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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 대화 142호 (2018년 09+10월호)
일시 및 장소 : 2018년 8월 13일(월) 오전 10시 30분. 공동선 사무실.
박영호 / 다석학회 고문, ‘성천문화재단’ 다석사상 연구위원
이기동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동양철학자, 유학자
류상태(사회) /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종교작가
류상태: 오늘 대화의 주제는 ‘사람이 하늘이다人乃天’ 입니다. 동, 서양의 대다수 종교가 사람이 하늘이라고 하지만 현실을 보면 과연 사람이 하늘인가, 하늘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문제에 대해 다석 유영모 선생의 애제자인 박영호 선생과 동양철학과 유학에 정통하신 이기동 선생 두 분을 모시고 대화를 나눠 보겠습니다. 우선 두 분,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박영호: 평생을 다석 유영모 선생의 사상을 연구, 실천하다가 늙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여든 다섯입니다. 처음에는 함석헌 선생을 따라 배우다가 그 분의 스승격인 다석 유영호 선생을 뵙고 요즘 말로 꽂혀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기동: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지만 적응을 못해서 폐인처럼 살다가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 입학하면서 건강하게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습니다.
류상태: 이기동 선생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유학 교수로 재직하셨고 유학대학원에서 대학원장으로 정년퇴임 하시고 이후 유학자지만 유학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한국적 해석을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영호 선생은 많은 분들이 다석 유영모 선생의 유일한 제자라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사실 다석 선생의 제자로 함석헌 선생, 김흥호 교수, 류달영 교수 등도 있는데 박영호 선생을 왜 유일한 제자라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영호: 다석 선생 팔순 때 선생께서 말씀을 마치고 평생 가지고 다니던 1910년판 신약성서를 제게 주셨습니다. 제가 “저는 이걸 감당치 못하겠습니다.”고 하니 선생께서 “주고받을 때가 좋은 거야, 죽어버리고 나면 주고받는 것도 못한다. 살아있으니까 주고받는 것이니 받아두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다석 선생이 집으로 봉함엽서에 ‘마침보람’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서 보내주셨는데 제목은 졸업을 순 우리말로 바꾸어 쓰신 겁니다. 그리고 다석일지에도 박영호가 며칟날 ‘마침보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다른 분들이 보시고 박영호가 유영모 선생한테 졸업장을 받아서 인정을 받았다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화일보에서 다석 사상에 대해 제가 쓴 책에서 발췌해서 소개하고 싶다고 하면서 제 소개를 부탁하기에 “6·25때 집이 불에 다 타버려 공부하고 싶어도 대학공부는 못했고 졸업장 받아 놓은 것은 다석 선생한테 졸업장 하나 받아놓은 것 밖에 없다.” 라고 했더니 이 말을 그대로 신문에 실어버렸습니다.
류상태: 지난달에 이기동 선생께서 한겨레신문과 한 인터뷰를 보면 유학자임에도 공맹에 메이지 않고 한국, 한국인의 남다름에 주목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 한국인의 남다름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기동: 사람이 하늘이라는 것이 전제입니다. 제 고향이 청도인데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고 주민등록상으로도 서울사람입니다. 그러나 청도사람이라고 저를 소개는 하는데 물론 청도주민이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지는 못합니다. 청도 출신으로 자신이 청도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사람과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원래 하늘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사람과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두 마리 돼지가 있는데 한 마리는 자기가 돼지인 줄 알아 돼지야~ 부르면 꿀하고 답하고 노래하라면 꿀꿀꿀 합니다. 그런데 또 한 마리 돼지는 자기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까 모습이 돼지 형상인 겁니다. 그 돼지가 마술에 걸려 있을 수도 있지만 돼지야~ 라고 부르면 성질을 냅니다. 돼지라고 하니까 성질을 내는 거고 노래해봐 하면 또 성질을 냅니다. 후자 돼지가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은 하늘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데 하늘처럼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한풀이 문화가 있는데 그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류상태: 한국인은 처음부터 하늘의식, 우리는 하늘의 사람이라고 하는, 또는 하늘이라고 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기동: 알든 모르든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화 속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류상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이기동: 우선 유전자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씨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이었습니다. 하늘에 바치는 제사는 천자만 지내게 되어 있어 제사를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면 중국에서 견제를 합니다. 그러면 그 해는 제사를 안 지내고, 다음 해에 지냈습니다. 중국의 여러 방식을 많이 따랐지만 끝까지 따라하지 않은 것이 하늘제사와 혼인제도입니다. 혼인제도 자체가 한국만 여자중심입니다. 그걸 바꾸지 않았습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도 화가 나면 “이 천벌 받을 놈아~” 라고 욕을 하는데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욕입니다. 우리 의식 속에 하늘의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겁니다. 또 나쁜 일을 하면 ‘내가 하늘에 벌 받겠다.’는 말을 하는데 이런 것을 보면 마음에 하늘의식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류상태: 인내천 사상이 원래 유학에 있다고 하셨는데, 천인무간天人無間이 하늘과 사람에는 간격이 없다는 뜻인가요? 하늘의식 또는 하늘의 후예라고 하는 자부심과 하늘을 공경한다는 것과 “사람이 하늘이다.”라고 하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기동: 간단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내가 하늘이다.” 라고 했을 때 그 ‘나’라는 것이 사실은 없다는 차원에서 하늘인데 A라는 얼음 덩어리가 여기에 있지만 얼음의 본질은 물이고 그러면 A라는 얼음덩어리라는 전제가 있고, 물이라고 하는 전제가 있을 수 있는데 A라는 얼음덩어리라고 하는 그 전제에서 벗어날 때 하늘인 것입니다. 전체 물하고 하나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하늘이다.” 라고 할 때 그 ‘나’가 구별되는 이 ‘나’라고 하면 이게 오해가 됩니다. 본질적으로 ‘나’는 나라는 것이 성립되기 이전의 나니까 그것이 하늘입니다.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이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의 의미는, 도둑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도둑입니다. 하늘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하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마음이 한마음입니다. 하늘마음으로 태어난 사람이 하늘마음을 잃어버리고 욕심에 빠져 사는 사람은 하늘이 아닙니다. 유학에서는 소인이라 합니다. 하늘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군자라고 하는 것에 반대입니다. 한국적인 개념에서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하늘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류상태: 그게 공맹의 유학에도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 유학이 우리 한민족 속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보시는 건지요?
이기동: 지금은 제가 생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공맹 사상의 뿌리를 알고 보니까 거의 우리사상에서 출발을 한 겁니다. 공맹 사상의 발원지가 고대 단군시대이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습니다.
류상태: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기동: 현재는 인정을 하지 않겠지만 하게 될 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류상태: 기독교 교리에서는 하나님이 예수의 피로 죄악에서 사람을 구원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사상을 기독교 전통에서도 읽어낼 수 있을까요?
박영호: 사람의 유전자DNA가 원숭이와 0.2% 정도 다르다고 합니다. 맹자가 “人之所以異於禽獸者인지소이이어금수자-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거의 없다. 幾希 庶民 去之 君子 存之 기희 서민 거지 군자 존지-보통 사람은 그 얼마 되지 않는 인의의 마음을 내버리지만, 군자는 이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사람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합니다. 성선설性善說을 말하는 맹자의 앞의 말은 사람은 짐승과 다른 점이 별로 없어, 군자쯤 되어야 다른 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말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단한 교만입니다.
어느 날 다석 선생이 “어머니, 아버지가 낳은 나는 ‘참 나’가 아니야, 짐승의 나야.” 라는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그럼 ‘나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지나서야 영적인 나Soul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것은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일컫는 겁니다. 데이비드 쏘로우는 하나님을 우주정신The split of universe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성령입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때 이건 우주정신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품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참 나’를 아는 것입니다.
류상태: 힌두교가 말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범Brahman과 인간의 궁극적 실재인 아Atman가 깨우침을 통해서 온전히 만나 합일한다고 합니다. 또한 대승불교의 여래장如來藏 사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래의 씨앗이 있어서 그게 발아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전통에 인내천적인 사상이 충분히 녹아있는지 아니면 다름이 있습니까?
이기동: 모든 종교에는 하나가 되는 영성이 있다고 전제를 할 수는 있지만 요새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 사이비가 많기 때문에 그 구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영호: 지금 조직화, 제도화된 것은 거의 사이비로 봐야 됩니다. 예수와 기독교를 분리시켜야 하고 불교와 부처를 분리시켜 따로 해야지, 연계를 시키면 안 됩니다. 오강남 교수가 자신 책 제목을 ‘예수 없는 교회’라고 지었는데 그랬다가는 교회들이 들고 일어난다고 출판사에서 ‘예수는 없다’라고 고쳐서 출판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류상태: 오늘날 한국에서 예수를 신으로 믿는 교회 즉 예수의 신앙이 아니라 예수를 신격화해서 믿는 교회는 사이빕니까?
박영호: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님이고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하나님입니다. 선생님은 방귀도 안 뀌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선생이 아니다, 하나님한테 배우라.”고 하시는데 물론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성장과정이니까 나쁘다 옳다가 아니고, 그것은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류상태: 오늘날의 기독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입니다. 개신교가 다른 교회를 사이비 종교로 많이 규정합니다. 우리 교회는 정통 교회고 다른 교회는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는데, 제가 볼 때는 정통 개신교야 말로 사이비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고 모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정신을 가르치셨는데 요즈음은 예수 팔아 장사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불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부처님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현실을 보면 사이비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주류인 큰 종교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영호: 사실입니다. 제가 동작구 상계동에 있는 엄두성이라는 분이 담임 목사인 교회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자주 가곤 했는데 그 분이 우리나라 교회가 예수님의 뜻을 따르려는 교회인지, 맘몬이 끌고 가는 교회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교회가 제 본분과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류상태: 박영호 선생님이나 저나 기독교에 속해 있으니 이렇게라도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이기동 선생께서는 교회나 종교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시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이기동: 맞습니다. 제가 그 안에 있다면 그나마 비판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데 밖에서 있는 입장에서는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류상태: 우리 기독교인이 스스로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가 교리, 조직, 시스템을 이용해서 그 안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 종교의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 세상에 해만 끼치게 됩니다. 종교는 자성을 해야 합니다.
박영호: 다석 유영모 선생께서 35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강의료든 수고비든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이야기를 하고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20년 넘게 성천아카데미라는 곳에서 다석 선생님에 대한 강의를 했지만 강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20년 전에 처음에 강의를 할 때 60만 원 정도를 주던데 수강하시는 분들한테 아카데미에서 수강료를 얼마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강사료를 받지 않을 테니 수강하시는 분들에게 수강료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은 편했는데 성천아카데미 사무실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리고 그 강의가 결국은 제 모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류상태: 그래서 다석 선생이나 박영호 선생 같은 분들이 어렵게 사실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영호: 아닙니다. 어렵게 살아야 합니다. 겨우겨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류상태: 죄송하지만 제 경험을 통해서 보니 그 말씀에 흔쾌히 동의해지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교목으로 있을 때 당시 돈으로 400만원 정도 받았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오고 보니 여기저기서 제 입장은 이해하고 위로해 주었지만 불러주는 곳은 없고 그래서 사회에서 거친 일이라고 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초짜라서 그런지 열심히 노력해도 수입이 5분의 1 정도로 줄었습니다. 대리기사도 하고 택시기사도 하는 등 노력을 해도 4분의 1 정도 벌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살아야 한다, 겨우겨우 살아야 잘 사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저 같은 범인이 좆을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것은 성인들의 이야기라고 말입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질 테니까요.
박영호: 인내천人乃天에서 내자가 곧 내자인데 이것을 안 내內자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라고 하지 말고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 라는 의미로 안 내內자를 쓰자는 것입니다.
류상태: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 좋은 말입니다. 안에 있으니까 너 자신이 하늘인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하느님을 잘 발견하고 그 마음을 잘 키우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내천이라는 귀한 가르침과 현실종교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종교가 인내천이라는 가르침을 말만 하고 사람들에게 늘 욕만 먹는 흉한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닙니다. 역사 속에는 현실교회가 해온 인내천적인 삶이라든가 행동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도 성 프란치스코라든가 그런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박영호: 맹자가 “아이가 우물로 기어가 빠지려는 것을 보면 다 구하려 한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듯이 인간 본성에 존재하고 있는 선함을 키워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경쟁만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 큰 체육행사가 열렸지만 전 그런 경기장이나 운동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것이 싫습니다. 운동을 하면 운동으로 끝나야지, 굳이 1등, 2등, 3등이라는 등수를 매겨 메달을 주어서 서로 싸움 하듯 왜 경쟁을 붙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운동이 인간의 성질을 순화시키는 방편은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농부들이 일을 많이 자주하면서 다른 사람과 싸울 힘을 거기다 쏟으니 싸울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활동적이고 성향이 센 사람이 운동이라도 자주 하지 않으면 싸움을 할 수 있지만 운동에 온 몸을 소진 하니 싸움을 덜하게 하는 역할을 운동이 하기도 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한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등수를 매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운동경기를 구경하면서 쾌감을 찾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운동경기를 도박으로 이용합니다. 하물며 귀뚜라미, 개 소 등에 싸움을 붙여서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쾌감에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은 훈련을 시켜서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인도 조그만 마을에서 땅을 파니까 500kg이 되는 금이 나옵니다. 금 때문에 싸움이 나고 총을 쏘니 경찰이 왔지만 심지어 경찰도 금을 가지고 도망을 갑니다. 예전에는 정답게 지내던 곳이 금으로 인해 서로 불신하고 서로 비난하고 서로 의심하고 인성이 파괴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조금 살게 되었습니다. 세계무역거래가 10위권에 들었네 어쩌네 하지만 자살자 수가 유럽의 배가 되고 OECD 국가 중에 1등이 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단군이래로 경제가 제일 풍요로운 시기인데 그렇습니다. 길거리에 넘쳐 나는 게 자동차입니다. 제가 사는 시골에서도 농부들이 물꼬 보러 가면서 자동차를 타고 갑니다. 이렇게 잘 사는데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34명이라고 합니다. 저처럼 늙은 사람도 7명이 자살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성人性이 다 죽어버려서 그럽니다.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하지 않은지 오래고 종교인조차 영성교육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영모 선생께서 종교는 다 뜯어 먹기 때문에 유교가 종교로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한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류상태: 유교가 종교가 안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요? 유교를 윤리체계라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종교의 일종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견해가 다양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기동: 종교라는 개념은 서구적인 사고입니다. 서양에서는 의학을 안과, 내과, 외과, 피부과 등으로 전문분야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구분이 없습니다. 이런 것처럼 종교, 철학의 구분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분되어 버리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경제가 탈이 나면 경제전문가가 나와서 해결책을 이야기 합니다. 정치가 문제가 생기면 정치가가 나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유학을 철학과 종교로 나누면 종교에 갇혀서 공자가 나올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전반적인 지혜를 설파했던 분들인데 종교인으로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은 종교라고 정해버리면 자체가 다 벗어나 버립니다.
류상태: 나누다 보니까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차단이 되고 그런 점에서 유교는 종교도 되고 철학도 되고 윤리체계도 되고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기동: 제가 경제인 모임에도 정치인 모임에도 강의하면서 “유교가 나누어지지 않아서 이제는 덕을 보고 있다.” 라는 우스갯말을 가끔 합니다.
류상태: 칼같이 나누는 서양전통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동양적인 개념으로 종교라는 한자를 풀면 으뜸가르침인데 서양에서는 종교하면 신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절대자가 빠지면 종교가 아닌 것처럼 취급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동양의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좀 건방져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 동양의 깊고 넓은 것을 잘 모르고 좁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기동: 우리가 잘 아는 세종대왕께서 종의 신분인 사람이 엄청 다쳐서 업혀 가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주인한테 얻어맞아서 그렇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저렇게 두드려 팰 수가 있느냐?” 라고 합니다. 천민은 한자로 賤民, 天民 이 두 가지 뜻이 있지만 종의 주인은 종을 賤民으로 대했고 세종대왕은 종을 天民으로 대했습니다. 하늘 백성으로 말입니다. “하늘 백성을 어찌 저렇게 구타를 할 수 있느냐면서 주인인 그 대감을 처벌하라.”라고 하지만 당시 법이 주인이 종을 때렸다고 해서 처벌할 법이 없었습니다. 처벌을 하려면 법을 만들어서 처벌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아이들이 집에 놀러오면 극진히 대접하고, 돌아갈 때 대문까지 배웅을 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제자들이 의아해 합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아이들로 보였지만 퇴계 선생 눈에는 아이들이 하늘같은 존재로 보인 것입니다. 퇴계 선생에게는 그런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늘이 말을 하고, 사람의 손을 통해서 하늘이 일을 합니다. 석굴암의 본존불상 등을 보면 인간의 손에서 나오기는 불가능하고 신이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성인의 바른 삶의 사례나 예술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봐도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류상태: 이기동 선생께서 저의 좁은 틀을 딱 무시해 버리고 소소하지만 넓은 인내천의 실천사례, 사회전체에서 흘러나오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넓은 인내천의 생각을 갖고 실천하신 선인들의 사례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박영호: 공자는 “天生德於予천생덕어여-하늘이 내게 덕을 부여하셨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공자도 큰 덕을 하늘이 부여했다라고 믿고 실천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천명知天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자아ego를 죽여 사람으로 사는 게 예인 것이고, 사람을 해치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살신성인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에고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不尤人 不怨天불우인 불원천-사람 탓도 안하고 하늘도 원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셨는데 이 말은 아래 것의 세상일을 배우면 위에 것까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知我子其天乎지아자기천호-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느님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의 유교는 성리학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없어졌습니다. 공자, 맹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체인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예수, 석가가 1,000이라면 공자와 맹자는 900은 되는 분들입니다. 백이 빠지는 이유는 벼슬하려고 이 분들이 14년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인무원려人無遠廬면 필유근우必有近優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 근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14년 동안 취직하러 다녀도 취직도 못했는데 무슨 원려遠廬를 한 게 있나 하고 오해를 많이 했는데 원려가 뭐냐면 죽음을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요사이 그것을 알았는데 멀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죽으면 먼 길 갔다고 하는데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몸뚱이 걱정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폭포를 타고 내려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시간은 계속 갑니다.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중간에 빨리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늦게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늘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가 근사지심近死之心이라 했는데 늘 죽음을 가깝게 하는 마음은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죽음을 잊어버리면 자꾸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것인데 몸뚱이 살 걱정만 자꾸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영혼을 데리고 가버리면 이 재물은 누가 다 가져갈 것인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오늘 저녁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일일일생一日一生 주의를 추구하여야 한다고 다석 선생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날 때 태어나는 것이고 저녁에 잠들 때 죽는 것이니 그렇게 살라는 것으로 그러니 뭘 자꾸 끌어 모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류상태: 인내천의 이상을 종교조직체들이 실현할 수 있을 방법론을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박영호: 예수나 부처처럼 에고를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는 자꾸 복만 받으려는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복을 팔아먹고 있습니다. 제가 다석 사상 강의를 20년 동안 했지만 숫자가 늘지 않습니다. 복을 팔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의사 직업을 가진 분이 재가 하는 다석 사상 강의를 1년 동안 다니면서 “다석 사상을 공부하면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데 황당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복이 있다면 복이 있겠지만 다석 선생이나 예수나 석가는 영원한 생명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낳았다는 것은 버리고 다르마dharma(부처가 가르친 진리를 말한다)의 나, 프뉴마(호흡, 바람, 생기)의 나를 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의 구원은 거기에 있는 것이지, 복 받아서 여기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에고를 버리고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 프뉴마로 소올soul로 가야 되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다르마로 가야 합니다.
류상태: 프뉴마는 헬라어로 영입니다. 기독교성서에서 나오는 용어이고 다르마 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쓰는 용어인데 일반적으로 법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영이라고 번역을 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영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영호: 맞습니다. 불교에서 마음이 스승이 될 지언즉,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나 석가는 에고에 탐진치貪瞋癡가 일어나는 것을 무찌르신 분들로 예수나 부처는 몸뚱이는 있지만 짐승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스스로를 위해서 탐욕을 부리거나 가정을 만들려고 하거나 벼슬자리를 만들려고 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기동: 기독교에서는 예수로 돌아가자고 하고 불교에서는 부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유교도 마찬가지인데 공자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나지고 그 만나진 가르침을 우리나라의 인내천 사상, 하늘의 차원에서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 하나가 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전통 속에서는 그것을 동굴이라는 말로 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지 않으면 짐승인데 그럼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쑥과 마늘을 가지고 이 동굴에 들어가서 햇빛을 안 보고 하늘의 본성을 회복해서 나오는 기간을 21일로 선정을 합니다. 그래서 이 21일 간의 가르침이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21일 간의 가르침을 어떤 내용, 어떤 프로그램으로 짜야 하냐면 하나 되는 예수의 가르침, 부처의 가르침, 공자의 가르침으로 내용을 짜고 구체적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명상 프로그램 등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람은 이 21일 간의 과정을 나라에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류상태: 교리 교육이라든가 이런 거 보다 마음을 깨우치기 위한 영성 교육 이런 것들이 각 종교마다 제대로 실현이 되어서 사람들이 제대로 깨우쳐야 되겠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박영호: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쑥이니 마늘이니 하는 게 얼의 소리가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마이산 밑 진안에서 살고 있는데 책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먹고 살만한데 욕심은 끝이 없고 도지사니 대학교수니 할 것 없이 미투를 통해 보니 이게 짐승들만 사는 짐승의 나라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대학교수들이나 학자 어느 누구도 이 사람들을 위한 영성교육, 인성교육에 대한 텍스트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죽기 전에 영성교육,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책을 지금 진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뭔가 가르치려고 해도 뭐가 없으니 답답해서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잘 써질지는 하느님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류상태: 정말 훌륭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보충하시고 싶은 이야기나 못 다한 이야기가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이기동: 한 그루 나무의 지혜를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폭풍이 오고 바람이 불고 흔들리면 뿌리를 깊이 내리는 지혜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온 세상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그래서 다 짐승이 되 버리는 시대인데 그래도 영성이 제일 뛰어난 한국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마음 깊이 들어가서 참된 인간이 되는 불씨를 밝힐 때가 왔고 또 그것이 시급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영호: 좋은 말씀입니다. 나무 심을 때 사람들이 처음에는 버팀목을 댑니다. 나중에는 받쳐주는 버팀목을 떼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나무가 흔들리면서 뿌리를 내리고 더 단단히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책도 안 읽고 안 팔리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선> 같은 곳에서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하고 국민의 교양의 민도가 높아지면 민주주의가 잘 될 것입니다. 고무신 한 켤레에 주권 팔아먹는 그런 시대는 이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렵더라도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서 <공동선>이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류상태 : 세파가 거셀수록 뿌리가 더 깊이 내리듯이 그런 역할을 우리 사회의 의식 있는 분들과 또 종교인들이 같이 해나갔으면 합니다. 물론 이렇게 누구라고 한정을 짓는 것은 모순입니다.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만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님을 알듯이 우리 각자가 하늘임을, 또 하늘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면 존중되어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