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 역시 관리가 되는지 잘 정리되어 지금과는 달리 아주 편안한 발걸을 옮겨 본다.
편안하게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옆으로 잘 정리된 벙커가 눈에 들어오고 다시 등로는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263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군사시설이라는 콘크리트 말뚝도 만나고 잠시 더 걸어가니 지독한 잡목과 잡초들 그리고 칡넝쿨이 등로를 완전히 뒤덮어 어떻게 통과를 해야 할지 난감한데 이곳 역시 계절이 변하면서 칡넝쿨의 기세도 한풀 꺽여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을 따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지독한 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잡초와 잡목이 자라는 교통호가 계속 이어지고 등로와 별 차이가 없기에 걷기 편한 교통호를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며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고 다시 오르니 자작나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259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동안 지독하게 괴롭히던 거미줄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잡목과 칡넝쿨로 인한 어려움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무척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작은 알바 한번 없이 직서ㅏㄴ 코스로 걷다 보니 산행거리 또한 상당히 짧아진다는 느낌으로 걸어 본다.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는 공터 무명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다시 조금 더 큰 자작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25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걸어 진행을 하니 이제부터는 상당히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잘 정리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다 약간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서 배낭 내려 홀로 풍욕도 즐기고 간식도 먹으며 그 동안 마시지 않았던 물도 한 모금 마시다 보니 오늘은 식수가 남아 넘치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에서 뿐만 아니라 필요한 식수의 양에서도 그 변화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접어들어 213 무명봉을 넘고 참나무와 벗나무가 자라는 교통호가 널려있는 22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별 특징 없는 등로를 타고 참나무 숲을 걸어가니 키가 큰 활엽수에서는 색의 변ㄹ화를 감지할 수 있지만 키 작은 잡목과 잡풀들은 아직도 푸르름을 유지하며 계절의 변화에 거부를 표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잠시 더 걸어가니 커다란 활엽수 두 그루가 교통호 위에서 자라고 있는 22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후 다시 능선으로 오르고 221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활엽수 잡목들은 이미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쉽게 계절의 변화에 순응을 하고 있어 방금 전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그 단풍이 든 잡목봉을 가파르게 내려가니 콘크리트 벙커가 보이고 곧이어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한동안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고산마루 다올님의 빛바랜 띠지도 만나고 우측에 나즈막한 무명봉을 두고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작은 물웅덩이가 보이는데 그 웅덩이 주위 나무에는 목욕 후 몸을 묻지른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멧돼지 목욕탕이다.
주의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소리를 내며 통과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벙커가 보이고 잠시 후 교통호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 본다.
교통호 위에 위험하게 자리하고 있는 참나무가 보이는 193 무명봉을 지나 잠시 더 걸어가니 커다란 참나무 밑둥에 파란 이끼가 덮혀 있고 우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가 내력다 보이는 19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 걸어가고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빠르게 진행을 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에 두갈래 가지를 가지고 있고 그 바로 옆으로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잠시 등로를 확인해 본다.
등로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진행을 해야되고 그쪽 방향으로 빛 바랜 띠지 한장이 걸려 있는데 혹시 몰라 우측의 직진 방행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보니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일반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고 있어 뒤돌아 내려 와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걸어 간다.
다시 사라지는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교통호를 따라 나즈막하게 오르니 큰 참나무 한그루에 세갈래 가지를 가지고 있는 참나무를 지나 바랑산님 띠지가 걸려 있는 16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그 철조망 넘어 완만하게 올랐다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와초리고개이다.
이곳 와초리고개는 고개가 있는 지명이 와초리라서 붙은 이름처럼 보이며 와초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있는 리로서 본래 연천현 동면의 지역으로 기새라는 마을이 있어 한자로 음을 빌어 와초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내면에 편입되었고 1945년 8·15 광복 직후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6·25가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에 6개 반 그리고 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의 지역이 민간인 미입주 상태에 놓여 있다.
와초리고개에서 능선으로 들어 조금은 가파른 잡목 등로를 헤치고 오르니 제법 넙ㄹ은 공터에 군 간이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오래 전 군 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나가면 사용했던 간이 화장실인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잠시 옛날 추억을 생각도 해 본다.
그때 함께했던 전우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
하지만 군 생활이란 것이 계급 사회이다 보니 좋은 전우도 마운 전우도 함께 하며 뒹굴었으니 모두 궁금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간이 화장실을 지나니 등로는 잘 나 있는데 갑자기 군 훈련 이정판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방금 전 지나 온 강니 화장실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군 훈령 이정판을 살펴보니 아마도 신병이나 훈련병들이 훈련을 받던 훈련장이 아니였나 생각이 드는데 이제는 그 기능을 상실했는지 사용하지 않은지 꽤 오래 돼 보인다.
많은 군인들이 지나다녔는지 등로는 너무나 뚜렷하게 잘 나 있어 걸어가는 발걸음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잠시 교통호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빠져 나가니 이제는 길게 이어지는 지독한 칡넝쿨이 또 다시 발목을 잡지만 한여름 기세 등등하던 때와 비교하면 풀이 많이도 죽어 조심하며 걸어 통과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잠시 무명 안부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인삼포가 보이고 기온의 변화가 실감나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군부대장의 경고문이 있는 183 무명봉과 전주이공 묘지를 지나 군부대용 표적지들도 보이는데 그 의미는 잘 모르겠다.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공터에 많은 가지들이 자라고 있는 참나무가 서 있는 19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우측으로 걸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다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도로 우측 위에는 밀양박공 묘지들이 보인다.
우측의 와초리와 좌측의 합수리를 이어주는 나즈막한 고개인 듯 보이는데 아무 표식도 없으니 그냥 무명고개라 부르고 출발한다.
비포장 임도로 되어 있는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니 평산신공 표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묘지 우측 끝자락으로 내려가며 무명 안부도 통과한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고사목 하나가 걸쳐있는 또 다른 무명 안부를 통과하며 진행을 한다.
생각보다 등로 상태가 좋아 진행 시간을 보니 무착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발걸음이다.
다시 계속 걸어가니 탁상이 펼쳐져 있는 묘지에 도착을 하는데 묘지 아래 와초리쪽 풍경이 살짝 보이고 있다.
다시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묘지 위 한쪽에 많은 용담들이 피어나 있는데 알고 있는 용담보다 훨씬 크기가 커 잠시 사진에 담아 본다.
다른 꽃들은 이제 모두 시들어가고 있는데 이곳 용담은 계절도 잊고 진한 보라빛을 뽐내며 아직도 이팔청춘인 듯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잘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잠시 후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다시 만나고 어렵게 그곳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고대단맥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구경하고 출발한다.
언제 저 고대단맥 뒤로 흐르는 보개지맥에 오를 수 있을지 시간이 흐름이 아쉽기만 하다.
고대단맥과 보개지맥 산줄기를 조망하고 다시 능선으로 들오가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처럼 넓은 등로가 이어지는데 중간 중간에 군 훈련용 표적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 눈길을 잡는다.
등로 좌측으로 논 경작지를 내려다 보고 비포장 임도를 건너 오르니 3선 철조망 이정판을 지나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난다.
짧은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잠시 하늘이 열리면서 잡풀지대가 나타나고 다시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를 통과한 후 오르니 계속해 군 훈련 용 이정판이 보이고 또 다시 표적지와 이정판을 교대로 살펴보며 빠르게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분소대 전술교장이라는 이정판이 서 있는 178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제법 긴 거리동안 수많은 군 훈련용 이정판과 표적지들이 보이지만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된 관리는 되고 있지 않는 듯 보인다.
방어와 공격으로 나눠 설치된 군 훈련용 이정판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반질거릴 정도로 뚜렷하게 잘 나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철조망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이곳도 군 훈련용 장애물 극복이라는 이정판이 서 있는 곳이다.
그렇게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가 보여 살펴보니 가선대부 묘지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 문무관의 품계로서 현재로 치면 대법원 검사장 차관보, 부시장, 부지사, 중장 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묘지는 그 직책에 비해 소담한 듯 보인다.
가선대부 묘지를 지나니 축사 분뇨 냄새가 지독하게 나기 시작하고 잠시 내려가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축사 단지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어떤 동물을 키우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등로 좌측 그 축사 단지방향으로 이어지고 그 우측 공터에는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보인다.
그 비포장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벗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조림지가 보이고 등로 중간에 갑자기 굴뚝이 보여 잠시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곳이 전방임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닌듯 하여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등로는 좌측의 벗나무 식재지를 두고 빙 돌아 진행이 되고 잠시 후 그 벗나무 조림지 정상으로 오르니 잡풀들이 우거져 있는 12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 정상을 지나 소나무 능선을 따라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우측으로도 역시 거대한 축산 단지들이 보이고 그 앞에는 두리농장 장인이 붙여 놓은 방역상 출입통제라는 경고판과 철문이 보이는데 오늘은 철문이 열려있다.
지도를 봐도 정확한 장소는 모르겠지만 와초리와 상리 중간 어디쯤 되어 보이는 곳이라 추측되는 거대 축산 단지들이다.
거대 축산단지가 있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낙엽 진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잠시 후 교통호 지나 녹슨 철조망과 만나는데 그 철조망 안에는 초병도 보이지 않는 초소도 보인다.
그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니 철조망에 부대장이 붙여 놓은 종이코팅지의 경고판이 보인다.
한동안 그 철조망을 따라가니 철조망은 좌측으로 휘어져 벌어지고 그곳에서부터 짤은 구간 지독한 칡넝쿨이 등로를 완전히 뒤덮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조심하며 희미한 선답자들의 흔적을 따라가니 완전히 등로를 뒤덮은 칡넝쿨들도 그 등로만큼은 조금 열어주고 있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그 칡넝쿨 지대를 완전히 통과한다.
등로 우측으로는 합수리쪽 민가들과 농경지들이 좁은 골짜기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렇게 진행을 하니 묘지들을 지나 다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이곳 역시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도로이다.
그 시멘트 도로를 건너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 우측 뒤로는 멋진 소나무들이 길게 식재되어 있다.
그 묘지 뒤를 돌아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와초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제법 골격미를 자랑하고 있는 고대단맥과 그 고대단맥 뒤로 보개지맥의 산 봉우리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저 고대단맥을 따라 걸어 볼 기회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와초리에서 상리로 완전히 넘어 온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눈 앞에 짧은 절개지와 그 절개 위로 검정 천막과 원형 철조망이 보이는데 원 지맥 등로는 그 철보망을 넘어 직진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선답자의 트랙에는 좌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진행이 되고 있다.
아마도 한여름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찾아 진행하며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한 듯 보이는데 오늘은 잡풀이 조금은 성가시게 하지만 진행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원 마루금을 따라 걸어 가 본다.
그곳을 지나니 지독하게 자라고 있는 잡풀지대를 지나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지도산 78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와 함께 도로를 사진에 담아 본다.
이 도로는 지도 상 좌측의 옥산리에서 상리를 지나 옥계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그 78번 2차선 포장도로 건너편에는 드넓은 파란 초지가 펼쳐져 있어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 목초지를 관리하는 듯 보이는 작은 목조 건물 앞으로 통해 초지지대 건너 능선 방향으로 걸어 간다.
잠시 걸어 들어가니 등로가 사라져 어쩔 수 없이 초지를 헤치며 걸어 능선 방향으로 가니 태풍에 ㅡ러졌는지 좁은 지역의 초지는 완전히 땅에 엎드려 있어 조금은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잠시 능선으로 오르니 갑자기 다시 녹슨 철조망이 나타나고 조심해 그 철조망을 넘어 걸어 오르니 검정 천막이 둘러쳐진 교통호가 길게 이어져 있다.
조심해 그 교통호를 거너 오르니 천장이 씌여진 벙커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까지 사용한 듯 보이는데 여름이 지나면서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잠시 그 검정 천막이 쳐진 교통호를 타고 우측으로 트래버스하듯 걸어가니 갑자기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 우측에는 군 진지를 만들었던 흔적이 있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트랙산 142 무명봉으로 이제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이정표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평화누리길이다.
이제부터 이 평화누리길과 동해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며 망곡공원과 군남홍수조절지라는 이정표를 보며 오늘 산행 날머리까지 진행을 하게 된다.
평화누리길은 DMZ와 접경지역 일원에 있는 생태 우수지역과 역사관광지를 연결하는 자전거 및 트레킹 길로서 처음에는 경기도의 4개 시군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DMZ 전역에 걸쳐 조성되고 있는 트래킹 도로이다.
다시 비포장 임도 우측의 능선으로 오르니 잡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 소나무 등로와 만나고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보이고 그 아래 저 멀리 파란 지붕을 한 민가들과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논 경작지 그리고 그 뒤로 아담하게 펼쳐진 능선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풍경을 구경 삼아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드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간다.
넓은 비포장 임도 좌측으로 벤취쉼터도 보여 잠시 그곳에 배낭 내리고 불어 오는 바람에 짧은 풍욕도 즐기고 간식을 먹은 후 출발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민가와 논 경작지가 내려다 보인다.
한동안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신탄리역에서 14.4 Km진행해 왔다는 이정표에서 다시 우측 잡초가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고 살펴보니 이곳이 청화산으로 오르는 등로였다.
잠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간벌지대를 지나 교통호와 군 진지가 구축된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청화산 정상으로 삼각점은 초소 안에 안전하게 기막히게 설치되어 있어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다.
청화산(189미터)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가무사리 서쪽과 군남면 옥계리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순천이씨세보에 의하면 도당골에 은거했던 이양소가 매일 이 산에 올라 송악을 향하여 망궐례를 올리며 고려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킨 곳이라 하여 조정에서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이 산을 백이의 맑은 기풍과 희이의 빛나는 산이라는 뜻에서 두 자를 취해 청화산이라 명명했다 하는 산이다.
이양소의 호는 금은이고 자는 여건이며 시호는 청화로서 순천 출생이다.
고려 때 진사에 합격하고 일찍이 이방원(조선 4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과 함께 곡산의 청룡사에서 공부하여 친교가 있었으며 태학에도 함께 들어갔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예를 거쳐 군수를 역임하였다.
새로운 나라인 이씨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자 연천의 도당곡에 은거하며 여러 번 불러도 나오지 않았고 뒤에 태종이 찾아가 함께 가기를 권하였으나 사양하였다.
그 뜻을 가상히 여긴 태종은 그가 사는 뒷산을 청화산이라 하고 저택까지 하사하였다.
죽음이 박두하자 스스로 명정에 고려진사이양소지구라 썼는데 태종이 이 사실을 듣고 살아서 그 마음을 굽히지 않고 죽어서 그 벼슬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찬탄하여 시호를 내리고 장지를 주어 장사 지내게 하고 수총군 사호를 두게 하였다.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고 높이도 높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오르지 않는지 평화누리길과 비교하면 잡목과 잡풀이 많아 완전히 다른 등로처럼 보이는 곳이다.
청화산 정상에서 제일 먼저 북쪽을 살펴보니 연천읍 와초리 마을 뒤 저 멀리 잘룩하게 움푹 패인곳으로 갈마동고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야월산과 천덕산이 아쉬움 가득 안고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좌측으로 흘러 이곳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왕재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데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줌으로 당겨 한조간 두조각 상세히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한동안 그 청화산 정상부에서 많은 사진을 남기고 즐긴 후 그 군부대 진지를 넘어 내려가니 남동쪽으로 드넓은 헬기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헬기장 넘어 저 멀리 차탄천을 따라 솟아 있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산줄기 넘어로는 고대단맥과 보개지맥이 펼쳐져 있을 것이지만 앞 산줄기에 가려 그리움만 키우고 있다.
위장막이 쳐져 있는 진지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잠시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앞에 보이는 넓은 비포장 임도는 방금 전 청화산 오름길에 헤어졌던 그 비포장 임도인 듯 보인다.
이곳이 옥계리로서 신탄리역에서 15.1 Km 거리라는 이정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짧은 거리마다 평화누리길과 신탄리역 방향과 거리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촘촘하게 나타난다.
잠시 후 임도 우측으로 또 다른 묵은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도 만나 진행을 해 본다.
망곡공원까지 2.65 Km 남아 잇다는 이정표가 반가운데 망곡공원은 바로 오늘 산행 남러리인 읍내리고개에 있는 공원이기 때문이다.
등로는 이제 옥계리에서 차탄리로 변해 있고 군남홍수조절지까지 8 Km 거리가 남아 잇고 신탄리역에서 부터는 16 Km 거리로 벌어져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임도 좌측으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도 우측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 옆 능선에 아름다운 산부추가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망곡공원까지의 거리가 점점 짧아져 있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임도를 따르니 군부대 분반전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연천읍 옥산리 마을과 도로 그리고 그 뒤로 아름답게 펼쳐진 산줄기가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잠시 후 넓은 분지 사각 부분으로 곧게 뻗은 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곳을 지나 좌측 저 멀리 고대산과 금학산이 보이고 보개지맥 산군들도 보이지만 이제 멀어져 희미하게 다가온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연천읍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또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옆으로 벌초대행이라는 플랭카드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더 걸어 가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우측 임도를 타고 걸어 가니 둔덕을 넘어 등로 우측으로 읍내리고개와 만나는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도로 넘어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에 진행을 해야 할 군자산이 올려다 보이지만 저곳도 역시 바라만 보고 오를 수 없는 곳이기에 아쉬움이 커가는 시간이다.
강렬한 햇살이 내려쬐는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 가족묘지들이 보이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연천읍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상으로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아 걸어가기로 하는데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2시를 막 넘기는 시간이라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하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는 옥계리로 이어지는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길게 뻗어있는 풍경을 내려다 보며 걸어 진행을 하니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연천읍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며 선명한 풍경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한가운데엔 반환점이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판이 서 있다.
우측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6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읍내리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그 고개로 내려가는 바로 앞에는 자탄리마을까지 2 Km 거리라는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곳에서 배낭 정리하고 등로에 떨어져 있는 밤 몇알 주워 까 먹으며 걸어 내려가니 다음 구간 들머리 방향으로 사각정자와 망곡공원 및 군자산 둘레길 이정표도 보인다.
드디어 읍내리고개에 도착을 해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 방향을 사진에 담고 오늘 산행은 공식적으로 마무리 한다.
읍내리고개는 우측으로 넘어가면 군남면이고 좌측으로는 연천읍이 갈리는 고갯마루이다.
이곳에서 배낭 정리하고 스틱을 접어 배낭에 매달은 후 좌측 연천읍 방향으로 6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통행하는 도로는 아닌듯 하지만 제법 많은 차량들이 통행을 하고 있어 히치하이킹을 해도 되겠지만 산행거리가 17 Km 정도 밖에 되지 않기에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가다 바라보는 연천읍 방향의 풍경인데 도로 가장자리로 코스모가 피었다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인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출발한 읍내리고개의 망곡공원도 보인다.
망곡공원은 연천역에서 경원선 철길을 건너면 바로 자리하고 있는 나지막한 망곡산에 조성된 공원으로 예전에는 생활체육공원이었던 곳이다.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망곡공원에서 읍내리고개와 청화산을 지나 상리 약수터까지 가는 등산 코스가 개설되어 있으며 군자산까지 둘러 볼 수 있는 등산 코스도 조성되어 있다.
전망데크에서 내려다 보면 연천역과 연천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오는 망곡산은 고종임금과 순종임금이 돌아 가셨을 때 지역 주민들이 이곳 망곡산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고 통곡하고 애석해 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다 도로 우측으로 펼쳐진 읍내리 마을과 그 뒤로 올려다 보이는 군자산을 살펴본다.
읍내리는 연천군 연천읍에 있는 리로서 차탄리와 함께 산정 부분에 위치한 산악마을인데 원래 연천현 현내면 지역으로 조선시대 연천현의 관아가 있어 읍내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개천말, 아랫말, 남창말(남창동), 윗말, 윗샘골 등이 있는데 개천말은 솟대봉 북쪽에 있는 마을로 군자산에서 발원하는 작은 개천의 옆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남창말은 솟대봉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조선시대 당시 연천현에 딸린 창고인 남창이 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윗샘골은 연천향교 터 밑에 있는 마을로 두레박 우물이 있던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제 연천읍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고 도로 옆으로는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활짝 펴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이제 도로는 읍내리에서 차탄리로 변하면서 차탄리를 찾아 본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있는 리로서 연천군의 산악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차탄리는 군청과 경찰서 등의 주요 행정 관청이 위치하는 연천군의 중심지이다.
자연마을로는 앞시울(전곡), 지골(지혜동), 해골(조동) 등이 있는데 앞시울은 차탄리에서 가장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지골은 지혜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해골은 예전에 동막리 부물현에 곡성 임씨가 선대묘를 쓰려고 땅을 파니 학이 나와 이곳으로 날아왔다 하여 해골이 되었다는 설과 지형이 학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해골이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내려가며 연천읍에 있는 목욕탕을 찾아 그 목욕탕으로 가 샤워 후 귀가할 예정이다.
드디어 연천군청 앞에 도착을 해 연천군청을 사진에 담아 본다.
연천읍은 경기도 연천군의 동부에 위치한 읍으로 차탄리와 현가리 및 읍내리 등 모두 10개의 법정리를 관할하는데 현재의 연천읍 일대는 고려 시대에 연주 또는 연천이라 불리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연천현 현내면에 해당하던 지역으로 당시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연천현 현내면은 끝이 20리이다라고 하였고 여지도서에서는 당시 현내면에 속하였던 자연마을의 위치가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먼 무수동리가 관문으로부터 동쪽으로 3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현내면을 군내면으로 개칭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시에 연천군 동면을 편입하였다.
1938년에 연천군 군내면이 연천군 연천면으로 변경되었으며 1979년에 연천군 연천읍으로 승격하였고 1989년에 포천군 관인면의 부곡리를 새로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천읍은 동쪽으로는 포천군 관인면, 남쪽으로는 전곡읍과 청산면 그리고 포천군 창수면, 서쪽으로는 군남면과 중면, 그리고 북쪽으로는 신서면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연천군 행정의 중심지역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38선 이북에 속하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수복되었으며 경원선의 연천역과 연천향교, 연천중학교 및 연천고등학교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연천군청을 지나 인터넷에서 찾은 연쳔목욕탕으로 걸어가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주민들에게 물어 보니 몇개월 전 장사가 안된다며 문을 닫아 연천읍에는 목욕탕이 없고 차탄천 건너야 제대로 된 목욕탕을 만날 수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 주는데 그곳까지는 갈 수가 없어 연천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에 타고 왔던 39-2번 버스를 기다려 작은 미니 버스를 타고 소요산 역으로 이동을 한다.
드디어 소요산역에 도착을 해 김밥집에서 간단히 김밥 한줄과 라면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캔 맥주 하나를 마시고 나니 오늘 산행이 드디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왕재지맥 제2구간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니 이제 저녁 7시를 넘기고 저녁 식사 후 짧은 수면을 취한 후 강원도 산친구들과 이어갈 영월지맥 산행을 위해 새벽에 또 다시 집을 나서 본다.
이제 남아 있는 마지막 제3구간은 돌아 오는 토요일에 마무리를 할 예정인데 별일이 없기를 바래 본다.
거리도 꽤 되고 산행 난이도도 오늘보다 높기에 토요일 왕재지맥 산행 후 보현지맥 산행에는 지장이 없을까 걱정도 되지만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할 수 있으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 계획을 세워 본다.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도 화이팅을 외쳐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진행하신 날 보다 불과 한달 보름 정도 차이인데 등로상에는 가을도 무르익은 느낌입니다.
대광리택시가 없어 들머리 부령고개까지 도보로 감행하셨네요.
인적도 없고 잘 보존된 청정지역을 지나던 그때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홀로 산하를 누비시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가을 정모에서 혹여 뵐 수 있으려나 했습니다만~
멋진 산행담 덕분에 지난 길 반추해 봅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기대하고 갔다가 대광리역에서 조금은 난감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도보로 진행한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가을 정모에는 꼭 참석하고 싶어 수헌 운영자님과 의견을 나눴는데 토요일 저녁에 잠시 참석하고 나와야 되었기에 마음 편히 다음해 봄에나 만나 인사 드리기로 하였답니다
늘 수고하심에 감사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