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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에 잠긴 강신일은 지난 박명준 살해 사건을 처음부터 자세히 짚어보았다. 다른 빈틈은 없었다. 한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그 때 정하림이 미행을 눈치 챘던 게 분명해!'
박명준이 탄 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너무 바짝 붙어서 미행한 것이 불찰이었다. 정하림이 거의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갑자기 교회 방향으로 차를 꺾은 건 아마도 미행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란색 쉐볼레 실버라도!'
정하림이 경찰에 넘긴 제보내용이었다. 그날 아침에 훔친 차였고 당일 하루만 사용하고 버릴 생각이었지만 박명준을 죽이고 불과 한 시간도 안돼 경찰의 검문에 걸리고 말았다. 거사 후 큰 길로 나오기 전에 실버라도를 버리고 다른 차로 갈아탔어야 했다. 조급한 마음에 가능한 빨리 로스엔젤레스를 빠져나오려고 했던 것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그나마 위기에서 벗어난 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총 덕분이었다. 한복수(한반도복음수호단)의 구제의 손길은 머나먼 미국 땅에까지 뻗쳐왔다. 미국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한복수 인맥의 도움으로 강신일은 불구속으로 기소되어 풀려날 수 있었다. 재판은 이대로 흐지부지될 것이었다.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 배교자를 응징하는 일만 남았다.
"기내식은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한국식으로는 불고기 덮밥과 닭고기 조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양식으로는,"
"불고기 덮밥으로 주세요."
강신일은 스튜어디스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하루가 지난 한국 신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회면 톱으로 시청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대회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 칼럼에는 불자들의 자비심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이웃종교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보여준 불자들의 너그러움'
'찬송가를 부르는 불제자들'
'불교와 기독교의 화해 한 마당'
큰 글씨로 쓰이어진 소제목들이었다. 기사 옆에는 몇몇 진보 목사들이 승려들과 함께 행진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어? 이놈들은?'
강신일은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을 느꼈다. 사진 속 인물은 정하림과 진상우가 분명했다. 그들은 범불교대회가 끝나자 사찰에서 백팔배까지 했다. 개신교가 저지른 무례에 대해 부처님과 불자들에게 사과하는 뜻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말한 놈은 진상우였다.
'사악한 배교자들!'
강신일은 신문을 격하게 구기며 신음을 흘렸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강신일은 자신도 모르게 노랫말 속으로 빠져들어 흥얼거렸다. 초인종을 누르자 이렇게 아름다운 복음성가가 흘러나오다니, 역시 장영식 목사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부흥사다웠다.
"누구세요?"
"아, 네, 장목사님을 만나러 온 사람입니다."
강신일은 노랫말이 갑자기 그친데 대한 아쉬움을 곱씹으며 다음 가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머리속으로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목사님 지금 누굴 좀 만나러 가셨는데요. 혹시 강신일 성도님···"
"네, 제가 강신일입니다!"
"들어오세요. 목사님께서 남기신 물건이 있습니다."
강신일은 목회와 부흥회로 바쁜 목사님이 자신을 기억해주신 것이 한없이 고마웠다. 삐거덩 소리를 내며 둔탁한 철문이 열렸다. 잘 정돈된 잔디밭으로 들어선 신일은 햇볕이 쏟아지는 양지 바른 정원 한가운데 우아하게 자리 잡은 이층양옥을 바라보며 마치 천국문을 향해 걷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들어가 보시지요. 저는 이 방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귀빈들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카드와 열쇠로 이중으로 잠긴 문을 연 중년여인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네, 고맙습니다."
강신일은 어깨를 젖히고 붉은 카펫이 깔린 밀실로 들어섰다. 별로 크지 않아보이던 밀실은 서너 걸음을 지나자 왼쪽으로 큰 공간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거대한 탁자 주위로 이삼십 명이 둘러앉아 회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탁자 위에 무언가 놓여있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강신일 형제에게!'
밀봉된 누런 서류봉투에 적힌 문구였다. 서류봉투는 샤넬 상표가 찍힌 신사용 갈색 가죽가방 위에 놓여있었다. 신일은 천천히 서류 봉투를 뜯었다.
- 정하림과 진상우 제거 비용
- 직접 나서지 말고 반드시 두 단계 이상 거칠 것
- <한부협>과 <한복수>의 이름이 절대 알려지지 않도록 할 것
서류에 적힌 글자는 그것이 전부였다. 강신일은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보았다. 백장씩 묶인 오만 원 권 지폐 스무 다발이 들어있었다.
'일억 원!'
강신일은 처음 만져보는 거액의 현금 앞에 현기증을 느꼈다.
30
앰배서더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심은 자욱한 매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기개평(기독교개혁을 위한 평신도연합) 사무총장 황성필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회색빛 도심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면 이 매연을 뚫고 시뻘건 십자가가 온 도시를 덮겠지.'
황성필은 서울 신림동에 있는 교회가 일본 전체의 개신교회보다 더 많다는 말을 언제가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일 지도 몰라!'
손목시계를 쳐다보던 황성필이 무심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니, 이건 아니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빈손을 꺼낸 그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냉수를 들이켰다. 담배를 끊으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장로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어렸을 적부터 다녔던 교회에서조차 신앙심이 없는 자유주의자로 매도되었다.
"아이쿠, 이거 제가 조금 늦었네요. 오전 부흥회가 길어지는 바람에··· 허허허···"
언제 나타났는지 한부협(한국교회부흥사협의회) 회장 장영식이 급히 자리에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 장목사님 오셨군요. 별일 없으십니까?"
"별일이 있어서 뵙자고 했지요. 황장로, 아니 황총장님! 이슬람과 한국 좌파가 손을 잡았습니다."
장영식이 다짜고짜 쏟아낸 말이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거 괜한 추측으로 종교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요?"
황성필은 장영식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장영식은 여기저기 일을 저지르고 다니며 온갖 망발을 거침없이 쏟아내 교회 안팎으로 핀잔을 듣고 있었다. 이번에도 개신교 극단주의자들이 기도 중에 보았다는 환상이나 엉뚱한 상상을 토대로 일을 저지르는 것이 거의 틀림없을 것이었다.
"아닙니다,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밝힐 수는 없습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테러가 일어날 것입니다!"
장영식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재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 선교사만 2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 좌파세력과 연계해서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이슬람세력은 정치계 뿐만 아니라 교육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전교조도 이미 이슬람에 물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황성필은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하마터면 '어디서 그런 엉터리 정보를 얻었느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오래 전부터 한국을 이슬람국가로 만들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어요. 이슬람 불법체류자들이 무한정 입국하고 있는 게 그 첫 번째 증거입니다."
"손님, 주문 하시···"
"아, 시끄럿! 지금 한창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장영식이 내지른 소리에 점원 아가씨가 깜짝 놀라며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아, 저! 차 한잔 하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시지요. 아가씨, 난 그냥 커피로."
"네, 무슨 커피···"
주눅이 잔뜩 든 점원이 기어들어가듯 말했다.
"아, 네, 카푸치노로 주세요."
황성필은 강영식의 무례에 대신 사과하고 싶어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주문을 했다.
"어, 나는 거 뭐드라, 카라멜 어쩌구 있잖아, 달달한 거!"
"카라멜 마끼아또요?"
"응, 그거!"
장영식이 무지르듯 말하고는 어서 가라는 손짓을 했다. 점원이 돌아서 가는 모습을 흘겨보던 장영식은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잠시 끌끌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큰 눈을 더욱 부릅뜨고 황성필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슬람종교회의 비밀지령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장영식은 품속에서 두 번 접힌 A4용지를 꺼내더니 황성필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1단계, 한 국가에 무슬림 인구가 1% 내외일 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그룹을 자처하며 수면 밑에 잠복합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중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잠시 말을 중단하고 입을 씰룩이던 장영식이 험험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제2단계는, 무슬림 인구가 2~3% 정도일 때인데요. 감옥에 수감된 재소자들을 집중적으로 세뇌시켜 무슬림으로의 개종을 시도합니다. 덴마크, 독일, 스페인, 태국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제3단계는, 무슬림 인구가 5%를 넘어설 때인데, 무슬림 인구의 비율을 더욱 높이기 위한 본격적인 전략이 시작됩니다. 프랑스, 필리핀, 스웨덴, 스위스, 네델란드,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제4단계는, 무슬림 인구가 20%가 넘는 것을 기점으로 폭동과 소요사태가 시작되고 지하드를 일으킬 테러단을 조직합니다. 단발적인 살해사건이 발생하며 기독교회에 대한 공격과 유대교회에 대한 방화와 파괴가 시작되지요. 에티오피아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기집애가 게으르기는, 주문을 받았으면 빨리 빨리 대령하지 않고,"
갑자기 뒤를 홱 돌아보던 장영식이 투명유리잔에 담긴 물을 벌컥 들이켰다. 황성필은 그저 웃음을 머금고 말없이 듣고 있었다.
"제5단계는, 무슬림 인구가 40%를 돌파할 때에 시작되는데, 광범위한 학살이 자행되고 본격적인 테러가 발생합니다. 조직화된 세력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보스니아, 차드, 레바논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제6단계는, 무슬림 인구가 60%를 넘어서면서 시작되는데, 정책적으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탄압합니다. 인종청소가 시도되며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근간으로 이슬람을 강요하고 이슬람을 끝내 거부하는 이교도와 무신론자들에게는 세금폭탄으로 압박을 가합니다. 알바니아, 말레이시아, 카타르, 수단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제7단계는,"
"아, 잠깐요. 목사님!"
황성필이 급히 장영식을 제지하려 했으나 장영식은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해치웠다.
"장로님, 이제 다 됐어요, 마저 들어보세요. 제7단계는, 무슬림 인구가 80%를 넘어서면서 나타나는데, 국가 주도로 대규모 인종청소와 대학살이 자행됩니다.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시리아, 타지키스탄, 터키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제8단계는, 무슬림인구가 100%가 될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무슬림 세상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이슬람 율법이 국가최고법인 헌법보다 우선하는 신정일치체제를 구현합니다. 아프가니스칸,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갑자기 입술을 꽉 다문 채 유리잔을 들어 남은 냉수를 모두 들이킨 장영식은 탕 소리가 나도록 잔을 내려놓고는 무슨 비밀문서를 챙기듯 A4용지를 다시 접어 양복 왼쪽 속주머니에 고이 집어넣었다.
"한국이 이슬람국가로 바뀌면,"
장영식은 문서가 잘 들어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제 가슴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게으르고 호전적인 무슬림의 첩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놈들은 아홉 살밖에 안된 친구의 어린 딸이나 손녀와 결혼하기도 하지요. 이슬람은 일부다처제가 아닙니까? 일단 결혼을 하면 남자는 부인에게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건 죄가 됩니다. 그래서 여덟 살이 된 여자아이가 마취도 없이 할례를 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성감대를 자르는 수술이지요. 그리고, 명예살인이라고 들어보셨지요?"
"목사님, 그런 건···"
황성필은 점점 도를 더해가는 장영식의 말을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강영식은 더 크고 빠른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다음 말을 쏘아댔다.
"장로님, 이 문제엔 진보와 보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를 사탄으로부터 지키는 일이예요. 그들은 포교를 위해 거짓말을 예사로 합니다. 그놈들은 나라 예산의 20%를 포교를 위해 사용하고, 이슬람에서 개종하면 사형을 시키기도 합니다. 대통령보다도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상위에 있단 말입니다. 이제 <기개평>도 <한부협> 일에 자꾸 딴지나 거는 일을 중단하고 같이 힘을 모아 사탄의 세력에 대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이슬람 한국지부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끼리 집안싸움이나 하고 있다간 한국 교회는 물론 이 나라가 온통 거덜날 판이란 말입니다!"
"목사님,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 없이 함부로 이런 말을 하는 게 더 무서운 겁니다."
"CIA,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보고서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그 자료를 저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장로님은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분이군요. 예수님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장영식이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한 말이었다. 황성필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목사님. 저는 확실한 자료를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증거를 대보세요. 뚜렷한 증거가 있다면 저도 목사님을 돕겠습니다."
"이슬람이 들어와 있다는 건 인정하시지요? 이태원 꼭대기에 그럴듯한 성전인지 뭔지를 지어놓고 있는 것도 잘 아시겠지요?"
"혹시 이슬람 한국지부란 게 그걸 말하는 겁니까? 이슬람성전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선 당연히 세워질 수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장로교라든지 감리교 같은 기독교 단체들이 있고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져있는 것처럼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도 합법적인 종교 단체란 말입니다. 그리구,"
황성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영식이 갑자기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아니, 기독교하고 이슬람교하고 같아요? 장로님 눈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와 사탄의 침투 세력이 분별이 안됩니까? 눈에 보이는 사실을 보고도 믿지 못하니 사탄의 밥이 될 수밖에. 이런, 쯧쯧쯧···"
황성필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없다기보다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맹목적 확신주의자 앞에서 상식과 논리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만 다시 한 번 씁쓸히 확인할 뿐이었다.
31
진상우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었다. 이슬람 선교사를 직접 만나게 해 달라는 황성필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칼리드 부부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황성필이 장영식으로부터 들었다는 얘기는 1~2년 전부터 급작스럽게 퍼진 출처불명의 유언비어였다. 이슬람 세력이 한국을 이슬람국가로 만들기 위해 중동의 막대한 석유자금을 동원해 총력지원을 하며, 대규모 인력을 한국에 파견하여 한국 여성들과 결혼시켜 무슬림 인구를 늘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미 2006년 한 해에만 한국 여성 2500여명이 무슬림과 결혼했다는 소문도 돌았고, 이슬람 은행과 대학 건립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이중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소문으로 확인된 것은 2006년에 무슬림과 결혼한 한국인이 2500명이 조금 넘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은 천 명을 넘지 않았고 나머지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슬람권 국가의 여성들이었다.
"이슬람세력이 이미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고, 2020년까지는 한국의 이슬람화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더군요."
황성필이 칼리드와 미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칼리드는 멍한 표정으로 반쯤 입을 벌리고 듣고만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미선 역시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황성필의 말을 듣고 있었다.
"황당한 소문이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에게서 직접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에게 소문의 허황됨을 알리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황성필이 말을 이었다.
"2005년 11월, 그러니까 이슬람 한국 전래 50주년 기념식에 모인 이슬람권 지도자들이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려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는 말이 도는데, 혹시 이슬람 지도자들이 한국을 대상으로 어떤 모임을 갖거나 선교전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지요?"
"제, 제가 알기로는, 한···국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칼리드는 평소와 달리 몹시 말을 더듬었다.
"아직··· 이슬람 사회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요··· 죄송하지만··· 이슬람 지도자들이 크게··· 관심을 갖는 나라가··· 아닙니다···"
칼리드는 미국 CIA의 비밀 보고서라는 것도, 이슬람의 침투 전략이란 것도 한국 내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뿐 이슬람 내에서는 그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선 역시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꾸란은 강요적인 선교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진정한 무슬림이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두 분께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황성필을 배웅하고 돌아온 진상우가 칼리드와 미선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목사님. 저희들이 겪은 여러 곤란한 일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말을 하다 말고 칼리드가 미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선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칼리드와 상우의 눈길이 동시에 자신을 향하자 놀란 미선이 눈을 깜박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칼리드가 미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웃으려고 애를 쓰는 칼리드의 모습을 보며 상우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렇게 체계적인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마침내 칼리드가 꺼낸 말이었다.
"네?"
상우가 고개를 들어 칼리드를 쳐다보며 물었다. 칼리드는 상우의 눈을 마주보지 못한 채 눈을 내리 깔고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지금까지 겪은 일은··· 범죄자와 마주친 듯 피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든가, 길을 지나가다가 아이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알카에다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사탄이라고 말하거나 한국말로 욕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슨 전략을 세워서 한국을 이슬람화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너무 무섭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 지 걱정이 되네요."
입술을 앙다문 채 칼리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이슬람중앙회에서 인정하는 선교사는 남편을 포함해서 십여명 정도예요, 목사님."
미선이 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내며 한 말이었다. 이만 명이 넘는 이슬람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해 있다는 소문에 대한 답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