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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9월 13일 제2차 강원도 작고 문인 재조명 세미나 자료
염근수 연구
남진원
1. 여는 글
1907년에 태어나서 거의 100수를 누린 염근수 시인, 그의 문학적 족적을 찾아나선다. 초창기 젊은 나이에 소년소녀잡지 ‘별나라’와, 아동문학지 ‘새벗’ 주간을 맡으며 문학의 꿈을 피우기시작한 그가 여든 두 살이 되어서야 구영주 후배 시인과 조우하여 첫 시집을 내게 되었다. 이러한 기이한 그의 문학적 여정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한 그가 평생 천여 편의 시고(詩稿) 중에서 300여 편 내외의 작품을 시집으로 묶어냈다. 그 모두가 동요 동시이며 7ㆍ5조의 정형율에 가까운 시들이다.
1989년 구영주 시인의 선고로 시집 『다래아가씨』를 발간하였고 1991년 아들 염용환이 아버님 특유의 체취가 담긴 작품이기에 가족들만의 것으로 하기엔 아쉬운 감이 있어서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고 하면서 『염근수 시집』을 펴내었다. 『염근수 시집』에는 머리글과 제1부 제2부로 나누었다. 제1부는 ‘서낭굿’이란 제목으로, 제2부는 ‘물새발자국’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실었는데 1부, 2부가 각각 시집 한권 씩의 작품 분량이다. 이 두 시집엔 같은 작품을 중복하여 싣기도 하였다.
따라서 연구의 중심 텍스트는 첫 시집『다래아가씨』와 두 번 째 시집 『염근수 시집』에 있는 작품 중에서 대표성이나 특징이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였다.
2. 염근수의 삶
1907년 황해도 백천(白川)에서 태어나 2003년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향년 97세.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열 서너 살에 가출을 한다.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와서 학비를 벌었다. 그리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양정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15세엔 민영환(한말의 정치가로 을사조약체결이 되자, 민족의 통한을 품고 자결하였다)의 집에서 막내 아들의 공부 친구로 선정되어 그 집에서 기숙하였다.
16세 때인 양정학교 2학년 때엔 동시 ‘피꽃’을 동아일보에 투고 하였는데 그 작품이 선정되어 발표되었다.
민영환의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학교에 다닐 형편도 안 되어 그만 두고 집을 나와 무전여행을 떠난다.
염근수는 여행 중에 소설가 이광수를 만난다. 그리고 이광수의 소개장으로 동아일보 학예부장을 하던 이광수의 아내 허정숙을 만났다.
어린이 잡지 <별나라>, <새벗>, <어린이> 등에 동요를 발표하였다. 이중에서 동요 ‘댕댕이’, ‘할머니 편지’는 홍난파의 <<조선동요 백곡집>>에 실렸다.
동화구연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어린이 종합지 <백두산>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일보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그 당시 조선일보의 문화부에는 소설가 염상섭과 심훈이 기자로 활동하였기에 문학에 대한 열의를 더욱 꽃피울 수 있었다.
23세 때인 1923년엔 음식을 입에 넣지 못하는 병에 걸려 고생을 하였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각지를 떠돌았는데 전라도 장성의 백양사에서 치료와 수양을 하며 불교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목포의 유달산 포교당 법천사에서 건강을 회복하였다.
25세인 1931년 강릉 여인 최돈자(崔燉子)와 결혼을 하여 3남 9녀를 두었다. 세 아들은 모두 한의사로 키웠고 아홉 딸은 모두 교사로 근무하였다.
염근수는 결혼 후 강릉에 기거하며 건강을 돌보면서 강릉농악의 우수성에 관심을 갖었다. 농악대 조직과 발전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였기에 모든 집회가 금지되고 강릉의 전통축제인 단오제마저 중단되던 때였는데도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최 허가를 받아 실시하였다. 또한 사라져가는 전통 노래인 정선아라리 채집에도 힘을 쏟았다.
동아일보 강릉지국의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염근수의 나이 32세 때인 1938년 1월 4일자 동아일보에는 <농민예술의 전당-강릉의 농악대>라는 제목으로 강릉농악대의 ‘용림패’ 상쇄와의 일문일답기를 싣고 있다. 그 기사의 서두를 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혀서 춤을 춘 일이 많이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신명이 났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음악보다 더 좋은 놀음놀이는 없다고 하였다. 그간 팔도강산을 두루 돌아다녀보았어도 강릉의 농악대 만큼 굉장한 곳이 없었다고 하며 놀라워하였다. 특히 단오 때에 농악경연대회를 여는 것을 매우 경이로워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전에는 약업회사의 전무를 맡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아들 셋을 모두 한의사로 키워내었다. 첫째 아들은 서울에서 한의사 개업을 하다가 미국 뉴욕에 가서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현재 강릉에서 성을 딴 ‘염한의원’으로 개업하여 성업중이다. 셋째 아들도 한의사였으나 작고하였다.
염근수는 해방 후에는 동방신문 주필로도 활동하며 시 창작도 꾸준히 하였으나 발표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말을 빌리면 ‘아홉자제와 자손들에게나 읽히고 싶어 틈틈이 백지책에 친필로 써 두었다고 하였다. 이 글을 국문학전공을 하고 의사가 된 아들이 읽고 나서, 기왕지사 맞춤법이라도 다듬어 인쇄하여 나눠보자고 하여 구영주 시인에게 전해진 것이다.
시집 [다래아가씨]의 발문에 쓴 구영주 시인의 글에서는 염근수의 작품성에 대한 면모가 일부 그려져 있다.
구영주 시인은 백지에 담겨진 600여 편의 시고를 읽고, 시 한편 한편에 깃들어 있는 인간의 체취와 자연에의 순수성으로 뭉뚱그려진 시심이라고 감탄하였다.
44세가 되던 1950년 5월 30일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다.
염근수가 어릴 때 동아일보에 발표한 <피꽃>이란 동시와 <별나라>, <새벗> 등 어린이 잡지에 발표한 것을 제외하고는 작품 발표 활동은 80이 될 때까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작품은 꾸준히 섰던 것 같다. 아마 81세 때 40대의 혈기왕성하고 적극적인 시인 구영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시집 발간은 훨씬 더 늦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을지도…
81세가 되던 1988년 염근수는 구영주 시인을 알게 된다. 구영주는 한창 나이인 40대, 왕성한 의욕으로 창작에 불타던 무렵이었다. 구영주 시인은 염옹의 시들을 읽고 놀란다. 그리고 1989년 82세가 되던 5월 148편을 골라 [다래아가씨]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었다.
1992년엔 새싹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새싹문학상은 윤석중이 새싹문학회를 만들어 그 자신이 직접 수여한 상이었다.
염근수는 아들 셋이 한의사로 있을 때에 집에서 약초를 썰면서 지낸 모양이다. 구영주 시인과의 대화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한 번은 세 아들의 약국에 보낼 약초를 얼마나 열심히 썰었던지 그만 보름을 몸살로 누웠어요. 앓고 났더니 그만 수염이 무성했어요. 마누라는 가막소에서 나온 이 같다고 야단이고 딸들은 무서워서인지 슬슬 비켜가고, 아들들은 암말이 없더군요. 친구를 만났더니 수상쩍은 사람 같다고 놀려대는 거예요.」
그의 모습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이다. 소금강 골짜기 구룡폭포 너럭바위에서 놀다 간다는 옛 신선의 환강처럼 명아주 지팡이, 하얀 머리, 배꼽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은 누가 봐도 신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즐겨 입는 한복차림으로 거리에라도 나가면 사람들이 보고 놀라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대기에 곤욕을 겪었다고도 하였다. 또 미국사람들을 만나면 엎드려 찍고 누워 찍고 야단을 떨었고 그것으로 큰 상을 받기도 했단다.
사람도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았던 분, 그가 염근수이다. 초목과 나무 열매를 약재로 썰며 살아온 그의 삶, 자연과 더불어, 흙을 사랑하고 나무와 사람의 정을 귀하게 여기며 성품대로 삶을 살았기에 아마 97세란 장수의 삶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평생 쓴 글이 자연을 벗하며 쓴 동요 동시라는 점도 그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았을까.
3.선행연구 살피기
선행연구로는 1997년 집문당에서 엮은 『한국현대아동문학 작가 작품론』에 수록된 염근수론의 연구논문이다. 사계 이재철 교수의 정년기념논총간행위원회에서 편찬한 책이다. 김현숙은 이 책에 ‘7.5조에 담긴 일원론적 동양정신’이란 논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실린 논문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김현숙은 염근수의 작품 세계를 혼융(渾融)된 세계로 보고 일원적 동양정신에 맥이 닿아있다고 하였다.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즉, 자연물과 인간이 상호 배제가 아닌 조화와 공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인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나오는 대로 부르고 느끼는 대로 부르는 무위적(無爲的)인 시작 태도의 결과이며, 그의 의식이 그가 인식하든 못하든 간에 일원론적 동양정신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형식면과 수사의 기법은 7ㆍ5조의 탄력적 운용, 의인법, 반복법, 문답법, 의성의태법 등을 활발하게 사용하였다. 순수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시어화 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전통의 사유와 정서를 상기시킬 뿐 아니라 이원론적 사유가 배태하고 있는 분별지가 사고의 중심이 되고 있는 서구철학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구문명을 뒤쫓으며 그 폐단의 고초를 겪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자연과의 일체를 노래하고 무위적 태도를 함축하고 있는 그의 시들은 폐해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과는 달리, 자칫 회고적인 그리고 옛 시로 간주되기 쉽다는 한계를 가질 수 있음도 말했다. 그렇기에 동시대의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찾아내기를 주문하기도 하였다.
4.작품 연구
(1) 상상력에 따른 동요, 동시의 유형
1989년 발간한 염근수 시집 [다래아가씨]와 1991년 발간한 [염근수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은 모두 동요이며 동시이다.
엄기원은 [아동문학 이론과 창작]에서 ‘동요는 정형시이기 때문에 시의 깊은 의미, 내용보다 그 운율이 두드러지게 형식화 된다.’ 라고 하였다. 즉 외형율이 중시되는 것이다. 염근수의 시집속의 작품들은 모두 7.5조 내지 8.5조의 정형율을 지니고 있다.
염근수의 동요를 모두 동시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외형적 율격의 안에서 동시의 시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의 시성(詩性)’이란 상상력에 의해 생산되는 여러 가지 미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윤삼현은 그의 저서 『아동문학 창작론』에서 동시의 상상력을 매우 세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상상력은 투명한 이미지를 얻거나 적합한 비유를 구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가 세분한 상상력은 의미를 중심으로 한 방법이다. 본 고에서는 염근수 동요 동시의 의미 파악에서는 윤삼현의 상상력 분류를 빌리기로 하였다.
이러한 상상력의 유형에는 ‘자아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 ‘우화적 상상력’, ‘부성 모성적 상상력’, ‘신화적 상상력’, ‘주술적 상상력’, ‘색채적 상상력’ 등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다 필자는 ‘가족 친구적 상상력’을 더 첨가 하였다.
‘자아적 상상력’은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거나 자신의 삶에 시선을 돌려 세상과 자아의 관계 맺기를 성찰해 보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사용한 상상력이다.
‘우주적 상상력’은 세계를 무한히 확장하여 범우주적으로 생각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계 발견의 경험을 우주적 공간에서 달성하는 초월적 상상력이다.
‘우화적 상상력’은 동물담이나 식물담을 통해 삶의 가치나 깨달음을 흥미있게 심어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알레고리적 상상력은 매우 유용하다.
‘부성 모성적 상상력’은 투박함, 든든함으로서의 부성상이나 포용적 감각과 지순한 사랑으로서의 모성상을 상상력의 기초로 하는 것이다.
‘신화적 상상력’은 비록 사실이 아니더라도 많은 신화, 설화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경험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주술적 상상력’은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빌거나 스스로 신비적 능력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자 하는 동심적 기원과 상상을 나타낸다.
‘색채적 상상력’은 단순한 색채 표현을 넘어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는데 상상의 날개를 달고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지배하기도 한다.
‘가족 친구적 상상력’은 시적 대상을 가족이나 친구처럼 상상하여 시적 정서를 일구어내는 것이다.
또한 형식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방법에는 일반적 수사의 기법 외에 지역의 심층적 정서를 유발시키는 표현법인 ‘토속적 표현법’을 첨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토속적 표현법’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고유의 정서를 유발시키게 하는 표현법이다.
염근수의 시에서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미적 요소를 곁들인 많은 동요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의 시성을 획득하였다고 생각되었다.
염근수의 시집을 중심으로 염근수의 동요 동시가 어떤 상상적 요소에 의해 구축되었는지를 파악하여 표현의 의미와 이미지, 의도를 파악해 보려고 한다.
(2) 작품의 분석
염근수 시의 의미 파악은 다양한 상상적 요소에 의해 생산된 의미를 살피고, 외형적 표현의 파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 수사기법과 토속적 표현법에 의한 방법을 따랐다.
<1>상상력을 통한 작품의 의미구조 살피기
먼저 그의 상상력에 의해 작품이 이루고 있는 의미의 구조를 살펴보자.
‘우화적 상상력’으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팔려가는 소>, <웃방문>, <이름 두 자 문패>, <잘 맞추네요> 등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팔려가는 소>는 자신의 동물사랑에 대한 심정 고백을 원망에서 호소로 변환하며 암유(暗喩)적으로 표현하였다.
낮에는 이웃집/밭갈아주고/해진뒤 우리 암소/팔려갔어요//구렛나루 아저씨가/들어오더니/코거리를 추켜잡고/끌고갔어요//외양간에 들어온지/얼마 안되어/저녁 꼴을 먹다 말고/팔려갔어요//세상에 이럴수가/어디있어요/가기싫어 우는 소를/끌고갔어요
- 팔려가는 소 -
작품 <웃방문>에서는 방안에 집을 지은 제비가 진종일 드나들기에 갯마을 주인이 문을 열고 추운날에도 닫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작가의 동물사랑에 대한 심정 고백을 통해 사람과 동물을 하나로 잇는 휴머니즘적 작가관을 엿볼 수 있다.
갯마을 어느 집에/찾아가 보니/여름내내 웃방문/열고살아요//갯바람 몹시 불어/추운날에도/문을 닫지 못하고/열고 살아요//제비가 웃방안에/집을 지어서/진종일 드나들어/열고살아요//어느누가 찾아와/추워떨어도/방문을 못닫고/열고살아요
- 웃방문 -
작품 <이름 두 자 문패>에서는 문패 위에 제비가 집을 지어서 성씨는 없어지고 이름 두 자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뜯어내지 않고 성씨를 잃고도 이름 두 자 문패로 그냥 살아간다고 하였다. 이 작품 또한 동물 사랑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보여진다.
작품 <잘 맞추네요>는 청개구리가 비 오는 걸 잘 맞추고 참매미는 해가 난다는 걸 잘 맞춘다는 내용이다.
뜻밖에 울타리서/청개고리가/개골개골 울더니/비가 옵니다//청개고리 어디가서/공부해왔나/관상대 쩜쩌먹게/잘맞추네요//뜻밖에 숲속에서/참매미들이/매음매음 울더니/해가납니다//참매미들 어디가서/공부해왔나/관상대 쩜쩌먹게/잘맞추네요
- 잘 맞추네요 -
청개구리와 참매미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의 가치를 흥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알레고리적 상상력의 유용성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가족 친구적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작품을 보자.
보름달이 어디로/갈까 하다가/산아래 토막집을/찾아갔대요//마당에서 토방에/올라서보니/크고 작은 신발들이/놓였드래요//오손도손 식구 넷/신발 네 켤레/아빠것 엄마것/동생것 내것//잠자는 숨소리가/너무 정다워/창문 어루 만지며/같이 잤대요
- 보름달-
보름달을 친구로 생각하여 산 아래 토막집 가족들이 잠자는 모습을 보고 너무 정다워 창문을 어루만지다가 같이 잤다는 서사적 이야기가 담겨진 동시라 할 수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정겨움의 정서는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이 감싸게 한다.
‘가족 친구적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또 다른 작품에 <제비>, <자라라>, <낙엽>, <갯마을 아이들>, <생일> 등이 있다.
그러나 <제비>의 구절 중에 ‘바지랑대/위에서/눈물 흘리네’ ‘처마 끝에/쓸쓸히/매달려있네’ 등의 직정적인 표현에서는 동시적 시성을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작품 <자라라>와 <낙엽>에게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갯마을 아이들은/귀가 밝아요/뚜우뚜우 뱃고동/소리가 나면/누구네 무슨 배가/들어온다고/용케 알고 놀다가도/쫓아나가요
- 갯마을 아이들 1연 -
<갯마을 아이들>은 반복법을 사용하여 동요의 특성도 살렸다. 뱃고동 소리가 날 때 마을 사람들의 배가 들어오면 아이들이 반가워 쫓아나간다는 내용이다.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느낌이 드는 시이다. 웃음과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생일>작품은 송아지와 같은 날 태어나서 형과 동생처럼 생각한다는 의인화의 방법을 썼다. 동물사랑이라는 주제를 담으면서 반복적 재미를 준다.
그래요 오늘은/내 생일인데/오늘 아침 우리 암소/새끼를 낳아//하루 한날 내생일/송아지생일/즐거운 내생일/송아지생일//우리 엄마 나더러/소띠라는데/나는 형 송아지는/내동생인가//송아지 형이래도/나는 좋아요/즐거운 내생일/송아지생일
-생일-
작품 <산마을 상여>는 주술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온동네 일손놓고/모두 모여도/열아문 될까말까/산마을 상여//그래도 상여소리/매겨부르며/북을 치며 나가네요/산마을 상여//마당귀만 돌아서면/저승길인데/인제가면 언제오나/산마을 상여//살아 생전 그토록/정든 모롱이/북을 치며 돌아가요/산마을 상여
- 산마을 상여 -
‘산마을 상여’라는 시어를 되풀이하여 신비적 색채까지 곁들이고 있다. 그러나 시적 흐름의 평이성 때문에 긴장감이 약하여 정서의 자극은 약한 편이다.
동시 <흰눈>에 오면 정형율의 가락이 노래처럼 들려옴을 알 수 있고 그런 운율로 인하여 음악성을 느낀다. 흰눈이, 봄이 오면 종달새 노래를 들으려고 이랑이랑 보리밭을 덮었다는 내용에서 생동감과 활력을 찾아볼 수 있다.
부드러운/흰눈이/내려옵니다//내려오다/봉우리에/앉었습니다//바우짬에/솔뿌리/적셔주려고//소복소복/봉우리에/앉었습니다//소리없이/흰눈이/내려옵니다//내려와서/보리밭을/덮었습니다//봄이오면/종달새/노래들으려//이랑이랑/보리밭을/덮었습니다
- 흰 눈 -
색채적 상상력을 들 수 있는 작품은 <문고리 꽃>이다.
어머니가 바르신l겨울창문에/햇님이 쨍하고/비쳐오면은/열고닫는 줄이 달린/문고리옆에/밝으레 연당화가/피어납니다//아무리 문풍지가/춥다 울어도/문고리꽃 연당화/바라보면은/불노랭이 고운 그 빛/봄바람되어/왼방안을 따뜻하게/녹여줍니다
- 문고리 꽃 -
겨울 창문 문고리 옆에 붙여놓은 연당화의 색채적 상상력은 겨울을 따뜻하게 하고도 남는다.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봄빛으로 따스하게 만들어준다. 정서의 환기가 돋보인다.
<2>외형적 표현방법에 의한 작품 살피기
이번에는 수사적 기법에 의해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시적 표현법을 살펴보자. 그의 작품은 다른 동요 동시처럼 활유적 방법과 의인법, 반복법, 의성 의태법, 토속적 표현법, 대구법 무기교의 기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물이 일원적 감응체로 서로 유기적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정적인 분위기와 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감동과 연결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활유의 표현법과 의성법을 잘 살려 감흥을 주는 작품으로 <배추흰나비>가 있다.
배추흰나비
배추꽃도
없는데
배추흰나비
팔랑팔랑
무엇하러
울 넘어가나
물보라
나팔꽃이
어서 오라고
띠따띠따
나팔 불어
울 넘어가네
배추흰나비와 나팔꽃의 관계 설정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였다. 구체적 이미지가 명확하게 짜여져 있고 그런 영상미가 자연의 친근미를 더해주고 있다. 의성어의 사용도 효과적이라 하겠다.
작품 <가을바람>은 반복법, 의성 의태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풍경의 정취를 더했다.
가을바람/가을바람/누가알리나//갈대숲이/가을가을/알려줍니다//가을바람/바삭바삭/누가 알리나//가랑잎이/바삭바삭/알려줍니다
- 가을바람 -
이 작품에서 의성의태법과 반복법을 사용하여 재미를 주고 있다. 바람과 갈대, 가랑잎 등의 시어를 통해 가을을 알려준다고 하였다.
작품 <구름나그네>는 의인법을 사용하였다. 구름을 사람처럼 나그네로 비유하여 여행의 모습을 그렸다. 또한 기승전결의 형식을 취하여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여 말끔한 마무리를 하였다.
어디로 갈거나/구름나그네/산넘어 산속에/집이 있구나//가보니 조그만/오두막인데/기침을 하여도/소식이 없네//커다란 바위가/집옆에 있고/그밑에 옹달샘/물이 맑구나//손으로 옹달샘/한 모금 먹고/그대로 가노라/구름나그네
- 구름나그네 -
다음은 토속적인 표현법을 살린 작품들이다.
작품 <멍석밥>은 멍석, 된장찌개, 열무김치, 고봉밥 등의 시어를 끌어들여 토속적인 정서를 뽑아올리고 있다. 토속적인 시를 읽으면 정서의 환기 작용과 함께 역사성을 느낄 수도 있고 정서적으로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딴솥걸어 솔가지로/밥지어놓고/안마당에 멍석 깔고/먹는 멍석밥//구수한 된장찌개/열무김치에/애호박 초간장에/먹는 멍석밥//저마다 고봉밥/게눈감추듯/갓길어온 냉수로/먹는 멍석밥//보송보송 촉촉한/안마당에서/온식구가 둘러앉아/먹는 멍석밥
- 멍석밥 -
작품 <강릉 안개>도 의인법과 토속어를 사용하여 시의 흥취를 돋우어준다.
안개거니 하여도/강릉안개는/여느데 안개와는/다른 안개요/산안개 바다안개/고운 물안개/세 안개 어우러져/이는 안개요//처녀같은 경포대/물안개보고/대관령 산안개/바다안개가/달려들어 장가를/서로들려고/며칠이고 버티는/그런안개요
-강릉 안개 -
강릉의 안개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산안개와 바다 안개가 물안개에게 장가를 들려고 한다는 재미있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도 ‘여느데(여느 곳)’와 ‘대궐령(대관령)’ 등 지역 언어를 사용하여 향토성을 불러일으킨다.
휴머니즘을 그려내고 토속어를 살려 순박하고 진솔한 냄새를 풍기는 작품으로는 <밤 따는 구경>, <우리 누렁이> 등이 있다.
밤 따는 구경은/못하겠어요/밤나무가 가엾어/못보겠어요//높은 가지 올라가/후려 때리고/얕은 가진 땅에서/치켜 때려요//따는 것이 아니라/때리는 거죠/가지째 이파리째/밤송아리째//죽살을 치도록/두드려맞아/후줄그레 가엾어/못보겠어요
- 밤 따는 구경 -
‘죽살을 치도록’은 ‘죽을 정도로’의 지역어이다. 밤송이를 ‘밤송아리’라고 한 것도 토속어이다. 지역어를 살려 토속적인 맛을 내고 꾸밈없는 표현을 하여 한층 정감을 준다. 식물에 대한 동심 적 사랑이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번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그린 작품을 보자.
따라오지 말라고/돌아서면은/섰다가 따라오는/우리 누렁이//돌을 들어 때리는/시늉을 하면/이건 정말 가는 척/우리 누렁이//갔거니 마음놓고/가다보면은/어느새 앞서가는/우리 누렁이//해저물어 집으로/돌아올 때면/어깨동무 내동무/우리누렁이
- 우리 누렁이 -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누렁이’라는 개의 이름은 친근성을 주는 토속어이다. 위의 작품처럼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동요나 동시로 그려내기는 어렵다. 이 작품은 무기교의 기교로 그려낸 가작(佳作)이다. 재미 면에서도 공감을 느끼고 동물사랑에 호감이 간다.
토속적인 맛을 풍기는 작품들을 더 읽어 보자.
머지않아/바슴이 때/돌아오나봐//집집마다/흙으로/마당돋구네//머지않아/추운겨울/다가오나봐//집집마다/섶으로/울타리치네
- 겨울맞이 -
‘바슴이’란 말은 가을걷이라는 뜻의 지역언어이다. 지역언어를 넣어 시를 쓰니 토속적인 구수한 느낌이 난다. 지역 특유의 모습을 묘사하여 지역색을 살리기도 하였다. 또한 시골 분위기에 딱 알맞은 시어이기에 정감이 물씬 묻어나는 것이다.
작품 <서낭굿>도 토속적인 맛을 풍긴다. 제목부터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언어이고 ‘일구여덟척’ 같은 투박한 지역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친근감이 있다.
나무널쪽 고깃배/일구여덟척/움막집 스물몇집/작은갯마을//징 장구 제금 북/쾡정덩더꿍/갯마을이 떠나도록/서낭굿치네//바다만 바라보고/사는 갯마을/믿을 건 서낭당/오직 하나뿐//올금년도 많이 잡고/무사하도록/갯마을이 떠나갈 듯/서낭굿치네
- 서낭굿 -
이처럼, 지역 특유의 모습을 묘사하여 지역색을 살리고 시골 분위기에 딱 알맞은 시어를 사용하여 정감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은 염근수 시의 특징이다.
령마을 겨울소
령마루 산마을은
어찌추운지
소에게도 겨울엔
옷을 입혀요
알맞게 크게작게
멍석을 짜서
등에 덮허 배가려
매어주지요
옷입은 겨울소는
더운 콧김을
구름처럼 푸욱푹
내어뿜어요
그래도 겨울소는
새김턱아래
고드름 수염을
달고 있어요.
이 작품은 의인법과 직유법을 사용하였다. 1960년대 소를 키울 때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묘사가 적절하여 실감이 나고 역사적 사실을 다루었기에 사적(史的) 의미도 담고 있다. 마지막 연 겨울 소는 턱 아래 고드름 수염을 달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의인법의 시를 하나 더 보자. 꽃과 나비와 벌의 관계를 절묘하게 구성하여 반복법과 의인법을 사용하여 작품의 미적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있다.
노래와 춤
꽃들이 아무리
곱고 고와도
고운 노래 노래는
부르지 못해
꿀벌들이 찾아와
노래부르곤
달디단 꿀들을
얻어간대요
꽃들이 아무리
곱고 고와도
훨 훨 멋지게
춤은 못 추어
나비들이 날아와
춤추어주곤
달디단 꿀대접을
받고간대요
신선한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찾을 수 없어도 리얼리티가 있고 환상적인 즐거움도 그려져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작품은 대구법의 작품이다. 보리밭과 삼밭을 비교 하면서 삼밭 속에 사는 깔깔새의 소리를 실감나게 하였다. 깔깔새 역시 고유한 학명이라기보다 새소리의 모습에서 따내어 지역에서 부르는 새의 이름이다. 삼밭에 집을 짓고 사는 새는 그 소리가 ‘깔깔깔깔’ 하고 들린다.
삼밭은 삼척군 하장면 갈전리와 정선군 임계면 덕암리 문래리의 삼밭이 유명하다. 시골의 체취가 물씬 풍기면서 신선함을 드러내었다.
보리밭엔 종달새가/살고 있듯이/삼밭에는 깔깔새가/살고 있어요//삼베 짜는 삼대키는/한길 더 넘어/밭옆으로 누가 와도/알 수 없어요//귀청이 떨어져라/우는 깔깔새/저더러 누가 오나/보라 했는지//하여간에 무엇이고/얼찐만 하면/깔깔깔 온 동네를/뒤집어놔요
- 깔깔새 -
5.염근수 동요 동시의 특징
이상의 작품에서 살펴 본 염근수 동요 동시의 특징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의미면에서 본 특징]
작품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자연물과 동물을 하나로 잇는 휴머니즘적 문학관을 갖었다.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전통적 정서의 환기를 불러 일으켰다.
감각적 아름다움보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적인 작품이 많았다.
[외형적 표현방법 면에서 본 특징]
7ㆍ5조의 정형율을 유지하였다.
반복법의 사용으로 음악성을 담았다.
지방색을 살린 특유의 언어를 사용하여 향토적 색채를 짙게 풍겼다.
다양한 수사적 기법을 활용하여 사람과 사물의 근본이 하나라는 동양적 사고관을 작품 속에 담았다.
작품 속에 표현된 시각적 이미지에서 자연의 친근미를 드러내었다.
6.결론
염근수 동요 동시는 1920년대 동요 동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시적 표현의 방법이 직정적이고 서정적이며 자연 친근성을 토대로 하던 흐름에 이어져 있다.
시적 흐름의 평이성으로 인해 정서의 자극이 약한 편이다.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기 보다는 서술적 이미지를 많이 사용함으로 해서 독자와의 공감대가 약한 점 등도 한계점으로 볼 수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요 동시는 몇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뚜렷하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취향대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이루어놓은 점이다.
지역 특유의 모습을 묘사하여 지역색을 살리고 시골 분위기에 딱 알맞은 시어를 사용하여 정감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은 염근수 시의 색깔이다.
무엇보다도 작품에서 풍기는 휴머니즘적 인간애는 염근수 문학의 가장 값진 문학의 핵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전편에 흐르는 순박성, 진솔성, 친근성 등은 기교에 치우치고 손끝으로만 시를 쓰는 후배 문인들에게 다시없는 귀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진화, 『강릉농악』, 강릉농악보존회, 2012
엄기원, 『아동문학 이론과 창작』, 아동문학세상, 2012
염근수, 『다래아가씨』, 오상, 1989
______, 『염근수 시집』, 누리기획, 1991
윤삼현, 『아동문학 창작론』, 시와 사람, 2005
김현숙, 「염근수론」, ‘7ㆍ5조에 담긴 일원론적 동양정신’ (이재철,『한국현대아동문학 작가 작품론』)집문당,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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