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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버지 하나님 (마태복음 6;25-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흩어져 있는 샤론교회인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가정은 부모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정의 시작이고, 부모로부터 자녀들이 나서 형님, 언니, 동생 하는 형제들이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과 돌봄이 없이는 가정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전에는 아버지가 돈 벌어오는 가장이셨지만, 요즘은 아버지 어머니가 같이 돈을 벌고 호주제도 폐지되었습니다.
전에는 아버지가 가정을 대표하였으나 이제는 아버지 어머니가 같이 가정을 대표합니다.
세상의 가정은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지만, 영적인 면에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르고, 이다ㄴ인 안*홍증인회(하나님의 교회)는 죽은 안*홍 대신
그 부인을 어머니 하나님이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아버지는 우리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시작이 그렇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라틴어 사도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버지시며, 전능자시며, 창조주십니다.
또 우리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우리 믿음의 시작, 기도의 시작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같이 한 번 합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은 하나님이 부모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부를 때 우리 믿음의 세계가 열리고, 기도가 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장 14-15절)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같이 합시다. “아빠 아버지!”
예수님이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2절)
그러면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를 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절)
공중의 새는 우리와 같은 집이 없고, 농사도 짓지 않고, 창고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들을 먹이십니다.
참새도 먹이시고, 제비도 먹이시고, 카나리아도 먹이시고, 까마귀와 독수리도 먹이십니다.
또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8절)
들판에 아무렇게나 피는 백합화가 솔로몬왕의 옷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백합화 뿐만 아니라 모든 꽃들이 옷감을 짜거나 옷을 사러 다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꽃들에게 주신 모양 그대로 피니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들판에 핀 야생화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공중의 새들과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면서 강조하십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0절)
그 흔한 들풀들, 조금 있다가 시드는 꽃들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어찌 입히고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농사도 짓지 않고, 창고도 없고, 먹이를 보관할 냉장고도 없는 새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를 어찌 먹이고 기르고 아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아파트 같은 좋은 집에 살면서 둥지에 사는 새들보다 더 염려하지는 않습니까.
철따라 좋은 옷을 입고 따뜻하게 다니면서 잎이 떨어져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보다 더 염려하지 않습니까.
옛날 왕의 진수성찬만큼 좋은 음식을 날마다 먹으면서도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직장이 힘들지만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새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낫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새들이 어떻게 먹이를 구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남극의 황제 펭귄들은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러 극한의 추위 속에 먼 길을 오갑니다.
예수님이 또 참새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10장 29절)
여기 참새의 가격이 나오는데, 이것을 누가복음 12장 6절 말씀과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한 앗사리온 - 참새 두 마리
두 앗사리온 – 참새 다섯 마리
아마도 두 앗사리온을 주면 참새 한 마리를 끼워주는 것 같은데, 그렇게 끼워주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참새 한 마리도 먹이고 기르시고 그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장 31절)
사는 것이 힘들고, 집이 없거나, 염려거리가 많으면 하늘을 보라고 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옷이 없다고 생각되면 들판을 보라고 하십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여러 가지 걱정과 염려거리가 있으면 새와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현실이 힘들고, 내일의 삶에 불안과 걱정이 앞서면 참새들을 보고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염려와 걱정이 많은 사람은 참새보다 믿음이 적은 사람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많은 사람은 백합화보다 믿음이 적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걱정이 많습니다.
자녀들은 잔소리 그만 하라고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 들어오너라, 공부 열심히 해라, 조심해라, 친구 잘 사겨라, 야식 그만 먹어라, 핸드폰 그만 봐라…
아버지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란 제목의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겐 참 두려운 게 많습니다 / 잘 모르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부끄러운 일은 헤아릴 수도 없고 / 지치고 힘든 때에도 / 그때도 의연한 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 난 참 좋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 난 참 다행입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 난 참 좋습니다
우리가 갑자기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만날 때 크게 부릅니다.
“엄마!” “아빠!”
그러면 엄마 아빠가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하십니다.
동네 아이에게 맞고 울면서 돌아오면 부모가 “어느 놈이 때렸느냐?” 하며 가자고 하십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우울증을 앓다가 목숨을 끊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자책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시험을 대신 쳐 줄 수도 없고, 군대를 대신 가 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절)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30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태복음 10장 31절)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아버지!” 하고 부를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왔구나. 너의 형편을 다 안다. 힘들었지. 괜찮다. 내가 있다. 내가 네 아버지 아니냐.”
최근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던 꼬마 홍잠언의 대표곡이 “내가 바로 홍잠언이다.”입니다.
그 꼬마가 “내가 바로 홍잠언이다!”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 네 아버지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신*지 무리들의 실체가 많이 드러났습니다.
신*지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구석구석 없는 데가 없고, 또 얼마나 무지하고 미혹된 자들인지가 뉴스를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제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코로나 확진자 46명이 나와서 아파트 전체가 격리되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35세 이하의 미혼 여성만 입주할 수 있는데, 전체 142명의 입주자 중에서 94명이 신*지 무리랍니다.
며칠 전 신*지 이다ㄴ의 교주인 이*희가 기자 회견을 하였습니다.
금년 89세인데,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다, 옆에서 시키는 말을 따라하는 지경이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빼돌리고, 젊은 여자들을 끼고 살면서,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영생불사를 강조하는 인생을 믿고 따르는
신*지 무리들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기자가 “본인이 영생불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또 평소 신*지 무리들에게 영생불사를 강조하며 ‘아프지 말아야 한다’ ‘병원에도 가지 마라’고 가르치면서, 자기는 “매년
10월 독감 주사도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희 교주를 이긴 자라 하며, 이긴 자를 믿고 영접해야 구원을 받고 영생불사한다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십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집 천국을 주시고, 거기서 영원토록 함께 살게 하시는 아버지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살피는 아버지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장 12절)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들을 아시고, 날마다 채워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우리를 늘 살피시고, 혹시 우리가 아프거나 힘들어 하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돌보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약자로 나그네와 과부, 고아와 잃은 양을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목자이신 양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편 1절)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목자 되시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장 8절)
오늘도 힘들고 염려거리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란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이해하라고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고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 너희 아버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십니다.
염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흔들의자와 같아서 뭔가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언제나 제자리입니다.
염려는 할수록 더 자라고 커지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를 가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내일(미래)의 일이며,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 놓고 걱정합니다.
생각해 보면 염려의 대부분은 내일(미래)의 것을 미리 당겨서 가불한 것입니다.
살다보면 월급을 가불할 수는 있지만, 염려까지 가불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이고 시골길을 갑니다.
지나가던 차가 서서 그 할머니를 태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차에 타고서도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할머니, 왜 짐을 머리에 이고 계세요? 내려 놓으세요.”
“차를 얻어 타는 것만도 고마운데, 짐까지 내려 놓으면 더 무거워질 거라 미안해서 그러지요.”
하나님 아버지께는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믿음의 차를 타고서는 염려 보따리를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염려 보따리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합니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새들을 보세요.
새 소리가 우는 소리로 들립니까, 노랫소리로 들립니까?
염려와 걱정거리가 많습니까?
들의 꽃들을 보세요.
꽃이 우울한 표정입니까, 활짝 웃는 모습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힘있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냥 생각하면 염려와 걱정거리가 가득하고 절망스럽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생각하면 담대하고 힘이 생기고 용기가 솟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늘을 힘있게 살아가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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